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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평론가 박철화가 스승이었던 문학평론가 김현을 추억하며 쓴 책 <따듯하게 타오르는 사랑의 말>.
 문학평론가 박철화가 스승이었던 문학평론가 김현을 추억하며 쓴 책 <따듯하게 타오르는 사랑의 말>.
ⓒ 에피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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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한 '상징과 은유'에 관해 말하려면 아주 먼 옛날의 이야기를 소급해야 한다. 그걸 먼저 읽어 보자.

지난한 자기 수련을 통해 '깨달은 자'가 된 석가가 사부대중(四部大衆) 앞에 섰다. '무슨 말이 나올까?' 노심초사하는 사람들을 가만히 바라보던 그가 서서히 말라가는 연꽃 한 송이를 아주 천천히, 가만히 들어올렸다. 모여든 이들 사이에서 술렁거림이 일었다.

"이게 뭐지?"

군중 사이에 석가가 귀애하던 제자 가섭이 자리했다. 스승의 눈길은 당연지사 거기로 향했다. 궁금했을 것이다.

"어이, 가섭아. 너는 이 상징과 은유를 이해하겠느냐?"

그런데, 제자가 '건방지게' 웃는다. 더 놀라운 건 가섭의 웃음이 아닌 석가모니의 태도였다. 왜냐? 그가 제자보다 더 크게 얼굴을 부수며 웃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누구나 아는 염화미소(拈華微笑)의 에피소드다.

최근 '염화미소'의 웃음에 더해 울음까지를 포함하며 2000년의 세월을 찰나처럼 뛰어넘는 문장을 확인했다. '스승' 김현(1942~1990)을 아프고 아름답게 추억하는 '제자' 박철화(53)의 책 <따듯하게 타오르는 사랑의 말>(에피파니)를 통해서다.

'스승'과 '제자', 만남 전까지

'제자'의 아버지는 10명 가까운 형제의 장남이었다. 1960년대. 큰아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짐의 무게를 감당하기 힘들었을 터. 그 부담감은 폭음으로 이어졌다. 술꾼 아버지의 아들 중 하나였던 '제자'는 혼자만의 공부방을 가져본 적도, 영어와 수학을 심화학습 시켜주는 학원도 다녀보지 못했다.

중고교 시절, 고생하는 어머니를 위해 재래식 화장실에서 밭으로 인분을 퍼 나르기도 했던 '제자'는 학력고사를 치르던 전날도 아버지의 주정 탓에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붉어진 눈알로 시험을 봤다. 행이었을까? 혹은 불행이었을까? 가난한 집안에서 신경 한 번 써주지 못하고 키운 아들이었던 '제자'가 서울대학교에 합격한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기관지와 폐에 깃든 병과 예기치 못한 교통사고로 20대 초반을 캠퍼스가 아닌 병실에서 보내야했던 '제자'. 거기서 그는 고교 시절 스치듯 읽었던 '스승'의 책과 만난다. 병원 침대에서 '실존'을 고민하던 '제자'에게 '스승'의 문장은 죽음의 유혹을 견딜 수 있었던 유일한 치료제였다.

'스승'과 '제자', 드디어 만나다

20대는 그런 나이다.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세상 모두가 우습고 시시하며 하찮아 보이는 시기. '제자'도 그랬다. 복학을 했지만 공부를 하는 것도, 문학에의 열망을 드러내는 것도 유치하게 생각됐다. 강의는 뒷전. 학교 인근 산을 오르내리며 시집을 읽고, 낮밤 없이 취하도록 술만 마셨다.

그런 '제자'를 언제부터 지켜봤던 걸까? '스승'이 연구실로 불렀다. 그리고는 숙제 하나를 낸다. "수업에 들어오지 않은 걸 이해할 테니, 책을 하나 골라 그걸 비평해봐라. 빅토르 위고(Victor Hugo )도 좋고, 네가 원한다면 포르노 소설도 좋다."

인간과 세상을 향해 열린 태도. 이런 '스승'의 너그러움 저변엔 전라도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하숙집을 구할 때마다 애를 먹었던 고통이 자리한다는 걸 '제자'는 알았을까?

박완서의 작품을 텍스트로 선택한 '제자'는 티내지 않았지만 오래전부터 흠모해오던 '스승'에게 부끄럽지 않을 리포트를 만들기 위해 악전고투(惡戰苦鬪)한다. 그걸 읽은 '스승'은 "너는 글(문장)을 떠나서는 살기 힘든 인간"이라는 칭찬인지, 저주인지 모를 말을 했다.

'스승'이 같은 학교 교수들에게 20대 초반 '제자'의 문장을 자랑스레 소개했다는 걸 '제자'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고서야 알았다. 그랬기에 아래와 같은 '제자'의 고백도 늦어졌다.

"문학이란 것은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말의 가장 깊고 다양하며 섬세한 변주 양식이란 걸 '스승'은 내게 가르쳤다."

'스승'과 '제자', 헤어지다

20대 중반의 '제자'는 40대 후반 '스승'의 격려와 가르침 속에서 '온전한 문장'으로 한 걸음씩 나아간다. 그 과정의 결실이었을까? '문학평론가'라는 명찰을 20대 중반에 달게 된다.

서울대학교 불문과와 독문과 출신 평론가들이 주축이 돼 만든 문학잡지. 스승은 그 잡지에 적지 않은 지분을 가지고 있었지만, 거길 통해 '제자'를 등단시키지 않았다. '스승'은 충분한 조건을 갖춘 아들까지도 "다른 교수들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자신이 재직하고 있는 학과에 입학시키지 않는 염결한 사람이었다.

'행복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결핍과 고통과 싸워가며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임을 가르친 '스승'. 그 가르침 안에는 필연적으로 '불행'이 함께 존재한다는 걸 '제자'는 빨리 깨우쳐야 했다. 겨우 48세. 그 아까운 나이에 '스승'의 간에 암세포가 똬리를 틀었다.  

1990년 여름. '스승'이 죽었다. 스물다섯이었던 '제자'의 넉넉했던 울타리도 함께 무너졌다. 프랑스로 떠난 '제자'. 한국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20년 넘는 세월 동안 그는 '스승'과 나누었던 개인적인 이야기와 둘만의 교류에 관해 입을 다물고 살았다.

 문학평론가 박철화.
 문학평론가 박철화.
ⓒ 박철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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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과 '제자', 책을 통해 다시 만나다

여기까지 졸문을 따라 읽은 이들이라면 누구나 짐작할 것이다. 수차례 등장하는 '스승'은 열정적인 불문학 연구자였던 동시에 영민한 문학평론가인 김현이고, '제자'는 문학평론가이자 전 중앙대 교수인 박철화라는 걸.

<따듯하게 타오르는 사랑의 말>은 전문 예술용어와 낯선 외국 언어·기호학자들의 이름이 줄줄이 열거된 책이 아니다. 생경한 문예사조와 난해한 인용으로 가득 찬 얼치기 문학평론가의 문장은 더더욱 아니다.

<따듯하게 타오르는 사랑의 말>은 '웃음'과 '눈물'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자 했던 행복한 두 '글쟁이'의 염화미소인 동시에 발신인은 있지만 수신인은 부재한 '슬픈 연애편지'다.

'제자' 박철화는 '스승' 김현과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한다.

"스승과 나의 만남은 어쩌면 너와 나, 너와 세계의 만남을 비추는 뜨거운 상징이 아니었을까? 뜨거운 상징은 비슷한 정황이 되풀이될 때마다 새로운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그 반응이 바로 문학의 힘이 아닐까? 이 뜨거운 상징에서 샘솟는 사랑의 말을 내 안에만 가둬둘 수 없어 이제 세상에 내놓는다."

장마 후 뜨겁게 닥쳐온 여름. 복잡하고 더워진 머릿속을 '상징과 은유' 가득한 염화미소 혹은, '슬픈 연애편지'를 통해 식히고 싶은 독자들께 감히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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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등의 저자. 경북매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