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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롭게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부산해운대경찰서는 31일 4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지난 3월 엘시티 사고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수사 결과 노동청 공무원들은 사고 발생 이후에도 건설사 측으로부터 향응을 제공받아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1명을 구속하고, 13명을 불구속 송치해 모두 14명을 사법처리했다. 사진은 부산지방고용노동청 동부지청장이 해운대의 한 룸살롱에서 이동하는 장면이 찍힌 CCTV.
 부산해운대경찰서는 31일 4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지난 3월 엘시티 사고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수사 결과 노동청 공무원들은 사고 발생 이후에도 건설사 측으로부터 향응을 제공받아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1명을 구속하고, 13명을 불구속 송치해 모두 14명을 사법처리했다. 사진은 부산지방고용노동청 동부지청장이 해운대의 한 룸살롱에서 이동하는 장면이 찍힌 CCTV.
ⓒ 부산지방경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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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명이 사망했습니다. 초고층 빌딩 공사 현장의 외벽 작업 중 벌어진 일이었죠. 57층에 매달려있던 작업대가 땅으로 꺼졌습니다. 발판을 디디고 있던 3명이 작업대와 함께 추락했습니다. 아래에 있던 1명도 구조물에 맞아 사망했습니다. 지난 3월 부산 해운대의 엘시티 건설 현장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사고가 벌어지자 부산지방고용노동청은 열흘 뒤 닷새간 '산업안전보건 특별감독'을 벌인다고 했습니다. '근원적인 안전성 확보'와 '재발 방지'를 하겠다면서 말이죠.

그냥 감독도 아닌 '특별'감독은 실제로도 특별했습니다. 특별감독의 첫날 밤, 조사 대상인 시공사 관계자들과 감독관들은 해운대 룸살롱에서 술판을 벌였습니다. 심지어 성 접대까지 있었습니다(관련기사: 노동자 4명이 죽은 후에도 룸살롱 접대 받은 공무원들).

영화에서나 볼 법한 일이지만, 경찰의 수사 결과 밝혀진 사실입니다. 경찰에 따르면, 부산지방노동청 동부지청장은 1년 동안 40여 차례에 걸쳐 건설사들로부터 1천만 원 상당의 향응과 접대를 받았습니다. 동부지청장은 구속됐습니다.

부산지방노동청의 근로감독관 5명도 향응과 접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횟수와 액수가 적다며 기관통보에 그쳤다고 합니다.

당연히 처벌이 너무 무딘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옵니다. 경찰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입건하는 기준이 있는데, 이들은 1~3회 정도에 금액은 10만~50만 원으로 적어 형평성 차원에서 기관 통보했다"면서 "기관 통보되더라도 징계는 받게 된다"라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양미숙 부산참여연대 사무처장은 "경찰이 밝힌 액수가 전부인지 알 수도 없는 상황이고,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다수가 사망한 사고에서 소액이란 이유로 기관 통보에 그친다는 것은 부정과 부패를 제대로 도려내지 못한다는 느낌"이라 지적했습니다.

소송·특검 시도도 아랑곳하지 않고 올라간 마천루

엘시티 조감도. 2019년 완공을 목표로 공사가 진행 중인 엘시티는 부산 해운대해수욕장 인근에 101층 1동과 85층 2동의 주거복합단지를 만드는 사업이다.
 엘시티 조감도. 2019년 완공을 목표로 공사가 진행 중인 엘시티는 부산 해운대해수욕장 인근에 101층 1동과 85층 2동의 주거복합단지를 만드는 사업이다.
ⓒ 엘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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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시티 참사는 탐욕이 만들어낸 결과물입니다. 해운대 백사장 코앞에 100층이 넘는 초고층 빌딩을 만들겠다고 했을 때부터 여기저기서 뒷말이 흘러나왔지만 사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됐습니다. 뒤에 드러난 이야기지만 엘시티를 놓고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 정무수석이었던 현기환, 지역구 국회의원이던 배덕광을 비롯해 폭넓은 정관계 로비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로비에는 밝았지만 안전은 깜깜이였습니다. 이번 참사를 봐도 사고가 나지 않는 게 외려 이상할 정도였습니다. 노동자들에게는 생명이었을, 작업대를 지탱해야만 하는 고정 장치인 클라이밍콘은 적어도 55mm 이상은 건물 벽에 박혀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고작 5분의 1수준인 10~12mm로만 시공되었습니다. 고정 장치를 거꾸로 시공해놓은 경우도 있었다는군요.

설치는 제대로 된 안전교육도 받지 못한 채, 어떻게 작업대를 설치해야 할지도 모르는 작업자들이 맡았습니다. 공사를 떠안은 하청업체는 면허도 없었습니다. 이를 바로잡아야 할 감리업체가 있었지만, 입을 닫았습니다. 물론 행여 이런 일이 벌어질까 관리·감독의 책임을 준 공무원들은 룸살롱에서 접대를 받았습니다.

지역 신문인 <부산일보>는 1일 자 사설에서 이번 사건을 "건설현장 비리의 완결판"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엘시티 참사의 전후 사정을 살펴보면 되레 사고가 나지 않는 게 이상할 지경"이라고 했습니다. 사설은 "건설현장의 참사를 막으려면 건설현장의 비리를 발본색원하는 데서 출발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동안 엘시티 건설을 막으려는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었죠. 지역의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줄기차게 건설을 멈추기 위한 행정소송과 감사 청구 등을 제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난해 3월에는 당시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의 원내대표들이 대선 후 엘시티 특검을 도입하기로 '원칙적'으로 합의했습니다. 그런데 대선 끝난 게 한참 전인 것 같은데 그 '원칙'은 아직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관련기사: 대선 이후 한다던 엘시티 특검 감감무소식, 예견된 일?).

계속되고 있는 사후약방문

해운대 엘시티 공사 현장. 2019년 완공을 목표로 공사가 진행 중인 엘시티는 부산 해운대해수욕장 인근에 101층 1동과 85층 2동의 주거복합단지를 만드는 사업이다.
 해운대 엘시티 공사 현장. 2019년 완공을 목표로 공사가 진행 중인 엘시티는 부산 해운대해수욕장 인근에 101층 1동과 85층 2동의 주거복합단지를 만드는 사업이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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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고가 있으면 늘 그렇듯 사후약방문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부산지방고용노동청은 지난 30일 지역 건설업체를 대상으로 '사망사고 감축 목표관리제'를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국회에서는 공사 현장 사고 예방과 안전 관리를 강화하는 내용의 건축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됐습니다. 이른바 '제2의 엘시티 추락사고 방지법'으로 불리는 법입니다.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공무원과 건설업체의 유착을 막을 제도개선을 주문했습니다.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보다야 제도가 개선되는 것은 분명 환영할 일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대한민국은 어이없는 죽음이 없는, 훨씬 더 투명해진 사회가 될 수 있을까요. 글쎄요. 모두가 알 듯 참사가 빚어지는 이유는 법이 물러서만은 아닐 겁니다. 기존 잘못과의 확실한 결별을 기대해 봅니다.


태그:#엘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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