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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기자가 아르헨티나의 수도인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갓 입성했을 때다. 당시 첫 나흘을 지낸 숙소는 산 텔모(San Temlo)의 모 한인민박이었다. 남미 최대 한인 커뮤니티로 알려진 그곳에는 다양한 연령대의 한국인 여행자들과 그들의 향수병을 달랠 김치와 라면으로 가득했다.

이 기사에 실린 인터뷰이 김수진 선생님은 그곳에서 기자와 며칠 간 한 방을 쓴 인연으로 맺어졌다. 국내에서 한국어 교육학 석사 과정을 마친 그녀는 브라질 남부의 한적한 소도시에서 한국어 교사로 열심히 일하고 있다.

오른쪽 뒷줄의 김수진 선생님이 학생들과 함께 '손가락 하트'를 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오른쪽 뒷줄의 김수진 선생님이 학생들과 함께 '손가락 하트'를 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김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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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김수진 선생님.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이렇게 지면으로 인사드리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브라질 상레오폴두(São Leopoldo)의 세종학당에서 교원으로 근무 중인 김수진입니다. 이렇게 인터뷰를 하니 조금 떨리네요."

- 본인의 전공인 한국어 교육을 선택한 이유와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계기가 있나요?
"저는 경기도 의정부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어요.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의정부에는 미군 부대가 있어요. 그래서 저는 상대적으로 어릴 적부터 외국인이나 다문화 가정을 더 쉽게 접할 수 있었어요. 개중에는 언어적인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았고요. 그런 환경과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던 국어 교사라는 제 꿈이 맞물려서 자연스럽게 진로가 이쪽으로 나아간 것 같아요.

그래서 전공도 '국어 교육'이 아닌 '한국어 교육'으로 정했지요. 두 전공은 비슷하면서도 학과 전망과 취업 분야가 조금 다른 학과들이에요. 대학에 진학한 이후에는 학업과 봉사활동을 병행해 경험을 쌓기 시작했어요. 그 경험을 바탕으로 외국인력지원센터와 대학 내 언어교육기관 등지에서 근무한 바 있습니다."

- 지금 지내고 계신 지역과 브라질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해주시겠어요?
"다들 알고 계시는 것처럼 브라질은 카니발 축제와 삼바, 축구 강국으로 유명하죠. 하지만 제가 살고 있는 남부 지역은 잘 알고 계시는 리우나 상파울로 등의 대도시들과는 좀 다른 것 같아요.

브라질은 과거 포르투갈의 식민지배를 받은 적이 있어요. 그래서 지금 브라질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포르투갈어고요. 그런데 이곳 포르투 알레그리(Porto Alegre, 김수진 선생님은 거주지와 근무지가 다르다. 그 두 도시는 차로 약 40여분이 걸린다 - 기자 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브라질리안 인디언 보다는 독일과 이탈리아 출신 이민자가 대다수예요.

그래서 그런지 과거 식민 지배에 대한 우울한 그늘은 거의 하나도 없고요. 또 이민자들이 자국에서 들여온 문화 유입으로 브라질 내에서는 작은 유럽으로 통한답니다. 아, 한국과의 인연도 있었어요.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때 우리나라가 알제리와 맞붙었던 곳이기도 해요.

그 외에도 전반적인 문화는 브라질의 유명한 대도시들보다 우루과이나 아르헨티나와 비슷해서 길가에서 시마헝(Chimarrão)이라고 부르는 마테차를 마시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어요. 또 브라질 국내에서 쇠고기 생산량이 1위인 고장이라 이곳하면 질좋은 소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답니다."

- 현지에서 한국어 교사 일을 하신지 2년이나 되셨는데 언제가 가장 보람찬 순간이었나요? 그리고 브라질에 살아서 '이것만은 좋다!' 하시는 게 있을까요?
"보람찬 순간이요? 너무 많아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모르겠어요. (웃음) 그래도 한 개를 콕 찝어서 말씀드리자면... 음... 아마 학생들이 한국과 일본을 구분할 줄 알기 시작할 때 일 거예요.

일본은 브라질 내에서 동양인의 이민 역사가 가장 긴 나라예요. 그래서 브라질 사람들은 일본 문화에 더 친숙한 편이고 아시아에서 온 사람을 보면 바로 일본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우리한테는 좀 짜증나는 일이 아닐 수 없죠.

심지어 K-pop을 접하고 한국에 관심을 가진 학생들조차 혼란스러워하는 경우가 많아요. 한국과 일본, 두 나라는 비슷하면서도 아주 많이 다르니까요. 그런 것들을 바로 잡아주고 올바른 길로 인도했을 때 보람을 많이 느껴요. 물론 우리나라에 대한 긍지도 함께요!

아, 그리고 학생들이 '수업이 정말 재미있다', '너는 최고의 선생님이다'라고 간간히 칭찬해줄 때 뿌듯함이 큽니다. 이래서 교사 하나 할 때도 있고요.

그리고 브라질에 살아서 좋은 점이라... 요즘 보면 우리나라도 점점 다문화 사회가 되어가는 추세잖아요. 학업이나 사업을 이유로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수도 많이 늘었고 국제 결혼도 예전보다 점점 많아지고 있고요.

그래도 아직 이민 역사가 오래된 브라질에 비할 수는 없죠. 브라질은 유럽계 이민자들을 시작으로 지금은 다양한 문화가 다함께 공존해있는 나라예요. 단일 민족국가라는 우리나라에서 나고 자란 제 눈에 브라질은 정말 새로운 세상일 수 밖에 없었어요. 이곳으로 오면서 우물 안 개구리였던 제 안목과 식견이 많이 넓어진 것 같아요. 2년 가까이 지낸 지금도 새롭게 느끼는 게 있을 정도니까요.

이번엔 제가 사는 곳 자랑을 한번 해 볼까요? (웃음) 제가 사는 곳인 브라질 남부의 포르투 알레그리는 미세 먼지가 거의 없을 정도로 깨끗한 고장이에요. 여기가 동부의 상파울로나 리우 데 자네이루 같은 대도시가 아니라서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래도 나라 자체가 방대하고 세계의 허파인 아마존을 품은 곳이라 그런지 그 '클라스'가 남다른 곳이 많은 것 같아요. 특히 이 곳 사람들이 사는 방식도 자연과 많이 닮아 제가 배우는 점이 많습니다(브라질은 세계에서 5번째로 큰 나라로 남한 면적의 85배에 이른다 - 기자 주)."

태권도, K-pop, 이민 2세라서 등의 갖가지 이유로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과 김수진 선생님이 한장의 사진에 담겼다.
 태권도, K-pop, 이민 2세라서 등의 갖가지 이유로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과 김수진 선생님이 한장의 사진에 담겼다.
ⓒ 김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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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면, 가장 힘들거나 실망했던 순간이 언제였나요? 그리고 브라질에 살아서 '이것만은 정말 별로다' 하는 건 어떤 게 있을까요?
"제가 몸담고 있는 세종학당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기관입니다. 그래서 정규 언어 수업 외에도 한국 문화에 대해 알리는 일도 제 임무 중에 하나죠. 학생들은 방과 후 수업과 비슷한 개념으로 받아들이겠죠? 한번은 그 시간에 학생들과 다함께 김밥을 만드는 활동을 하고 있었어요. 다른 친구들보다 일찍 만든 한 학생이 먼저 맛을 한 개 봤는지 갑자기 이렇게 외치더라구요.

'와, 한국 스시 진짜 맛있어요!' 스시라니. 제가 그렇게 한일 문화 차이를 가르쳤는데도 이런 해프닝이 종종 있어요. 일본 문화를 먼저 접하고 우리 문화를 배우느라 혼란스러운 건 이해해요. 그래도 오래 가르쳐 온 학생이 그러면 좀 힘 빠지고 속상하죠. 또 학생들 대부분이 나이도 어리고, 유럽 이민 2, 3세라 한국 사람들과는 다르게 식민 지배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아요. 그게 곧 우리나라와 일본의 관계에 대한 몰이해로 이어지고요. 그래서 제가 더 노력해야 하는 부분도 있을 거예요.

그리고 많이들 아시다시피 브라질도 내부의 사회 문제가 좀 많아요. 대표적인 게 바로 치안 문제죠. 저는 밤에 길거리를 걸어본 적이 한 손에 꼽을 정도예요. 퇴근 후에는 거의 우버 택시를 이용하고요. 그 외에도 파업을 자주해 교통이 불편할 때가 많고 국민들의 빈부격차도 많이 나는 편이에요. 심지어 제가 가르치는 교실 안에서도 느낄 수 있을 정도니까요. 그래도 해가 갈수록 브라질 국민이 모두의 힘으로 나아질거라 믿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 중에 사실 브라질과 관계없이 제 개인적인 이야기도 있어요. 제 나이가 한국 나이로 이제 계란 한 판이에요. 주변 동료들은 모두 한국에서 자리도 잡고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는데 저만 그렇지 못한 것 같아서 가끔 씁쓸할 때가 있어요. 귀에 들리는 걸 막지는 못하니 상대적인 비교는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래도 이곳으로 오기한 제 결정에 한번도 후회는 없었습니다."

-한국이나 한국어에 대한 브라질 현지 사람들에 대한 인식은 어떤 편인가요?
"앞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일본과 굉장히 혼동을 많이 해요. 브라질에 한국 기업이나 K-pop 등의 대중 문화가 많이 진출하고 있지만, 이게 한국에서 온 것인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실태입니다. 예를 들어 삼성이나 LG 등 세계적인 기업들의 이름은 잘 알지만 일본이나 중국에서 왔다고 생각해버리는거죠.

제 교실에는 태권도를 배우다 흥미가 생겨 온 학생들도 있어요. 도장에서 쓰는 '차렷'이나 '경례'같은 구령이 다 한국말이잖아요. 듣다보니 호기심이 생긴 거죠. 이런 학생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우리 고유의 전통 문화 보다는 K-pop이나 K-드라마 등의 한류 문화로 한국을 인식하는 어린 학생들이 거의 대부분이에요. 실제로도 한글을 떼자마자 이제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 가사를 읽을 수 있겠다며 수업을 더 이상 나오지 않는 친구들도 있고요.

세대 차이도 있는 것 같아요. 가끔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을 데리러 오신 학부모님들과 대화를 하는데 얼토당토 않은 질문들도 많이 들었어요. 아직도 남북이 총과 칼로 전쟁 중이냐느니, 브라질이 한국보다 안전하다고 느끼냐느니 기타 등등 많습니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되어 좁아진 세상이라 하더라도 자기가 관심이 없으면 계속 모르는 것 같아요."

- 앞으로의 계획이나 포부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제 30대에 접어들었지만 제 미래에 대한 개인적인 계획은 아직 불분명한 상태예요. 현재 일하는 학교와의 계약이 끝나면 일단 한국에 돌아갈 것 같아요. 국내 대학원에서 다문화 교육 전공으로 박사과정을 이수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또 다른 나라에서 우리말 교육을 하는 제 모습이 기대되기도 한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한국어를 가르치기 위해 다른 나라에 다시 나가더라도 이번처럼 먼 곳으로 가지는 않을 것 같아요.(웃음) 한국과 가까워서 자주 방문할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어요. 사실 부모님도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시거든요."

- 수진 선생님처럼 나라 밖에서의 한국어 전도사를 지망하는 꿈나무들에게 해주고 싶으신 말씀 있으신가요?
"이 일은 큰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은 절대 아니에요. 단순히 외국에서 살 수 있다는 환상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더더욱 아니고요. 오히려 내가 한국을 대표해서 우리말과 문화를 가르친다는 사명감과 교사로서 프로정신을 갖는 게 중요해요. 분명히 좋은 점도 많이 있지만 현실을 직시하고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제대로 들여다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나라 밖을 나서는 모든 여행자는 자국을 대표하는 대사와 같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그들의 말과 행동 자체가 곧 우리나라의 이미지가 될 수 있다는 뜻이 되겠다. 김수진 선생님은 이를 넘어 우리말과 문화를 머나 먼 땅에 전파하느라 그의 값진 청춘을 바치고 있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전역에는 김수진 선생님과 같은 셀 수 없이 많은 한국어 교사들이 맡은 바에 힘쓰고 있을 것이다. 오늘날의 한국의 위상 그리고 더 높아질 미래의 그것에는 그네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뒷받침되어 있을 것이다.

올 여름에 김수진 선생님을 보러 브라질에 방문한다는 그의 가족들도 그녀를 자랑스러워 하실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수진 선생님이 남은 파견 기간 동안에도 '파이팅'하기를 바라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태그:#대한민국, #브라질, #우리말, #우리문화,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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