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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한국 맥주시장에서 '수제맥주'라는 키워드가 뜨겁다. 대형 브루어리에서 생산되는 맥주와 달리 수제맥주는 작은 양조장에서 만들어지는 고급맥주다. 수제맥주는 '크래프트 비어'(Craft beer)를 번역한 것으로, 한국에서는 '정성', '장인'과 같은 의미가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사실 '크래프트 맥주'는 그 이상의 의미인 '저항정신'과 '창조정신'을 담고 있다. 크래프트 맥주란 무엇일까? 크래프트 맥주 탄생에 모티브가 된 IPA의 역사를 알면 진짜 의미를 알 수 있다.
스페인 무적함대가 영국 화공선에 침몰되고 있다
▲ 칼레해전 스페인 무적함대가 영국 화공선에 침몰되고 있다
ⓒ By Unknown(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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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되다

칠흙같은 수면 위에 무엇인가 반짝인다. 출렁이는 파도의 리듬에 따라 작은 불빛은 점점 더 커지며 뚜렷해졌다. 프랑스 칼레에 머물고 있던 300척이 넘는 스페인 함대는 이 불빛이 자신들의 운명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하나로 보였던 그 불빛은 수 십개가 되어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제서야 스페인 함대의 파수꾼들은 허겁지겁 갑판 위로 뛰어 내려갔다.

그들이 우왕좌왕 하는 사이, 불빛으로만 생각했던 그것들은 검은 연기와 붉은 불을 뿜으며 서로 묶여있는 스페인 선단으로 돌진했다. 영국의 화공선이었다. 1588년, 무적함대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던 스페인 함대는 작고 빠른 영국의 화공선에 의해 침몰한다. 칼레의 전투라고 명명된 이 해전으로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바다를 장악했던 스페인 해상권력과 무적함대의 전설은 영국으로 넘어가게 된다.

칼레의 전투로 얻는 해상권력과 엘리자베스 여왕의 안정적인 정치력은 영국 산업과 정치의 기틀을 만들었다. 이후 1688년 왕과 의회 사이에 체결된 권리장전은 개인의 자유와 사유재산의 개념의 뿌리를 생성했고 이런 배경 아래 아담스미스는 자본주의의 기초를 마련했다. 동시대에 아이작 뉴턴은 서양과학의 근본을 만들었고 와튼의 증기기관은 인간의 노동력을 기계로 대체했다. 잉여 생산물의 축적을 통해 문명의 틀을 바꾼 혁명, 바로 산업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17세기 이후, 영국은 북아메리카,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 전역을 자신들의 원료기지이자 시장으로 만들었다. 이들은 아시아에서 향신료와 면화를, 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 무역을 통해 경제를 발전시켰으며 그 누구도 넘보지 못할 제국을 건설하게 된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이 탄생된 것이다.

인도, 맥주가 필요해!

인도는 수많은 영국의 자치령과 식민지 중, 가장 중요한 곳이었다. 인도와 아시아에서 가져온 향신료와 면화는 산업혁명의 탄생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상품이다. 특히 방직산업은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이 처음 적용되었던 산업이기도 했다. 1600년 인도에 동인도회사(East India House)를 세운 이래, 수많은 영국인이 새로운 기회와 꿈을 위해 인도로 가는 배에 올랐다.

당시 런던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발전된 도시였다. 하지만 급격한 도시화와 빈부격차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새로운 기회의 땅인 인도로 넘어갔다. 그러나 인도는 영국인들이 적응하기에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덥고 습한 날씨와 환경은 영국인들을 좌절하게 했다. 특히 어렸을 때부터 물처럼 마셨던 맥주의 부재는 그들에게 재앙과도 같았다. 인도에서 영국인들은 맥주가 필요했다.

당시 인도에서 맥주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따라서 영국에서 인도로 보내는 물품 중 맥주는 가장 중요한 상품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인도로 가는 여정은 결코 수월치 않았다. 런던, 멘체스터, 리버풀을 떠난 배는 대서양을 지나 아프리카 대륙을 통과하는 적도를 두 번이나 넘어야 인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장장 9개월에서 12개월이 걸리는 험난한 여정이었다. 양호한 맥주의 품질을 기대하기에는 너무 가혹한 조건이었다.

인도 캘커타 항구
▲ old Cacutta port 인도 캘커타 항구
ⓒ By Thomas Dani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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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터(porter), 마일드 에일(mild ale), 브라운 에일(brown ale), 발리와인(barley wine) 등 다양한 맥주가 항구를 떠났지만 맥주의 품질은 인도에 도착한 후에나 알 수 있었다. 맥주의 최종 모습이 어떠할지는 오직 신만이 알 수 있었다.

인도 항구에 도착한 맥주들은 품질 검수 후, 경매를 통해 가격이 결정되었다. 런던의 브루어리들은 품질이 보장되지 않은 맥주에 자신의 브랜드를 붙일 필요가 없었다. 인도에서 거래되는 맥주들은 브랜드 없이 맥주 스타일만 표기된 채 판매되었다.

호지슨 옥토버비어 기적을 일으키다

영국의 브루어들은 인도로 수출되는 맥주의 품질 유지를 위해 최소한의 장치를 만들어야 했다. 그들은 그 장치가 무엇인지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바로 홉과 알코올이었다. 당시 영국 브루어들은 홉이 많이 들어간 맥주는 쉽게 변질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또한 알코올도수를 높이면 맥주를 오염시키는 잡균들이 쉽게 침입할 수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인도로 보내는 맥주에 평상시보다 많은 홉을 넣었고 알코올 도수도 높였다.

어느 날, 인도 캘커타 항구에서 맥주 품질을 검수하던 경매사들은 기존에 볼 수 없었던 황홀한 맛과 향을 가진 맥주를 발견했다. 밝은 색깔과 부드러운 쓴맛, 그리고 홉에서 나오는 풍부한 향과 적당히 숙성된 풍미에 그들은 환호했다.

그 맥주는 매우 높은 가격으로 펍으로 팔렸고 순식간에 인도 맥주 시장을 점령했다. 주인공은 런던 템즈강 어귀에 있던 작은 양조장, 보우 브루어리(Bow brewery)에서 만든 옥토버비어(october beer)였다. 그리고 그 맥주를 만든 브루어의 이름은 '조지 호지슨'(George Hodgson)이었다.

조지 호지슨의 보우 브루어리
▲ Bow Brewery 조지 호지슨의 보우 브루어리
ⓒ T Woodw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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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토버비어는 원래 영국 시골에서 10월에 만들어 마시던 맥주였다. 차가운 겨울은 맥주 양조에 부적합했기에 사람들은 맥주 양조가 가능한 마지막 가을, 10월에 양조를 했다. 그해 수확한 곡물을 잔뜩 넣은, 높은 도수를 갖는 품질 좋은 맥주를 만들었고, 겨우 내내 숙성시켜 다음해 양조를 다시 시작할 때까지 마셨다. 어쩌면 오랜 숙성 기간이 필요했던 인도로 가는 여정은 옥토버비어에게 천혜의 조건이었는 지 모른다.

호지슨의 옥토버비어는 밝은 색을 띠고 있었기에 인도에서 '호지슨 페일에일'(Hodgson's Pale ale)로 불렸다. 드디어 인도에서 팔리는 맥주에 '브랜드'가 붙은 것이다. 1800년대 중반까지 인도시장을 점령한 이 맥주는 곧 영국 본토까지 영향을 끼쳤다.

영국 런던에서는 인도에서 유행하던 이 '숙성된 에일'(aged ale)을 인도식 에일(Indian ale)로 판매했다. 이 인도식 에일은 기존 영국 페일 에일(pale ale)과 달리 '숙성'(aging)이 핵심이었다.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던 호지슨 스타일의 인도식 에일은 1837년, 인디아 페일 에일(India Pale Ale)로 공식적으로 명명되었고 호주, 미국 등 영국 자치령까지 그 이름을 떨치게 된다.

상생하지 않는자, 몰락하리니

1822년 런던, 동인도회사의 수장이었던 캠밸 메이저뱅크스(Cambell Majorbanks)는 런던 북쪽의 작은 도시, '버튼 온 트렌트'(Burton-on-Trent)에 있는 두 브루어리의 대표를 자신의 저녁식사에 초대한다.

그는 이 두 사람에게 호지슨 인디아 페일 에일(IPA) 샘플을 건내주며, 이와 비슷한 맥주를 만들어 인도로 수출할 것을 제안한다. 이 두 브루어리는 알솝(Allsopp)과 바스(Bass)였다. 그리고 이 일은 영국 맥주 역사를 바꿔 놓게 된다.

보우 브루어리의 후계자, 프레드릭 호지슨(Frederick Hodgson)은 인도시장 뿐만 아니라 세계시장에서 승승장구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현재의 독과점 구조를 이용해 수익을 더 올리고 싶었고 곧 세 가지 결정을 하게 된다.

첫째, 인도시장에서 팔리는 자신의 맥주의 가격을 2% 올렸다. 둘째, 자신이 직접 해상운송회사를 세워 물류까지 장악하고자 했다. 마지막으로 동인도회사에게 주었던 18개월의 외상을 없애 버렸다. 그러나 이는 동인도회사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캠밸은 호지슨의 독점을 견제하고자 '버튼 온 트렌트'의 두 브루어리를 불렀던 것이다.

올드 바스 비어 로고
▲ Old Bass logo 올드 바스 비어 로고
ⓒ brookstonbeerbu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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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20년 동안 알솝과 바스가 만든 인디아 페일 에일(IPA)는 놀랍게도 호지슨을 압도하게 된다. 특히 바스는 시장의 주도권을 쥐며, 인도 뿐만 아니라 런던의 맥주 시장까지 점령했다. 그 비밀은 바로 '물'에 있었다. '버튼 온 트렌트'의 물은 미네랄이 풍부한 센물, 즉 '경수'(hard water)였다.

런던의 '연수'(soft water)와 달리 '경수'는 IPA의 풍부한 홉 캐릭터를 더욱 잘 살렸고 맥주의 풍미도 더 기품있게 만들었다. 버튼 온 트렌트 IPA는 기존 맥주와 달리 세련되었고 깔끔했다. 알솝과 바스는 풍성한 홉향과 높은 알코올을 가진 맥주를 '버튼 온 트렌트 IPA', 그보다 순하지만 더 음용성이 좋은 맥주를 '버튼 온 트렌트 페일 에일'로 구분하여 팔았다. 이 두 맥주는 당시 런던을 지배했던 포터(Porter)까지 무너뜨리며 시장의 지배자로 우뚝 섰다.

IPA의 몰락과 반전의 역사

1842년, 체코의 작은 마을 필젠(Pilsen)에서 작은 축제가 열렸다. 그 축제는 아름다운 황금색을 띠는 부드럽고 깔끔한 라거맥주(Lager), 필스너 우르켈(Pilsner Urquell)의 성공적인 양조를 축하하는 자리였다. 그리고 이 밝은 색깔의 라거맥주는 수천년간 인류와 함께 했던 에일맥주(Ale)를 순식간에 밀어내기 시작했다.

맥주는 당연히 과일향과 쿰쿰한 향이 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기품있는 홉향과 깔끔한 바디를 가진 청량감 있는 라거맥주를 사랑하게 되었다. 파스퇴르의 라거효모(Lager yeast) 배양과 칼 폰 린데의 냉장고 발명은 차가운 온도에서만 양조할 수 있었던 라거 양조의 족쇄를 풀어버렸다.

필스너우르켈 로고
▲ Pilsner Urquell 필스너우르켈 로고
ⓒ Pilsner Urqu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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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거는 체코, 독일 뿐만 아니라 북유럽과 미국 그리고 영국까지 휩쓸었다. 차가운 라거의 공격에 미지근한 에일이 서 있을 공간은 없었다. 곧 포터를 비롯해, 페일 에일, IPA는 선반 한 구석을 차지하는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더구나 세계 대전은 영국맥주에 알코올에 따른 세금을 부과해, 대부분의 영국에일은 낮은 도수에 밍밍한 풍미를 갖게 되었다. 이후 영국의 인디아 페일 에일은 수십년 간 선반 한구석을 차지한 채, 간신히 목숨을 이어오게 된다.

2000년 초반 라거의 오랜 지배로 지루함을 이어가던 맥주 세계에 작은 파장이 퍼진다. 다양한 향미를 가진 맥주들이 작은 브루어리를 중심으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그 파장은 점점 커져 굳건했던 라거 세계에 균열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것도 맥주의 불모지였던 미국에서.

1979년 미국 정부의 홈브루잉(Home brewing) 허용은 수많은 맥주 괴짜를 우리에서 풀어준 꼴이 되었다. 그들은 작은 창고와 차고에서 엉성한 장비를 가지고 자신들의 상상력을 듬뿍 담은 맥주를 만들기 시작했다.

기존 대형맥주 회사들이 만든 밋밋한 라거에 대한 저항정신으로 똘똘 뭉친 이들은 과일향과 꽃향을 가득 품은 미국산 홉을 사용한 미국식 페일 에일(American Pale Ale)을 선보였다. 알코올과 쓴맛 그리고 홉향이 훨씬 강한 페일 에일도 만들었는데 이들은 이를 아메리칸 인디아 페일 에일(American India Pale Ale)이라고 불렀다.

India Pale Ale
▲ John Sleeman IPA India Pale Ale
ⓒ Tyx at English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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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이내 이 맥주에 열광하기 시작했고, 소규모 양조장에서 독특한 개성과 창의성으로 만들어진 맥주를 크래프트 맥주(Craft beer)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또한 이러한 맥주를 통해 기존 질서에 저항하고, 새로운 진보를 꿈꾸는 움직임을 크래프트 맥주 혁명(Craft Beer Revolution)이라고 명명했다.

그 혁명의 중심에 있었던 맥주, 그것은 IPA였다. 진한 홉향, 높은 알코올과 쓴맛을 가지고 있는 에일은 과거 IPA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었다. 그러나 팍스 브리타니카(Pax Britannica) 시대보다 더 강하고 반항적인 모습으로 거듭나 있었다.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 시대의 IPA는 풍성하고 아름다운 홉향과 밝게 빛나는 색깔을 뽐내며 세계를 뒤흔들 만한 모습으로 진보되어 있었다.

미국 크래프트 맥주들
▲ American craft beers 미국 크래프트 맥주들
ⓒ amaz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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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리시 IPA는 제국의 힘으로 세계를 정복했지만, 지금의 아메리칸 IPA는 맥주 자체의 힘으로 거대한 맥주 시장에 균열을 내고 있다. 이제 크래프트 맥주는 IPA를 넘어 다양하고 창조적인 맥주 스타일로 더 놀라운 움직임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러한 저항과 진보의 힘이 어디까지 진행될 수 있을까? 이 흥미로운 운동(movement)에 살짝 몸을 기대보자. 어쩌면 150년 전 대영제국에서 시작된 커다란 맥주 역사의 흐름에 서 있는 것일 수 있으니.

<참조문헌>
Amber, Gold and Black, Martyn Cornell, p.156
Tasting Beers, Randy Mosher, p.1424
The Oxford Companion to beer, Garret Oliver, p.2242
칼레해전, Wikidepia
Spainish Amada, Wikidepia
Siege of Calais, Wikide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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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맥주, #IPA, #인디아페일에일, #크래프트맥주, #수제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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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정동에서 작은 맥주 양조장을 운영하며 맥주를 만들고 있습니다. 또한 맥주가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신념 아래 (사)한국맥주문화협회를 만들어 '맥주는 문화'라는 명제를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beergle@naver.com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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