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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제5시집 <섯!>을 상재한 시인 오봉옥.
 최근 제5시집 <섯!>을 상재한 시인 오봉옥.
ⓒ 오봉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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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5월 25일자 도하 일간지엔 20대 젊은 시인이 징역 3년을 구형받았다는 뉴스가 실린다. 그때는 박정희와 전두환에 이어 노태우가 통치하던 군사독재 시절. 28세 오봉옥은 그 이름만으로도 무시무시했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적출판물 제작'.

당시 서울지검 공안1부가 '적을 이롭게 하는 출판물'로 지목한 것은 실천문학사에서 출간된 <붉은 산 검은 피>였다. 1945년 해방을 전후해 벌어졌던 좌익의 무장투쟁 활동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이 시집은 1989년 출간됐고, 책이 나온 지 9개월만인 1990년 2월 시인은 물론 발행인까지 체포·구속됐다.

'정권의 이데올로기와 맞지 않는 시와 소설을 썼다'는 이유로 작가를 수배, 구금, 고문, 투옥하던 시절이 1960년대 이후로 30년 이상 지속되고 있었다. 마음 여린 문학청년이었던 오봉옥. '시를 썼다'는 이유만으로 독재의 감방에 갇혀 자유와 인권을 박탈당한 심정이 어땠을까? 감히 상상하기도 어렵다.

28년의 시간이 시위를 떠난 화살의 속도로 흘렀다. 스물여덟 젊은이는 쉰여섯 중년 사내가 됐다. 시를 쓰는 것이 영예나 자랑이 되기는커녕 올가미이자 족쇄였던 오욕의 시대. 그 시대를 온몸 부대끼며 지나온 오봉옥은 시를 포기했을까?

상상 바깥의 것을 꿈꾸고, 그 꿈을 위해 싸우는 사람이 시인이다. 대부분이 예상한 것처럼 오봉옥은 수난과 고통에도 시를 버리지 않았다. <붉은 산 검은 피> 이후에도 <나 같은 것도 사랑을 한다> <노랑> 등의 시집을 냈고, 산문집과 비평집도 출간했다.

'문장' 버리지 않았던 '문인' 오봉옥. 현재 서울디지털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인 그는 자신을 감옥으로 보냈던 시를, 그러나 포기할 수 없었던 시를, 아픔과 아름다움의 복합체인 시를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오늘 5번째 시집을 사람들 앞에 내놓았다. 이름하여 <섯!>(천년의시작).

 오봉옥 신작 시집 <섯!>
 오봉옥 신작 시집 <섯!>
ⓒ 천년의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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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죽음, 민주주의와 꽃이 서로의 등대임을 깨닫게 한다"

<섯!>의 출간 소식을 접한 문학평론가 임헌영은 후배 오봉옥을 이렇게 격려했다.

"광주항쟁을 겪은 오봉옥 시인은 <붉은 산 검은 피>로 엄혹한 고초를 겪었다. 그 시절 그는 브레히트와 네루다의 후계였다. 그로부터 30년. 오 시인은 사랑, 죽음, 민주주의, 꽃, 나비 그리고 인간, 이 모든 존재들이 서로에게 등대임을 깨닫게 해주는 시인이 됐다."

임헌영이 말한 그대로다. 오봉옥의 이번 시집은 '시'와 '시인'이 어떤 존재인지, 왜 '돈도 명예도 되지 못하는 시'를 포기할 수 없었는지에 대한 답변으로 읽힌다. 짤막하지만 울림이 큰 아래 시를 읽어보자.

시인은 죽어서 나비가 된다 하니 난 죽어서도 그 꽃을 찾아가련다.
- 위의 책 중 '그 꽃' 전문.

덥수룩한 머리칼의 20대 청년이 탈모를 걱정하는 50대 중반이 됐지만, 높은 차원의 가치와 이상을 상징하는 '나비'와 '꽃'을 죽어서도 찾아가겠다는 다짐과 결기는 변하지 않았다. 육체의 노화와 정신의 쇠약이 언제나 함께 찾아오는 것은 아니란 걸 오봉옥은 단 한 줄의 문장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 다짐과 결기는 <섯!>에 수록된 절창 '나에게 묻는다'의 마지막 연에서 단호한 은유로 구체화된다. 그래서일까? 쉽게쉽게, 대충대충 살아온 이들에겐 오봉옥의 질문이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너에게 묻는다
피 한 톨 돌지 않는 장식용 책이나
읽지도 않고 버릴 쓰레기로 살 것이냐
아님 이삿짐 쌀 때 마지막까지 챙길
가슴 뜨거운 책으로 살
것이냐.

청춘시절엔 불의와 부조리에 의연히 항거했고, 나이를 먹어서는 스스로에게 채찍을 던지며 '인간적 완성'을 향해 가고자 하는 시인의 목소리는 단호하고 아프다.

오봉옥 삶의 이력과 시의 변화를 읽어내려면...

하지만 오봉옥의 이번 시집은 '매서운 회초리'의 역할만을 하는 게 아니다. 지극한 자기반성 속에서 살아온 시인이 발견한 생의 진실도 따스한 시어로 드러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1980~90년대 고통의 서사'와 '2000년대 이후 아픔의 서정'은 오봉옥에게 하나였던 셈이다. 아래 시를 보자.

자동차들이 매연을 뿜으며 허공을 가른다
저 허공이 나비들에게 준 신의 선물인 줄도 모르고.
-위의 책 중 '인간들' 전문.

회색 하늘 아래 떠도는 검은 연기인 매연 속에서 아름다운 공간 '허공'을 발견하고, 그 허공이 '신의 선물'임을 포착해내는 혜안(慧眼). 오봉옥은 이처럼 아름답게 늙어가고 있는 것이다. 일생 포기하지 않았던 '시인의 꿈'을 꾸며.

문학평론가 임우기는 "오봉옥의 신작 시집 <섯!>이 품고 있는 시인됨의 고뇌와 편력을 가늠하는 것은 그의 삶의 이력과 시의 변화를 이해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이런 말을 덧붙이고 싶다. "오봉옥 삶과 시의 이력은 1980~90년대를 살아온 우리의 이력과 다름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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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등의 저자. 경북매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