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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관광청은 물론이고 조지아 현지 여행사, 국내여행사, 전세계의 여행 블로거들 모두 시그나기를 '사랑의 도시'라고 부른다. 그런데 어디서도 '사랑의 도시'라 부르는 정확한 근거가 설명되어 있지 않다. 단순한 상업적 홍보 문구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그래서 나 나름대로 그 근거를 찾아보기로 했다. 찾았다기 보단 근거로 제시된 여러 얘기들을 모아 보았다.

시그나기 박물관에 걸려 있는 시그나기 포스터
▲ 시그나기는 사랑의 도시 시그나기 박물관에 걸려 있는 시그나기 포스터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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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 모양의 도시, 시그나기

카즈베기 계곡에 숨겨진 하트모양의 '사랑의 호수'를 둘러 보고 내려 오는데 운전기사가 묻는다.

"왜 시그나기를 '사랑의 도시'라고 부르는 줄 아세요?"
"글쎄요."
"시그나기의 지형이 하트모양이에요. 좀 전에 본 호수처럼."
"에이, 설마요? "
"진짜라니까요."


시그나기의 지형이 하트 모양이란 얘긴 처음 들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충분히 '사랑의 도시'라 부를 만하다고 생각했다. 땅 모양이 '심장(하트)' 모양인 것을 알아본 것도, 그래서 '사랑의 도시'라는 예쁜 별칭으로 부르는 사람들의 센스가 놀라울 뿐이다.

확인차 구글맵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하트를 찾을 수가 없다. 조지아 여행 이후 줄곧 그렇게 믿고 있었는데... 실망스러웠다. 그래서 이리저리 검색을 한 끝에 '시그나기의 지형이 러시아어 알파벳 Г 모양으로 생겼다'는 글을 발견했다.

카즈베기 현지인의 말이 잘못된 것일까. 조금만 더 찾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마침내 선명한 하트 모양의 시그나기가 그려져 있는 지도를 발견했다. 보는 사람에 따라 하트 모양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나는 그냥 하트라고 믿으련다.

 시그나기의 지형은 하트모양이다
▲ 시그나기 지형 시그나기의 지형은 하트모양이다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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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나기에서는 24시간 결혼증명서 발급받을 수 있어

시그나기에서는 24시간 혼인신고가  가능하다.
▲ 시그나기 마을 풍경 시그나기에서는 24시간 혼인신고가 가능하다.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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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나기에서 갓 결혼한 신부가 웨딩촬영을 하고 있다. 시그나기에서는 24시간 내내 혼인신고를 할 수 있다.
▲ 시그나기 마을 풍경 시그나기에서 갓 결혼한 신부가 웨딩촬영을 하고 있다. 시그나기에서는 24시간 내내 혼인신고를 할 수 있다.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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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나기에서는 '24시간 혼인신고'가 가능하다. 시그나기에서는 출생, 혼인, 이혼, 입양, 사망 신고 등을 하는 관청(러시아어로는 작스ЗАГС(Записи Актов Гражданского Состояния)이 24시간 일을 한다. 때문에 하루 24시간 중 원하는 시간에, 심지어 새벽 시간에도 결혼증명서를 발급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과정과 절차도 매우 간단하다. 한 시간 전에 전화 등을 통해 결혼 발급서 신청을 예약하고, 필요서류(여권, 외국인인 경우 공증받은 조지아어 번역본)와 두 명의 증인과 함께 방문하면 된다(수수료는 평일 90라리, 휴일 150라리이다).

실제로 젊은 연인들이 결혼하기 위해 시그나기를 찾거나 여행지에서 만난 국적이 다른 연인들이 사랑의 도시 시그나기에서 생각지도 않은 결혼식을 올리기도 한다. 최근에는 신혼 여행과 결혼을 패키지 상품으로 묶은 여행사 상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근사한 레스토랑, 아름다운 교회, 결혼 축하연과 신혼여행, 결혼 신고, 증명서 발급까지 여행사가 척척 알아서 결혼의 전 과정을 진행해 준다. 저렴한 비용으로 조금 특별한 결혼을 꿈꾸는 연인들은 시그나기로 떠나기만 하면 된다. 그러니 시그나기는 '사랑의 도시'임이 틀림없다.

'백만송이 장미'의 주인공 니코 피로스마니의 고향
           
한 화가가 있었네.
그에게는 집과 캔버스도 있었지.
그런데 그는 꽃을 사랑하는 
여배우를 사랑했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집을 팔았네.
그림과 피도 팔았네.
그리고 모든 돈으로
바다도 덮을 만큼 꽃을 사들였지.


러시아 가요 '백만송이 장미'는 가난한 화가는 자신의 모든 것을 팔아 사랑하는 여인에게 백만송이의 장미를 선물했지만, 여인은 그 화가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고 멀리 떠나버린다는 슬픈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다.

라트비아곡에 러시아의 음유시인 안드레이 보즈네센스키가 가사를 만들고 알라 푸가초바가 불러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노래다. 이 노래에 등장하는 화가가 조지아의 화가 니코 피로스마니라고 알려지면서, 그가 태어난 도시 시그나기는 '지고지순, 순수한 사랑'의 성지가 되었다.

피로스마니의 작품 '당나귀를 탄 남자'의 동상
▲ 당나귀를 탄 남자, 피로스마니의 작품 '당나귀를 탄 남자'의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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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객들은 마을 초입에 세워진 피로스마니의 작품 <당나귀를 탄 남자> 동상을 보는 순간 저절로 피로스마니와 그의 사랑 이야기를 떠올리게 된다. 피로스마니의 이름을 딴 호텔과 와인, 시그나기 박물관의 피로스마니 전시관, 벽에 붙은 피로스마니의 그림 등 시그나기에는 피로스마니와 관련된 물건과 장소들이 수두룩하다.

시그나기에서 피로스마니와 관련된 장소나 작품을 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 시그나기 식당 벽에 걸린 피로스마니의 그림 시그나기에서 피로스마니와 관련된 장소나 작품을 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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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피로스마니의 사랑 얘기는 완전한 허구다. 피로스마니의 고향은 시그나기가 아니라 40킬로 떨어진 카헤티의 변방 '미르자니'라는 마을이다. 그곳에는 피로스마니의 박물관과 오리지날 작품 14점이 소장되어 있다. 또 피로스마니의 연구가들은 피로스마니에게 '백만송이 장미'의 사랑은 없었으며, 왜 그런 이야기가 만들어졌는지도 모르겠다고 한다.

전혀 사실이 아닌 '피로스나미의 비극적인 사랑' 얘기는 현대인의 '지순한 사랑에 대한 갈망'과 버무려져 다양한 버전으로 업데이트되고, 그럴듯한 디테일이 보태져 완전한 구조를 갖춘 스토리로 진화하고 있다.

앞으로도 피로스마니의 비극적인 사랑은 '백만송이의 장미'로 피어날 것이다. 피로스나미의 고향이 시그나기가 아니라는 명백한 사실도 '백만송이의 장미'에 묻힌 채 말이다. 개인적으로 이 허구의 신화는 바로 잡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천사의 심장을 가진 시그나기 주민들

카즈베기 지역, 해발 1000미터가 넘는 그벨레티 마을에 있는 '사랑의 호수'는 하트모양을 하고 있다.
▲ 카즈베기 그벨레티 마을의 '사랑의 호수' 카즈베기 지역, 해발 1000미터가 넘는 그벨레티 마을에 있는 '사랑의 호수'는 하트모양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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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나기를 '사랑의 도시'로 불리게 한 또 다른 전설이 있다. 아주 먼 옛날 심성이 악하고 잔인한 시그나기 사람들은 온갖 악행을 일삼았다. 신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들을 벌하게 위해 천사를 내려보냈다. 마을에 내려온 천사는 신의 뜻과 달리 자신의 심장을 조각조각 떼내어 집집마다 놓아두었다.

그러자 사람들의 가슴에는 사랑과 선한 마음이 차오르고, 어떤 악행도 저지르지 않았다. 자신의 심장을 나눠 준 천사는 생명을 다한다. 이를 지켜본 신은 시그나기 사람들을 용서하고, 천사를 부활시켜 시그나기가 영원히 사랑과 선이 넘치는 마을이 되도록 잘 지킬 것을 명한다.

천사의 심장을 가진 시그나기가 '사랑의 도시'임을 두말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천사의 심장을 가진 사람들의 도시' 전설이 가장 마음에 든다. 실제로 시그나기에서 만난 사람들은 늘 웃음과 친절이 넘쳐났다.

시그나기에는 천사가 마을 주민들에게 자신의 심장을 나누어주었다는 아름다운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 시그나기 마을 풍경 시그나기에는 천사가 마을 주민들에게 자신의 심장을 나누어주었다는 아름다운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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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누구에 의해서, 어떤 이유로 시그나기가 '사랑의 도시'로 불리게 되었는지는 앞으로도 알기 쉽지 않을 것이다. 또 여기 열거된 이유 말고도 다른 이유들이 새롭게 생겨날 수도 있다.

모두 좋다. 어쨌든 새로운 이유들 역시 사랑에 관한 얘기들일테니 말이다. 중요한 것은 시그나기는 '사랑의 도시'라는 것이다. 그러니 시그나기에 가거들랑 맘껏 사랑만 하다 오라.

덧붙이는 글 | 2018년 4월 다녀온 조지아 여행기입니다.



태그:#시그나기여행, #시그나기는 사랑의도시, #피로스마니, #백만송이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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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한국여행작가협회정회원, NGPA회원 저서: 조지아 인문여행서 <소울풀조지아>, 포토 에세이 <사할린의 한인들>, 번역서<후디니솔루션>, <마이크로메세징> - 맥그로힐,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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