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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급적 재래시장을 이용하지만, 이따금은 대형마트를 찾는다. 갈 때마다 상술에 놀라고, 내가 얼마나 현혹되기 쉬운 인간인지 깨닫는 놀람의 연속이다. 이곳저곳에 포진해 있는 미끼 상품들을 보며 흔들리지 않으리라 다짐하건만, 어느새 카트엔 계획에 없던 물건들이 담겨 있고, 계산대 앞에선 예상을 웃도는 금액에 또 놀라고 만다.

이리도 현혹되기 쉬운 나지만, 몇몇 브랜드의 제품에는 눈 하나 깜짝 하지 않는다. 소매업 점주나 직원 알기를 우습게 아는 회사 제품은 절대 고르지 않는다. 그 아무리 원 플러스 원과 최저가로 유혹해도 소용없다.

내 선택이 미치는 영향력은 너무도 미미해서, 어쩌면 제로라고 봐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꿋꿋이, 나만의 불매운동을 한다. 모두가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킬 줄 아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소망을 품고.

넓게 보자면 물건 하나 고르는 것도 결국 정치적인 의사결정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꿈꾸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며 하는 행동이라면 충분히 정치적일 테다. 돌아보면, 일상엔 정치적 요소가 가득하다. 사회학자 요시이 히로아키가 쓴 <일상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는 그 일상의 정치성에 주목하는 책이다.

<일상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책표지
 <일상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책표지
ⓒ 오아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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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 세계는 '살아 있는 존재'로서의 타인과 직접 만날 수 있다는 의미에서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엄중한 현실입니다. '지금, 여기'에는 목소리를 듣고, 행동을 보며, 정서를 느끼고, 상태를 통째로 이해할 수 있는 구체적 신체로서의 타인과 만나고 교신할 가능성이 넘쳐나니까 말입니다." (p56)

저자는 일상생활 세계의 중요함을 강조한다. 영화나 게임에 몰입하는 것도 현실의 양과 질에 비교하면 찰나일 뿐, 우리의 삶을 유지하는 것은 일상이라는 안정적이고 기본적인 세계이기 때문이다. 사회를 이해하려고 하면 그 일상을 구성하는 '당연함'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 당연함 속에 사회의 현실과 타인을 이해하는 방법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당연함을 재조명하기 위해서는 익숙한 상식을 잠시 제쳐두고, 이방인의 시선으로 일상생활 세계를 바라볼 것을 저자는 권하고 있다. 당연함에 놀라고, 그 당연함이 품고 있는 의미를 곱씹어 봐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모두가 기분 좋게 살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의심해야 하고, 변화가 필요하다면 그것을 어떻게 이끌어낼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 모든 활동이야말로 자신의 삶과 인생을 사회학적으로 되돌아보는 첫 단계가 된다.

그러한 사회학적 고찰로서 책이 첫 번째로 주목한 것은 우리의 일상 깊숙이 들어온 스마트폰이다. 저자는 막대한 양의 정보가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오므로, 그 어느 때보다도 정보의 질을 순식간에 판단할 수 있는 기량이 요구된다고 말한다. 또한 스마트폰의 정보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사색하는 여유 또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기술이나 도구에는 무엇을 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을 테니, 우리가 이를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관건일 테다. 저자는 스마트폰으로 인한 사적 영역의 확산에 주의할 것을 권하고, 정보 검색과는 달리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거리와 시간, 속도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한다. 스마트폰으로 타인과 언제 어디서나 연결된 듯 보이지만 오히려 고독은 더 심화되었다는 것은, 굳이 연구나 자료를 찾아보지 않아도 체감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타인과 진짜로 연결되고 싶어 합니다. 그 바람을 이루고 싶을 때 우리는 상대에 대해 신중하게 시간을 들여서 생각하고, 상대가 무엇을 느끼고 생각하는지를 천천히 바라보고 상상하며 상대의 마음과 세계에 도달하려 합니다." (p110)


저자는 '~답게' 살기의 폭력성에도 주목하고, 이는 남성지배적 성별분업에 대한 논의로 나아간다. 저자는 성별에 관한 당연함, 즉 여성다움과 남성다움을 둘러싼 상식을 바꿔야 함을 설득한다. 또한 이 상식의 변화는 일상생활에서 펼쳐나가야 함을 강조한다.

책은 나와 '다른' 타인과 만나는 법에 대해 조명하기도 한다.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동정과 연민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 사랑과 정의라는 이름으로 차별과 소외의 시선으로 타자를 바라보는 것의 문제를 지적한다. 저자는 경직된 편견과 오해로부터 해방되어, 매 순간 자유롭게 타인으로서의 관계를 구상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차이가 있는 타인을 차별하고 소외시키는 행위는 타인에 대한 상상력이 퇴화한 결과입니다. 그러한 행위는 타인에게 깊은 상처와 고통을 줄 뿐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도 깊은 상처를 주며, 한 인간으로서의 깊이나 넓이를 앗아갑니다. 우리가 깊고 넓게 살 수 있을지는 차이가 있는 타인과 어떻게 만나려 하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p161)


일상의 정치성에 주목하는 책이지만, 저자는 결국 우리의 관심을 우리가 사는 일상 및 친밀한 관계에 한정 짓지 말고, 그 세계 너머로 확장해야 한다고, 그것은 이 세계를 이해하는 필수적인 활동이라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고통스러운 부부생활에 직면했다면 혹시 자신들이 전통적이고 인습적인 성별 역할에 갇혀 있지는 않았는지 돌아볼 일이라는 것이다. 사적이고 친밀한 관계성이라는 구속에서 벗어나 개인적 세계에 숨은 온갖 정치성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면 이전과는 다른 이해도와 해결책을 도출할 수도 있다.

"정치적이라는 것은 나라는 인간이 언제나 타인을 이해하려 하고, 타인에 대한 상상력을 풍성하게 키우면서 타인의 행복에 관해 관심과 흥미를 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p212)


그밖에도 저자는 환경과 교육에 대한 생각, 비판의 중요성 등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일상의 정치성을 통해 책이 전하고 싶은 핵심은 이것이 아닐까 한다. 타인이 사는 현실에 관한 관심과 상상력을 키우면 친밀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행복해질 수 있고, 나아가 우리가 모르는 많은 타인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일상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라는 말은 이제 흘러간 정치 구호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저 흘러가 버리지 않고 우리의 생활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상기할 가치가 충분한 말이라 생각한다. 타자에 대한 관심과 상상력, 보다 넓은 이해도. 더 행복한 사회로 가는 첫걸음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일상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 - 복잡한 세상을 이해하는 지금 여기의 사회학 이야기

요시이 히로아키 지음, 정문주 옮김, 오아시스(2018)


태그:#일상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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