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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든 남성을 주로 칭하던 말 '꼰대'. 하지만 꼰대는 성별과 나이를 가리지 않습니다. 최근에는 '젊은 꼰대'라는 말도 생겨나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나도 젊은 꼰대였다'는 고백부터, '젊은 꼰대 되지 않는 법'까지. 2030세대의 이야기를 싣습니다. [편집자말]
사무실로 주문한 홍보물이 도착했다. 포스터, 현수막, 기념품 등 자질구레한 물건이었지만 다 쌓아놓고 보니 양도 무게도 상당했다.

"다 같이 잠깐 물건 정리 좀 할까요?"

다들 잠시 일을 내려놓고 모여 물건 정리를 하는데 조금씩 꾀를 부리는 신입 직원이 눈에 걸렸다. 짐 정리를 안 하는 건 아닌데 하는 모양새가 영 탐탁지 않았다. 멀뚱히 서 있다 누군가 일을 구체적으로 지시할 때만 마지못해 손을 놀렸다. 짝다리를 짚고 서 있는 모양새도 귀찮다는 듯한 표정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 회식 때도 한소리 할까 하던 것을 참았던 생각이 났다. 회식 내내 수저와 젓가락을 세팅하는 것도 나였고 고기를 굽고 있는 것도 나였다. 새침하게 젓가락질만 하는 그를 보니 짜증이 났다가, 그런 내가 우스워 속으로 픽하니 헛웃음을 지었다가, 나도 어쩔 수 없나 자괴감이 들었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꼰대인가?'

꼰대라니. 그런 건 회사에서 10년, 20년 굴러먹은 나이 든 영감에게나 어울리는 말이라 생각했다. '우리 때는'과 '왕년엔'과 '요즘 것들은'을 피처링처럼 덧붙이는 꼬장꼬장한 노인네들 말이다.

'해봤어?'와 '내가 해봤는데'를 장식처럼 달고 다니며 '너는 어려서 모르겠지만'과 '내가 자식 같아서 하는 말인데'를 필수템으로 생각하는 사람들. 그런 이들을 보고 꼰대라고 하는 것 아닌가?

이런 나, 혹시 꼰대인가요

드라마 <미생> 스틸컷
 드라마 <미생> 스틸컷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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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국어대사전에는 '꼰대'를 '은어로 늙은이를 이르는 말'이라고 정의한다. 그렇지만 젊은 꼰대가 판치는 요즘 나이가 많다고 해서 꼰대라고 부르는 건 몸만 늙은 청춘들에게 억울한 일이 아닐까? 꼰대는 뭘까? 괜찮은 꼰대가 되는 방법은 없을까? 혹시 내가 꼰대 아닐까? 하여 주변 지인들에게 꼰대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막내가 자꾸 회식 빠지면 개념 없다는 생각이 들죠. 저는 뭐 즐거워서 회식 가나요? 막내가 안 오면 2차 자리 알아보고 대리운전 잡아드리고 하는 잡일은 다 제가 하는 건데요. 그럴 때면 제가 꼰대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회식을 참여하든 안 하든 막내의 선택인 건 맞잖아요."
"내가 해봤는데 그건 이래서 안 되었고 저래서 안 되었어. 너는 나 같은 실수 안 했으면 좋겠어서 하는 말이야. 후배한테 이런 말 할 때 제가 꼰대 같죠. 저는 진심이긴 했지만 듣는 후배 표정을 보고 아차 싶었어요. 제가 해서 안 되었다고 후배도 해보지 말라는 게 꼰대스러운 것 같더라고요. 저는 정말 친동생 같아서 한 말이었거든요. 하지만 후배라고 해도 결국 남이잖아요. 사실 저도 어른들이 그렇게 말하면 뭘 안다고 저러나 좀 짜증스러웠거든요."


꼰대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도 많았지만 이 사회엔 어느 정도 꼰대가 필요하다는 말도 있었다.

"후배들한테 잔소리하면 다 꼰대라고 부리는 것 같기도 해요. 그래도 누군가 잔소리는 해야죠. 그래야 조직의 기강이 잡히고요. 규율이 없으면 그게 동아리지 회사겠어요? 후배들 눈치 보느라고 훈계 안 하는 게 더 비겁한 거 아닌가요?"
"제가 꼰대가 되어간다고 느끼지만 그냥 받아들이려고 해요. 세대가 다른 걸 어쩌겠어요. 꼰대이면서 꼰대가 아니려고 노력하는 게 더 애처로운 일이죠."

꼰대는 하루 아침에 되지 않는다

영화 <특별시민> 스틸컷
 영화 <특별시민> 스틸컷
ⓒ (주)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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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에 명시된 것처럼 꼰대가 늙은이를 이르는 말이라면 나이를 먹고서도 꼰대가 되지 않기는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괜찮은 꼰대가 되는 방법이 아예 없지는 않은 것 같다.

하나, 제가 어려서 잘 모른다고요?

"너는 어려서 아직 모르겠지만."
"아무개씨가 올해 몇 살이지?"
"여자들은 이해 못 하는 그런 게 있어."

상대에게 조언하거나 설득하기 위해 나이나 성별을 꺼내는 것이야말로 꼰대처럼 보이기 딱 좋은 방법이다.

젊은 사람이라고 나이 이야기를 안 하는 것은 아니다. 젊은 꼰대의 특징은 한 살 차이도, 일 년의 경력 차이도 하늘과 땅처럼 대한다는 데 있다. '1년 선배는 영원히 1년은 선배'라는 주의다.

대학교 2학년생들이 1학년생을 불러다 기합을 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저들이 딱 젊은 꼰대라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자기 입맛에 맞춘 기준은 제멋대로 변한다. 상황에 따라 '경력은 내가 부족하지만 나이가 내가 많으니까'였다가 '아무리 나이가 많대도 내가 경력이 많은데'로 바뀐다.

꼰대들은 때로 '남자들은 꼼꼼하지 못해서', '여자들은 자기 이익만 챙겨서'라며 성별로 상대를 무시하는 발언도 한다. 업무와 상관없는 성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설사 그것이 칭찬이라고 할지라도 꼰대의 대표적 특성이 된다.

외모에 대한 칭찬도 마찬가지다. '아무개씨는 키가 훤칠해서 그런지 일을 잘해'라거나 '아무개씨가 예뻐서 사무실 분위기를 좋게 만들어'라는 말은 침묵보다 못한 칭찬이다.

상대를 칭찬하거나 누군가에게 조언을 줄 때 그 이슈와 관계없는 개인의 특성을 들먹거리는 일만 자제해도 꼰대화(化)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둘, 어디서 충고질(!)이세요?

젊은 꼰대의 또 다른 특징은 충고를 사랑한다는 것에 있다. 상대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너는 그게 문제야'로 시작되는 조언은 그야말로 '충고질'이 될 수 있다. 이런 마음은 실은 상대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 자신을 내세우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다.

자신의 장점을 자랑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를 칭찬하기 위해 자신을 깎아내릴 필요가 없듯 자신을 높이기 위해 상대를 낮출 필요도 없다. 자랑하고 싶은 것이 있거든 차라리 대놓고 자랑하자. 그리고 자랑을 들어준 상대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커피라도 한 잔 사자.

가끔 정말 조언을 원하는 이가 있을 수도 있다. 그가 절실하다면 당신이 한두 번 조언을 고사하더라도 따로 찾아와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할 것이다. 그때 입을 여는 것이야말로 멋진 꼰대가 되는 방법이다.

셋, 내가 틀릴 수도 있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마음. 의외로 많은 젊은 꼰대들이 이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 나이 든 사람들이 '내가 해 봐서 아는데' 혹은 '나 때는'이라고 운만 띄워도 고개를 젓고 귀를 막는다.

어쩌면 뒷말은 '내가 해봤을 때는 이랬지만 지금은 아닐 수도 있다. 내가 실패했으니 너는 성공해라' 혹은 '나 때는 이랬지만 지금은 세월이 많이 변했으니 다를 수도 있다'일지도 모른다.

필요한 조언도 듣지 않고 무조건 내가 맞을 것이라 우기는 것이 젊은 꼰대의 특징이다. 귀를 막고 달리는 무모한 도전은 젊음으로 예쁘게 포장되지 않는다. 내가 틀릴 수도 있음을 받아들이는 게 꼰대가 되지 않는 첫 번째 방법이 아닐까?

나이 먹으면 다 꼰대가 되는 걸까?
 나이 먹으면 다 꼰대가 되는 걸까?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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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먹는다고 다 꼰대가 되는 것도, 젊다고 꼰대가 아닌 것도 아닌 것 같다. 머리가 희끗해도 마음이 열려있는 사람도 많이 보았고 이제 막 스무 살이 넘었는데도 '왕년에'를 운운하는 꼰대도 보았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10년이 다 되어간다. 나와 같이 사회생활을 시작한 친구들은 이제 막 과장을 달았다. 다 같이 모여 꼰대를 욕하던 것이 얼마 전 같은데 내 장황한 훈계를 듣고 돌아서는 신입사원에게서 꼰대를 향한 묵음의 욕이 들린다. 후배들의 행동이 눈에 거슬릴 때면 내가 꼰대가 된 건지 저들이 예의가 없는 건지 헷갈린다.

"일본에서는 서툰 어부는 폭풍우를 두려워하지만 능숙한 어부는 안개를 두려워한다." <경애의 마음> 중에서

꼰대는 하루 아침에 되지 않는다. 혹시 내가 꼰대가 아닐까? 두렵다면 자신의 사소한 행동을, 생각을 경계할 것. 안개를 두려워할 것!


태그:#꼰대, #회사, #직장, #잔소리, #딴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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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밥 벌어 먹고 사는 프리랜서 작가 딴짓매거진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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