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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늘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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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자가용 사용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고 대중 버스 운행이 많지 않은 나라다. 미국의 대표적인 장거리 버스는 '그레이하운드'로 미국 대부분의 도시를 연결한다.

미국에서 버스는 중하위 계층, 흑인, 히스패닉, 인디오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고 중산층, 상류층, 백인들은 비행기나 자가용 이용률이 높다고 한다. 실제로 내가 탄 그레이 하운드들에는 승객, 기사, 매표원, 보안요원, 짐 나르는 노동자들 모두 백인 비율이 낮았다.

그랜드캐년으로 가는 대중 버스가 없어서 우선 로스엔젤레스에서 라스베가스로 이동했다. 사막에 세워진 카지노 도시 베가스. 카지노에서 게임을 할 돈은 없고 그저 유명 호텔 앞에서 펼쳐지는 분수쇼와 화산쇼, 번화가에서 흥청대는 사람들의 열띤 분위기를 구경했다.

베가스에서 캐년까지는 500킬로미터의 거리로, 100달러 상당의 당일치기 왕복 투어가 있을 뿐 대중버스가 운영되지 않는다. 지도를 보고 히치하이킹 계획을 세웠다. 먼저 2달러짜리 시내 버스를 타고 베가스 동쪽 끝 '보더시티'로 이동한 다음 모래가 펼쳐진 길을 걷기 시작했다. 더워서 소매 없는 셔츠에 반바지를 입었는데 한두 시간도 되지 않아 화상을 입어 화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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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람의 딸 한비야도 아니고, 오지 모험가 베어 그릴스도 아니고, 세상 모든 나라를 여행한 로버트 포웰도 아니지만, 나는 이 길을 걸을 거야."

끝없이 펼쳐진 길을 보며 다짐했지만, 닥쳐 오는 현실은 나의 상상과는 아주 달랐다. 알고 보니 아리조나 주의 상징은 태양이며, 내가 서 있는 곳은 모하비 사막이었다. 길가에는 그늘 한 점 없어서 곧 쓰러질 것만 같았다. 용기를 내어 엄지손가락을 번쩍 들고 히치하이킹을 시작했다.
 처음으로 나를 태워준 라이어씨
 처음으로 나를 태워준 라이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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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으로 가는 여행자입니다. 저 좀 태워주세요! Please! Help me! Pick me up"

수많은 스포츠카와 캠핑카, 대형트럭들이 나에게는 일말의 관심도 두지 않은 채 쐥 쐥 지나가기만해서 의기소침해졌으나 가만히 있을 수도 없어서 걷다가 손을 흔들기를 반복했다. 마침내, 드디어, 기적적으로, 낡은 트럭 한 대가 멈춰섰다. 두 번의 히치하이크, 두 사람의 도움으로 무사히 그랜드캐년까지 갈 수 있었다.

우연히도 두 운전사 모두 평생 건설 노동일을 하다가 퇴직한 사람들이었다. 2011년 남한 일주 여행에서도 건설 노동자들의 차를 몇 번 얻어탄 경험이 있다. 의성에서 만난 한 노동자의 이야기에 따르면 '노가다하는 사람들은 차에 먼지도 많고, 겁도 좀 없어서 사람들을 잘 태운다'고 한다. 국경을 넘어도 건설 노동자들의 마음은 통하는 게 있는 걸까. 만국의 건설 노동자, 고마운 운전사들에게 감사를.

 프래스캇에서 그랜드캐년으로 가는 길. 멀리 캐년이 보인다.
 프래스캇에서 그랜드캐년으로 가는 길. 멀리 캐년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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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그 히프너씨는 그랜드캐년에서 160킬로미터 거리에 자리한 프레스캇에 살고 있다. 차를 타고 가는 동안 저녁이 오자 자신의 집에 기꺼이 나를 초대하여 하룻밤을 머물게 해주었다. 자신도 젊은 시절 수천 마일을 히치하이킹했던 경험이 있다고 했다. 더그씨의 딸은 인도와 태국 등지를 여행했다는데, 길 위의 나를 보고 딸을 떠올렸는지도 모르겠다.

"딸아, 내가 남한에서 온 여행자를 태웠는데 히치하이킹하고 버스 타고 서부에서 뉴욕까지 간대."
"세상에! 왜 그런대? 비행기 타면 네다섯 시간이면 가는데!"


 숲을 사랑하는 더그씨의 집에서
 숲을 사랑하는 더그씨의 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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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나는 무엇을 위해 버스도 잘 다니지 않고 걷기도 어려운 미국 대륙 횡단을 하고자 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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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5일 동안 야영을 하며 그랜드캐년을 동쪽으로 서쪽으로 돌아다녔다. 다행히 요세미티처럼 곰에 대한 경고문은 없었고 엘크와 사슴, 말들을 종종 마주쳤으나 위험하지는 않았다.
 화장실 옆 식수대에 물 마시러 나온 엘크
 화장실 옆 식수대에 물 마시러 나온 엘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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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되는데 600만 년, 바위가 노출되는데 20억 년이 걸렸다는 세계 최대의 협곡 지형은 과연 거대하고 놀라웠다. 5일 내내 해와 별이 뜨고 지는 그랜드캐년을 이쪽 저쪽으로 하염없이 바라보다 다시 길을 나섰다.
 더그 씨가 준 모자를 쓰고
 더그 씨가 준 모자를 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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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횡단 #세계일주 #세계여행 #히치하이킹 #그랜드캐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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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달동네 생활영화인 늘샘. 남쪽 바다 미륵섬에서 자라, 지리산 골짜기 간디학교에서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인디스페이스, 늘장, 로드스꼴라, 청년활동지원센터에서 활동. 영화를 만들고, 글을 쓰고, 노래합니다. 인디언식(式) 이름은 '땅을 치고 춤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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