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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이 이 다음에 커서 어떤 사람이 되겠다는 꿈을 갖듯, 20대였던 내게 서른이란 나이는 아득한 별빛같이 느껴졌다. 20대가 되어서도 '30'이라는 나이는 크게 와닿지 않았다. 마치 30일이 오지 않는 2월 같은 20대였다고 해야 할까. 20대에 나는 서른 살의 꿈을 그려보곤 했다.

내가 생각했던 이상적인 서른의 모습은 한 마디로 성공한 샐러리맨이었다. 스마트해 보이는 안경을 쓴 날카로운 눈빛의 소유자. 소매를 걷어붙인 와이셔츠를 입고 열정적으로 업무를 처리한다. 안경에 비친 모니터 화면에는 복잡한 숫자들이 군무를 추고 있다. 고단한 하루 일과를 마치면 셔츠의 단추를 두 개쯤 풀어헤친 채 중형 세단에 몸을 싣는다.

세계 10대 야경 중 하나라는 한강의 야경과 일직선으로 흩어지는 불빛을 배경으로 차는 미끄러지듯 달린다. 오피스텔에 도착해 뜨끈한 물줄기에 몸을 적신다. 샤워를 마치고 아직 덜 마른 머리카락을 손으로 털며 가운을 입는다. 냉장고 문을 열자 형형색색의 캔맥주가 오와 열을 맞춰 흐트러짐 없이 서있다. 캔 뚜껑을 따자 경쾌한 소리와 함께 거품이 흘러내린다.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창밖으로 야경을 지그시 바라본다. 시라도 한편 쓰고 싶은 밤이다.

20대 내내 유예시켰던 불안감은 점점 쌓여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30대가 되었다.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서른 살이 된 현실 속의 나는 정말 샐러리맨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성공한 샐러리맨이 아니라 그냥 샐러리맨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입사한 대기업. 나는 꿈꾸었던 모습처럼 잘 다린 와이셔츠에 정갈한 갈색빛의 새 구두를 신었다. 유통 점포의 한 층을 담당하게 된 나는 매일 옷 박스와의 전쟁을 치렀다. 출근하자마자 셔츠는 땀으로 흠뻑 젖어 쭈글쭈글해졌다.

구두는 한 달도 못 가 헌신짝이 되었다. 작은 점포에 협소한 창고 공간. 그 창고 안에 더 작은 고시원 같은 사무실이 있었다. 마치 나는 크기가 점점 작아지는 인형이 끊임없이 나오는 러시아 인형의 맨 마지막 쪼꼬미 같았다.

  한강 자전거길을 달리면 스트레스가 확 날아간다.
 한강 자전거길을 달리면 스트레스가 확 날아간다.
ⓒ 김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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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13~14시간의 고단한 일과를 마치면 중형 자전거에 몸을 실었다. 1시간 30분이 걸렸지만 퇴근길은 항상 한강 둔치 자전거 길을 이용했다. 한강 야경을 배경으로 달릴 때면 오늘 내게 상처 준 사람들이 자전거 페달인 양 열심히 밟아댔다. 그렇게 어머니와 사는 월세 집에 도착한다. 기네스북에 도전하는 것도 아닌데 빛의 속도로 씻고 눕는다.

이때부터 자유시간이지만 시계는 어느덧 자정을 가리킨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게 눈꺼풀이라고 했던가. 눈이 자꾸 감긴다.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무거운 눈꺼풀과 싸운다. 눈에 더욱 힘을 주고 버텨보지만 번번이 나는 참패한다. 그리고 다시 똑같은 하루가 반복된다. '아... 지금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

나는 회사 생활 만 1년이 되었을 때 회사 선배에게 상담을 한 적이 있다.

나: "선배님, 직장 생활이 힘들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왜 자꾸 회의감이 들까요?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선배: "그래, 힘들지? 하지만 니가 회사 생활을 얼마나 해봤니? 최소 3년은 해봐야 회사가 어떤 곳인지 조금 감을 잡을 수 있어. 섣불리 판단하지 않으면 좋겠다."  

선배의 조언대로 버텼다. 3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을 하고 있었다. 이번엔 특진을 할 정도로 회사에서 인정받는 동기와 대화를 나눴다. 그는 어떤 생각으로 회사를 다니는지 궁금했다.

나: "나는 자꾸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회사에서 매일 13~14시간씩 보내는 게 과연 맞는 걸까? 열심히 할수록 자꾸 허무해. 너는 어때?" 
동기: "에이, 그게 무슨 소리야. 30대에는 무조건 열심히 해야지. 그냥 열심히 하는 게 답이야."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곳은 어딘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오늘도 난 걸어가고 있네

사람들은 길이 다 정해져 있는지
아니면 자기가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가는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이렇게 또 걸어가고 있네

나는 왜 이 길에 서 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이 길의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

- '길' (god 노래 중) -
  가끔 아내와 걸으며 동네 길을 따라 펼쳐진 시골 풍경을 감상한다. 내가 가는 이 길의 끝은 어디일까?
 가끔 아내와 걸으며 동네 길을 따라 펼쳐진 시골 풍경을 감상한다. 내가 가는 이 길의 끝은 어디일까?
ⓒ 김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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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다 이렇게 사는 거'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어느덧 30대 중반이 된 나. 회사 생활 10년 차가 되자 나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아빠가 된 선배들은 하나같이 "출퇴근할 때 항상 아기가 자고 있으니 주말에도 아빠 얼굴을 못 알아보더라"라는 푸념을 늘어놓았다. 나는 올해 초에 태어난 첫아이에게 적어도 아빠의 얼굴이 어떤지는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아이가 자라가는 경이로운 모습을 눈에 담고 싶었다.

육아휴직 3개월 차, 나는 지금 초보 육아빠로 살고 있다. 지인들은 내가 쉬는 것도 부러운데 아이가 아빠와 함께 할 수 있어서 더 부럽다고 한다. 나도 쉬어서 좋고, 아이와 함께 할 수 있어 좋다. 하지만 육아휴직 급여로 받는 돈은 월 100만 원 남짓. 그마저도 4개월째부턴 절반으로 줄어든다. 아내도 일을 하지만 파트타임이라 둘이 합치면 겨우 월 150만 원 정도가 된다.

아이의 분유, 기저귀, 이유식 재료뿐 아니라 카시트, 유모차, 보행기 등 들어가는 돈이 끝이 없다. 모아둔 돈으로 버티고 버티다 보니 통장은 어느새 '텅장'이 되어간다. 가장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견디며 살고 있다.

이제 조금 나아졌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월요병에 시달렸다. 그동안의 회사 생활이 몸에 배어있어 휴직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일요일 저녁만 되면 괜히 기분이 다운됐다. 평일도 주말 같은 삶을 살고 있음에도 주말이 되어야만 안도감이 들었다.

6개월의 육아휴직을 아내와 충분히 상의했기에 아내는 마음 편히 쉬라고 위로해준다. 이런 아내가 세상에 어디 있나 싶어 고마운 마음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하지만 스마트폰 단체 채팅방을 통해 동기의 특진 소식, 후배의 승진 소식이 들려온다. 불안감이 다시 엄습한다. 나는 또 나에게 질문한다. '지금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

  고사리 같은 아이의 손에 주사바늘이 꽂혀 있다. 부모로서 뭐라 표현하기 힘든 마음이다.
 고사리 같은 아이의 손에 주사바늘이 꽂혀 있다. 부모로서 뭐라 표현하기 힘든 마음이다.
ⓒ 김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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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는 부부가 둘이서 해도 너무 힘들다. 나보다 먼저 아빠가 된 친구가 '육아는 하루 24시간 안에 36시간 분량의 일을 해야 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 말을 이제야 실감하고 있다. 특히 아이가 자지러지게 울면 별 짓을 다해봐도 그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총체적 난국으로 멘붕, 유체이탈을 간접 경험한다. 최근엔 아이가 감기로 일주일간 병원에 입원했다. 고사리 같은 손에 주사 바늘을 꽂자 몸서리치며 역대급 통곡을 했다. 일주일간 우리 부부는 하루 평균 2시간씩 자며 아이를 간호했다. 힘들고 예민해지는 나날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해맑은 미소를 보면 잠시나마 천국을 경험한다.

여전히 불안하고 질문 가득한 인생이지만 나는 지금 돈으로 살 수 없는(사실 돈을 포기해야 하는) 행복을 누리고 있다. 누군가가 "지금 너는 잘 살고 있니?"라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리라. "그래도 지금 나는 잘 살고 있다!"


태그:#30대직장인, #잘살고있는걸까,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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