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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식쿨 호수가 그렇게 좋다면서요?"

키르기스스탄을 여행한다고 하자 지인이 꺼낸 말이다. 현지 여행사가 보내준 일정을 대강 훑어본 나는 이번 트레킹 여행에서 이식쿨 호수를 거의 한 바퀴 돌게 되는 줄도 모르고 갔다.

수평선이 아득히 펼쳐진 이식쿨 호수는 바다 같다.
▲ 바다같은 이식쿨 호수 수평선이 아득히 펼쳐진 이식쿨 호수는 바다 같다.
ⓒ 조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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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산산맥과 그 지맥으로 대부분의 지형이 이루어진 산악국가 키르기스스탄. '중앙아시아의 스위스'라고 불리는 이 나라는 바다에 접하지 않는 내륙국가이지만, 물의 나라이기도 하다. 중앙아시아에는 천산산맥이 만년설이 녹아서 흐르는 두 개의 강이 있다. 그 중에 하나인 사르다리아강의 발원지가 키르기스스탄이다.

키르기스스탄은 풍부한 수자원을 이용해 많은 저수지를 만들고, 수력발전으로 전기를 생산한다. 인접한 카자흐스탄이나 우즈베키스탄과 국경 봉쇄와 같은 마찰이 생기면, 키르기스스탄 역시 수자원 통제로 맞선다고 한다. 이처럼 강이 여러 나라를 거쳐 흐를 때 상류 물줄기를 차지한 나라에서 물의 힘은 막강하다.

천산산맥 아라콜 패스를 넘기 위하여, 우리 일행은 이식쿨 호수의 남쪽에서 동쪽으로, 산을 넘고 나서는 다시 북쪽을 돌아 비슈케크로 왔다. 키르기스스탄의 북동쪽에 위치한 이식쿨 호수는 남미의 티티카카 호수 다음으로 두 번째로 큰 산악호수이다.

연중 내내 얼지 않아 '따뜻한 호수'라는 뜻을 가진 이식쿨. 바다처럼 창창하게 펼쳐진 이식쿨은 염분이 있는 호수다. 호수의 길이는 180 km, 너비는 70 km이고 수심이 가장 깊은 곳은 700 미터에 이른다.

호수를 왼쪽으로 끼고 차는 계속 달렸다. 호수를 따라 아름다운 미루나무가 많이 보였다. 군데군데 수영을 나온 인파도 눈에 띄었다. 우리는 차를 세우고, 호숫가 모래사장을 걸었다. 국민의 75% 정도가 이슬람교인 나라여서, 이 나라의 여성들의 삶은 어떤지 호기심을 가지고 보게 되었다.

이식쿨 호수를 지나가다 보면 모래사장에서 수영하며 노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 이식쿨 호수에서 수영하는 사람들 이식쿨 호수를 지나가다 보면 모래사장에서 수영하며 노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 조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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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에서 수영복을 입고 노는 여자들이나, 거리에서 장사를 하는 여성들, 또 여행지에서 만나는 여성들의 모습은 활기가 넘치고 밝았다. 이슬람 국가라고 무조건 여자들이 몸을 꽁꽁 가리거나, 사회 생활에 적극 나서지 않을 것이란 건 잘못된 선입견이었다. 우리가 카라콜 대학 교정을 잠깐 걸었을 때도 일행인 L선생님은 여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했다. 여학생들은 영어를 아주 잘했다.

여행의 마지막 일정은 이식쿨 호수에서의 유람이었다. 전날 배를 타기로 했다가 산에서 몰려온 비구름이 세찬 비를 뿌려 마지막 날 아침으로 미뤘다. 우리 가이드인 주마벡과 아지즈가 맥주와 스낵을 사와서 배에 실었다. 전날 슈퍼마켓에 들렀을 때 미리 사두었던 와인도 있었다.

몇몇 사람들이 파란 호수로 뛰어 들어 수영을 한다.
▲ 이식쿨 호수에서의 수영 몇몇 사람들이 파란 호수로 뛰어 들어 수영을 한다.
ⓒ 조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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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는 파랗기 그지 없는 물살을 헤치며 호수 가운데로 나아갔다. 새파란 호수를 보니 파란 색을 유난히 좋아하는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어졌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멀리 눈 덮인 천산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호수 멀리 배가 나아가자, 잠시 시동을 껐다. 몇몇이 수영복으로 갈아입더니 호수에 뛰어들었다.

물개처럼 호수에서 놀던 막내 가이드 아지즈가 선상으로 올라왔을 때 우리는 춤을 추라고 부추겼다. 이틀 전 가문비 나무 우거진 초원으로 트레킹을 갔을 때, 아지즈가 키르기스 전통춤을 추었기 때문이다(남녀노소 누구나 즐기는 키르기스 전통춤은 양손을 허리춤에 두고 어깨를 앞뒤로 힘차게 흔들며 춘다. 우리도 금세 배워서 따라 했다). 팝핀 현준을 아주 좋아한다는 아지즈가 팝핀댄스를 선보였다. 팔다리, 어깨 목 관절이 다 각각 노는 것처럼 유려한 몸짓이었다. 우리는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트레킹 전에 체조를 하다가 내친 김에 키르기스스탄 전통 춤사위를 배워 따라하고 있다.
▲ 키르기스스탄 춤을 추는 아지즈와 나 트레킹 전에 체조를 하다가 내친 김에 키르기스스탄 전통 춤사위를 배워 따라하고 있다.
ⓒ 이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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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남짓 여행 기간 동안 우리의 주 가이드였던 20대 청년 주마벡은 '뭐든 안 되는 게 없는' 주마벡으로 통했다. 우리의 소소한 부탁에 언제나 "네 그러시죠 그럼" 하고 선선히 대답했다. 가을에 장가가기 위해서 돈을 열심히 모아야 한다며 성실하게 일한다. 아라콜 패스 정상 근처의 난코스에서 대신 배낭을 져주던 보조 가이드 아지즈 역시 꿈 많은 청년. 의사가 되려고 공부하다가 진로를 틀어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아름다운 산과 풍부한 물, 천연 자원이 있는 나라. 인접 국가들에 비해 가난하고, 인프라도 없고 개발이 덜 되었기 때문에 그만큼 기회의 땅이기도 하다. 현지 여행사 L 대표는 9년째 키르기스스탄에서 살고 있는데, 어린 아내를 얻어 작년에 결혼도 했다. "여기 키르기스에서는 김태희가 밭을 맨다면서요?" 그만큼 미인이 흔하지 않냐는 우리의 실없는 농담에 그는 예쁜 아내 사진을 슬쩍 보여주며 틀리지 않는 말이라고 했다. 그는 경쟁이 치열한 한국이 아닌 새로운 땅에서 도약을 꿈꾸고 있다.
        
주마벡에게 "여기 키르기스에도 NGO, 시민단체 그런 게 있나요?" 물었다. 주마벡은 NGO가 뭔지 몰랐다. 환경운동을 해오신 L 선생님은 나에게 이곳 젊은이들과 환경 NGO를 해보는 게 어떠냐고 넌지시 말씀하셨다.

몇 가지 종류의 엉겅퀴 꽃을 흔히 보았는데, 모양이 예쁘다.
▲ 초원에서 흔히 보이는 엉겅퀴 꽃 몇 가지 종류의 엉겅퀴 꽃을 흔히 보았는데, 모양이 예쁘다.
ⓒ 조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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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산악지대 트레킹 코스나 이식쿨 같은 관광지에서 쓰레기 분리수거를 시작하고, 자연 보호 필요성을 알리는 것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아직 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난개발로 인해 여기저기 망가지고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되기 전에 청정 환경 국가의 시범으로 만드는 것이 어떤가 하는 것이다.

대자연에 기대어 사는 키르기스 사람들은 가난하지만 순박했다. 산과 호수를 지나며 현대 도시 생활에 찌든 우리들은 새로운 기운을 잔뜩 받고 왔다. 저 고마운 대자연을 위하여,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키르기스스탄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하여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지구촌 일원으로서 나도 같이 저 키르기스스탄의 가문비나무 숲과 능선이 고운 산맥과 야생화들을 지켜주고 싶다.


태그:#키르기스스탄, #이식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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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산책하는 삶을 삽니다. 2011년부터 북클럽 문학의 숲을 운영하고 있으며, 강과 사람, 자연과 문화를 연결하는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의 공동대표이자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한강'에서 환대의 공동체를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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