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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프랑스 아비뇽(Avignon)의 구시가지는 참으로 포근했다. 막상 도착해서 다녀보니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곳이다.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모습도 인상적이고, 다른 프랑스 관광지에 비해서 관광객이 확실히 적은 편이어서 한가하게 둘러보기에 좋다.

아비뇽 사람들에게서는 자연스러운 삶의 여유가 느껴진다. 광장의 노천카페에 앉아있는 사람들도 편안해 보인다. 비교적 시원한 아침이나 저녁에는 야외에서 커피를 마시기에 딱 좋은 곳이다. 둘러볼 곳이 많은 나도 여유 있게 아비뇽의 명소를 찾아가보기로 했다.
아비뇽 교황청. 유럽의 기독교 역사를 바꾸어놓았던 역사적 사건이 벌어진 유적이다.
▲ 아비뇽 교황청. 유럽의 기독교 역사를 바꾸어놓았던 역사적 사건이 벌어진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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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골목길의 코너를 돌아가자 골목길 사이로 갑자기 뻥 뚫린 교황청 광장이 나오고 압도적인 위용의 아비뇽 교황청(Palais des Papes d'Avignon)이 눈에 들어왔다. 아비뇽 교황청과 함께 성모 마리아 상이 우뚝 솟아있는 노트르담 데 돔 성당(cathédrale Notre-Dame des Doms)이 광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교황청이 얼마나 큰지 사진기에 한번에 담기지 않는다.

나는 교황청이 얼마나 큰지 가늠해 보기 위해 교황청 뒤쪽으로도 가 보았다. 좁은 골목길이 엄청난 암벽 옆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교황청의 뒷모습은 마치 암반 위에 지어진 것처럼 특이하고 멋진 형태를 보여주고 있었다.

아비뇽 여행자들에게 교황청 방문은 필수 코스가 되어있는 곳이다. 아비뇽 교황청은 유럽의 종교역사에서 너무나도 중요한 곳이고, 현존하는 고딕양식 건물 중 가장 뛰어난 건축물로도 평가 받는 곳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전 이른 시간에 일찍 입장권을 사서 교황청 안으로 들어갔다. 중세시대에는 교황의 초청을 받은 사람만이 이곳에서 미사를 보러 입장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입장료만 내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다. 나는 예상 외로 더운 날씨에 외투를 벗고 교황청 안으로 들어갔다.
아비뇽 교황청 중정. 아비뇽 교황청 중정.
▲ 아비뇽 교황청 중정. 아비뇽 교황청 중정.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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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 내부는 진회색의 거대한 중세 벽체로 둘러싸여 있어 압도당하는 느낌이 든다. 50m나 되는 높이에 4m의 두께로 지어진 성벽은 종교시설보다는 마치 거대한 요새처럼 느껴진다. 대표적인 고딕건물의 명성을 과시하듯 외관이 화려하면서도 높고 견고하다.

두텁고 견고한 건물 벽면은 중세시대 가톨릭 최고 성직자의 절대권력과 위엄을 느끼게 한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아비뇽 교황청에서는 중세 가톨릭의 정취가 강하게 풍겨온다.

교황청 내부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된 곳은 4면이 석벽으로 둘러싸인 큰 중정(中庭)이었다.
이곳은 14세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을 정도로 튼튼하고 견고하게 만들어졌다. 마당 바닥의 자갈돌과 석재들은 오랜 역사를 품고 그대로 여행자들의 발길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 교황청 중정을 보면 교황청 자체를 워낙 튼튼하게 잘 만들었다는 사실을 바로 알 수 있다. 게다가 교황청 내부의 이 큰 공간의 모든 벽면은 교황청 빛축제 때에 스크린으로 사용될 정도로 현대에도 충실하게 애용되고 있다.

교황청 관광객들에게는 오디오 가이드가 제공되지만 아쉽게도 한국어 가이드는 없다. 나는 교황청 안내 직원에게 물어보았다.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는 없어요? 한국 사람들도 이곳에 꽤 올 것 같은데요."
"네. 있어야 되는데 없네요. 곧 태블릿 가이드가 나올 예정인데 거기에는 포함시키도록 노력해 볼게요."


불편하지만 나는 영어로 설명되는 오디오 가이드를 귀에 꽂고 다녔다. 오디오 가이드는 지금 흔적만 남아있는 교황청 내부 각각의 공간들이 과거에는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는지를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었다.

과거 공간의 바닥을 비추면 당시의 바닥을 설명해주고, 천장을 비추면 중세 교황청의 천장을 정말로 세밀하게 설명해준다. 생각 이상으로 가이드 기계의 설명이 흥미로운데, 그만큼 영어 실력이 따라가지 못하는 사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교황청 기록사진. 넓은 전시실에는 교황청의 역사를 담은 사진이 건물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 교황청 기록사진. 넓은 전시실에는 교황청의 역사를 담은 사진이 건물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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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 가이드에서는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교황의 이름과 프랑스 왕들의 이름이 계속 쏟아져 나왔다. 프랑스의 교황청 이야기는 십자군 원정에서 시작된다. 십자군 원정이 실패로 돌아가고 십자군이 이슬람 군에게 패하자 기독교인들은 기독교의 신과 그리스도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기독교에 대한 의문은 자연스럽게 교황이 힘을 잃게 되고 유럽 각국 군주들이 실권을 장악하게 되는 시대를 열게 되었다.

교황청의 한 전시실에는 1309년∼1377년 동안 7대에 걸쳐 로마에서 피신하여 아비뇽에 체류한 교황들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교황들의 초상화는 클레멘스 5세(Clemens Ⅴ) 교황으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프랑스왕 필립4세(Philippe Ⅳ)는 교황이 직접 걷던 성당의 세금을 직접 걷기 시작하면서 보니파스 8세(Boniface Ⅷ)와 대립하게 된다. 필립4세와 대립 중에 보니파스 8세가 사망하자 후임 교황으로 프랑스인인 클레멘스 5세(Clemens Ⅴ)가 195대 교황으로 선출되었고, 클레멘스 5세는 로마로 돌아가지 못하고 프랑스에 남게 되었던 것이다.
역대교황 기록화. 클레멘스 6세 등 아비뇽 교황청에 있던 교황들의 역사가 담겨있다.
▲ 역대교황 기록화. 클레멘스 6세 등 아비뇽 교황청에 있던 교황들의 역사가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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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클레멘스 6세(Clemens Ⅵ)부터 시칠리아 여왕으로부터 아비뇽의 땅을 사서 교황청을 짓고 아비뇽의 교황청을 사용하게 되었다. 이 클레멘스 6세가 생활하던 사슴 홀도 교황청 안에 잘 보존되어 있었다. 교황 초상화들 옆에는 시칠리아 여왕이 클레멘스 6세를 알현하고 교황과 땅을 파고 사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그 당시 세속적 군주와 교황의 관계를 익살스럽게 그려낸 그림이다. 클레멘스 6세는 신을 영화롭게 하기 위한 것이라며 의복을 화려하게 꾸미고 다녀 사람들의 빈축을 살 정도였다고 하니 그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이 그림에 반영된 것일 것이다.

클레멘스 6세 이후 교황들의 아비뇽 체류는 잘 알려진 대로 '아비뇽 유수(Avignonese Captivity)'라고 하며, 이 당시에 교황권은 프랑스의 지배 하에 놓여 있었다. 유럽사의 이 대사건은 이후 서유럽 여러 나라들의 분열시기를 재촉하였다. 아비뇽 교황청에 살다간 교황들은 프랑스 왕실의 세속적인 법규를 모방하여 세금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돈을 받고 성당의 성직을 팔기 시작했다. 아비뇽 교황청은 신 중심의 변질된 중세사회가 점점 사람 중심의 시대로 변해가는 시기에 기폭제와 같은 역할을 했던 곳이다.

아비뇽 교황청은 교황들이 사용하기 전부터 있던 북쪽 건물을 구궁전, 클레멘스 6세가 증축한 부분을 신궁전이라고 부른다. 중정 한곳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중정이 한곳 더 나왔다. 신궁전, 구궁전의 두 구조가 합쳐진 탓에 교황청 내부에는 2개의 중정이 있었다.
창 밖의 아비뇽 마을.  붉은 지붕들이 잇달아 이어진 집들이 편안해 보인다.
▲ 창 밖의 아비뇽 마을. 붉은 지붕들이 잇달아 이어진 집들이 편안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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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궁전과 신궁전의 1층 공간은 대부분 전시공간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나는 교황청 내부의 여러 전시실 안으로 들어섰다. 창문 밖으로는 붉은 지붕들이 열을 선 아비뇽의 집들이 전개되고 있었다.

수많은 인력을 동원하여 22년 만에 만들어진 이 거대 건축물의 내부는 교황이 로마로 떠난 후 폐허로 방치되었고 1789년 프랑스 대혁명 때에 많은 유물들이 약탈되고 파괴되었다. 교황청 내부의 회랑과 예배당 자체는 역사와 공간에 대한 지식을 알지 못하면 그저 텅 빈 공간같이 보인다. 하지만 건물 내부가 예전의 영광과 화려함을 잃고 건물벽면만 덩그러니 남아 있어도 교황청 영욕의 역사가 살아 숨쉬고 있는 것만 같다.

나의 아쉬운 마음을 달래주려는 듯 구궁전 1층 전시실로 계속 들어가자 당시의 아름다운 프레스코 벽화가 전시된 공간이 나타났다. 이탈리아 화가로서 아비뇽에서 사망한 시모네 마르티니(Simone Martini)의 아름다운 프레스코 벽화가 전시되어 있었던 것이다.
아비뇽 교황청 프레스코화. 이 아비뇽 화풍은 전 유럽에 전파되어 유행하였다.
▲ 아비뇽 교황청 프레스코화. 이 아비뇽 화풍은 전 유럽에 전파되어 유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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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모네 마르티니. 그는 1340년부터 아비뇽 교황청 내부에 종교화를 남긴 종교화의 거물이었다. 그가 만들어낸 우아한 아비뇽 화풍은 북방의 고딕양식에 자신만의 작풍을 융합시킨 것이었다. 아비뇽 교황청의 천장과 벽면에 남은 은은한 그의 작품들은 다른 종교화들과는 달리 편안한 감상을 느끼게 해준다.

시모네 마르티니와 함께 또 한 명의 걸출한 화가 마테오 조반네티(Matteo Giovannetti)가 남긴 아비뇽 교황청의 프레스코화 화풍은 이후 유럽 각지에 전파되어 국제적 양식을 형성하였고, 14세기말부터 15세기 전반에 걸쳐 전 유럽적인 양식으로 전파되어 유행하게 되었다. 이곳을 찾았던 당시의 성직자나 미술가들은 그의 화풍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벽에 바른 회 반죽이 채 마르기 전에 그려진 그의 벽화가 온전히 남지 못하고 일부만 남아있는 모습이 너무 아쉽기만 하다.

교황청 예배당 유적.  중세시대에는 이곳에서 초청받은 사람들만이 미사를 드릴 수 있었다.
▲ 교황청 예배당 유적. 중세시대에는 이곳에서 초청받은 사람들만이 미사를 드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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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실에는 당시의 모습을 추측하여 그려놓은 그림들이 시각적으로 큰 도움을 준다. 예배당, 응접실, 교황의 침소, 대법정, 소법정이 빈 방에 그림 설명으로 남아있다. 가장 인상적인 장소는 교황청 내부에서 추기경들이 교황을 선출하던 '콘클라베(conclave)' 장소인 그랑 티넬(Grand Tinel)이다. 높고 높은 천장의 나무장식은 아름답고 아름다워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그랑 티넬. 중세 교황을 선출하던 그랑 티넬의 높은 천장과 나무장식이 아름답다.
▲ 그랑 티넬. 중세 교황을 선출하던 그랑 티넬의 높은 천장과 나무장식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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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연회장으로 사용되던 공간은 잘 차려진 식탁이 있던 곳이다. 교황이 식사를 하던 방의 설명은 흥미롭기만 하다. 식당이나 연회장에서 교황이 사용하던 물건은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포도나무 잎사귀 문양과 존엄을 상징하는 푸른색으로만 이루어져 있었다고 한다.

식기는 금과 은으로 만들어져 반짝였고 진주로 화려하게 장식되었다. 클레멘스 5세는 소화불량을 고치기 위해 에메랄드 보석 가루를 복용하다가 죽을 정도였다고 하니 세속적인 교황들의 사치는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가장 귀에 꽂히는 이야기는 당시 식사 시에 교황에게 위협이 될 만한 일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교황만이 오직 쇠로 된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했다는 이야기이다. 아직도 권력이 남아있었던 교황이지만 자신이 살해당할지 모른다는 공포 속에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디오 가이드의 설명을 들어도 이해되지 않는 것은 주방의 굴뚝이 너무나 높다는 점이다. 나는 주변에 있던 박물관 직원에게 물어보았다.

"이게 주방의 굴뚝인가요? 굴뚝이 왜 이렇게 높죠?"
"중세시대에는 연회를 베풀 때 많은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좁은 공간에서 고기를 많이 굽게 되었는데 고기를 구우면서 너무 많은 연기가 발생했고, 많은 연기를 외부로 원활히 빼기 위해 굴뚝을 높게 만들었죠."


교황청 굴뚝. 고기를 구우면서 발생한 많은 연기를 배출하던 시설이다.
▲ 교황청 굴뚝. 고기를 구우면서 발생한 많은 연기를 배출하던 시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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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고기를 얼마나 많이 구웠으면 그 연기를 감당하지 못할 정도였는지 상상이 잘 가지 않는다. 암흑의 시대라고 하는 중세시대에 특권층은 이토록 감당하지 못할 풍요를 누렸던 것이다.

웅장한 교황청 내부를 관람 순서대로 돌다가 보니 눈 앞에 계단이 나타났다. 나는 교황청의 성벽 위로 향하는 좁다란 계단을 걸어 올랐다. 좁은 담벼락과 지붕 사이를 걸어가자 내가 기대했던 전망을 바라다볼 수 있는 곳이 나왔다. 여기저기 담이 뚫려 있어서 다양한 방향으로 아비뇽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아비뇽 전경. 교황청 옥상에서는 교황청 광장 너머 아비뇽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 아비뇽 전경. 교황청 옥상에서는 교황청 광장 너머 아비뇽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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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르담 데 돔 성당도 바로 눈앞에 보이고 교황청 광장도 내려다보이고, 멀리 론(Rhône) 강도 한눈에 들어왔다. 아비뇽 성곽 밖 마을의 붉은 지붕들은 옹기종기 모여 끝도 없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아비뇽에서 처음 만난 동양 여행자, 싱가포르 친구들에게 아비뇽 마을을 배경으로 내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교황청 옥상에서 파노라마 풍경을 계속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지금은 본래 기능을 상실한 교황청일지라도 중세 유적을 아끼고 계속 사람들이 찾도록 하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는 아비뇽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남프랑스의 바람이 남쪽에서 불어오고 있었다. 이 아름다운 풍경은 여기까지 찾아온 나에게 주는 누군가의 선물이었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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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출판 담당 기자로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을 연재하며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펴냈습니다. ohmybook2016@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