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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회찬 정의당 당대표 후보.
 노회찬 의원의 2015년 사진.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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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단체 활동가이자 또한 당사자로서 정치인들을 볼 때면 항상 양가감정이 든다. 오해의 여지를 무릅쓰고 솔직히 말하자면, 정치인들이 성적소수자의 권리를 지지하고 우리의 존재를 방어할 때 나는 그들의 행동을 지지하는 마음이 든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개인에 대한 고마움이나 신뢰로 연결되느냐면 꼭 그렇지는 않다.

첫 번째는 성소수자도 이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은 정치인의 의무이지 특별히 더욱 칭찬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그저 자신의 일을 한 것뿐이다. 두 번째는 일관성의 문제다. 나는 입바른 말을 청산유수처럼 하거나 혹은 '좋은 일'로 보인다는 이유로 성소수자의 권리를 옹호했다가 조금이라도 '정치적 손해'를 보겠다 싶으면 말을 바꾸는 정치인들을 종종 봐왔다. 그래서 쉽게 믿음을 주기 보다는 더 지켜보고 감시하는 쪽을 택한다.

하지만 24시간을 활동가의 태도로 사는 것은 아니기에 정치인에 대한 감정이 늘 그렇게 정리되지는 않는다. 옳은 선택을 해주어서 정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 그래서 호감과 신뢰가 갔던 인물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 믿음이 실망으로 뒤바뀌지 않고 꾸준했던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 정치인 중 한 사람이 바로 노회찬 의원이다.

내가 노 의원에게 처음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그가 민주노동당 대선예비후보 신분으로 성소수자들과 간담회를 열었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10대였던 나는 성적 지향을 깨달았지만, 내가 겪는 어려움이 성소수자로서 받는 사회적 차별과 억압임을 알지 못하던 상태였다. 성소수자가 겪는 문제가 정치적 문제임을 몰랐던 셈이다. 그러다 보니 유명 정치인이 무려 이태원에서 성소수자를 만나는 광경이 낯설기 그지없었다.

신기할 정도로 꾸준했던 정치인

노회찬 의원과 홍석천씨가 얘기를 나누고 있다. 노회찬 의원과 홍석천씨가 얘기를 나누고 있다.
▲ 노회찬 의원과 홍석천씨가 얘기를 나누고 있다. 2007년 6월 16일, 노회찬 의원과 홍석천씨가 얘기를 나누고 있다. 노회찬 당시 민주노동당 후보는 성 소수자들과의 정책 간담회를 통해 "무지개(성 소수자의 상징)가 7가지 색깔이 공존해서 아름다운 빛을 내듯이 여러분들이 있기에 세상은 더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해 참석자들로 환호의 박수를 받았다.
ⓒ 민주노동당 박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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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운동단체가 있고 이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은 20살 이후였다. 그들의 정치적 투쟁을 지켜보고 결국 함께하게 되는 과정은 성소수자 의제를 하나하나 알아가는 학습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1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목표가 줄기는커녕 점점 늘어갔다. 활동하는 사람이 게을러서가 아니다. 아무리 외쳐도 정부와 정치권은 요지부동이었고 그러는 사이 새롭게 확인하거나 발생한 문제가 추가되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소수자의 위치에서 운동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원하는 바를 이루려면 그만한 영향력을 행사해야 하는데 우리에겐 그럴 힘이 없었다. 유일한 방법은 여론을 설득하고 연대를 형성해 권력을 가진 사람을 압박하는 것인데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사람들은 소수자들이 처한 문제를 알고 싶어 조차하지 않았다.

지금이야 어느 정도 현실 감각이라는 게 생겼지만 활동의 초반에는 달아오른 정의감이 고립감으로 뒤바뀌는 과정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세상이 원망스러웠고 사람들이 얄미웠다. '너희만 잘 살면 끝이지?'라는 감정이 있었다. 연대의 가능성을 믿지 않았고 운동은 희망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부채 의식 때문에 했다. 그런 그때, 내게 노회찬 의원은 참 신기한(?) 존재였다. 거짓말처럼 꾸준했기 때문이다.

이미 2006년에 그는 '성전환자의 성별 변경 등에 관한 특별법안'을 대표발의 했다. 2008년에는 성적 지향과 성별정체성을 차별금지 사유로 명시한 '차별금지법'을 국회의원으로서는 최초로 발의했다. 이 때문일까 2007년 노 의원은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가 선정한 무지개 인권상 수상자가 되었다.

연대의 가능성을 증거로 남긴 사람

 2008년 5월 31일, 제9회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해서 발언하고 있는 노회찬 당시 진보신당 공동대표의 모습. 그는 2008년뿐만 아니라 그 이전에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종종 퀴어퍼레이드에 참여했다. 마이크를 잡을 때도 있었지만, 개인 자격으로 와서 즐기고 간 경우도 많았다.
 2008년 5월 31일, 제9회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해서 발언하고 있는 노회찬 당시 진보신당 공동대표의 모습. 그는 2008년뿐만 아니라 그 이전에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종종 퀴어퍼레이드에 참여했다. 마이크를 잡을 때도 있었지만, 개인 자격으로 와서 즐기고 간 경우도 많았다.
ⓒ 서울퀴어문화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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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를 위한 그의 행보는 이후에도 이어졌다. 꾸준한 정책 제안과 연대를 보였고 그래서 2012년 게이유권자파티는 동성애자 인권 의식이 가장 높은 후보로 노회찬 의원을 선정했다. 그는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연예인 하리수씨의 입양을 막아선 안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고, 퀴어문화축제를 비롯한 현장에 등장해 연대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스스로를 이반(성소수자가 스스로를 지칭하는 은어)에 연대하는 '붉은 삼반'이라 지칭한 이의 행보다웠다.

성소수자뿐만일까.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그의 관심은 매우 광범위했다. 2005년 대표 발의하고 이후에도 직접 개정하여 보완한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안'이 바로 그 결과물이다. 그리고 양심적 병역거부자들 또한 그가 입법 활동을 통해 보호하고자 한 소수자들 중 하나였다. 마지막으로 노회찬 의원이 국회의원이 되고 처음 발의한 법안은 호주제 폐지를 위한 민법 개정안이었다.

어쩌면 내가 꽤 오랜 시간 활동을 놓지 않고 이어왔던 것은 꾸준히 연대하며 가능성을 증거로 남긴 사람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노회찬 의원은 내게 그런 인물이었다. 특히나 그는 험난한 정치 인생에도 품위를 내려놓지 않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나의 앞에 서서 세상을 향해 평등한 권리를 외친다는 것이 자랑스럽기도 하고 고마웠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그걸 당연하게 여겼던 것도 같다.

노 의원의 부고를 접한 날 그런 생각을 했다. 소외되고 배제당한 사람의 곁을 지키던 사람이 죽음까지 감행할 정도로 괴로웠던 순간에 기댈 곳 없이 홀로였구나. 지금 그를 향한 나의 감정은 오직 미안함뿐이다.

당신은 실패하지도 멈추지도 않았습니다
 
 26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빈소 입구에 추모의 글이 적힌 메모가 가득차 있다.
 26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빈소 입구에 추모의 글이 적힌 메모가 가득차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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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앞으로'
노회찬 의원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 중 가장 마음이 쓰라린 대목이었다. 진보, 세상을 앞으로 끌고 나아가는 것이 평생의 목표였던 사람에게 '멈춘다'는 얼마나 가슴 아픈 표현이었을까.

전달되지 못하겠지만 그럼에도 말하고 싶다. 소수자가 차별 받지 않고 멸시 당하지 않으며 평등하게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세상, 그런 사회를 향한 지향은 우리가 공유한 것이기도 하지만 노회찬 의원이 평생의 걸쳐 자신의 마음속에 품어온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 목표 속에는 그의 손길과 흔적이 깊게 각인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노회찬 의원이 꿈꿔온 입법과 제도 도입이 현실에서 이루어지길 바란다. 나는 그때가 다가오면 우리가 그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당신은 실패하지도 멈추지도 않았습니다, 내밀어주셨던 손을 잡고 우리는 함께 당당히 앞으로 갔습니다.'
 26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빈소에서 김영훈 정의당 노동이당당한나라 본부장이 노 의원 영정을 안고 고인이 탑승했던 차량에 오르고 있다. 영정은 노 의원의 지역구인 창원으로 향한다.
 26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빈소에서 김영훈 정의당 노동이당당한나라 본부장이 노 의원 영정을 안고 고인이 탑승했던 차량에 오르고 있다. 영정은 노 의원의 지역구인 창원으로 향한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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