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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회의실에서 안철상 법원행정처장 주재로 전국법원장 간담회가 열리고 있다.
 지난 6월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회의실에서 안철상 법원행정처장 주재로 전국법원장 간담회가 열리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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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고위 법관이 법원행정처에 검찰의 수사상황을 보고한 정황이 드러난 가운데 법원의 공식 입장을 전달하는 '공보판사'가 해당 판사의 해명을 전달하며 '제 식구 감싸기'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또, 대법원은 재판거래 정황이 불거진 시점에 해당 사건을 전원합의체로 회부했다. 사법농단 의혹에 법원의 '조직 지키기'로 비친 몇 가지 사례를 모아봤다.

① '공식 루트' 공보판사, 의혹 판사 해명 전달

검찰은 최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컴퓨터 하드디스크에서 '주요 형사사건 보고'라는 제목의 문건을 발견했다. 문건에는 신광렬 당시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수석부장판사(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관련 수사, 전·현직 판사가 연루된 법조비리 등을 법원행정처에 보고한 정황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법원행정처가 일선 법원의 고위 법관을 통해 중요 형사사건의 검찰 수사 내용을 그대로 보고받아 이를 이용해 양 전 대법원장의 숙원 사업이었던 상고법원 로비 등에 활용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신 부장판사는 지난 26일 밤늦게 "최순실 등 언론에 크게 보도된 중대한 사건을 예규 취지에 따라 필요한 사항을 법원행정처에 보고한 사실은 있다"라면서도 "해당 중요사건의 보고에 관한 결재라인은 '주무과장-국장-형사수석부장-법원장'으로 돼 있어 형사수석부장도 담당자의 한 사람이고, 긴급보고 사건의 경우 주무과장뿐만 아니라 해당 사건의 담당자가 직접 보고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결재 담당자인 형사수석부장도 필요한 경우 보고할 수 있다고 판단된다"는 해명을 내놨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법원의 절차는 적절하지 않았다. 의혹을 받는 신 부장판사 본인이 아닌 서울고법의 공보판사가 취재진에게 이 해명을 전달했다. 공보판사는 해당 법원의 '공식적인 입장'을 기자단에게 전달하며 법원과 언론사의 중간 다리 역할을 하는 직책이다.

게다가 신 부장판사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공무상비밀누설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지게 될 경우, 서울고법이 항소심 판결을 맡게 될 가능성이 높다.

해당 공보판사는 "신광렬 부장판사의 개인 입장임을 명시하여 기자 간사에게 전달하였을 뿐 신 부장판사의 개인 입장을 대변해준 사실이 전혀 없다"라고 설명했다.

② 재판거래 의혹 불거지자 전원합의체 회부

양승태 대법원이 법관의 해외 파견 등을 대가로 박근혜 정부에게 협조하기 위해 5년 동안 결론을 미뤄왔다는 의혹을 받는 일제 강제징용 재판은 전원합의체로 넘어갔다.

대법원은 27일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여운택씨 등이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전원합의체로 회부했다고 밝혔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열린 제70주년 제헌절 경축행식에서 제헌절 노래를 제창하고 있다. 왼쪽은 이진성 헌법재판소장.
▲ 제헌절 노래 부르는 김명수 대법원장 김명수 대법원장이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열린 제70주년 제헌절 경축행식에서 제헌절 노래를 제창하고 있다. 왼쪽은 이진성 헌법재판소장.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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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 대법관 4명으로 구성된 소부에서 사건에 대한 의견이 일치되지 않았거나 기존 법리와는 달라진 쟁점이 있을 경우 전원합의체로 넘어간다. 그러나 신일본제철의 경우, 대법원이 새로운 쟁점 없이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결론을 내리지 않고 끌어온 판결이다.

여씨 등 피해자 4명은 지난 2005년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1, 2심에서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피해자들의 청구권이 이미 소멸됐다'며 일본 기업이 피해자에게 배상하지 않아도 된다는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2012년 대법원은 '일본 판결의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며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고, 파기환송심에서 1인당 1억 원씩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상고심에서 새로운 쟁점이 없는 경우, 대법원은 파기환송심 결과를 그대로 받아 신속하게 선고하지만, 선고는 기약 없이 미뤄졌다. 2013년 9월,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은 '강제노동자 판결 관련-외교부와의 관계(대외비)'라는 문건을 작성했다. 문건에는 일본과의 외교 관계를 고려해달라는 외교부의 민원과 그 대가로 법관의 해외 파견과 고위 법관 의전을 고려해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대법원은 공교롭게도 재판거래 의혹이 불거진 시점에 해당 사건을 전원합의체로 넘겼다. 당시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있던 A부장판사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보상금 청구사건과 관련해 대법관에게 재검토 지시를 받았다고 폭로한 지 하루만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은 해당 사건을 2016년 11월 전원합의체 보고안건에서 논의한 뒤 수차례에 걸쳐 전합 논의가 있었다고 밝혔다.

해당 사건 변호를 맡고 있는 김세은 변호사는 "대법원의 정치적 판단이라는 측면에서는 논란이 되고 있는 사태를 이렇게 정리하자는 취지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라며 "새로운 재판부 구성 요청을 검토 중이었는데 절차적으로는 전합이 (판결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③ 앞뒤 다른 대법원의 입장, 이미지 관리?

법원행정처는 언론에게는 검찰 수사에 협조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검찰에는 자료 제출을 재검토할 의사가 없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대외적으로 이미지 관리에 나섰지만, 실상 검찰 수사에는 미온적이라는 지적이다.

검찰 관계자는 지난 25일 오전 "법원행정처가 (문건 작성에 관여한) 사법정책실, 사법지원실, 인사자료 등을 검찰에 제출하지 않겠다고 최종통보했다"고 밝혔다. 이에 비판이 제기되자, 행정처는 이날 오후 검찰 의견에 반박하는 입장을 내놨다.

행정처 관계자는 "검찰이 수시로 요청하고 있는 추가 수사자료 협조요청 등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검토 중에 있거나 해당 자료를 제출할 예정"이라며 "법원행정처장 등이 검찰에 '추가 임의제출 협조 등이 불가하다'는 등의 최종통보를 한 바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오마이뉴스> 취재 결과, 법원행정처는 추후 검찰 수사 관계자 여럿에게 재차 거부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 관계자가 "사법정책실, 사법지원실 자료를 제출하는 부분을 재검토할 수 있는 얘기냐"고 묻자 행정처 관계자는 "그건 아니다. 앞으로 재검토할 계획도 없다"라고 답변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 관계자는 "검찰의 수사자료 협조요청에 제출 여부 및 이유를 상세히 기재해 답변했다"라며 기존 해명을 되풀이했다.

특별재판부 필요성 제기돼

대법원이 검찰 수사를 통해 판사 비위 덮기, 부당한 수사보고, 일제 강제징용 재판거래 의혹 등에 휩싸이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태도는 본질적인 반성이 아닌 내부 지키기에 몰두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현 법원이 사법농단 의혹 사건을 제대로 판결할 수 없다는 비판도 나온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5일 '사법농단 사태로 비춰본 사법개혁방안 긴급토론회'에서 "법원이 이 사건을 공정하게 다룰 수 있을지 강한 의구심이 든다"라며 "시민사회의 추천을 받아 재판부를 구성하거나, 시민사회의 추천을 받은 추천위원회가 법원과 논의해 재판부를 구성"하는 안을 제기했다.

박 의원은 8월 초, 이번 사건을 전담할 영장전담 판사를 서울중앙지법에 새로 지정하고, 특별재판부를 꾸리는 내용 등의 특별법을 발의할 예정이다.

한편 27일 법원은 사법농단 수사와 관련해 "법원행정처로부터 임의제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판사 비위 의혹 수사는) 별건 수사로 볼 수 있다" 등의 이유로 인사심의관실과 윤리감사관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했다.


태그:#대법원, #양승태, #법원행정처, #사법농단, #재판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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