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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5일 이른 저녁 시간에 출판놀이 사무실에서 이재복 선생을 만났다. 그는 오랜 시간 어린이문학을 연구해 온 작가이다. 주요 저서로는 <숲까말은 기죽지 않는다> <우리 동화 바로 읽기> <뚱보 방정환 선생님 이야기> <판타지 동화 세계>가 있으며, 그 외 다수의 어린이 문학 관련 책을 썼다. 자본을 나누며 같이 해 볼 수 있는 문학운동의 하나로 '출판놀이' 실험을 하고 있다.

-먼저 출판놀이를 소개해 달라.
"2012년 겨울이었지요. 대선이 끝나고 다들 절망하고 있을 때였어요. 자본이 전제군주 노릇을 하는 세상이 점점 심해지겠다는 생각도 들고, 그래서 아동문학하는 사람의 자리에서 뭐라도 해 봐야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뭘 할까 고민하다가 자본을 나누는 상징 놀이라도 한번 해 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운영하고 있던 '이야기밥' 카페에 출판운동을 한번 해 보자고, 뜻있는 사람 모이라고 했더니 열댓 명이 모였어요. 그때부터 세미나도 열면서 준비 과정을 거쳐서 2015년에 출판등록을 하고, 지금까지 5권의 책을 냈습니다. 한 달에 만 원씩 회원들이 내는 후원금을 가지고 책을 만들었어요."

출판놀이의 아동문학가 이재복 선생
 출판놀이의 아동문학가 이재복 선생
ⓒ 유병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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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 살면서 자본에 휘둘리지 않고 출판을 한다는 건 쉽지 않은 도전으로 보인다. 그 방법이 궁금하다.
"쉽지 않아요. 그래서 출판사 이름을 정할 때, 놀이 정신을 먼저 생각했지요. 노는 사람들은 생산성이나 효율성을 먼저 생각하지 않아요. 그냥 노는 거지요. 돈이 있어서 놀고, 돈이 없으면 놀지 못하고 하는 것도 아니지요. 자본의 논리에 사로잡히면 출판도 그렇고, 지금 자본주의 시스템에서는 과감하게 무얼 할 수가 없어요.

놀이 개념을 적용하면, 적은 자본이라도 모아서 함께 놀이판을 만들고, 그 놀이판은 어느 한 사람이 독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놀면서 나오는 다양한 에너지들이 예측 불가능한 결과물들을 만들면서,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우발적인 판이 형성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거예요.

처음에 돈이 없어서 동시집 2권을 내는데 출판 기금을 모금했어요. 천만 원 정도를 모금해서 책을 내고, 다행히도 시집을 팔아서 제작 기금이 모아져 원금을 다시 다 돌려드렸지요. 논다고 생각하니까 노는 에너지가 사람과 사람을 불러들이는 소통의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것 같아요. 동화집 한 권도 책 낼 기금이 없었는데, 출판진흥지원금을 받게 되어 작업을 하게 되었고요.

놀이 정신에서 나오는 상상력이 있는데, 묘하게도 이런 놀이 정신이 낙천적인 힘을 발생시키더라고요. 자본의 논리에만 사로잡힌 시스템에 무언가 전복의 울림을 주는 것 같아요."

무한한 즐거움이 담겨있는 출판놀이 로고
 무한한 즐거움이 담겨있는 출판놀이 로고
ⓒ 출판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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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먹고 살만한 세상이라지만, 최근 작가의 고민은 생계를 빼놓을 수가 없다. 책만 팔아서 생기는 수입으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현실이다. 작가도 많아지고, 그에 따라 책도 많이 출간되고, 인터넷이란 거대한 네트워크에도 수많은 콘텐츠가 공급되고 있다. 이는 단지 자본의 문제라고는 볼 수 없을 것 같다. 작가를 위한 프로그램도 있나?
"어려운 질문이네요. 자본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취지로 시작했지만, 거대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는 게 현실이니까요. 작가들의 생계도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현재로서는 출판놀이가 작가들의 생계에 도움을 줄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능력이 아직 안 돼요. 작가놀이단을 만들어서, 출판놀이에서 만든 '주머니속 동시집'을 가지고 시인들이 직접 학교를 찾아다니면서 아이들을 많이 만났어요. 아쉽게도 이런 적극적인 놀이 활동이 작가들의 생계에까지 도움이 되긴 역부족이었어요. 그래도 무언가 하다 보면 어떤 새로운 길이 열리지 않을까 싶은데, 아직 길은 못 찾고 있습니다. 숙제로 생각하고 같이 고민해 봐야지요."
판타지 창작학교를 함께 운영하는 아동문학가 이재복 선생
 판타지 창작학교를 함께 운영하는 아동문학가 이재복 선생
ⓒ 유병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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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놀이라는 키워드가 주목된다. 영단어로는 Play인데, 우린 음악을 재생하거나, 운동경기를 하거나, 게임을 즐길 때도 같은 단어를 사용한다. 출판놀이에 '출판하다'라는 의미가 담겨있나?
"출판을 놀이처럼 하겠다고 하니까, 오히려 출판을 아는 분들은 다들 코웃음을 쳤어요. 니들이 출판이 무언지 몰라서 그런다고요. 정말 실제로 해 보니까, 책 한 권 출간하는 일이 비용도 많이 들고 만만치 않더라고요. 그런데 오히려 어려우니까 역설적으로 놀이처럼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놀이의 본질은 놀이판을 만든 사람이 독점을 하지 않는 거지요. 작가들이 시간을 내서 봉사 개념으로 일을 하고 있어요. 효율성을 앞세운 자본의 논리가 만들어내는 생산성의 힘도 있는데, 출판놀이에서 출판한다는 의미는 이런 효율성을 넘어서는 놀이정신이 만들어내는 예측 불가능한 결과물이 있지 않을까. 이 결과물들이 자본의 확대 재생산을 가져오지는 않겠지만, 그것 이상의 무엇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아직 그게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하다 보면 구체적인 실체가 보이겠지요.

누가 한 말이었는지 기억나진 않는데 이런 말이 있어요. '즐겁게 노는 사람은 누군가의 노예가 되지 않는다.' 놀이 정신이 갖고 있는 가장 큰 힘인 것 같아요. 다양한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출판놀이에 와서 놀아주었으면 좋겠어요."

놀이의 의미에 관해 설명하는 이재복 선생
 놀이의 의미에 관해 설명하는 이재복 선생
ⓒ 유병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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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놀이에서 발행하는 동시 빵가게란 웹진을 봤다. 작가들의 재능기부로 만들어진 것 같다. 하지만 결국 작가가 글을 쓰고 독자가 읽는 방식에는 변함이 없는 것 같다. 독자가 참여 할 방법이 있나?
"시는 요즘 온라인 시대에 아주 잘 어울리는 형식인 것 같아요. 우리 아이들이 동시를 빵가게에서 빵 하나 사먹듯이 그렇게 시 한 편을 즐겨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동시빵가게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사람들이 동시빵가게 웹진 제목이 참 좋단 말을 많이 해 주었어요.

두 달에 한 번씩 20여 편의 신작 동시를 웹진에서 볼 수 있어요. 재미있는 시 한 편을 만나면 빵 한 개 값을 보내 달라 했는데, 아직 반응은 거의 없어요. 동시빵값은 들어오면 정산해서 N분의 일로 나누어 시인들에게 원고료 대신 보내드려요. 5호까지 냈는데, 어떨 때는 오천원도 보내드리고, 만원도 보내드리고 하지요. 다 이런 걸 일단 놀이라 생각하고 해 보는데, 동시빵을 만드는 제빵사들은 재밌게 만들고 있어요.

독자들이 참여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는데 아직 독자들과 이 웹진의 동시들을 가지고 놀아보진 않았어요. 동시빵 시식회라고 해서, 매 호 동시빵가게를 발행할 때마다 시인들이 출판사 사무실에 모여서 직접 시를 읽고 감상을 나누고 하는 정도입니다. 동시하고 직접 빵을 구어서 아이들과 먹으며 놀아 봐도 좋겠는데, 다양한 방법을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동시 빵을 판 금액을 모두 작가에게 돌려주면 출판놀이는 어떻게 운영되는가?
"기부금으로 운영합니다. 책이 판매되어 들어오는 수익금도 조금 있고요. 작가나 후원자들이 한 달에 1만원씩 기부를 합니다. 이 돈을 가지고, 운영비로 쓰고 있어요. 책을 직접 제작하는 비용은 턱없이 부족하지요. 이 부분은 늘 어려운 문제이긴 한데, 걱정은 안 해요. 제작비가 모일 때까지 기다리면 되니까요.

노는 사람은 시간의 개념이 다를 수밖에 없어요. 언제까지 뭘 해야 된다는 개념 자체가 없어요. 그런데 아직까지는 묘하게도 돈이 없어서 책을 내지 못한 적은 없었어요. 시간의 개념을 조금만 달리하면 돈 문제도 해결되지 않을까요. 우리는 너무 빠른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살고 있어요. 자본의 논리에서 벗어나려면 정해진 시간 안에 단거리 달리기 하듯 뭘 해야겠다는 이 관념에서 벗어나야 할 것 같아요."

[출판놀이 출간도서]

1.도시 애벌레(시:이영애). 2016년 3월 출간
2.토마토 개구리(시:강기원) 2016년 3월 출간
-두 작품은 2015년도에 제1회 '주머니 속 동시집'을 공모해서 당선된 작품, 아울러 '주머니 속 동화집'도 공모했으나 당선작이 없음.
3. 얼룩말 마법사(시:유하정) 주머니 속 동시집 우수작, 2017년 11월 출간
4. 깡통을 차다(시:주미경) 제 2회 주머니 속 동시집 당선작, 2017년 11월 출간
5. 늑대와 소녀(글:정성희)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2017년 우수콘텐츠 제작지원사업 선정작, 2018년 우수환경도서 선정작(환경부주최)
*요리조리 토리씨(글:이진우)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2018년 우수콘텐츠 제작지원사업 선정작, 2018년 11월 말에 출간예정

-출판놀이를 이끄는 사람 중 특별히 소개하고 싶은 사람은?
"정말 많은 사람이 떠올라서 누구를 콕 집어 말하기 어렵구요. 처음 시작할 때엔 아무런 형체도 없어서 저게 될까 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지금은 책을 5권 정도 내니까 아주 조그만 눈덩이 하나는 만들어진 것 같아요. 매달 만 원씩 기부해주는 출판놀이 후원회원 분들이 100명 정도 됩니다. 함께 하는 작가들, 출판놀이를 응원하는 모든 사람들이 소중하지요."

-스웨덴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동화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작품이다. 한 사회의 의식을 변화시켰다는 평가도 있다. 동화의 순기능을 생각해볼 때 우리나라에도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 같은 작품이 나오길 기대한다. 출판놀이에 그런 기대를 해도 되는가?
"기대를 해도 된다고 말하는 건 허풍이 될 것 같고요. 우리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책이 무엇인지, 왜 출판놀이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해 나가다 보면 아이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책이 만들어질 것 같아요. 희망은 가져야겠지요."

-마지막으로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한 마디를 해 달라.
"출판놀이는 자본에 휘둘리지 않고, 자본이 없어도 얼마든지 하고 싶은 일을 즐길 수 있다는 메시지를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전하는 상징적인 출판사가 되고 싶습니다. 잘 지켜봐주시고 함께 해 주시면 더욱 고맙겠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개념으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는 아동문학가 이재복 선생은 우리가 잊고 사는 '놀이'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사회의 변화는 작은 일에서 시작할 수 있다.

자본의 힘으로 무장한 기계와 인공지능이 사람의 자리를 위협하고 급속도로 변하는 사회 속에서 아동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한 주먹도 뭉치지 않던 눈덩이가 점점 불어나서 많은 사람이 함께 놀이를 즐기길 바란다는 그의 눈은 어린아이처럼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덧붙이는 글 | *출판놀이와 동시 빵가게 주소
출판놀이 cafe.daum.net/pubnori
동시 빵가게 dongsippanggage.modoo.at



숲까말은 기죽지 않는다

이재복 글.그림, 사계절(2014)


태그:#이재복, #출판놀이, #판타지창작, #아동문학, #주머니속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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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에 회사에 다니고 주말에 글을 쓰는 주말작가입니다. 다양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좋은 기사를 쓰고 싶습니다. https://brunch.co.kr/@yoodluff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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