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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학
ⓒ PIX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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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학년 아이가 모의고사 이야기를 꺼낸다. 내가 묻기도 전에 시험 이야기를 꺼내니 이상하다.

"엄마, 전에 모의고사 봤잖아."
"응."
"성적 나왔어."


서론이 길다. 성적이 좋은가?

"잘 나왔구나?"
"응. 수학은."


아이는 수학이 1등급이란다. 1등급이면 전국에서 모의고사를 본 학생 중 3% 안에 들었다는 말. 수학 1등급은 처음 있는 일이다. 2학년으로 올라오면서 아이는 문과를 선택했다. 보통 수학을 잘하는 학생들은 거의 다 이과를 간다. 문과에서 수학을 잘하는 학생이 줄면서 아이가 처음으로 수학 1등급을 받은 것이다.

대단하다며 칭찬을 해주었다. 다른 과목은 어떤가 물었더니 묻지 말란다. 그래, 수학만이라도 1등급 나온 게 어디냐. 남편에게 문자로 알렸다.

남편에게 전화가 온다. 남편도 대견해 하는 눈치다. 퇴근한 남편이 아들 수학 성적 이야기를 꺼낸다.

"수학을 그 정도로 잘하면 명문대 입학하는 것도 아무 문제 없겠다."
"수학만 잘한 거야. 국어 영어는 공부 안 해. 그걸로 명문대는 택도 없어."
"아니, 수학을 잘하면 다른 건 충분히 잘 할 수 있지. 수학이 제일 어렵지."


내가 아무리 말을 해도 남편은 내 말이 귀에 안 들어가는 거 같다. 왜 그럴까? 요즘 대입에 대해서 우리 남편이 너무 모르나? 저렇게 착각하다가 언젠가 현실에 부딪혀서 정신 차리는 날 있겠지. 내가 아무리 말해도 내 입만 아플 뿐. 남편의 호들갑이 아이를 보더니 다시 시작된다.

"야, @@아 너 수학 1등급 받았어? 정말 대단하다."


여기까진 아이도 좋아한다. 하지만 남편의 2절이 시작되면 아이는 분명 짜증을 낼 거다.

"@@아, 그 정도면 '스카이' 가는 것도 충분하겠다."


아이 표정이 안 좋다. 뭔 소리야? 하는 표정이다.

"아~ 아빠. 절대 아니야. 좀 그러지 마."
"왜? 나머지 과목이 점수 안 나오면 재수하면 되지. 국어랑 영어가 뭐가 어렵냐? 아빠도 옛날에 중학교 영어 실력 가지고 대학교 때 입사 시험 죽어라 공부해서 회사 들어온 거야. 국어랑 영어는 조금만 하면 된다고. 수학이 어려운 거지."


아이 얼굴은 고구마 백 개는 먹은 표정이다. 그런데 남편의 표정도 진짜 진지 그 자체다. 농담이 1도 안 들어 있다. 남편의 믿음과 아이의 생각 중 나는 당연히 아이 편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남편이 저런 생각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남편은 '수학이 인생에서 제일 어려웠어요.' 하는 사람이고 아이는 '수학이 과목 중 제일 쉬웠어요' 하는 사람이니 그 간극이 얼마나 큰가? 이건 단순히 생각의 문제가 아니다. 경험의 문제이기도 하다.

남편은 중학생 때 이미 수포자의 길로 들어섰던 사람이다. 대학 입학시험 때도 수학은 모두 찍어서 대학에 들어왔다고 아이에게 고백해 버렸다. 국어와 암기과목을 만점 가까이 받아서 대학에 들어왔다고 누누이 말했다.

남편의 입장에선 오십 년 인생의 최대 걸림돌인 수학을 아들이 단숨에 날려버렸으니 남편이 저리 생각을 할 만도 하다.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인 수학을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자신이 훨씬 더 좋은 대학에 들어갔고 그랬다면 자신의 인생이 지금보다는 훨씬 잘 풀렸을 것이라는 생각을 남편은 마음 한켠에 가지고 있다.

그런 남편이니 아들딸 중에 수학을 1등급 받은 자식이 두리라고는 아마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수학을 재미있어 하는 아이는 남편의 반응이 이해가 안 되고 수학이 자신 인생 최대의 걸림돌이었던 남편은 아이 반응이 이해가 안 될 것이다. 둘은 동상이몽을 꿈꾼다. 수학은 수학일 뿐이라는 아이와 수학은 모든 것의 종결점이라는 남편.

남편은 그날 기분이 좋아서 아이에게 용돈에 몇만 원 더 얹어 주었다. 과연 누구의 생각이 맞을까? 이 상황을 관전하는 나는 사실 남편보다는 아이 편이었다. 왜냐하면 나 역시 '수학이 제일 쉬웠어요'하는 공대 출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도 수학이 어렵다는 자식을 1도 이해 못 한다. 아이가 수학이 어렵다는 말을 꺼내면 나는 당장 묻는다.

"뭐가 어려운데? 책 가져와 봐. 엄마가 다 설명해 줄게."

이런 나는 대신 영어를 못 한다. 영어를 못한 탓에 입학하고 싶은 대학원이 있었는데 지레 포기를 하고 말았다. 내가 영어를 잘했다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까? 하는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포기하는 법을 너무 이른 나이에 영어를 통해서 배운 것이 안타깝다는 것이다.

그런 내 앞에 '영어 1등급' 성적표를 꺼낸 자식이 있다면 난 그 아이를 어떤 눈으로 쳐다 볼까? 아마 뭐 이런 상상도 못 한 신기한 일이 다 벌어지나 할 것이다. 남편은 지금 그게 현실이다. 그러니 남편의 귀에 무슨 말이 들릴까? 부부라 할지라도 경험 차에 따라 한 가지 사안을 바라보는 눈이 이렇게 판이하게 다를 수 있다.

사실 남편의 기대는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다. 그리고 그 결론의 유일한 변수는 아이의 노력이다. 아이가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서 남편의 기대가 미래를 내다본 기대로 또는 허황된 기대로 판가름 나게 된다. 수학 포기자 남편의 기대가 종국엔 어떤 결론에 도달할지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나는 옆에서 굿이나 보며 떡이나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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