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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8월 16일 오전10시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위헌 판결을 촉구하는 교수·연구자 429명의 연서명 의견서 제출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진 속은 필자 권수현(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부대표)의 발언모습.
 2018년 8월 16일 오전10시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위헌 판결을 촉구하는 교수·연구자 429명의 연서명 의견서 제출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진 속은 필자 권수현(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부대표)의 발언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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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 년 전, 제 어머니는 낙태(인공임신중절수술)를 했습니다. 어머니에게 그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일차적인 이유는 가난이었습니다. 이미 두 명의 아이가 있던 어머니는 아이 세 명을 키우기에는 집안형편이 녹록지 않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아버지와 의논해서 낙태를 결정했습니다.

경상도라는 보수적인 공간에서 태어났고 많은 것을 배우지 못한 제 어머니는 국가가 하는 말이라면, '다 무슨 뜻이 있겠지'라고 생각하고, 국가가 하라고 하면 그에 잘 따르며 살아오신 분입니다. 더욱이 박정희 정권이 그래도 우리를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줬다고 생각하시는 분입니다. 그런 어머니가 어떻게 박정희 정권 시절에 낙태를 했고, 할 수 있었을까요? 어머니는 "그 당시에는 모두가 낙태를 했다, 안 한 사람이 없었을 것"이라며 "낙태가 불법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자보건법이 1973년에 제정됐으니 낙태는 이미 불법인 상태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태가 불법이 아니게 된 것은 당시 박정희 정권의 정책 때문이었습니다. 박정희 정권은 인구가 많다며 산아제한 정책을 펼쳤고, 1970년대 산아제한 정책 구호는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였습니다. 정부에서 둘만 낳으라고 했고, 이미 둘을 낳았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낙태를 했고, 일반병원에서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낙태를 해줬기 때문에 저희 어머니는 낙태를 불법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낙태를 하는 것이 국가 정책을 잘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희 어머니가 낙태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가정의 빈곤이었지만 그것을 정당화할 수 있었던 것은 국가 때문이었습니다. 국가가 법을 어기면서 낙태를 합법화했고 오히려 장려했기 때문입니다. 정부의 말이 곧 법이라고 생각해 정부 정책을 따라 낙태를 한 저희 어머니가 범법자입니까? 법을 어기면서 정책을 시행한 국가가 범법자입니까? 낙태가 죄라면, 그 범인은 국가입니다.

낙태가 죄라면 그 범인은 국가다 2017년 한국여성민우회, 사진작가 혜영이 진행한 낙태죄 폐지를 위한 사진프로젝트 Battleground 269
▲ 낙태가 죄라면 그 범인은 국가다 2017년 한국여성민우회, 사진작가 혜영이 진행한 낙태죄 폐지를 위한 사진프로젝트 Battleground 269
ⓒ 한국여성민우회, 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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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아제한을 이유로 낙태를 합법화했던 국가가 이제는 인구증가를 이유로 낙태에 대한 처벌을 더 강화하려 하고 있습니다. 국가가 낙태의 합법화와 불법화를 결정하는 이유에는 여성의 몸에 대한 존중은커녕 아이에 대한 생명 존중도 없습니다. 그저 인구가 많아야 국가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경제적인 이해관계밖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미 태어난 생명들도 제대로 돌보지 않으면서 태어나지도 않은 생명에 대해 이야기하지 마십시오. 차디찬 바다 속에서, 뜨거운 유치원 차량 안에서, 지하철 선로에서, 대형마트 엘리베이터 공사현장에서 목숨을 잃고 있는 아이들을 방치해놓고 있으면서 태어나지도 않은 생명에 대해 이야기하지 마십시오. 임신한 청소년의 학습권도 보장하지 않고, 혼자 아이를 낳아 키우는 여성에게 '부도덕한 여성'이라는 낙인을 씌우고, 한부모 가정의 자녀에게 '비정상 가족'이라는 낙인을 씌우고, 육아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는 여성들에게 '책임감이 없다' 비난하고, 전업주부를 '맘충'이라 비난하는 것을 묵인·방조하면서 태어나지도 않은 생명에 대해 이야기하지 마십시오.

생명이 중요하다면, 여성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을 분리하지 마십시오. 우선순위를 매기지 마십시오. 여성의 몸이 건강하지 않으면, 아이도 건강하지 않습니다. 여성이 행복하지 않으면, 아이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생명이 중요하다면, 여성의 신체를 단지 아이를 낳는 도구로 보고 성적 대상으로만 보는 국가의 시선부터 바꾸십시오. 생명이 중요하다면, 여성들의 자기 몸에 대한 권리, 건강권과 안전권을 인정하고, 여성들이 안전하게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받을 수 있게 하십시오. 생명이 중요하다면, 여성들에게 낙태의 책임을 물을 것이 아니라 여성들이 낙태를 할 수밖에 없는 원인을 찾아 그 원인을 해결하는 데 집중하십시오.

 2018년 8월 16일 오전10시 헌법재판소 정문에서 낙태죄 위헌 판결을 촉구하는 교수·연구자 429명이 연서명한 의견서 제출 기자회견이 열렸다.
 2018년 8월 16일 오전10시 헌법재판소 정문에서 낙태죄 위헌 판결을 촉구하는 교수·연구자 429명이 연서명한 의견서 제출 기자회견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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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이 세습화되고 있고 모든 문제의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각자도생의 불안한 사회에서 사람들이 아이를 낳아야 할 이유는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낙태 때문에 인구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구조와 정책이 아이를 낳지 않도록 내몰고 있는 것입니다. 그동안 남성들이 추진한 국가의 잘못된 경제정책과 복지정책으로 인한 인구감소의 책임을 왜 여성들에게만 전가하려고 합니까?

국가는 구성원 개개인의 권리를 보장하고 신장하는 의무를 갖고 있지 통제하고 억압하는 권리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국가가 지속적으로 여성의 몸을 통제하려고 한다면, 그 결과는 국가가 원하는 목표 달성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고 싶다면, 여성들의 목소리를 들으십시오. 여성들이 자신의 신체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독립적으로, 자유롭게 그리고 안전하게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십시오.

 2018년 8월 16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위헌 판결을 촉구하는 교수·연구자 429명의 연명 의견서를 제출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2018년 8월 16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위헌 판결을 촉구하는 교수·연구자 429명의 연명 의견서를 제출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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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8월 16일 오전10시 헌법재판소 정문에서 낙태죄 위헌 판결을 촉구하는 교수·연구자 429명이 연서명한 의견서 제출 기자회견이 열렸다.
 2018년 8월 16일 오전10시 헌법재판소 정문에서 낙태죄 위헌 판결을 촉구하는 교수·연구자 429명이 연서명한 의견서 제출 기자회견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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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8월 16일 오전10시 헌법재판소 정문에서 낙태죄 위헌 판결을 촉구하는 교수·연구자 429명이 연서명한 의견서 제출 기자회견이 열렸다.
 2018년 8월 16일 오전10시 헌법재판소 정문에서 낙태죄 위헌 판결을 촉구하는 교수·연구자 429명이 연서명한 의견서 제출 기자회견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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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16일 오전 10시, 낙태죄 위헌 판결을 촉구하는 교수·연구자 429명이 연서명한 의견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하였다.
 8월 16일 오전 10시, 낙태죄 위헌 판결을 촉구하는 교수·연구자 429명이 연서명한 의견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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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본 글은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도 중복게재 되었습니다. 본 글은 2018년 8월 16일 오전 10시, 헌법재판소 앞에서 진행한 "낙태죄 위헌 판결을 촉구하는 교수·연구자 429명의 의견서 제출 기자회견" 당시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부대표)가 낭독한 발언문의 전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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