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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한 남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당신이 아파트에서 투신 사망하였다고. 누구는 청천벽력 같다고 하고 누구는 뒤통수를 망치로 두들겨 맞은 거 같다고 하였습니다. 비통, 충격. 만나서 악수 한번 나누어 보지 못한 당신이지만 뉴스에서, SNS에서 당신 이름 앞에 쏟아내는 감정의 말들이 저한테도 고스란히 소용돌이치고 있습니다. 자꾸 눈물이 납니다. 마음이 아픕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당신이 다른 선택을 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오랜시간 당신을 친근하게 여겼나 봅니다. 시간을 거슬러 당신을 떠올립니다. 대학 졸업 후  노동 운동에 투신한 당신, 인민노련을 조직하고 옥살이를 한 당신, 진보정당을 만든 당신.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에 함께 한 당신 모습이 지나갑니다. 2004년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당신이 국회의원에 당선된 날, 정말 꿈만 같았습니다.

저와 남편은 민주노동당 당원도 아니면서 민주노동당이 비례대표 의석을 낼 만큼 득표한 사실에 얼마나 감격했는지 모릅니다. 그후 당신은 특유의 입담과 활동으로 진보정당의 간판 스타라 불리게 되었지요. 늘 소수자이기에 외로웠던 우리에게 진보정당 간판 스타 한 분쯤 계시는 건 멋진 일이기도 했습니다.

당신에게 늘 우호적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80년대 용접 노동자의 삶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던 열정과 용기가 최소한 당신에게만큼은 박제된 훈장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임을 늘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요. 당신에 대한 믿음이 커서인지, 아니면 세상이 소수 정치인만으로 휘둘리지 않을 만큼 변했다는 낙관에서인지 얼마 전 당신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었을 때 크게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분명 누구는 "정의당 당신마저......." 이런 말을 떠올리기도 했겠지만 이상하게도 이번만큼은 어떻게 당신이 그럴 수 있냐고 호들갑 떨고 싶지 않았습니다. 당신을 무작정 믿어서만은 아니었습니다. 진보, 좌파란 말에 어쩔 수 없이 가지고 있던 환상(진보는 늘 옳아야 한다)을 내려놓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동안 외면한 연대와 나눔을 꿈꾸겠습니다

노회찬 익살에 '눈물바다' 대신 '웃음바다' 4.24재보선 투표일인 지난 2013년 4월 24일 오후 서울 노원구 마들역 부근 진보정의당 김지선 후보(노원병) 선거사무실에서 열린 해단식에서 노회찬 전 의원이 부인인 김지선 후보와 포옹을 하던 중 춤을 추는 포즈로 익살을 부리자 참석자들이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 노회찬 익살에 '눈물바다' 대신 '웃음바다' 4.24재보선 투표일인 지난 2013년 4월 24일 오후 서울 노원구 마들역 부근 진보정의당 김지선 후보(노원병) 선거사무실에서 열린 해단식에서 노회찬 전 의원이 부인인 김지선 후보와 포옹을 하던 중 춤을 추는 포즈로 익살을 부리자 참석자들이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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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당신에게 진보란 이름의 환상을 투사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진보진영에 대한 환상을 내려놓지 못한 채 당신을 바라보았다면 배신감이 매우 컸을 테고, 또 그만큼 당신을 미워했을지도 모르니까요. 누구는 정의당 지지율이 한참 오르고 있는 지금, 악재를 만났다 걱정했지만 저는 그다지 염려되지 않았습니다. 당신이라면 진실이 무엇이든 숨기지 않을 거라는 믿음, 오류를 바로잡을 거라는 믿음, 책임을 보여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으니까요. 솔직함과 자기 성찰. 이것이 당신에게 커다란 무기가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음이 너무 아파 당신에게 부치지 못할 이 편지를 쓰는 동안에도 멀리서 당신을 아끼던 지인들이 충격의 마음을 달래려 전화를 걸어옵니다. 지인들 역시 한번도 당신을 뵙지 못했지만 우리들 삶에 오랜 시간 든든한 선배처럼, 맏형처럼, 큰 어른으로 당신이 있었구나 싶습니다. 무심한 일상을 살고 있는 우리 곁에 늘 그렇게 계실 거라고. SNS에 올라온 글 하나가 마음을 울립니다.

당신에게만 너무 많은 짐을 지워서 미안하다고. 여기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진보정당이라는 이유로 도덕적 결백, 사회 변혁의 책임을 떠안겨 미안하다고. 어린 아이에게 공부 1등을 하라고 닦달하면서 참고서 하나 사주지 않은 부모였다고 자책하는 글 속에 내 모습이 겹쳐집니다.

지난 총선, 제가 사는 지역의 정의당 지지율이 19퍼센트가 넘었다는 기사에 얼마나 설레였는지 모릅니다. 냉소와 냉담으로 정치에 거리를 두고 살았던 제가 슬그머니 부끄러워졌습니다. 당장 무엇부터 시작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냉소와 냉담은 이제 그만! 하고 외치고 싶습니다.

한때의 정치적 지향과 활동으로 현재 진행형 진보인척 하는 위선도 거두어들이렵니다. 진보를 우상화하지 않겠습니다. 실망도 쉬이 하지 않겠습니다. 발 밑의 유리조각을 줍는 마음으로 조금씩 조금씩 할 수 있는 일을 하겠습니다. 한동안 외면했던 연대와 나눔을 꿈꾸겠습니다.

오랜 정의당 지지자의 이런 마음의 변화가 당신에게까지 전달되어 우연히 악수라도 하는 날이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신념과 끈기, 열정으로 한바탕 인생을 살아온 당신을 직접 만나봤다고, 아주 유쾌하고 생각보다 더 멋진 사람이라고, 누군가에게 자랑삼아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시간이 아득히 흐른거 같은데 어제 아침이지요. 당신의 마지막 선택을 믿고 싶지 않기에 명복을 빈다고, 편히 쉬시라는 말조차 못 하겠습니다. 자꾸 눈물이 납니다. 마음이 아픕니다.  다시 어제 아침으로 돌아가 당신이 다른 선택을 하길 간절히 바라고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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