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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종전선언을 거듭 촉구하고 있다. 정전협정(휴전협정) 65주년인 7월 27일이 다가오면서 북한의 촉구는 강력해지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이와 같은 목소리에 호응하지 않는 모양새다.

일례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가 운영하는 '우리민족끼리TV'는 7월 23일 방송에서 종전선언에 관한 남측 시민단체들의 지지를 소개하면서 "종전선언은 미국이 지닌 마땅한 의무"라는 자막을 내보냈다.

7월 24일 <조선중앙통신>은 '종전선언 채택은 평화보장의 첫 공정이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미 결실을 보았어야 할 문제"라며 "종전선언 채택 문제에 대해 말한다면, 그것은 조선반도에서 긴장을 완화하고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첫 공정인 동시에 조·미 사이의 신뢰 조성을 위한 선차적인 요소"라고 강조했다.

남북과 미국, 견해 차이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7일 오후 '2018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 앞에서 '판문점 선언' 합의에 대한 입장을 발표했다.
▲ 남-북 정상 '판문점 선언' 발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7일 오후 '2018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 앞에서 '판문점 선언' 합의에 대한 입장을 발표했다.
ⓒ 한국공동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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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7일 발표된 판문점선언 제3조 제3항에서는 종전선언·평화협정·평화체제를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의 개최를 남과 북이 추진해나간다고 선언했고, 6월 12일의 북미 공동성명 제3조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2018년 4월 27일에 채택된 판문점 선언을 재확인하면서 조선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하여 노력할 것을 확약하였다"라고 밝혔다.

북한 입장에서는, 미국에 종전선언을 촉구하는 근거로 위의 두 조문을 활용할 여지가 있다. '종전선언을 포함하는 판문점선언이 지켜진다는 조건으로 북·미 공동성명 제3조에 동의했다'는 주장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그런 해석을 부정할 수 있는 여지가 공동성명 안에 들어 있다. 4개 조문으로 된 공동성명에서 제1조·제2조·제4조의 주어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미합중국은"이지만, 유독 3조만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이다. 이를 근거로 미국은 '비핵화 당사자는 북한'이라고 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판문점선언 속의 종전선언에 대해 우리는 책임이 없다'고도 말할 수 있게 된다.

미국이 종전선언에 대해 적극적이지 않다는 점은 북미 공동성명에 그에 관한 언급이 없는 데서도 느낄 수 있다. 공동성명에는 평화협정이란 표현도 없다. 평화체제(peace regime)라는 추상적인 표현만 있을 뿐이다.

미국이 종전선언에 대해 소극적 태도를 보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 선언에 대한 남북과 미국의 시각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남북은 종전선언을 평화협정의 전 단계로 이해하는 듯한 느낌을 풍긴다. 판문점선언 제3조 3항에서 그런 분위기가 드러난다.

"남과 북은 정전협정 체결 65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

이 조문을 읽을 때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까지 읽고 나서 숨을 쉬면 안 된다.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까지 읽고 나서 숨을 쉬는 게 바람직하다. 그렇게 끊어 읽어야, 남과 북이 종전선언·평화협정·평화체제를 위한 3자 또는 4자회담을 추진하기로 했다는 취지가 분명히 드러난다.

위 조문에서는 남북이 종전선언을 평화협정의 전 단계로 이해한다는 느낌이 풍겨난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직후의 대한민국 정부도 그렇게 이해했다.

그해 10월 11일 노무현 대통령은 기자 간담회에서 '지금 평화협정으로 바로 들어가기는 좀 빠른 것 같고, 종전선언을 하고 그 다음에 들어가는 게 맞지 않느냐'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같은 해 10월 24일엔 백종천 청와대 외교안보실장이 '남북정상회담 과제와 전망' 포럼에 참석해 "3자 또는 4자 정상회담을 통한 종전선언은 평화협상을 이제 시작하자는 정치적·상징적 선언"이라고 풀이한 바 있다.

그동안 미국이 '종전선언'을 대했던 자세

사상 첫 북미정상회담이 열린 12일 오후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호텔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공동 합의문에 서명하고 있다. 김여정 부부장과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배석해 있다.
▲ 합의문 서명하는 김정은-트럼프 사상 첫 북미정상회담이 열린 12일 오후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호텔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공동 합의문에 서명하고 있다. 김여정 부부장과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배석해 있다.
ⓒ 케빈 림/스트레이츠 타임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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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미국 정부의 입장은 다르다. 미국이 종전선언 제도를 운용해온 관행을 보면 그 점을 알 수 있다. 이에 관한 미국의 관행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 형성됐다. 영국 에딘버러대학에 속한 국제법 학자 김선표의 논문 '남북한 특수관계 하의 종전선언의 법적 의의와 조건에 관한 소고'엔 이런 대목들이 있다.

"1947년 9월 15일에 미국은 자국과 이탈리아·루마니아·불가리아·헝가리 간의 전쟁이 종료되었음을 선언하였다. 이 날은 미국과 각 교전국가의 평화조약이 발효하는 날이었다."
"트루먼 대통령은 같은 해 10월 24일 독일과의 종전을 선언하였다. 동 선언에 따르면, '미국은 통일된 자유 독일과 평화조약을 체결하고자 하였으나 소련의 반대로 이를 이루지 못하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과의 전쟁 상태를 종료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고 있다."
"트루먼 대통령은 1952년 4월 28일 미국과 일본의 전쟁은 동일자로 종료함을 선언하였다. 이 날은 일본과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발효하는 날이었다." - 2008년에 발행된 <국제법 평론> 제27호 중

위 사례에서 나타나는 것은, 미국이 평화협정 발효 시점에 맞춰 종전선언을 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독일과의 경우에는 소련의 반대 때문에 그렇게 못했지만, 이 경우에도 미국은 종전선언을 평화협정 발효에 맞추려고 했었다. 이를 통해 드러나는 미국의 접근법은, 종전선언을 한 다음에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게 아니라, 평화협정을 먼저 체결한 뒤 그 발효 일자에 맞춰 종전선언을 하는 것이다.

한편, 제2차 대전의 공동 전승국인 소련은 종전선언을 평화협정처럼 운용했다. 일본과의 평화협정 체결이 힘들게 되자, 평화협정 비슷한 종전선언을 채택했다. 위의 <국제법 평론> 제27호에 실린 또 다른 글, 김찬규 경희대 명예교수의 '국제법 사례 연구'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일본과 소련 두 나라는 일·소 공동선언이라는 종전선언을 통해 평화관계를 회복했다. 이유는 이른바 북방 4개 도서의 귀속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데 있었다. 하지만 1956년 10월 19일 모스크바에서 조인되고 같은 해 12월 12일 비준서가 교환됨으로써 발효한 이 선언에는 평화조약에 포함될 모든 규정이 다 들어 있다. 외교관계 및 영사관계의 개설(제2항) … 등이 그 대표적 사례다."

소련과 일본은 북방 4개 도서 문제 때문에 평화협정을 체결하지는 못했지만 종전선언을 통해 평화협정의 목적을 사실상 달성했다. 이처럼 미국과 소련은 종전선언을 평화체제의 시작과 일치시키려는 경향을 보였다. 종전을 평화의 시작으로 봤던 것이다.

여기서 분명해지는 것은, 미국이 종전선언을 평화체제의 전 단계로 이해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동전의 양면처럼 이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의 축적된 관행에 갇힌 트럼프

북미정상회담을 마친 트럼프 대통령이 12일 오후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 북미정상회담 결과 발표하는 트럼프 북미정상회담을 마친 트럼프 대통령이 12일 오후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 싱가포르 공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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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가 21세기 들어서도 여전히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는 점은, 2007년 10월 25일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가 서울시립대 특강 뒤의 기자회견에서 "평화협정이 종전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것이 법적이고 정치적인 차원"이라고 말한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이 발언은, 전날(24일) 백종천 외교안보실장이 "종전선언은 평화협상을 시작하자는 정치적·상징적 선언"이라고 말한 것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살펴본 미국 정부의 관행과 버시바우 대사의 발언을 종합해보면, 미국이 북한과 함께 종전선언을 추진한다면 평화협정의 전 단계로서가 아니라 평화협정 발효에 맞춰 종전선언을 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물론 미국이 북한과의 관계에서 그런 관행 혹은 선례를 깰 수도 있다. 평화협정과 무관한 선언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류의 선언은 미국에서 '적대관계 종료선언'으로 통한다. 1946년 12월 31일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제2차 대전의 적대행위가 끝났다는 의미로 이런 선언을 한 적이 있다. 이 선언에 관해 김선표의 논문은 이렇게 말한다.

"트루먼 대통령은 이 적대관계 종료선언에 따라 미국 내의 전쟁 및 긴급사태에 관한 많은 법률(총 약 55개)이 종료됨을 함께 선언하였다. 그러나 동 선언은, 동 선언 자체로 전쟁상태를 종료시키는 것은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다. 따라서 트루먼 대통령의 1946년 12월 31일 선언은 종전선언이 아니다."

미국 정부의 머릿속에서는 전쟁상태의 종료가 곧 평화상태의 시작이다. 따라서 평화체제와 무관한 선언은 종전선언의 형식이 아니라 적대관계 종료선언의 형식인 것이 그들의 관행이다.

그런데 적대관계 종료선언은 전투행위 종료선언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적대관계 종료선언은 북미관계에서는 자연스럽지 않다. 한국전쟁은 이미 65년 전에 정전됐는데, 이제 와서 그런 선언을 하는 게 어색할 수도 있다. 그래서 북한과의 관계에서는 종전선언 형식을 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미국을 소극적인 태도로 몰아가고 있다. 기존 관행에 따르면, 북한과의 종전선언은 평화협정 발효에 맞춰 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평화협정을 동시에 추진했다가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욕을 먹고 곤경에 빠질 게 분명하다. 그간 미국이 축적해놓은 관행 속에 트럼프가 갇혀 있는 것이다.

미국이 종전선언을 쉽사리 하지 못하는 데는 다른 이유들도 있다. 종전선언을 하게 되면 유엔군 사령부의 한국 주둔이 정당성을 얻기 어려워지는 문제점 등이 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기존 선례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종전선언을 평화협정의 마침표처럼 활용해온 관행 때문에, 종전선언만 따로 떼어내 추진하기가 곤란한 것이다. 기존 관행 속에 갇혀 있는 미국으로서는 지금처럼 묵묵부답식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태그:#종전선언, #7.27정전협정, #미국, #북한, #평화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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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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