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9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한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모습.

지난 7월 9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한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모습. ⓒ JTBC


"그때는 특수활동비라는 인식이 없었습니다. 그냥 저한테 용돈 주신 것으로 알고 고맙게 쓴 거죠….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위축된 얼굴이었다. 2주 전인 지난 9일 국회 '특수활동비'와 관련 JTBC <뉴스룸> 스튜디오에 나와 손석희 앵커와 인터뷰한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국회 특수활동비를 "받은 적 있다"는 고백을 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으리라. 손석희 앵커도 놀라는 눈치였고, 누가 봐도 놀랄 만한 고백이 아닐 수 없었다. 정치자금과 관련한 노 원내대표의 솔직한 고백은 좀 더 이어졌다.

"제가 처음 국회의원 됐을 때, 17대 국회의원 2004년도에 해외에 쓰나미 피해 현장을 시찰하기 위해서 나가게 됐는데 의장께서 불러서 봉투를 하나 주시더라고요. 그래서 그게 열어보니까 달러로 100달러짜리가 10장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거액이기는 했지만, 특수활동비라는 것을 제가 그 당시에는 죄송스럽지만 몰랐습니다. 몰랐고 그냥 의장님 판공비로 이렇게 의원들에게 나갈 때 주는 게 관례인 모양이다, 이렇게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그게 특수활동비구나 이렇게 알게 됐습니다."


손석희 앵커는 "그것은 어디다 쓰셨습니까?"라고 물으며 "너무 솔직하게 말씀하시니까"라며 머뭇거리기도 했다. 그런 사안이 분명했다. 당시 노 원내대표는 비례 초선의원이었다. 본인도 실수라고 사죄했다. 그러나 특수활동비를 "썼다"는 사실 만큼은 달라질 수 없다. 그가 특수활동비 폐지에 앞장섰다고 해도 말이다. 특히나 경공모 회원이자 경기고 동문인 도모 변호사로부터 받은 정치후원금과 관련해 특검과 언론, 여론의 압박을 받고 있던 상황을 감안한다면 말이다. 다만 노 원내대표의 죽음 직후 정치자금법에 대한 문제제기가 거론되고 있다는 사실은 다행이라고 할까.   

그러나 이러한 솔직함이야말로 정치인 노회찬의 가장 큰 무기이자 2004년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이후 국민들이 노회찬을 가장 신뢰하게 만든 강점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러한 신뢰는 노동운동가 출신이자 오랜 진보정당 정치인에 대한 믿음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그런 신뢰가 있었기에 깜짝 놀랄만한 고백에도, 평소 노 원내대표 답지 않은 다소 경직된 분위기 속에서도 손석희 앵커는 인터뷰를 무탈하게 마칠 수 있었으리라.

"죄송합니다"란 노회찬의 고백

 지난 7월 9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한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모습.

지난 7월 9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한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모습. ⓒ JTBC


그 <뉴스룸> 인터뷰로부터 딱 2주가 지난 7월 23일, 고 노회찬 원내대표는 안타까운 선택을 하고 말았다. <뉴스룸> 인터뷰는 노회찬 원내대표의 인상적인 뉴스 인터뷰로 기록될 것이다. 무려 2004년 특수활동비와 관련해 국민들 앞에 "죄송합니다"라는 고백을 하게 만든. 그래서일까. 손석희 앵커는 지난 24일부터 26일까지 내리 3일간 '앵커브리핑'을 '정치인 노회찬'에게 바쳤다.

"2002년은 노무현 대통령을 탄생시켰고, 권영길 후보를 필두로 한 진보정당을 각인시켰지만, 또 한 사람의 이 진보정치인을 대중 앞에 내놓았습니다. 제가 진행했던 대선 직전의 100분 토론에서 그는 처음으로 대중 앞에 토론자로 나섰습니다. 그 날 이후에 때로는 폐부를 찌르고, 때로는 해학으로 치유하는 토론의 새로운 세계를 연 사람…

이 폭염의 더위 속에서 끝없는 인파가 그의 빈소를 찾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누군가에게 한 번쯤 듣고 싶었던 위로의 말을 듣고 싶었던 그런 언어들. 그동안 우리가 보아온 것은 정치권 안에서 벌어지는 치밀한 모함과 놓으려 하지 않는 특권뿐이었기에…. 사람들은, 그의 언어 안에 담긴 온기와, 위로와 응원의 말을 되살려 기억하고, 그리워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울 연세대 대강당에서 '고 노회찬 국회의원 추도식'이 한창이던 26일 오후, 손석희 앵커는 "그 겨울이 지나 또 봄은 가고 또 봄은 가고 그 여름날이 가면 더 세월이 간다"는 노르웨이의 작곡가 그리그의 '솔베이지의 노래'를 인용, 첼로를 연주하던 정치인 노회찬을 추모하고 있었다. 이에 앞서 이날 <뉴스룸>은 추모제를 생중계로 연결, 추모사를 헌정한 노 원내대표의 지인인 배우 박중훈과 인터뷰하기도 했다. 박중훈이 기리는 '정치인 노회찬'의 발걸음 역시 애잔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노회찬 의원님의 평소에 정치적인 성향에 어떤 분들은 적극 동의하시는 분도 계실 테고 어떤 분들은 동의하지 않은 분들도 계실 겁니다. 많은 국민과 유권자들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계실 텐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 한 마음으로 고인의 명복을 빌고 영면을 기원하는 이유는 평소 노회찬 의원님께서 갖지 못한 자, 약한 자, 그리고 손에 쥐지 않은 자, 배우지 못한 자, 항상 음지에 있는 사람, 그리고 본인의 표현에 의하면 '투명인간'을 위해서 한 평생 헌신을 해왔던 그런 이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요. 그런 이유로 자신의 정치적 성향과 관계없이 한 인간 노회찬을 기리는 추모행렬이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정치인 노회찬' 추모한 세 번의 앵커브리핑

"비통한 자들, 즉 마음이 부서진 자들에 의해서 민주주의는 진보한다."

앞서 지난 24일 손석희 앵커는 역시나 앵커브리핑을 통해 미국의 사회운동가 파커 J. 파머의 저서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을 소개하며 고 노회찬 원내대표를 추모했다. "진보는 현상 유지에 안주하지 않으려는 평범한 사람들, 마음이 무너진 사람들의 동요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파머의 통찰을 곁들였다.

어쩌면 고 노회찬 원내대표의 고백은 그러니까 손 앵커의 말마따나 "현실과 열망 사이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서 애쓰는 사람들의 그 시도들은 패배로 점철되고는 했기에 마음은 부서지고 무너져서 그들은 언제나 비통하다는 것"이란 진실을 암시하고 있었을지 모를 일이다. 차마 가족들에게도, 동료들에게도 말 못하고 떠난 정치자금과 관련된 그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 말이다.

손 앵커가 "반올림…그리고, KTX 노동자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합니다"라고 적었던 노회찬 원내대표의 서면 발언을 소개한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비단 한 '정치인'이 아닌 평생 노동과 약자, 진보를 위해 싸워왔던 노회찬과 그의 마지막 길까지 함께하는 그의 동지들을 위한 어떤 위로.

"그가 정치인으로서 마지막 전하려 했던 메시지 또한 계란을 쥐고 바위와 싸웠던 무모한 이들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 이어온 그의 소망 또한 허황되거나 혹은 미련해 보였을 것이며…. 결국 그는 스스로 견딜 수 없었던 불명예로 인해서 걸음을 멈추게 되었습니다. 또다시 뒤에 남게 된 마음이 부서진 사람들….

그러나 앞서 소개한 사회학자 파커 J. 파머는 부서져 흩어지는 마음이 아닌 부서져 열리는 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던 그의 말처럼 비록 마음은 부서졌지만 부서진 마음의 절실함이 만들어낸 진보의 역사. 그렇게 미련하고…또한 비통한 사람들은 다시 계란을 손에 쥐고 견고한 바위 앞에 서게 될 것인가."


 7월 26일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 화면

7월 26일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 화면 ⓒ JTBC


적지 않은 이들이 소셜 미디어 등을 통해 이날 앵커브리핑을 전하는 손석희 앵커의 심히 굳은 얼굴과 충혈이 된 눈가가 범상치 않다는 시청 평을 내놓기도 했다. 그렇게 '진보의 역사'를 써 나가고, 마지막 인터뷰에서 "죄송합니다"라는 사죄를 한 고 노회찬 원내대표에 대한 추모 분위기를 <뉴스룸>은 여타 언론들과 같이 열심히 전했다.

지난 25일엔 '비하인드 뉴스'를 통해 노 원내대표의 안타까운 죽음을 이용하는 세력들을 꼬집었고, '노회찬 부인 '전용 운전기사' 뒀다?…허위정보 어떻게 퍼졌나'라는 기사제목의 팩트체크를 통해 고 노회찬 원내대표를 향한 허위사실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사실을 되잡기도 했다.

같은날 "나보다 더 힘든 주민들을 생각해서 에어컨 바람을 마다한" 부산의 어느 임대아파트 경비원들의 이야기를 전한 앵커브리핑에서 손 앵커는 "진정한 부끄러움, 염치, 그리고 미안함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새삼 세상에 가르쳐주고 있었습니다"라며 "사흘째 길게 늘어선 추모행렬. 애통해하는 많은 이들이 그를 생각하며 마음속에서 떠올린 단어 역시 바로 그런 것들이 아니었을까…"라는 마무리로 또 한 번 노회찬 원내대표의 정치철학을 언급하기도 했다.

한 주간 세 번의 앵커브리핑과 다각도로 '진보의 역사'를 써내려간 '정치인 노회찬'의 안타까운 죽음을 추모한 <뉴스룸>. 그저 이슈를 다룬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죄송합니다"라던 고 노회찬 원내대표의 그 인터뷰가 내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 것은 왜일까. 어쩌면 이러한 <뉴스룸>의 추모 역시 그 "죄송합니다"라는 고백을 이끌어낸 장본인인, 빈소도 직접 찾았다는 손석희 앵커의 고인과의 각별함과 미안함이 담긴 것은 아니었을까.

노회찬 손석희
댓글10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