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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너에게 소개하려는 빅터 프랭클이 쓴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원제는 'Man's Search for Meaning : An Introduction to Logo therapyLogotherapy'란다. '의미를 위한 인간의 탐구 : 로고테라피 개론' 쯤으로 해석되는데 우리말 번역본의 제목이 좀 뜬금없지? 출판사에서 번역본 제목을 이렇게 정한 게 이해가 되는 것이, 이 책의 대부분은 정신과 의사인 빅터 프랭클이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겪은 죽음과 삶이 교차하는 경험이 차지하고 있어.

표지
▲ 죽음의 수용소에서 표지
ⓒ 청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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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프랭클은 나치 수용소에 수용되기 전의 이력은 완전히 소각되고 오로지 번호로만 관리가 되며, 수용소 관리자의 순간적인 판단에 의해서 삶과 죽음이 결정되고, 수용소 생활이 언제 끝날지도 모를 뿐만 아니라 자신이 살아서 수용소를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 암담한 3년간의 경험을 토대로 로고테라피라는 정신 치료요법을 창시했단다. 이 책의 후반부는 로고테라피에 대한 개론을 설명하는데 로고테라피란 한마디로 삶의 의미를 찾고 그 의미를 원동력으로 치료를 하는 요법이야.

로고테라피는 인간의 삶의 원천이 권력이나 쾌락이 아니고 '의미'라는 믿음으로 인간은 살아가야 할 의미를 찾는 데 주력해야 하며 의미야말로 인간 존재의 가장 강력한 자극이자 행복의 근원이라고 주장하란다.

어차피 로고테라피는 강제수용소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니 이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면서 어렵지 않게 읽어 나갈 수 있는 수용소 생활의 경험을 중심으로 이 책을 읽어나가는 것이 좋겠어.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이 어떻게 살아나왔는지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들의 실제 삶을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을 얻을 수 있거든.

수용소에서도 사람들에게서 떨어져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그리고 심지어는 그래야 할 필요가 있을 때도 있었다. 잘 알다시피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이 항상 다른 사람의 시선을 끄는 강요된 공동생활을 하다 보면 때로는 잠깐만이라도 사람들에게서 벗어나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이 가하게 들 때가 있다.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은 혼자 있게 되기를, 혼자서 사색에 잠길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들은 자기만의 개인적인 공간, 혼자 있는 고독을 열망했다. 그런데 소위 말하는 '요양소'로 옮긴 후, 나는 한 번에 5분 정도 혼자 고독을 즐기는 흔치 않은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98쪽

여기서 말하는 요양소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몸과 마음을 편히 쉬게 하는' 곳이 아니란다. 강제수용소에서조차 격리된 약 50명의 정신착란증 환자가 수용된 막사인데 하루에 평균 6명이 죽어 나가는 죽음으로 가는 길목인 곳이야.

하루에 5분 정도 혼자 고독을 즐기는 장소라는 곳도 매일 죽어 나가는 시신을 보관하기 위해서 나뭇가지를 엮어서 세운 임시 천막이야. 이가 득실거리는 시체가 옆에 있어도 죽음의 공동체 생활에서 잠시 벗어난 5분간의 고독이 달콤했고 잠이 들었다가 꿈에서 깰 때도 있었다는구나.

아빠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 있어. 군대 생활을 할 때인데 너는 잘 모르겠지만, 요즘은 사정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모르겠지만 아빠가 군대 생활을 할 때는 화장실을 갈 때 말고는 혼자서 지낸 시간과 공간이 거의 없었단다. 신참들이 부모님이나 애인에게서 온 편지를 읽으며 혼자서 흐느낀 곳도 화장실이었고, 숨겨둔 빵을 혼자 먹는 곳도 재래식 화장실인 경우가 많았어.

목적만 다르지 군대는 수용소와 다름없이 개인적인 생활은 철저히 차단된 곳이잖아. 아마도 남자들이 군대 생활을 힘겨워하는 이유 중의 하나라고 생각해. 자기만의 공간이 없다는 것과 자기만의 시간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인간에게 좌절감과 절망감을 주는지 겪어보지 않고는 잘 모른단다.

아빠가 군대 생활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의 일을 들려줄게. 아빠가 근무한 부대는 강원도 철원에 있었는데 당시만 하더라도 그 부대 주변의 울타리가 나무를 엮어서 만든 것이었어.

어느 쌀쌀한 초겨울이었단다. 울타리로 쓸 나무를 장만하기 위해서 부대원이 총동원되었어. 쓸 만한 나무를 구하기 위해서는 깊은 산중으로 가야했고 부대원들은 2인 1조로 깊은 산중으로 들어갔단다. 쓸 만한 나무를 구하겠다는 생각만 하다가 어쩌다 보니 깊은 산중에 나 혼자 남게 되더구나.

이상하게도 북한을 코앞에 둔 깊은 산중에 나 혼자 있다는 것이 무섭기 보다는 편안한 느낌이 들었어. 아마도 군대 생활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화장실을 제외하고는 나 혼자 있게 된 것이지.

마침 겨울비가 내렸는데 울창한 숲은 작은 빗방울을 머금었다가 굵은 빗방울을 이따금 떨어뜨렸어. 주변의 풍경이 어찌나 아름답고 고요한지 잠시 멍하게 바라보았지. 빅터 프랭클이 시체 옆에서 쭈그리고 앉아 있었던 것처럼 나는 나 혼자 있는 숲속의 작은 공간에 쭈그리고 앉았는데 금방 졸음이 쏟아지더구나.

추운 겨울 날씨에 쭈그리고 앉아 졸았는데 내 목 등으로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어. 겨울에 비를 맞으면서도 앉은 채로 잠이 든 거지. 물론 금방 꿈까지 꾸다가 깨어났지만, 그 짧았던 혼자만의 시간이 수십 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구나. 빅터 프랭클이 시체 옆에서 지내는 혼자만의 5분이 생존하는 데 큰 힘이 되었듯이 아빠도 20분이 채 되지 않았던 그 순간이 퍽 달콤했어.

내가 이 경우를 통해 관찰하고 도출해낸 결론은 후에 수용소 주치의에게서 들었던 말과도 일치했다. 그에 말에 의하면 1944년 성탄절부터 1945년 새해에 이르기까지 일주일간의 사망률이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추세로 급격히 증가했다는 것이다. 주치의는 이 기간 동안 사망률이 증가한 원인은 더욱 가혹해진 노동조건이나 식량 사정의 악화, 기후의 변화, 새로운 전염병 때문이 아니라고 했다. 그것은 대부분의 수감자가 성탄절에는 집에 갈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시간이 다가오는데도 희망적인 뉴스가 들리지 않자 용기를 잃었으며, 절망감이 그들을 덮쳤다. 이것이 그들의 저항력에 위험한 영향을 끼쳤고, 그중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기에 이른 것이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136쪽

사람들이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일상적인 생활을 하면서 희망을 품는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해. 희망은 극한 상황에서 이겨낼 힘을 주는 원동력일 뿐만 아니라 더욱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해준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고 그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도 거의 없을 거야. 너무나 당연하고 모두가 아는 사실이라서 초등학교 저학년 교과서에나 실릴 만한 말이지.

위 인용문에서 빅터 프랭클이 말하고 싶은 것은 희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가 아니고 근거 없는 '막연한' 희망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말하고 싶은 거야. 평소에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죽음의 수용소 같은 극단적으로 위험한 상황에서는 막연한 희망보다는 차라리 냉철하게 현실을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자세가 오히려 생존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지.

물론 아무런 희망도 없이 포기하고 살라는 이야기가 아니고 현실을 받아들이고 나름대로 열심히 생활하는 것이 생존에 더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야. 수용소 사람들은 아무런 근거 없이 막연하게 성탄절에 석방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기 때문에 석방이 이루어지지 않자 절망이 다가왔고 그 절망이 삶에 대한 의욕을 빼앗아 갔다고 보면 돼.

수용소에서 살아난 빅터 프랭클은 막연한 희망이나 요행보다는 의사로서 수용소 환자를 돌보면서 열심히 생활했어. 그냥 의미 없이 수용소에서 죽어가는 것보다는 의사로서의 본분을 발휘하면서 죽기를 원했거든.

모든 상황을 밝고 긍정적으로 보는 낙관주의적인 태도를 많은 사람이 실천하고 싶어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권하잖아. 아빠도 학생들에게 가능한 한 밝고 긍정적으로 매사를 생각하라고 권하는 편인데 이 책을 읽고 나서는 낙관주의에 대해서 말을 할 때 한 가지 덧붙여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

모든 상황에 대해서 아무런 노력 없이 무조건 낙관주의로 일관하는 것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거야. 근거 없이 막연하게 희망을 품고 낙관주의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사람보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현실에 적응하려고 애쓰며, 사소한 것이라도 노력을 꾸준히 하는 사람이 생존하고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어.

어쨌든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현재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이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란다. 이 책에 대해서 한 해외 독자의 충고를 너에게 그대로 들려주고 싶구나.

'만약 네가 고통 속에 있다면 이 책을 읽어라. 만약 네가 공포에 떨고 있다면 이 책을 읽어라. 만약 네가 상실감에 빠져 있다면 이 책을 읽어라. 만약 네가 행복하다면 이 책을 읽어라. 만약 네가 시간이 난다면 이 책을 읽어라. 만약 네가 시간이 없다면 이 책을 읽어라.'


죽음의 수용소에서 (양장) - 빅터 프랭클의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청아출판사(2005)


태그:#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박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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