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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도 흔한 메뉴로 자리잡은 플랫화이트.
▲ 플랫화이트 한국에도 흔한 메뉴로 자리잡은 플랫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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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에 대한 넓은 스펙트럼의 취향을 지니고 있진 않지만 꽤 좋아하는 편이기에 즐겨 마신 지 오래 되었다. 오랜만에 호주로 가기 전, 자주 다니던 카페의, 굵직한 대회의 수상 경력도 있는 바리스타가 얘기했다.

"멜버른으로 가세요? 거기가 커피로는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힙(hip)한 도시죠."

그리고 오니까 느껴졌다. 이들이 갖고 있는 그 '커피부심'이.

좁은 골목을 빡빡하게 채우고 있는 카페 및 식당들 어디에서건 커피를 파는 것은 기본이다.
▲ 카페 및 식당들 좁은 골목을 빡빡하게 채우고 있는 카페 및 식당들 어디에서건 커피를 파는 것은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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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ista Crafted' 그들의 커피가 바리스타에 의해 만들어진 커피임을 광고하고 있다.
▲ 크리스피 크림 도넛 카페의 사인. 'Barista Crafted' 그들의 커피가 바리스타에 의해 만들어진 커피임을 광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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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컵의 4분의 3을 채운 두유 카푸치노'나 '큰 컵에 반을 채운 피콜로 라떼' 등의 잰 체 하는 이름 때문만은 아니었다. 전세계의 커피 산업에서 추락을 모르고 확장해가던 스타벅스가 어쩌다 이 나라에서 82개의 체인점 중 60개가 문을 닫고 22개만 남는 굴욕을 당했는지, 그런데도 1억4300만 달러 이상의 손실을 감수하고도 여전히 재기를 노리고 있는지, 커피를 다루는 바리스타들은 커피만 만들뿐 계산은 하지 않는 등의 전문성을 보장받는 듯한 구체적인 사례가 있는 이들의 커피 시장은 참 흥미롭다.

지난 60개의 점포 폐쇄의 굴욕을 딛고, 재기를 노리고 있는 스타벅스.
▲ 스타벅스 지난 60개의 점포 폐쇄의 굴욕을 딛고, 재기를 노리고 있는 스타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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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에 자리 잡은 카페들.
▲ 카페 골목에 자리 잡은 카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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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스타가 커피를 만드는 중에, '지금은 커피를 만들고 있다'는 문구가 눈에 띈다.
▲ 'Now Brewing' 바리스타가 커피를 만드는 중에, '지금은 커피를 만들고 있다'는 문구가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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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버른이라는 도시는 특히나 커피와 초콜릿이 유명한 곳인데, 이런 커피 산업에서 브랜드 커피가 차지하는 명성은 크지 않다.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리고 커피를 마시는' 한국의 카페 문화와 이들은 조금 다르다. 하루에 평균 3, 4컵의 커피를 마시지만 커피를 마시고 금세 일어나는 이탈리안 스타일의 카페 문화를 갖고 있는 호주인(Aussie)들이기에 화려하고 안락한 인테리어의 카페보다는 커피 자체의 맛에 치중한 기능적인 카페들이 많은 편이다.
직관적인 카페 로고가 인상적인 멜버른의 카페.
▲ 카페 직관적인 카페 로고가 인상적인 멜버른의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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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연하게 이들은 미디어 등을 통해 본인들이 커피에 'obsessed(집착하는, 혹은 강박증 등의 의미)'한다고 표현한다. 일종의 좋아하는 것을 넘어선, 커피라는 대상에 집착으로 보일 정도로 열중하고 집중하는 문화를 그들 자신도 인지하고 있다는 것일 테다. 영국인들과 다르지 않은 티 문화를 갖고 있던 호주인들이었다. 역사도 길지 않은 이 곳이 지금은 어쩌다 이렇게 영국과는 다른 커피 문화를 갖고 있는 것일까?
골목에 자리 잡은 노천 카페
▲ 카페 골목에 자리 잡은 노천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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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기록된 호주의 첫 커피 콩은 1788년 호주에 입성한 첫 번째 함대와 함께였다. 리우데자이네루에 정박하는 동안 모은 다른 씨앗들처럼 커피콩도 정부 청사 앞에 심어졌으나 결과는 실패였다. 한국에서도 고종이 '가배'라는 이름으로 마셨다는 커피가 성행하기 불과 몇 십년 전인 1870년, 이곳엔 파리지엥 스타일의 카페들이 생기고 그 곳은 펍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초콜릿 상점을 구경중인 커플.
▲ 초콜릿 상점 초콜릿 상점을 구경중인 커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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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에 대한 인식이 커지며 기독교 여성모임들을 중심으로 반사회적 활동을 자제하자는 촉구과 함께 주류금지활동을 펼치기까진 카페에선 맥주를 마시는 것이 주 기능이었다. 그러나 불가능해보였던 여자들의 활동은 놀랍게도 오후 6시까지 주류 금지를 이뤄내게 된다.

오후 6시까지 주류가 금지되면서 자연스럽게 그 자리는 커피로 대체되게 되고, 남자들이 맥주로 채우던 그 시간은 남녀가 모여 커피와 함께 친목을 다지는 장소로 거듭나게 되었다. 커다란 기둥들과 함께 장엄한 장식의 궁전같은 이런 장소들이 1888년 멜버른에서는 50군데가 넘었고 그 중의 한 곳인 그랜드 커피 팰리스는, 영국의 황실에서 오면 묵어가는 지금의 윈저 호텔이다.

[1883-1900] Windsor Hotel. State Library Victoria.
▲ 윈저 호텔 [1883-1900] Windsor Hotel. State Library Victoria.
ⓒ State Library Vict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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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커피소비의 패턴이 바뀌게 되는데, 도시에는 커피숍들이 생겨나고, 무엇보다 유럽에서 유입된 이민자들과 함께 커피콩과 에스프레소 메이커, 그라인더 등이 들어왔다. 현재까지도 이들의 커피문화에 이탈리안들과 그리스인들의 영향을 찾아볼 수 있을 만큼, 초기 이민 정착자들의 영향이 컸던 것이다.

1943년. 시드니의 댄스 카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미국 군인들.1943, Argus Newspaper Collection of Photographs, State Library Victoria
▲ 미국 군인들 1943년. 시드니의 댄스 카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미국 군인들.1943, Argus Newspaper Collection of Photographs, State Library Victoria
ⓒ State Library Vict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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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진정한 커피 혁명은 제 2차 세계대전의 영향을 받는다. 2차 세계대전을 위해 미국 군인들이 도착했으며, 이들은 커피를 마셨다. 인구 700만명의 호주인들은 전쟁을 위해 호주를 거쳐 간, 혹은 남아있는 일백만 명의 군인들을 위해 커피콩을 갈고 커피를 준비해야 했다. 그리고 기나긴 전쟁이 끝난 후, 차 배급량에 차질이 생겼지만,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이미 이 곳은 커피 문화가 자리 잡았던 것이다.

이들의 역사와 시계의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는 이들의 커피 역사는 멜버른을 커피 도시로 자리매김하게 만들었다. 또한 다양한 이주민들의 문화의 영향과 브랜드 커피가 실패할지언정, 그 다양한 레퍼토리들은 흡수해 버리는 이곳의 커피 문화는, 가히 멜버른의 현재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태그:#멜버른의 커피문화, #세계의 커피, #호주 카페들, #세계여행, #커피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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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를 담은 사진에세이 [same same but Different]의 저자 박설화입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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