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낯선 사람>의 커튼콜 장면.

연극 <낯선 사람>의 커튼콜 장면. ⓒ 강동희


서구 열강 8개국 연합군이 중국 산둥 지역을 뚫고 베이징까지 진압한다. 연합군은 의화단과 전쟁 중이다. 독일군 장교 울리히는 의화단원들을 검거해 사형대에 세우며 조국에 공을 세운다. 젊은 중국인 혁명가 천샤오보는 조국인 중국에서 연합군이 철수할 것을 요구하며 싸우고 있다. 울리히는 천샤오보를 검거하고, 천샤오보는 사형장으로 끌려간다. 그러나 사형 직전까지 의연한 그의 카리스마에 완전히 압도된 울리히는 결국 그를 풀어주게 된다.

시간은 흐르고, 천샤오보의 손녀인 성악가 바네사 린은 할아버지에게 자신의 동료 리웨이를 소개시켜 준다. 천샤오보는 오페라 <토스카>를 연습하는 손녀와 리웨이의 모습을 보다 자신을 죽이려 했던 그리고 자신의 가족과 동무들을 살해한 울리히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낯설다기 보다는, 모호했던 연출

임형진 연출은 <낯선 사람>이 말하고자 하는 '낯섦'의 정의에 대해 "불일치가 주는 불안감"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연극을 통해 '나'와 '스스로 생각하는 나'의 분리를 시도해보길 바란다고 했다. 그러나 극이 실제로 거두고 있는 성과는 '낯섦'보다는 '모호함'에 있는 듯하다. 국가를 위해 헌신한 군인들은 그 자신과 국가의 경계의 모호성에 침전하고, 가해자는 피해자가, 피해자는 다시 가해자가 된다. 대립되는 듯 보였던 캐릭터들이 결국 통합되기도 하고, 한 몸처럼 읽혔던 두 인물이 분리되기도 한다. 노인이 된 천샤오보가 허구의 '토스카' 연습장면을 보며 '실제'를 떠올리고 몸부림 치는 장면에서는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모호해지기도 한다.

'모호함'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들은 내러티브에 그치지 않는다. 울리히는 동양인에 대한 인종 차별적인 발언들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울리히 배역을 맡은 배우는 동양인이다. 종종 배우들은 무대를 넘어 관객들 바로 앞까지 나와 연기한다. 바네사 린과 함께 오페라 <토스카>를 연습하는 리웨이 역의 배우 한진만은 실제로 오페라 가수다. 그는 라디오 팟캐스트 <오페라디오>의 진행자이며 실제로 <토스카>에 출연한 적도 있다. 캐릭터와 플롯을 넘어, 무대와 현실의 경계조차 모호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배우들의 호연이 빛난다. 오로지 네 명의 배우만이 출연하고 최소한의 무대장치만을 이용하는 작품인 만큼 배우의 힘이 중요하다. 출연진 모두 충분히 자신의 몫을 해내고 있는 모습이다. 특히 사형 직전의 상황에서 깨끗한 옷차림으로 단정한 자세를 지키며, 끝까지 보지도 못할 소설을 묵묵히 읽어 나가는 천샤오보의 모습은 인상적이다. 국립극단 시즌단원 출신으로 수많은 여성 팬을 끌어모으고 있는 배우 안병찬의 연기가 압도적이었다는 반응들이다.

<낯선 사람>은 묻는다. 관객인 당신이 갖고 있는 정체성이 과연 당신 그 자체인지를. 이 근원적인 물음이 가져오는 심리적 이탈은 공포감이며, 불안인 한편 에너지일 것이다. 극의 마지막, 옷가지를 모두 벗어던진 어느 배우의 모습은 관객들에게 스스로 자문할 기회를 준다. "군복도, 의사 가운도, 환자복도 입지 않은 맨몸의 '나'는 누구인가?" 대학로 예술극장 소극장, 오는 22일까지.

낯선사람 대학로 안병찬 한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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