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동안 저는 다른 사람들의 편견들로 인해 제 몸을 창피하다고 여겼어요. 점점 제 몸에 대한 자신감도 잃게 만들었구요.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은 제가 연약해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제 자신의 야심과 목표를 포기해왔는데, 더 이상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항상 더 열심히 하고, 더 강해지고, 이런 제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될 거예요. 완벽하지 않아도."

그룹 f(x)의 멤버 엠버가 지난 15일 자신의 SNS에 올린 글이다. 짧은 머리에 스포티한 스타일의 엠버에게는 이미지에 관한 의문과 비난이 내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걸그룹' 하면 흔히 떠오르는 이미지와 다르다는 게 비난의 내용 대부분이었다. 그런 점에서 엠버가 올린 글은 그런 비난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겠다는 선언에 가까워 보였다. 더 이상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한 여성의 다짐이기도 했다.

이에 앞서 엠버는 지난 2017년 10월 "대체 엠버의 가슴은 어디 있는 거야?"라는 악플을 읽다가 본인의 가슴을 찾아 모험을 떠나는 내용의 영상을 유튜브에 공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관련 기사 : '내 가슴은 어딨냐고?' 에프엑스 엠버의 유쾌한 한방). 몸매의 '여성성'을 강요하는 댓글에 재치 있는 영상으로 답한 것이다.

대중들에게 매 순간 검열당하는 연예인만큼은 아니겠지만, 일반인인 우리들도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산다. 특히 여성들이라면 자신의 '몸'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느끼는 사람은 아마 많지 않을 것이다.

 엠버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게시글. 본인의 사진과 함께 "오랜 시간 동안 저는 다른 사람들의 편견들로 인해 제 몸을 챙피하다고 여겼다"라면서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은 제가 연약해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제 자신의 야심과 목표를 포기해왔다"라고 썼다. 

그러면서 "항상 더 열심히 하고 더 강해지고 이런 제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될거에요. 완벽 하지 않아도"라고 덧붙였다.

엠버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게시글. 본인의 사진과 함께 "오랜 시간 동안 저는 다른 사람들의 편견들로 인해 제 몸을 챙피하다고 여겼다"라면서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은 제가 연약해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제 자신의 야심과 목표를 포기해왔다"라고 썼다. 그러면서 "항상 더 열심히 하고 더 강해지고 이런 제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될거에요. 완벽 하지 않아도"라고 덧붙였다. ⓒ 엠버 인스타그램 갈무리


그렇다보니 자연스럽게 '다이어트'나 '성형'에 관심이 쏠리는 경우도 많은데, 다이어트나 성형 분야에서 꼭 등장하는 이미지가 있다. 바로 '비포 앤 애프터(before & after)' 사진이다. 주로 다이어트 관련 '비포' 사진에는 처진 뱃살에 전체적으로 살집이 있는 몸이, '애프터' 사진에는 날씬한 몸이 등장한다. 분명 같은 사람인데 애프터 사진의 표정은 왠지 더 밝아보기까지 한다. 마치 그런 몸을 가지면 더 행복해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한때 보디빌딩 대회도 나갔지만...' 사진 한 장에 쏟아진 수천 통의 메일

호주에 사는 한 여성 타린 브럼핏(Tyryn Brumfitt)은 지난 2012년, 페이스북에 "자기 몸을 사랑하세요. 하나뿐인 소중한 몸이니까요"라는 말과 함께 본인의 비포 앤 애프터 사진 한 장을 올렸다. 타린의 비포 사진에는 탄탄하고 날씬한 몸이 나와 있었고, 애프터 사진에는 세 명의 아이를 낳고 난 이후의 몸이 나와 있었다. 평소 우리가 봐 왔던 사진들과는 달리 날씬한 몸이 먼저 나온 것이다. 다른 경우와 비포-애프터의 위치만 바뀌었을 뿐인데, 이 사진은 전 세계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왔다.

이후 타린에게 수천 통의 이메일이 쏟아졌고, 메일에는 '몸'에 대한 여성들 저마다의 사연이 담겨 있었다. 수영복을 입을 자신이 없어 4살짜리 딸과 한 번도 수영한 적이 없다는 여성, 벗은 자신의 몸이 역겨워 남편과 3년간 사랑을 나누지 못했다는 여성, 어릴 때 성폭행 당한 기억을 잊기 위해 먹기 시작했더니 계속 뚱뚱해졌다는 여성까지. 타린은 이들이 왜 이렇게 자기 몸을 싫어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졌다. 다큐 <임브레이스>는 그 이유를 찾기 위해 그녀가 두 달 간 세계 곳곳의 여성들을 만나고 온 기록이다.

 다큐 영화 <임브레이스>의 한 장면.

다큐 영화 <임브레이스>의 한 장면. ⓒ Body Image Movement


사실 타린도 처음부터 자신의 몸에 만족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첫째 아이를 출산하고는 '거대한 젤리 덩어리' 같은 자기 배가 싫었다고 말하고, 예전의 몸으로 돌아가기 위해 농구를 시작했다. 셋째 아이를 낳고 나서는 가장 빠른 회복 방법으로 '성형' 예약까지 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트레이너의 권유로 보디빌딩 대회에 나가기로 한다.

남들이 모두 부러워할 만한 완벽한 몸매를 만들면 행복해질 거라 생각했지만, 결코 그렇지는 않았다. 보디빌딩 대회를 준비하는 게 식단 조절과 훈련이라는 험난한 과정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도 의문이 들었다. 더군다나 몸매가 완벽한 것처럼 보이는 다른 참가자들도 여전히 자기 몸에 대해 불만들이 가득했다.

그럼 과연 자기 몸에 만족할 사람이 있긴 한걸까? 타린은 이와 같은 경험을 계기로 인생이 바뀌었노라 고백했다. 음식도 전보다 자유롭게 즐기게 됐고, 운동도 열량을 소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더 건강하게 가꾸기 위해 하게 됐다.

세상이 만든 기준을 거부하고, 자신의 몸을 긍정하는 여성들

우리가 '마른 몸'을 외모와 함께 미의 기준으로 분류하게 된 데는 미디어의 영향이 크다. 많은 TV프로그램에서는 연예인, 모델 할 것 없이 마를수록 "예쁘다"는 찬사와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고, 반대로 '뚱뚱한 몸'은 개그 소재이거나 게으름의 상징, 자기관리의 실패쯤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그 기준은 여성들에게만 유독 더 엄격하고 가혹했다.

타린은 이러한 세상의 기준을 적극적으로 거부하고, 새로운 선택지를 만들어가는 많은 여성들을 만났다. 잡지 <코스모폴리탄>의 한 에디터는 속옷 화보 촬영에서 파격적으로 L사이즈 모델을 기용했고, 한 블로거는 "큰 치수의 여성 의류는 판매하지 않겠다"던 패션 브랜드에 맞서는 광고를 찍었다.

튼 살이나 주름, 여드름과 같이 여성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찍으면서 '치유 촬영'을 하는 사진작가도 있었다. 이외에도 배우나 모델 등 미디어의 최전선에서 가장 많이 노출되면서도 그 위험성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다양한 여성상을 담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이 <임브레이스>에 많이 등장한다.

 다큐 영화 <임브레이스>의 한 장면.

다큐 영화 <임브레이스>의 한 장면. ⓒ Body Image Movement


한편, 저마다의 계기로 자신의 몸을 긍정하게 된 여성들도 있었다. 안면 신경과 연결된 종양 제거로 얼굴 한 쪽 신경이 마비된 한 여성은 자신의 치부였던 얼굴을 SNS에 드러내면서 스스로를 위로하는 동시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감동을 주었다. 또, 얼굴에 털이 수북하게 자라는 다낭성 난소증후군 진단을 받고 자살까지 시도했던 한 여성은 어떻게 내면의 비판을 극복하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는지를 덤덤히 고백했다.

타린이 자신의 경험을 통해, 그리고 만났던 많은 이들의 입을 빌려 우리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분명했다. 많은 사람이 자기 몸에 대해 비슷한 불만과 고민을 안고 살아가지만, 내 몸을 평가하는 기준도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잣대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남의 시선이 나를 결정하도록 두지 말고 내가 스스로를 규정하는 힘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다소 뻔한 말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다큐를 보면 이미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전 세계의 여성들로부터 왠지 모를 위안과 용기를 얻게 된다.

 다큐 영화 <임브레이스> 스틸컷

다큐 영화 <임브레이스> 스틸컷 ⓒ Body Image Movement


<임브레이스>가 청소년 관람불가라는 점은 '아이러니'

넷플릭스에서 서비스 중인 <임브레이스>를 보고 한 가지 의아했던 건, 이 작품이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으로 분류돼 성인 인증을 해야만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일부 장면에서 여성 나체가 나오지만 전혀 성적인 맥락이 아닐 뿐더러, 더군다나 이 영화는 '모든 몸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지난 5월, 한국에서도 페이스북 코리아가 불꽃페미액션이 올린 여성의 가슴 사진을 삭제했다가 항의를 받자 다시 복구한 사례가 있었다. 당시 페이스북 사진 복구 사건은 여성의 나체를 그 자체로 '성적인 것'으로만 간주하고 무조건 규제하는 건 문제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특히 다큐 <임브레이스>는 주제를 생각한다면, 오히려 몸과 외모에 대한 가치관을 형성하는 시기의 청소년들에게 더 필요한 영화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영화 후반부에서 타린 브럼핏은 자신의 딸에게 "인생의 목적은 보기 좋은 장신구가 되는 게 아니"라며, "네 몸과 전쟁하면서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고 진심을 담아 말한다. 그리고, 관객인 우리에게도 마지막에 질문을 던진다.

"전 받아들였습니다. 당신은요?(I have embraced... will you?)"

불가능하고 이상적인 기준에 나를 끼워 맞출 것인가, 비현실적인 기준을 버리고 자유로워질 것인가. 이제 우리의 대답이 남았다. 그 선택은, 온전히 나 자신에게 달려있다.


임브레이스 EMBR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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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변화는 우리네 일상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믿는, 파도 앞에서 조개를 줍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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