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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수많은 직장인들이 꿈꾸는 퇴사! 새해 첫날 좌천 통보를 받고, 나락으로 떨어지던, 무기력한 40대 회사원이던 제가 딴짓을 하면서 퇴사 프로젝트를 가동하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과연 퇴사할 수 있을까요? - 기자 말

 끝없이 상승하는 서울 집값은 비싼 주거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이들을 도시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절(회사)이 싫어도 중(나)은 떠날 곳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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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고사 마지막 세대인 나는 사회와 부모님이 원하는 훌륭한 회사원이 되기 위해 온 인생을 다 바쳤다. 그리고 43살이 되던 해에 언제 쓰일지 모르는 창고 귀퉁이의 부속품 신세가 되고 말았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된다는 말이 있다. 회사 회의 시간에 자주 인용되는 말이다.

"김 팀장? 요즘 일하기 싫어? 치고 올라오는 애들 많아. 긴장 좀 타자."

그런데 스님이 교회로 갈 수 있을까? 아니면 성당으로 가야 할까?

절(회사)이 싫어도 중(나)은 떠날 곳이 없었다. 좋은 회사에 취업 하기 위해 열심히 달려왔고, 취업 후에는 더 나은 회사원이 되기 위해 자기개발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회사원 외에는 다른 일은 생각할 여유도 이유도 없었다.

사실 나에게는 꿈이 있었다.

'농구는 신장이 아니라 심장으로 하는 것이다.'

2미터의 거구들이 코트를 휘젓는 NBA(미국프로농구)에서 180cm가 조금 넘는 신장으로 수 차례 득점왕을 차지한 알랜 아이버슨의 말이다. 170cm가 조금 넘는 나지만 농구에 대한 열정은 2미터 장신들보다 훨씬 컸다.

<농구대잔치>부터 시작해서, <슬램덩크>, <마지막 승부>까지. 12살 때부터 농구에 미쳐 살았다. 운 좋게도 시골 중학교지만 전국대회에서도 성적을 내는 농구부가 있었다. 하지만 운이 나쁘게도 나는 중학교 2학년 때까지 학업성적이 매우 우수했다.

"엄마가 너만 믿고 사는 거 알지? 우리 장남, 으이구! 기특하다."
"아빠는 가난해서 공부를 못한 기 천추의 한이라. 너는 꼭 판, 검사돼야 한데이."


나는 단 한 번도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 내 꿈에 대해서 진지하게 이야기를 해 볼 기회를 갖지 못했다. 부모님을 원망하지는 않는다. 세계적인 석학들도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기고, 기업이 이윤추구를 위해 사람들의 행복을 강탈하는 날이 이렇게 빨리 올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요즘은 생활스포츠의 활성화로 프로 선수가 되지 못해도, 자신이 좋아하는 운동을 하면서 안정적인 삶을 사는 분들을 주위에서 많이 보았다. 우리는 온 열정을 쏟아, 모든 걸 다 바쳐서 취업에 성공해도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시대에 살고 있다. 앞으로의 세대들은 이런 현상이 더욱 심해질 것이다.

얼마 전, <마스크>로 유명한 영화배우 짐 캐리의 연설을 보았다. 자신의 아버지는 코미디언이 되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반대와 사회의 관습에 의해 하기 싫은 회계사 일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아버지는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 실패하고 좌절을 하셨어요. 어린 저는 생각했습니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해도 실패를 할 수 있구나.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 봐야겠다."

너무나 멋지고 공감되는 말이지만, 사실 짐 캐리처럼 확고한 자신의 꿈을 가지기도 어렵지만, 반대를 무릅쓰고 실천하는 일은 더 어렵다.

금연 성공의 '웃픈' 비결

 담배 피우는 장소에는 회사 사람들이 득실거린다. 그래서 회사에서만큼은 강제금연을 하게 되었다.
 담배 피우는 장소에는 회사 사람들이 득실거린다. 그래서 회사에서만큼은 강제금연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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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 : 새해 첫날 출근했더니, 내 책상이 사라졌다] http://omn.kr/rvom

좌천이 되고 나니 다양한 인간상이 내 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일주일 전까지 "팀장님"이라고 부르며, 영어 해석을 부탁하던 한 인간은 '김 차장'이라고 하대를 하며 욕지거리를 해대기 시작했다. 그는 나랑 업무적으로 교류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직 후 첫 출근 날부터 내게 찾아와 "팀장님~ 팀장님~" 하면서 눈웃음을 치던 자였다.

두 번째 유형은 눈치가 없거나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인간형이다.

"어쩌면 더 잘됐네. 40대 초반에는 다른 팀장 밑에서 혼도 나고, 그늘 아래 있는 게 더 좋아."

이 인간은 2년 후 나보다 더한 인사 명령을 받고, 영업직으로 발령이 났다. 사실상의 권고 퇴직이었다. "잘됐네요. 오십을 앞두고는 이제 사무직 팀장 힘들어요. 이번 기회에 영업 제대로 배우세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같은 부류의 인간이 되기 싫어 참았다. 마지막 유형의 사람들 때문에 그래도 조금은 기운이 났다.

"팀장님. 기운 내세요. 내년에 복귀하실 거예요."
"고맙다. 근데 호칭부터 바꿔. 나 이제 팀장 아니야."


책상에 커피를 두고 가는 사람들도 있었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며 나가서 어설픈 위로보다 싱거운 농담으로 나를 달래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의 일에 대해서 서서히 관심을 끊었고, 나는 새로운 업무에 엄청난 부담을 느끼며 자신감을 잃어갔다.

"야! 김 차장? 아직도 멀었냐? 뭔 자료 하나 만드는 데 20분이 걸려. 야, 됐어. 안 되면 다른 애들한테 가서 부탁하고 와."
"야! 커피 좀 타와라. 그리고 11시 50분에 윤 부장이랑 밥 먹기로 했는데, 12시로 바꾼다고 전화 좀 해라."


"그런 걸 왜 나한테 시켜. 그리고 당신 나랑 나이 차이도 별로 안나. 나도 한 집안의 가장이라고!"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나는 어느새 다이얼을 누르고 있었다.

제일 참을 수 없는 건 이런 일들이 후배들 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후배들 앞에서 이런 일을 당할 때마다 얼굴이 홍당무로 변하기 시작했다. 결국 이 증상은 악화되어 2년이 지난 최근 한의원 치료를 받고 있다.

유머감각이 넘치고 사람들 만나기 좋아하던 내가 어느새 사람들을 피하기 시작했다. 3층 가운데 사무실, 팀장 자리에서 오른쪽 맨 끝 방으로 쫓겨났다. 그런데 화장실이 3층 맨 왼쪽에 위치 하고 있었다. 사람들을 마주치기 무서워 엘리베이터도 타지 않고 지하 2층 화장실로 다니기 시작했다.

뭐든지 나쁜 일이 생기면 좋은 일은 따라오기 마련이다. 금연에 성공했다. 담배 피우는 장소에는 회사 사람들이 득실거린다. 그래서 회사에서만큼은 강제금연을 하게 되었다. 퇴근 후 아파트 근처에서 줄 담배를 피우고 집으로 들어갔다. 아내는 담배 냄새에 찌든 내 옷을 말없이 받아 주었다. 담배 냄새를 너무나 싫어하는 그녀는 나의 유일한 탈출구를 묵인해 주었다.

마트 한가운데서 펑펑 울었다

 울었다. 마트 한 가운데서 43살의 아저씨가...
 울었다. 마트 한 가운데서 43살의 아저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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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너무나 어리석은 생각이었지만 아내도 그중에 한 사람인 것 같았다. 아내가 내 기분을 풀기 위해 농담을 던지면,

"지금 농담할 기분이야?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농담이 나와? 내가 오늘 하루를 어떻게 버티고 왔는지 알아?"

다음 날 아내가 내 눈치를 보며 차분한 분위기로 말하면,

"무슨 초상 났냐? 하루하루 전쟁이야 나는 요즘. 그런데 집 분위기가 왜 이리 영국 날씨 같냐. 짜증 난다. 진짜."

걱정이 돼 시골에서 전화를 건 어머니에게도 날을 잔뜩 세운 고슴도치처럼 굴었다.

"남들도 다 그래 산데이. 회사가 최고라고만. 꾹 참고 잘 다녀야 된데이."
"엄마가 뭘 안다고 그래요? 내가 얼마나 힘들게 회사에 다니는데, 엄마는 회사 한 번 안 다녀 봐 놓고 멀 안다고 그래요!"


제2의 사춘기라고 이해해 달라기에는 너무나 편협한 사고와 이해력으로 가장 가까운 두 사람을 괴롭히고 있었다. 회사 사람들을 피하기 위해 지하 화장실을 찾아가듯이, 나의 자존감은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 정신을 차리고 아내와 엄마에게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 마음을 다졌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 참아야지. 내가 가장 사랑하는 가족에게 스트레스를 풀려고 하다니.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가? 마음을 가다듬자. 그럴수록 내 마음은 더 병 들어가고 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주말이면 영화에 등산에 각종 문화행사를 찾아 다니던 나는 너무나 수동적인 인간으로 변해 있었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찾아온 불면증 때문인지 토요일은 늦잠을 자고도 소파에서 남은 시간을 보냈다.

"여보. 우리 어디 멀리 가지 말고 가까운 마트에서 브런치 먹자. 피자 먹으면 브런치지 뭐. 가격도 싸고 맛도 좋고 얼마나 좋아. 그리고 호수공원 산책도 다녀오고..."

내 눈치를 살피는 와중에도 나를 걱정하는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나는 무거운 몸을 일으키고 마트로 향했다.

일요일 오전 11시도 안 된 시간인데 다음 날 출근 생각을 하니 편두통이 몰려왔지만,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며 집을 나섰다. 4월의 눈 부신 햇살도 남의 일 같았다. 그런데, 마트 도착 5분 전부터 갑자기 심장이 미친듯이 뛰기 시작했다. 무슨 설레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중요한 자리에 가는 것도 아닌데 갑자기 이게 뭐지 하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매장 회전문을 여는 찰나에 일이 터지고 말았다.

키가 내 허리에도 오지 않는 꼬마 아이가 뛰어나오다 나를 스치며 지나갔다. 넘어진 쪽은 5살 꼬마 아이가 아니고 나였다.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그대로 매장 한 가운데 주저앉았고, 심장이 이렇게 빨리 뛰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호흡곤란이 찾아왔다. 어떤 강한 힘이 내 목을 옥죄고 있는 느낌이었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숨을 쉬게 되면서 울음이 터진 것이다. 멈출 수가 없었다. 내 자유의지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울었다. 마트 한 가운데서 43살의 아저씨가... 일요일 오전 11시에. 1층 매장으로 4월의 햇살은 여전히 눈부시게 - 당황해서 같이 울고 있는 - 아내를 비추고 있었다.

그랬다. '연예인병'인 줄 알았던 공황장애가 나에게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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