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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 년 전에 알고 지낸 부부가 있다. 우리 부부와 나이가 엇비슷하다. 십여 년 전이니 우리는 막 50이 되었거나 50대 초반이었다. 그 집 남매는 고등학생이 되기 전 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집에는 부부만 남았다. 남편은 800평 과수원 농장을 하고 부인은 중등 교사였다.

어느 날, 그 집 부인이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곧 여름방학인데 큰일 났네. 방학 정말 싫은데.' 난 좀 의아했다. 교사라면 일반 직장인과 달리 직업특성상 방학이라는 '특권'이 있지 않은가.

학기 중에 수업과 행정업무, 학부모상담 등, 여러 일들이 과중하게 맡겨져도 그걸 견디게 하는 건 방학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학생들 못지않게 교사도 당연히 방학을 기다리는 거라고 생각했다.

"방학하는 날부터 주방을 떠날 수가 없어. 남편이 보통 여섯 식, 일곱 식, 아니 여덟식까지 해. 주방에서 종종거리다 보면 아주 발바닥이 아파. 방학동안에 직무연수 신청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내가 해당되는 게 없더라구."

"어떻게 팔식(여덟식)이 가능해요?"


부인의 표정은 진지했다. 아저씨가 일이 많기는 했지만 어떻게 팔식을 할지 계산할 수 없었다.

"새벽에 일어나서 한 번 먹어. 아침 점심 저녁은 반드시 먹지. 그 사이에 참으로 또 먹어. 밤에는 야식을 먹는다구. 일어나서 잠들기 전까지 수시로 먹는 걸 일식으로 치자면 팔식이지 뭐."

다 큰 아들 밥 챙기랴 애면글면

 밥은 내가 챙겨줘야 한다는 이 뿌리 깊은 인식을 극복해야 한다
 밥은 내가 챙겨줘야 한다는 이 뿌리 깊은 인식을 극복해야 한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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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이 되어 타지에서 자취하며 대학에 다니는 아들이 집에 왔다. 반가웠다. 아이가 오기 사흘 전부터 나는 부지런을 떨었다. 침대시트를 벗겨 빨고 집안 구석구석 청소를 했다. 김장김치, 된장, 고추장, 마늘종장아찌 정도가 있는 우중충한 냉장고 속 때깔도 달라졌다.

붉은 물고추를 갈아 열무와 얼갈이를 섞어 담근 김치, 오이무침, 꽈리고추멸치볶음, 계란말이가 투명한 락앤락 통에 담겼다. 뿌듯했다. 야채박스에는 방울토마토와 달달한 참외가 있고, 김치냉장고엔 반으로 쩍, 갈라놓은 수박이 있다. 냉동실에는 아이스바도 열 개들이 한 봉지 담다 들여놨다.

"집에 오니까 먹을 게 많네. 역시 집이 최고야."

아들은 밥을 먹고 과일을 먹는다. 아이스크림도 골라 먹는다.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 찬 우유를 물마시듯 컵에 따를 새도 없이 입에 대고 들이킨다. 해가 뜨면 아침을 훌쩍 넘긴 시간에 느지막이 일어난다. 오징어채볶음, 소시지구이 등 아들 입맛에 맞는 반찬은 금세 바닥이 드러났다.

나는 수시로 마트를 들락거리며 냉장고를 채웠다. 때로는 유기농 생협에만 있는 것들을 사러 일부러 먼 곳에 있는 매장을 찾기도 했다. 아들아이가 있을 때, 밥 때가 되면 나는 반사적으로 주방에 간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다. 아들이 요구하지도 않았다. 밥을 챙기는 일에 내 몸은 언제나 머리를 앞서 움직였다. 어느 날, 밥이 차려진 식탁에 앉아 수저를 들면서 아들아이가 말했다.

"와, 숟가락만 들면 되네. 집(아들이 자취하는 곳)에서 직접 하려면 시간도 걸리고 돈도 드는데. 요리하려면 머리도 써야 돼."

머릿속에 번갯불이 휙 지나갔다. 아들이 2년 넘게 자취를 하고 있으니 이제 어지간한 음식은 자기가 알아서 해먹을 줄 아는 것이다. 군대도 갔다 오고 성인이 된 아들한테 매 끼니마다 밥 챙겨주는 것에 왜 나는 이다지도 애면글면하는가. 수저까지 놔주면서 말이다.

내가 직장에 다녔던 4년 동안 이렇게까지 아들을 챙겨줄 수는 없었다. 퇴사하고 집에 있게 되면서 '집에 있다는 것'만으로 나 자신이 자책을 하는 건 아닌지 뒤돌아보았다. 아들은 그동안 스스로 밥을 해먹으면서, 엄마가 밥 준비를 하기 위해 장을 보고 재료를 손질하며 요리에 드는 시간과 노동을 생각했을 터. 아들이 앞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먹는 일의 중요한 과정을 생략하게 한 장본인인 것 같았다. 나는 솔직해져야 했다. 요즘 갱년기로 몸이 예전과 다르다는 것도 아들에게 말했다.

"엄마가 밥 챙기고 음식 만드는 데 좀 힘들어. 너도 그동안 밥을 해먹었으니까 일주일에 한 번은 니가 밥 준비를 했으면 해. 가끔 유성5일장도 봐와."
"응~ 해왔던 일인데 내가 할게. 근데 나 낼부터 알바 해. 아침만 먹고 점심 저녁은 일하는 데서 먹고 와."

덥지? 오늘 고생했다

방학을 맞은 팔식이 아저씨의 부인은 지금도 발바닥이 아플 정도로 주방에서 움직이고 있을까. 방학 중에 지친 몸을 추스르고 다음 학기를 활기차게 준비해야 할 교사가 팔식을 준비하면서 에너지를 다 소비한다면 그 스트레스는 누구에게 갈 것인가. 가족 구성원 각자에게 맡겨진 일들은 다양하다. 식구들 밥을 준비하는 일, 온전히 한 사람의 헌신으로 요구되기에는 벅차다.

아들이 알바를 끝내고 돌아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수십 년 몸에 달라붙은 습관이 무섭다. 아들이 저녁을 먹고 온다는 말을 들었음에도 자동인형처럼 주방으로 가고자 하는 나. 이 무더위에 냉장고에서 시원한 물이라도 꺼내줘야 하지 않겠는가, 라고 자아가 속삭인다.

이 생각마저도 눌러 앉혀야 한다. 아니, 때가 되면 밥 챙겨 먹을 줄 아는 아들과, 밥은 내가 챙겨줘야 한다는 이 뿌리 깊은 인식을 극복해야 한다.

아침부터 나는 가사노동을 하면서 책을 읽고 틈틈이 글을 쓴다. 컴퓨터 앞에서 하던 일을 계속하고 말만 진심으로 해보기로 한다. 그 말은 나에게도 하는 말이다.

"덥지? 오늘 고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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