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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동 전 국세청장
 이현동 전 국세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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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 예산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뒷조사 작업에 사용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현동 전 국세청장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법원이 국정원의 정치인 사찰행위를 정당화해준다는 지적을 받는 가운데 법원은 재판이 비공개로 진행된 적이 있다는 이유로 판결문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8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1부(부장판사 조의연)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혐의와 국고손실 혐의를 받는 이 전 청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 전 청장은 지난 2월 구속된 지 6개월 만에 구치소에서 풀려났다.

이 전 청장은 2010년 5월부터 2012년 3월까지 국정원 예산 5억 3500만 원과 4만 7천달러를 김 전 대통령의 해외 비자금을 추적하는 '데이비슨 사업'에 사용했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추모 분위기가 지속되고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는 여론이 형성되자,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심리전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국세청을 동원했고, 이 전 청장이 공범으로 김 전 대통령의 뒷조사에 가담했다고 봤다.

검찰은 뒷조사에 사용된 돈이 국정원 특수활동비 중 대북공작금에서 사용됐고, 그중 1억 2천만 원은 이 전 청장이 국정원에 협조한 대가로 받은 자금이라고 봐 국고손실, 뇌물죄로 적용했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김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추적하는 행위가 국정원의 업무 범위에 포함된다고 봤다. 재판부는 "비자금 첩보의 대북 관련성"을 인정해 "해외 비자금 추적 활동이 국정원 직무가 아니라고 할 수 없고, 이 전 청장이 원 전 원장과 구체적인 대화를 했다거나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알려준 증거가 없다"라고 판단했다. 법원이 "국정원의 요청에 협조한 것뿐"이라고 주장했던 이 전 청장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또, 재판부가 원 전 원장, 이 전 청장에게 돈을 건넸다는 김승연 전 국정원 대북공작국장 등 관계자들의 진술을 신뢰하지 않으면서 뇌물수수 혐의도 유죄로 인정되지 않았다.

검찰은 즉각 반발하며 항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정치적 의도를 인식하고 국세청이 스스로 액수를 정해 국정원에 자금을 요청한 후 전달받아 해외 정보원에게 은밀한 방법으로 직접 전달하는 등 (이 전 청장이) 불법공작의 핵심 역할을 수행한 것이 확인된 상황에서 고의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 선고한 것은 수긍하기 어렵다"라며 "국정원이 불법적 요구를 하면 국가기관이 그대로 따라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결론에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앞서 검찰은 이 전 청장에게 징역 8년과 벌금 2억 4천만 원을 구형했다.

DJ 비자금 추적이 '국정원 업무'라는 법원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13명의 대법관들.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13명의 대법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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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는 김 전 대통령의 해외 비자금을 추적하는 행위가 국정원의 직무범위에 포함된다고 봤으나 국가정보원법상 국정원의 직무범위는 국외 정보 및 국내정보(대공, 대정부전복, 방첩, 대테러 및 국제범죄조직)의 수집·작성 및 배포, 국가 기밀에 속하는 문서·자재·시설 및 지역에 대한 보안 업무 등으로 제한된다.

이로 인해 이번 판결이 국정원의 '특정인 뒷조사'를 정당한 행위로 감싸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전 청장은 정보 수집을 하는 해외정보원, 국정원과 약 2년 동안 소통을 하며 자세한 보고를 받았다.

해당 판결은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국정원의 국내정치 개입을 엄격히 본 원 전 원장의 국가정보원법·공직선거법 위반 판결이나 국정원 직원이 이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 후보일 당시 친인척과 지인의 개인정보를 열람한 행위를 유죄로 인정한 판결과도 배척된다.

대법원 전합은 지난 4월 재상고심 선고를 통해 원 전 원장의 두 혐의에 대해 모두 유죄를 선고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이 정치 관련 글 약 11만 건 등을 작성한 행위는 국정원의 직무범위를 넘어서 정치에 관여한 것이라고 인정했다. 원 전 원장 측이 북한의 선거개입에 대응하기 위한 의도였다고 주장했으나 대법원은 이 전 청장의 재판부와는 달리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 법원은 이 전 대통령과 관련한 형사재판에서 정치인에 대한 정보수집이 국정원의 직무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바 있다. 법원은 2006년 8월부터 11월까지 당시 서울시장 후보의 친인척과 지인 131명의 개인정보 563건을 불법으로 열람한 행위(국가정보원법 위반)로 재판에 넘겨진 국정원 직원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당시 법원은 "공직자의 부패·비리행위를 적발하기 위한 정보수집 활동은 국가정보원의 적법한 직무범위에 속한다고 주장하지만, 직무범위를 넘어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권한을 남용한 사안으로 비난 가능성이 크다"라고 형을 확정했다.

한편 법원은 이 전 청장의 판결문을 공개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재판부는 법원 예규 등에 따라 증인으로 나온 국정원 관계자의 요청으로 비공개 재판 심리를 진행한 적이 있다는 이유로 판결문을 '공개제한대상'으로 신청했다.


태그:#이현동, #국세청, #이명박, #김대중, #국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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