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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침마다 구 역전시장에 간다. 어머니의 콩나물시루를 시장까지 실어주고 나서 근처에 있는 커피 파는 곳(나는 이곳을 길 다방이라 부른다)에 가서 율무를 한잔 마신다. 이곳 율무 맛은 지금까지 어느 곳에서 마신 율무보다 내 입맛에 맞다. 맛을 정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이곳 율무는 농도가 아주 진하며, 입에 넣으면 알갱이가 있어 씹으면 톡하고 고소하게 터지기에 아침마다 이 맛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며칠 전 아침에도 이곳에 가니, 먼저 온 몇몇 나이 지긋한 남자들이 간이 의자에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 남자들은 나처럼 매일 이곳에 출근 도장을 찍는 아저씨들이다.

"요즘 뭐해?"
"화백이야."
"뭐?"
"화려한 백수."


무심결에 그들의 대화가 내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아! 화려한 백수를 화백이라고 부르는구나. 그럼 나도 화려한 백수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즈음 경기가 어려우니 백수가 많다. 청년들도 취업이 안 되는데, 나처럼 50대 중반의 남자가 들어갈 자리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벌어 논 돈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달랑 집 한 채 있는 것이 전부다. 그것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사업을 하기는 무리라는 것이 평소 생각이다. 만약 실패하면 전 재산을 날리게 되는 것이다. 새로 사업을 시작해 성공하는 비율보다 실패하는 비율이 훨씬 높다는 통계는 이미 잘 알려진 상식이 되었다.

벌써 7개월째 백수다. 지난 달까지는 그래도 얼마 되지는 않지만 실업급여라도 나와서 근근히 버텼다. 이제는 어디에서도 돈이 나오지 않아 경제적으로 막막한 상태다. 하지만 마음은 편하게 먹기로 했다. 조급하게 마음을 먹어서 해결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화려한 백수는 될 수 없을지라도 최소한 재미있게 생활하는 백수는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백'처럼 이름을 지으라면 '재백'이라고나 할까. '재미있게 사는 백수'의 준말 '재백'.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다. 어차피 백수가 된 김에 내 상황에서 재미를 찾기로 했다.

재미뿐만이 아니라 이제껏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한 것들을 해보기로. 지금은 날씨가 무척 덥다. 연일 35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이 울산을 달구고 있다. 재미있게 사는 방법의 하나로 '도전'을 해보기로 했다. 이른바 '이열치열 프로젝트' 비록 백수의 삶은 살고 있지만, 더위에 지고 싶지 않았다.

또한, 일을 하지 않아 몸무게가 많이 늘었는데, 이 프로젝트를 실행하면서 뱃살을 빼고 샤프한 모습으로 내 몸을 리모델링 하고 싶었다. 이 프로젝트를 좀 더 자세하게 생각해보니 할 것들이 많이 생각났다. 그래서 맨 처음 한 것이 달리기였다. 제일 먼저 울산 태화강변을 달렸다.

첫날 4킬로미터 정도 달리니 종아리에 알이 배겼다. 하지만 두 번째 날도 4킬로미터를 달렸다. 종아리가 점점 더 심하게 아파 계단을 오를 때 통증이 날 정도가 되었다. 더 이상 달리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 프로젝트를 포기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꿩대신 닭이라고 다른 것을 생각해내었다.

그것은 자전거 타기였다. 예전 40대 때, 혼자 극기훈련 차원에서 자전거를 타고 울산에서 강원도까지 간 적이 있으며, 전라도 해남의 땅끝마을까지 간 적도 있었다. 지금 운동을 하지 않지만 자전거 타는 것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종아리가 아파 얼마 동안 달리기를 하지 못 하게 되었기에 종아리 근육을 덜 사용하는 자전거 타기를 생각해내었다. 폭염 속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달리다보면 힘들기도 하겠지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근육이 더욱 단단해질 것이며, 무엇보다 불룩한 배가 많이 들어가리라.

'이열치열 프로젝트' 3일째인 오늘은 자전거를 타고 바다 여행을 갔다. 우리 집에서 바다까지는 거의 20킬로미터가 된다. 바다를 한 바퀴 돌고 오면 거의 45키로 정도가 될 것이다. 집에서 출발하여 정자 바다로 향했다.

첫 번째 난관인 무룡산 고개를 만났다. 자전거 코스로 개발이 되어 있긴 해도 오르막을 오르는 것은 만만치 않았다. 고개의 중간까지는 숨을 '헉헉'거리며 그래도 자전거를 타고 올라갔지만, 그 이후는 다리 전체에 통증이 와서 자전거를 타고는 오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자전거에서 내려 100걸음 자전거를 끌고 걷고, 자전거를 타고 100번 패달을 밟고 다시 내리고, 또 다시 오르고 내리는 것을 반복한 끝에, 고개 정상에 올라갈 수 있었다. 너무 힘이 들었기에 기온은 32도를 넘었지만 더위 따위는 아예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 다음 부터는 내리막길.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내달렸다. 땀에 절여진 온 몸은 시원한 바람을 맞자 좋아서 난리를 부렸다.

드디어 바다에 도착. 정자를 지나 복상을 지나고 제전에 도착하였다. 이곳은 어머니의 고향이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내가 너무 어렸을 때 돌아가셨기에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큰외삼촌과 외숙모님은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나에게 너무나 푸근하게 잘 해주셨는데, 지금은 두 분 다 돌아가셨고 어린 시절 추억이 가득한 외가는 다른 사람이 살고 있다. 제전 바다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모래가 있던 곳과 물 속 풍경이 너무 좋았던 곳은 콘크리트로 바뀌어 있었고, 부두(축간이라 불렀다.)는 많이 현대화 되어있었다. 옛날 이곳에서 헤엄을 치며, 낚시를 하며 놀았는데, 지금은 많이 바뀌어서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또한, 어린 시절부터 물질(해녀일)을 했던 어머니를 상상했다. 그 어린 처녀는 광복을 지나고 한국전쟁을 지나고, 아버지를 만나 아들만 세 명을 낳았고, 지금은 87살의 나이로 막내인 나와 함께 울산에 살고 있다.

제전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우가포로 출발했다. 우가포는 내가 여섯 살까지 살던 요람 같은 곳이다. 우리 아버지의 고향이기도 하며, 나의 정신적인 고향이기도 하다. 옛날 내가 살던 집은 횟집으로 바뀌어 있었다. 내가 살았던 집 앞에서 잠시 내려 사진을 찍고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내 기억의 시작이 이곳이었던 만큼 마무리도 이곳에서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시 출발하여 당사를 지나고 구암을 거쳐 주전에 도착했다. 편의점에 들러 시원한 캔 커피를 마시고 잠시 쉬었다.

오늘 여행의 마지막 난관이 될 주전 고개가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그 고개는 자전거로 올라가기는 아주 가파르고, 거리도 거의 2킬로미터가 넘는 곳이다. 쉬면서 페이스북과 카톡과 밴드에 사진을 올렸다. 가족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격려에 다시 힘이 났다.

주전 고개를 오르는 길은 무척 힘이 들었다. 사전에 마음의 준비를 하였음에도 탈진할 정도였다. 기온만으로도 사람의 맥이 빠지기에 충분했는데, 햇빛에 달구어진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열기는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한술 더 떠, 바람마저 열기를 내 얼굴에 쏟아 부으며 가세했다. 마치 뜨거운 햇살 물로 샤워를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자전거를 끌다, 타다 반복하며 고개 정상에 도착했고, 그 다음부터는 시원해진 바람을 맞으며 내리막길을 일사천리로 달렸다. 고개를 오르고 내리면서 '인생도 오르막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길이 있고, 힘든 일이 있으면 반드시 쉬운 일이 생기기 마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몸으로 깨달은 교훈이니, 아마도 살아가면서 힘든 일에 부닥칠 때 이 교훈은 그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리라. 오르막을 오르며, 내리며 내 정신의 근육이 단단해짐을 느꼈다.

주전고개를 넘고 남목, 염포동을 거쳐 집으로 돌아왔다. 거의 4시간 30분이 걸렸다. 더위와 싸우며 결국 해내었다는 성취감은 아주 컸다. 백수로 더위에 지쳐 낮잠만 자며, 텔레비전만 보고 있었다면 결코 느끼지 못했을 보람이었다. 그리고 '여름이 가기 전에 자전거로 1000킬로미터를 달리자'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백수 생활은 언젠가는 끝이 날 것이다. 아직 일에서 은퇴하기에는 너무 젊고 가정의 경제적인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억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사이다. 안 되는 일에 초조해하며 주어진 시간을 낭비할 것이 아니라, 백수에게 주어진 시간을 내 인생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겠다.

이 시간을 알차고 재미있게 보낸다면, 나에게 새로운 일이 생겼을 때 분명 지금까지 보다 더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오늘부터 재미있는, 나와 가족을 비롯한 나와 관계된 모든 사람에게 유익한 '재백'이 되리라.


태그:#백수생활, #5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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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한 이야기가 아닌 생활 속에 벌어지는 소소한 이야기를 담고 싶습니다. 들꽃은 이름 없이 피었다 지지만 의미를 찾으려면 무한한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 들꽃같은 글을 쓰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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