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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박종철 열사의 부친 박정기옹이 타계하셨다. 다양한 표현이 있는 우리말에 자식 잃은 부모를 지칭하는 표현이 부재한 건 그 고통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누군가의 말에 공감 간다. 부당한 국가 권력에 자식을 잃은 30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1987년 당시 담당 검사였던 이가 박정기 옹 빈소를 찾아 방명록을 쓴 것이 화제다. 영화 <1987>에서 하정우가 역할을 맡았던 담당 검사는 경찰이 박종철 시신을 화장하려 하자 '시체 보전 명령'을 내려 진실을 드러내는 역할을 했었다.

이 당시 언론도 큰 역할을 했다. 영화 속 <동아일보> 사회부장의 "대학생이 죽었는데 보도지침이고 나발이고 다 X 까라 그래"라는 대사는 당시 군사독재정권에 의해 '순치된 제도언론' 상황에서 진실을 추구하는 언론의 시대정신과 저항정신을 함축적으로 말해줬다.

실제 <동아일보>는 <중앙일보>가 '쇼크사'라는 경찰 발표를 단신으로 보도했을 때, 고문 혐의도 있다는 취지로 사회면 두 번째 기사로 보도했다. 이어 <동아일보>는 부검에 관여한 의사들로부터 물고문 흔적이 있다는 내용을 확인해 보도하는 등 가장 적극적으로 진실을 파헤쳤다.

<동아일보>는 특별취재반을 구성해 고문 추방 캠페인 등 대형 기획기사를 연이어 보도했다. 당시 시위현장에서 <동아일보>는 프리패스였고, 보도가 나갈 때마다 "동아만 믿는다"라는 격려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반대로 안기부, 문공부, 청와대, 검찰이 총동원돼 정부 지침을 따르라는 압력을 가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동아일보>의 관련 속보는 계속됐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동아일보> 특별취재팀은 1987년 8월 8일 제19회 한국기자상 취재보도부문상을 수상했다. 이듬해 1988년에도 경찰과 검찰의 수사 은폐 상황을 보도해 2회 연속 한국기자상을 수상했다.

특별취재팀 황호택 당시 법조팀장은 "동아일보 전체의 팀워크가 이뤄낸 언론자유의 승리였다"며 "6월 항쟁은 언론인들에게는 붓으로 싸운 민주투쟁이었다"라고 평가했다. 기자협회 역시 "한국 민주화에 크게 기여했다"라고 평가했다.

<동아일보>의 민주화 투쟁사는 '언론보도, 저항의 뇌관'이란 제목으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펴낸 '6월 항쟁을 기록하다'에 실려 있다. 이 글은 1987년, 1988년 2회 연속 기자 상을 받은 황호택 전 <동아일보> 논설주간이 썼다. 황 전 주간은 2010년 발간한 <광화문의 품격>과 2017년 <박종철 탐사보도와 6월 항쟁>이란 책에서도 이런 내용을 자랑스럽게 다루고 있다.

4대강사업 비판 대신 '정략적 반대' 색깔론

1987년 당시 언론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황호택 기자는 2009년 <동아일보> 논설위원, 논설주간이 됐다. 이 시기는 이명박이 4대강사업을 강행할 때였다. 4대강사업은 민주주의를 후퇴시키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사업이었다. 실제 국정원, 경찰 등 사정기관이 정상적 국가 기구 위에 군림하면서 사회적 이상과 상식을 마비시켰다.

한 때 언론 민주투사였던 황호택 전 주간이 재직할 때 <동아일보>는 이명박 정권의 4대강사업에 철저하게 부역했다. 대운하와 다를 바 없음에도 언론의 기본인 합리적 의심 대신 수질 개선, 경기활성화 등 4대강사업은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만능사업'으로 홍보했다. 4대강사업 비판 목소리를 '정략적 반대', '반대를 위한 반대'라며 색깔론까지 들고 나섰다.

황호택 전 주간은 2010년 7월 4일자 칼럼에서 "환경단체들은 보를 만들면 강물이 썩는다고 주장하지만 위아래로 움직이는 개방보가 하층수를 빼주기 때문에 물이 썩을 염려는 없다"며 "하굿둑과 보와 댐을 건설하면 무조건 환경파괴라는 인식에는 치수와 이수라는 개념이 들어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2010년 3월 천주교 주교회의에서 4대강 반대 입장을 천명하자 황 전 주간은 3월 28일 칼럼에서 "정책 비판 용기와 전문성은 별개"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황 전 주간이 그렇게 띄우고자 했던 4대강사업은 수질 악화, 생태계 훼손, 혈세 낭비 등 실패한 사업의 전형, 아니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사업의 대표적 사례로 결론 났다.

황호택 전 주간은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회장을 거쳐 2018년 1월부터 서울시립대 초빙교수가 됐다. 현재 <아주경제> 논설고문으로 여전히 칼럼을 쓰고 있다. 2016년 1월 12일 강형철 숙명여대 교수는 <한겨레> '친정부 언론인을 위한 변명' 기고에서 친정부 언론인으로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 애국심, 애사심, 입신양명 정신으로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런 애국심, 애사심, 입신양명 정신 등 개인보다 집단을 중요하게 여기는 생각은 건전한 시민의식이 동반되지 않으면 자칫 '자기편에게만 사람 같은'괴물을 만들어낼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한때 군사 독재정권의 부당함에 맞서 언론 자유를 수호했었던 이는 왜 친정부 언론인이 됐을까? 권력과 자본에만 사람으로 보이려 했던 건 아닐까.


태그:#4대강, #황호택,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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