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는 길고양이였습니다. 동네 철물점에 매일 밥을 먹으러 오던 강호가 어느 하루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틀 만에 찾아온 강호는 뒷다리가 심각하게 부러져 있었습니다. 앞발로 기어서 평소에 밥 주던 사람을 찾아온 거지요. 그 분의 도움 요청으로 우리는 만났습니다. 그리고 두 번의 수술을 받고 강호는 두 발 고양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 가족이 되었고요. 장애를 얻었지만 늘 씩씩하고 명랑한, 무엇보다 호기심 많은 강호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 기자 말
4.13 이른 아침. 마당에 나와 앉았다. 하늘에 구름이 마치 밤을 지키는 사신의 퇴근하는 뒷모습 같다.
곁에 앉은 강호는 하늘이 아닌 마당 정면 어딘가를 골똘히 쳐다보고 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강호와의 줄다리기. 흔히 사람이 다른 동물을 돌보며 놀아준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 반대일 때가 훨씬 많다.
4. 16 세월호 참사. 1년 같은 4년. 외출할 마음이 나지 않아 집 안에서 글 쓰며 책 읽고 강호와 놀았다. 먹다 남은 밥과 반찬으로 식사를 하다가 '이런 평범한 삶을 얼마나......' 하는 생각에 울컥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나는 여행기를 이렇게 쓴다>에서 이런 구절이 크게 와닿았다.
"여행이라는 것 자체가 여행자에게 의식의 변혁을 가져다주는 것이라면 여행을 묘사·기록하는 작업 역시 그 움직임을 반영하는 것이어야 한다"
4.17 강호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송당리에 있는 당 오름을 찾아 가는 길. 당 오름에는 제주 사람들이 숭배하던 1만 8천 신 중에서도 으뜸인 금백조 신을 모신 당이 있다고 한다. 버스로 10여 분 거리라 금세 갈 거라 예상했지만 결과는 길 잃음. 하지만 주변 풍경은 아름다웠고 강호와 함께라서 그 또한 즐거운 여정이었다. (관련 기사 : 제주 신들의 왕이 있다는 곳, 당오름에 가다
http://omn.kr/rqfx )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한평남로를 지나 평대리 감수굴 밭담길을 지나 해안도로로 들어서니 일몰이 가까운 시각. 서서히 주홍빛으로 물드는 넙덕빌레 해안가에서 강호와 추억 사진 몇 장을 남겼다. 바다 저편을 응시하는 강호의 표정이 흥미롭고 사랑스러웠다.
4. 20 기분 좋게 따스하고 환한 봄 햇살 쬐기. 따로 놀고 있는 것 같지만 강호와 나 사이에는 하나의 줄이 연결돼 있다. 손에 쥔 줄의 감촉으로 녀석의 움직임을 짐작한다.
시야를 벗어난 강호를 찾아 줄을 따라가니 새 소리가 나는 돌담 위 나무 주변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뒷다리가 있었다면 훌쩍 뛰어 올라 저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더 재미나게 놀았을텐데. 번쩍 안아 들어올려 주려다 생각을 고쳐먹었다. 가능한 한 넓은 세상을 보여주되 모든 순간의 결정과 실행은 제 스스로 하도록.
4. 22 이른 새벽 한라산 등반을 위한 준비. 덩달아 잠이 깬 강호가 배낭을 부여잡고 장난을 친다. 마치 따라가고 싶어 아양을 떠는 것처럼. 사실 깉아 가고 싶은 건 내 쪽이지만 한라산은 반려동물의 출입을 금하고 있고 그렇지 않다 해도 거의 온종일 이동해야 하므로 녀석에겐 무리가 될 것이다.
4.23 전날 한라산 어리목 코스 중턱에서 만난 비가 집으로 돌아올 때쯤 제주 산간 전역에 사정 없이 내리기 시작해 오늘까지 계속이다. 강한 바람까지 부니 외출할 엄두가 안 난다. 일기예보에 따르면 내일도 같은 상황. 이럴 땐 혼자였다면 영 적적했을 텐데 찰싹 붙어 누워선 재미난 표정을 짓고 있는 강호 덕에 덩달아 즐겁다.
'강호야, 비 그치면 우리 비싼 갈치구이 먹으러 갈까?' 이전 글 :
강호, 고양이의 천국 '미로숲'에 가다 덧붙이는 글 | 우리의 실시간 여행이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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