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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1월, 일본 나고야에서 도쿄로 가는 신칸센 열차 안. 30대 중반의 재일한국인 사내가 상념에 잠겨 있었다. 멀리 후지산이 보이는 시즈오카를 지날 무렵, 그의 머릿속에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한국 민중이 듣고 부른 노래의 역사를 책으로 한번 엮어 볼까?'

뜬금없이 떠오른 그 생각이 장장 40년에 걸친 위대한 연구와 저술 여정의 출발이었다. 9년이 지난 1987년에 1차 결과물로 <한국가요사 1895~1945>(쇼분샤)가 일본어로 출간되었다. 9년 동안 수많은 음반, 잡지, 신문 등 자료를 뒤져 힘겹게 일구어낸 성과였다. 당시 한국에서는 대중가요 역사에 대한 실증적 연구가 전무했고, <한국가요사 1895~1945>는 당연히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1987년 일본에서 출간된 <한국가요사>
 1987년 일본에서 출간된 <한국가요사>
ⓒ 이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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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번역 출판을 제의받은 사내는 다시 자료와 씨름에 돌입했다. 번역 원고를 직접 쓰지는 않았지만, 새롭게 증보하기로 한 가사를 정리하는 일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단순 번역이 아닌 번역 겸 증보로 펴낸 <한국 가요사 1895~1945> 한국어판(현암사)은 1992년에 출간되었고, 국내 대중음악 연구 역사에 새로운 기원이 되었다.

한국에서도 많은 독자가 생기게 되자 이제는 또 자연스럽게 1945년 이후를 집필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하지만, 일본에도 자료가 많은, 어쩌면 더 많을 수도 있는 1945년 이전과 달리 광복 이후 대중가요 역사를 정리하는 일은 일본에서 평생을 살아 온 저자에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그는 다시 한 번 결심을 했고, 이번에는 한글 원고도 직접 쓰기로 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2009년, 작업은 드디어 결실을 보게 되었다. 1945년 이전을 또 다시 수정·증보한 <한국 가요사 1>과 1945년부터 1980년까지를 다룬 <한국 가요사 2>(미지북스)가 나란히 세상에 나왔다.

 2009년에 간행된 <한국 가요사> 2
 2009년에 간행된 <한국 가요사> 2
ⓒ 이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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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신칸센 열차 안에서 생각을 떠올렸을 때로부터 30여 년이 지났고, 30대 중반이었던 사내는 이제 노년으로 접어들었다. 이제 그만 밤새워 원고를 입력하던 자판 앞을 떠날 수도 있었지만, 그는 계속해서 또 원고와 마주했다. 이번에는 근 백년 노래 역사를 정리한 두 권을 모두 일본어로 다시 번역하는 일이었다. 물론 그냥 번역이 아니라 거듭 내용을 수정하는 작업이 더해졌다.

원고를 정리하는 일은 차라리 어렵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 사이 그는 위암 수술을 받았고, 출판 경기가 예전 같지 않은 일본에서 출판사를 잡는 일이 쉽지 않아 적잖이 마음고생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일본어판 <한국가요사> 1, 2 두 권은 지난 7월에 결국 세상 빛을 보게 되었다. 제작을 맡은 가미야 카즈요시씨는 <한국가요사>를 위해 출판사 오라샤를 새로 설립했다고 한다.

 2018년 7월에 출간된 일본어판 <한국가요사> 1, 2. 도쿄 출판기념회 당일 숙소에서.
 2018년 7월에 출간된 일본어판 <한국가요사> 1, 2. 도쿄 출판기념회 당일 숙소에서.
ⓒ 이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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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처음 생각을 떠올린 이후 이번 일본어판 <한국가요사> 두 권을 내기까지, 무려 40년 동안을 연구와 저술에 몰두해 온 그는 바로 재일한국인 대중가요 연구가 박찬호 선생이다. 1943년에 나고야에서 태어나 줄곧 일본에서 생활해 온 선생이 이룬 이 거대한 업적은 그 어떤 상찬을 받아도 지나침이 없는 일이었다. 대중가요 연구가 이영미씨는 2009년판 발문을 통해 "그 성실함에 고개가 숙여질 뿐"이라고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다.

오랫동안 기다려 온 일본어판 <한국가요사> 출간 소식과 함께 출판기념회를 열게 되었다는 말씀도 박찬호 선생께 들었을 때, 나는 바로 도쿄와 나고야로 가는 비행기 표를 예매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45년 이후 원고에 미력이나마 보탠 바 있었기에, 그리고 무엇보다 역시 대중음악을 공부하는 내게 박찬호 선생은 이런저런 형식을 떠난 진정한 스승이었기에.

첫 번째 출판기념회는 7월 12일 도쿄에서 열렸다. 재일한국인 가수 이정미씨가 사회를 보는 가운데 와다 하루키(도쿄대 명예교수), 가토 마사요시(음반 수집가), 조박(가수), 송안종(가나자와대 교수)씨 등 재일한국인, 일본인, 한국인 참석자 50여 명 모였다. 행사장으로 오는 도중 길에서 넘어져 주인공 박찬호 선생 얼굴이 상처투성이가 돼 버리긴 했지만, 액땜이라 할 수 있었을까, 출판기념회는 2차까지 이어지며 성황을 이루었다.
 나고야 출판기념회에서 강연하는 박찬호 선생
 나고야 출판기념회에서 강연하는 박찬호 선생
ⓒ 이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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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출판기념회는 열흘 뒤 22일에 나고야에서 열렸다. 나고야 YWCA에 마련된 행사장에는 역시 재일한국인, 일본인, 한국인 참석자 50여 명이 어울려 참석했고, 도쿄에서와는 달리 박찬호 선생과 개인 친분이 깊은 이들이 많이 모였다. 한 사람 한 사람 마이크를 잡고 박찬호 선생과 맺어 온 인연을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뭉클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에는, 통상 의례적이기 쉬운 출판기념회의 허식과는 거리가 먼 소박한 진정이 어려 있었다.

나고야 출판기념회 역시 2차로 이어졌고, 그 장소가 또 각별했다. 박찬호 선생은 원고를 집필하는 오랜 세월 동안 주로 새벽에 자판을 두드리고 낮에는 야키니쿠 식당 일을 했는데, 바로 그 식당, 박찬호 선생 가족이 운영하는 '장수원'에서 2차 모임이 열렸다. 질 좋은 고기와 곱창, 한국 어느 식당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정갈한 김치와 나물이 푸짐했다. 술잔이 돌면 으레 노래도 나오는 법. '장수원'의 2차 모임은 출판기념회라기보다는 한바탕 흥겨운 잔치였다. 거기서는 한국도 일본도 재일도 따로 없었다.

박찬호 선생은 지난 2016년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구술채록사업 구술자로 선정되어 열 시간 남짓 소중한 이야기를 녹음한 바 있다. 조선인으로 태어난 것을 부정하고 원망했던 소년이 민족운동에 헌신하는 열혈 청년으로 거듭난 사연,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국의 권력자들에 의해 불온한 인물로 낙인찍힌 사연, 그리고 한국 민중의 노래 역사를 정리하기 위해 40년 동안 노력해 온 사연이 담담하게 기록되어 있다.
 2016년 나고야 '장수원'에서 구술을 진행하는 박찬호 선생
 2016년 나고야 '장수원'에서 구술을 진행하는 박찬호 선생
ⓒ 이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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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보면 1987년 이후 이번까지 네 차례나 거듭 간행된 박찬호 선생의 책은 한국 민중의 노래 역사를 담아 낸 기록인 동시에, 70여 년 역사의 주인공이기도 한 당신 스스로가 오랫동안 불러 온 또 다른 노래일지도 모른다. 외로움 속에서도 쉼 없이 힘차게 불러 온 <소리 없는 아우성> 같은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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