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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학년 1반 주장 한동규의 머리 위에 우승 트로피가 올라가 있다. 이재우(앞줄 맨 왼쪽)의 목에는 MVP 메달이 걸려 있다.
 3학년 1반 주장 한동규의 머리 위에 우승 트로피가 올라가 있다. 이재우(앞줄 맨 왼쪽)의 목에는 MVP 메달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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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이 시작됐다. 개학 날 8월 13일이 한 달도 안 남았기에 벌써부터 싱겁기는 하지만 그래도 '방학'이라는 이름만으로 좋다. 올해는 여름방학식 끝나고 특별한 일이 있었기에 학생들에게는 이 날이 더 기억에 남으리라. 지난 3월 22일부터 시작한 학급대항 축구대회 결승전이 7월 19일 방학식 끝나고 오후 4시 10분에 열렸다.

13년 점심 시간의 역사

중간에 비도 좀 오고 미세먼지 농도가 짙어서 연기된 경기가 있었다. 그래도 여름방학식 날까지 이어질 줄은 정말 몰랐다. 매일 점심 시간마다 이 친구들의 뜨거운 가슴이 운동장을 뒤흔들어 놓았다. 1학년 몇 반 친구들은 아무런 말도 없이 운동장에 나오지 않고 나중에 기권한다고 해서 속상한 적도 있었다. 이 일을 올해로 그만 접어야 한다는 생각이 밀려올 정도였다. 하지만 교실 책상 위에서 잠만 자던 친구가 그 누구보다 팔팔하게 운동장을 질주하는 것을 보면서 내 마음은 이듬해 봄을 또 그린다.

2006년 봄 첫 발걸음을 뗀 우리 학교 학급대항 축구대회가 벌써 13년이나 되었다. 지난 해부터는 대인고 챔피언스리그라는 별명까지 붙여주니 아무래도 축구 좋아하는 학생들 입장에서는 그 긴장감과 간절함이 더해진 모양이다.

학년 별 조별리그에서 같은 그룹에 속하여 한 번 만났던 두 팀이 결승전에서 다시 실력을 겨루게 된 것도 처음이었다. 3학년 1반과 3학년 3반은 지난 4월 10일 화요일 점심 시간에 만나서 3-2 펠레 스코어의 감동을 남긴 바 있다. 후반전 없이 겨우 20분 경기만으로 진행되며 운동장 크기가 작아서 한 팀에 골키퍼 포함 8명의 선수만 뛰는 축구대회이지만 무려 다섯 골이 나왔으니 그 박진감과 팽팽한 긴장감은 유명 선수들의 월드컵 그 이상이었다.
 3-3 에이스 김경승이 3-1 최민호를 따돌리는 순간
 3-3 에이스 김경승이 3-1 최민호를 따돌리는 순간
ⓒ 심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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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첫 대결에서 짜릿한 승리를 거둔 3학년 1반이 결승전에서도 승부차기 끝에 4-3으로 활짝 웃었다. 준결승전에서 우승 후보 1순위로 손꼽힌 3학년 6반을 상대로 믿기 힘든 슈퍼 골 2개를 몰아넣은 3학년 3반 에이스 김경승이 결승전에서도 전반전에 먼저 오른발 골을 성공시켰다. 경승이의 순발력과 기막힌 슛 타이밍은 이번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한 프랑스의 킬리안 음바페를 떠올리게 했다.

실점 후 3학년 1반 골문 앞에서 인상적인 이야기가 들렸다. 자신의 오른쪽 옆으로 지나가는 공을 막지 못한 골키퍼 구민이가 얼굴을 감싸며 자책하고 있는 것을 수비수 채건이 위로하는 말이었다.

"괜찮아. 우리가 골 넣어줄게."

비록 방학식이 끝난 시간이라 여느 때 점심 시간보다 응원하는 친구들이 적었지만 그 누구의 응원보다 친구의 저 말 한 마디가 큰 힘이 되었던 것 같다. 3학년 1반 골키퍼 권구민은 승부차기에서 두 번째 키커로 나와서 오른발 슛을 직접 성공시키기도 했고 골키퍼로서 결정적인 슈퍼 세이브를 기록하며 승리의 1등 공신이 됐다.
 3-1 골키퍼 권구민의 슈퍼 세이브
 3-1 골키퍼 권구민의 슈퍼 세이브
ⓒ 심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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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년 3반 수비수이자 오른발 무회전 킥의 달인 김도훈에게 후반전 결승골 기회가 찾아왔다. 후반전 약속 시간 15분이 거의 다 흘러갈 때 페널티 구역 바로 밖에서 프리킥을 얻어낸 것이다. 당연히 그 킥의 주인공으로 도훈이가 나섰다. 상대 팀 수비벽이 골문 왼쪽 방향을 틀어막았기에 도훈이는 오른쪽 구석을 노렸다.

그런데 그의 무회전 킥이 그만 오른쪽 기둥을 강하게 때린 것이다. 축구장의 골대 불운은 여기서도 3반 친구들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승부차기 첫 번째 키커의 슛이 이번에는 오른쪽 기둥까지 외면해버린 것이다. 지독하게도 축구가 안 풀리는 날이 3반 친구들의 여름방학식 날이 된 셈이다.
 3-3 김도훈의 무회전 프리킥이 오른쪽 기둥을 때리고 나왔다.
 3-3 김도훈의 무회전 프리킥이 오른쪽 기둥을 때리고 나왔다.
ⓒ 심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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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도중 넘어져서 팔꿈치에서 피를 흘렸던 1반 최민호의 오른발 승부차기 마지막 킥이 정확하게 골문 안쪽에 날아가 꽂히고 주심으로 초청된 8회 졸업생 선배의 경기 종료 휘슬이 길게 울렸다. 누구는 여름방학보다 더 큰 선물을 받아들었지만, 다른 누구는 무더위만큼 견디기 힘든 순간을 받아들었다.

아쉽게 준우승에 머문 3반의 주전 골키퍼 정진기는 이 대회 준결승, 결승전에 뛰지 않았다. 여름방학을 앞두고 일본으로 체험학습을 떠났기 때문이었다. 그가 돌아오면 친구들에게 원망의 한 마디 들을지도 모른다.

다음 달 12일까지는 저 운동장이 쓸쓸하게 여름 땡볕을 혼자서 견디겠지. 여름방학이다.
 승부차기 마지막 키커 3-1 최민호가 오른발 인사이드 킥을 성공시켜 우승을 확정하는 순간
 승부차기 마지막 키커 3-1 최민호가 오른발 인사이드 킥을 성공시켜 우승을 확정하는 순간
ⓒ 심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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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