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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장에 꽂혀 있는 걸 본다면 엄마가 좋아하시지 않을 책이 몇 권 있다. 그 중 빼놓을 수 없는 하나가 <공산당 선언>이다. 실제로 몇 년 째 내 책장엔 그 책이 꽂혀 있고, 다행히 엄마는 보지 못하셨지만, 문제는 나도 보지 못했다는 거다. 저 작고 얇은 책의 어마어마한 무게감 때문일까. 호기롭게 샀건만 한 번도 펼쳐보지 못했다.

<공산당 선언>과 나 사이의 거리를 단번에 없애준 책이 나왔으니, 임승수의 <원숭이도 이해하는 공산당 선언>이다. 친절한 과외 교사나 동아리 선배처럼 원전을 해설하고 싶었다는 저자의 목표는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책의 왼쪽 페이지엔 원전을, 오른쪽 페이지엔 작가의 해설을 싣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각종 그림 및 사진 자료들도 담아 읽는 재미를 더했다.
 <원숭이도 이해하는 공산당 선언> 책표지
 <원숭이도 이해하는 공산당 선언> 책표지
ⓒ 시대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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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을 읽기에 앞서 저자의 독특한 이력이 눈에 띈다. 서울대학교 전기공학부를 졸업하고 반도체 소자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지만, 현재는 인문 사회 분야 전업 작가로 살고 있단다. 그렇게 삶을 전화하는 계기엔 마르크스 사상이 있었다고 하니, 그의 애정이 어우러져 책에 생기를 더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유령 하나가 유럽을 떠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다." (p14, <공산당선언>)

저자는 선언문의 이 강렬하고 성공적인 도입부로 당시 기득권 세력의 불안을 유추한다. 유럽의 보수 세력들은 공산주의라는 새로운 적을 물리치기 위해 서로의 차이를 극복하고 공동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마치 한국의 현대사에도 '종북'이나 '좌빨' 딱지가 횡행했듯이.

<공산당 선언>은 지금까지 모든 사회의 역사가 계급투쟁의 역사였다고 규정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주요한 두 계급은 생산수단을 소유한 부르주아와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프롤레타리아로 이뤄지고, 여기에도 격렬한 모순과 갈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는 곧 변화의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선언문은 부르주아 역시 봉건영주의 지배 아래서는 억압받는 신분이었음을 설명한다.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는 없으나 왕에게 납세할 의무만 있는 제3신분이었던 이들이, 거대 산업과 세계시장의 건설 이후 막대한 정치 권력을 쟁취한 것이다. 그리하여 국가 권력을 부르주아 계급의 공동 업무를 맡는 위원회처럼 만들기까지 이른 것이다.

반면 프롤레타리아는 전적으로 자신의 노동을 팔아서 살아가는 사회 계급이다. 어떤 종류의 자본으로도 이윤을 얻지 않는 계급이고, 이들의 안녕과 고통, 삶과 죽음, 실존 전부가 경기변동과 통제 불능의 경쟁 변화에 달려 있는 노동 계급이라는 것이다.

"부르주아 계급은 지배권을 쟁취한 곳에서 봉건적, 가부장적, 목가적인 일체의 관계들을 파괴해버렸다. 그들은 인간을 타고난 상전들에게 묶어놓았던 갖가지 색깔의 봉건적 끈들을 사정없이 끊어버렸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적나라한 이해관계, 차가운 '금전 지불' 말고는 아무런 유대도 남겨놓지 않았다."(p40, <공산당 선언>)

1848년 발표된 이 선언문이 지금까지 읽히는 이유를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이들이 짚고 있는 현실은 2018년의 현실과도 닮았다. 오직 돈 때문에, 경제적 논리 때문에 인권이 유린되고, 생명이 사라지는 것을 우리는 너무도 쉽게 보고, 듣고, 경험해오지 않았는가.

공산당 선언은 부르주아 계급의 속성을 설명한다. 이들은 생산물의 판로를 확대하기 위해 각 나라의 생산과 소비를 세계적인 것으로 만든다. 지방적, 국가적으로 자족하고 고립되어 있던 곳에 국가 상호 간의 전면적인 교류와 의존 관계가 들어서는 것이다. 저자는 자본의 세계화가 예나 지금이나 진행 중임을 덧붙인다.

이 부르주아 사회의 실존을 위협하는 것으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공황을 짚는다. 이전 사회와 달리,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오히려 과잉생산이 경제위기를 만든다는 것이다. 부르주아 계급은 생산력을 억지로 파괴하거나 기존 시장을 더 철저히 착취함으로써 위기를 타계하려고 하지만, 공산당 선언은 이것이 미봉책이 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대상은 프롤레타리아가 된다.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노동자 계급 역시 양적∙질적으로 크게 성장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프롤레타리아의 투쟁이 처음부터 성공할 것이라고 전망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부르주아 계급의 이익을 위해 동원되는 등의 시행착오를 겪기도 하나 이러한 발전단계를 거쳐 더욱 역량이 강화된다는 것이다. 
"오늘날 부르주아 계급에 맞서고 있는 모든 계급 가운데 오직 프롤레타리아 계급만이 진정으로 혁명적인 계급이다. 다른 계급은 거대 산업과 함께 쇠퇴하고 멸망한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거대 산업의 유일한 생산물이다."(p114, <공산당 선언>)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프롤레타리아가 계급으로, 정당으로 조직되고, 노동자 자신들끼리의 경쟁에 의해 파괴되길 반복하나, 그때마다 부활해 더 단단해지고 튼튼해지고 강력해진다고 단언한다. 개별적이었던 노동자가 연대를 통해 혁명적 단결을 이루고, 그리하여 지배계급에게 착취당하는 노예가 아닌, 스스로 사회적 생산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부르주아의 몰락과 프롤레타리아의 승리를 확신했다. 해설을 쓴 저자는 그 승리는 아직 오지 않은 지 모르지만, 이 선언문이 나오고 170년 동안 노동자 계급이 끊임없이 투쟁했고, 그 결과 자본주의 시스템에 상당한 변화를 줄 수 있었다고 말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예상한 사회 변화가 느리지만 꾸준하게 이뤄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나로선 이 한 권으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정치 철학을 완전히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나의 조악한 글이 누구에게도 누가 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부족한 이해겠지만, 그럼에도 <공산당 선언>은 내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끊임없이 다른 길이 제시되고, 시행착오가 거듭될수록, 사회를 건강하게 바꾸는 노력은 힘을 얻을 것임이 분명하다.

혹시 나처럼 <공산당 선언>을 책장에 고이 모셔두고 읽지 않은 독자가 있다면, 일단 한 번 펼쳐볼 것을 권하고 싶다. 번역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현학적이거나 지루한 문장의 나열은 아닐 것임을 확신한다. 천천히 유려한 문장을 곱씹어가며 마르크스-엥겔스의 당찬 선언을 이해할 수 있다면 좋고, 혹시 어렵다면 이 책, <원숭이도 이해하는 공산당 선언>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나는 큰 도움을 받았다.

<공산당 선언>이 그랬고, 그 해설서인 이 책도 그렇지만, 나의 리뷰 역시 강렬한 이 문장으로 끝낼 수밖에 없다.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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