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리 쿵, 저리 쿵...

이 반갑지 않은 흔들림의 정체는 바로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국제공항(Aeroparque Jorge Newbery)에서 잡아탄 버스. 이 버스는 이 살인적인 더위에 노동을 해야하는 자신의 처지에 치가 떨리는지 몸체를 연신 부르르 떤다. 나를 포함한 버스 안의 승객들은 다같이 무표정으로 그 진동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는 중이다.

버스 안의 사람들이 무신경하게 내 60리터짜리 배낭을 툭툭 칠 때마다 내 어깨와 허리는 비명을 내질렀고 내 두 종아리 사이에 고정된 작은 캐리어 가방에 내 다리는 좀이 난 지 오래다.

이어 이 버스씨는 정류장마다 급정거해 내리는 승객들을 게워내고 오르는 사람들을 꾸역꾸역 밀어넣는다. 이 비좁은 공간에 시루 속 콩나물처럼 빽빽히 들어찬 사람들과 그들이 토해내는 더운 숨결에 나는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다. 틀어 놓은 에어컨도 소리만 요란하지 별 효과는 없는 듯하다.

마침내 도착지가 멀지 않아 스탑 버튼을 눌렀다. 'SOS' 구조요청에 성공한 조난자의 기분이 이러할까. 실제로도 버스에서 내리고도 어지럼증이 나 정류장에 한동안 앉아 있었다. 이마에 맺힌 땀이 식자 휴대폰 GPS로 예약한 숙소를 찾아 나섰다.

다행히 정류장에서 몇 블록 되지 않는 가까운 거리. 오늘의 시련은 이걸로 끝이구나 하니 코끝이 다 찡해졌다. 이 기쁨도 잠시, 숙소가 있어야 할 곳에 숙소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황당한 상황을 마주했다. 그와 동시에 내 머리 속에서는 베토벤의 '운명교향곡'이 자동재생되었다.

그렇게 눈앞이 컴컴해지는 찰나, 정확히 나와 같은 모습의 한 사람을 발견했다. 비닐커버를 씌운 거대한 배낭, 손에 든 휴대폰의 도난방지용 고리, 길을 잃은 아기양의 표정 그리고 무엇보다도 참 한국인스러운 생김새. 그리고 나의 '촉'.

우리는 서로를 보자마자 오아시스라도 발견한 양 잰걸음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영어나 스페인어로) 한국인이냐고 묻지도 않고 바로 모국어가 튀어나왔다.

"한국사람이세요?"
"한국에서 왔어요?"


같은 질문에 대답도 같았다.

"네!"
"맞아요!"


그리고 무려 헤매는 이유도 같았다. 나도 그도 같은 한인 민박을 찾고 있었던 것. 그리고 서로의 입에서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렇게 애타게 찾아 헤매던 그곳이 눈에 들어왔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바로 길 건너의 숙소를 못 본 것이다. 못 볼만도 한 게 일반 가정집 대문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손글씨로 써붙인 숙소의 한글 이름과 노란 리본에 확신을 한 뒤 벨을 눌렀다.

이 한인민박 안에서는 '정보'라는 젖과 '한국 음식'이라는 꿀이 흐른다.
▲ 우리의 오아시스 '남미사랑' 앞에서 이 한인민박 안에서는 '정보'라는 젖과 '한국 음식'이라는 꿀이 흐른다.
ⓒ 송승희

관련사진보기


얼마 뒤 숙소의 안주인이신 멜라니씨가 나와 문을 열어주셨다. 에어컨이 풀로 가동된 실내는 내게 살아있음에 감사함마저 느끼게했다. 그만큼 이곳의 2월 날씨는 지옥불을 방불케한다.

체크인을 마치고 지낼 공간이 마련되는 동안 나는 주위를 두리번 두리번 거렸다. 만 스무살에 집을 나와 5년간 나라 밖을 떠돌았지만 국외에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숙소에 머무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굳이 이유를 묻는다면 이렇다. 나는 진정한 여행은 자신의 우물인 '컴포터블 존(Comfortable zone)'을 벗어나는 데에 있다고 본다. 그래서 주로 현지 숙박시설에 머물며 전세계에서 온 배낭여행자들과 교류하기를 선호했다. 그리고 한인 민박은 대개 가격이 조금 센 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유가 있어 남사('남미사랑'의 줄임말)를 선택했다. 그 이유는 조금 뒤에 언급하기로 하자.

게스트하우스/호스텔/민박인 남미사랑 소개를 조금 하자면 이렇다. 10여년도 전 세계여행 중이던 멜라니씨 부부에게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최애도시'로 등극했다. 그래서 오랜 방랑 끝에 용감하게도 이곳에 터를 잡기로 한 것.

그리고 본인들 같은 여행자들이 지친 몸을 쉴 수 있는 남사의 문을 열게 된 것이다. 올해로 벌써 10년째 운영 중이신 데다 남미 내에서는 한국인 최대의 여행 커뮤니티로 발전했다. 그래서 심지어 한인 민박의 '한'자도 모르는 내 귀에도 들어오게 된 정도이니 말은 다했다고 봐야 한다.

쭈뼛하게 서 있는 우리에게 멜라니씨는 아침으로 먹은 짬뽕국이 좀 남았다면서 깍두기랑 같이 밥 한술 들라고 권하신다. 라면도 낱개로 판매 중이니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하라는 말씀과 함께.

짬뽕국이라니... 지구 반대편에서 라면 하나로도 감지덕지할 판에 짬뽕국이라니...!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내가 지금 젖과 꿀이 흐르는 곳에 있음을. 국에 밥을 훌렁 말아 두 그릇을 비우는 동안에도 저녁을 라면으로 때울 궁리를 했다.

내 뱃속에는 두달 묵은 '한국음식 거지'가 단단히 들어앉은 모양이다. 그렇게 한술 한술 소중히 떠먹으며 어떤 사람들은 한인민박을 그렇게 고집하는 구나 하며 그들에게 격하게 공감했다.

식사를 마치고 짐을 푼 뒤 다시 거실 겸 주방인 이층으로 향했다. 주인 내외분은 한국 예능 프로를 보고 계셨다. 내가 어색하게 다가가니 멜라니씨는 특유의 사람 좋은 얼굴로 반기시며 식사는 잘 하셨냐 물으신다. 잘했다 뿐인가, 먹다 울지 않은 게 다행이다. 나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는 말을 꺼냈다.

"저번에 카톡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여기서 스태프로 잠깐 일해보고 싶습니다."

내 진지한 어투에 잠시 골똘히 그분은 잠시 생각에 잠기셨다. 이내 텔레비젼을 끄시고 이런저런 질문을 하기 시작하셨다. 결론은 '다음 기회에-'였다. 남사는 오전오후에 숙소를 돌볼 매니저가 필요한데 곧 있으면 시작할 영어교사 자격증 코스 수강 스케줄과 맞지 않는 것. 나도 아쉽지만 아니면 그만이라 크게 상관은 없었다.

그렇게 숙소 스태프건은 '쿨'하게 물건너 갔지만 우리는 이내 이야기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얼마 뒤 창밖으로 해는 뉘엿뉘엿 져가고 나갔던 사람들이 하나둘 돌아오기 시작했다. 모두들 에어컨 앞에 탄식을 하며 주저앉는다.

숙소의 바깥주인 되시는 분은 얼마 뒤 있을 아사도(아르헨티나의 전통 비비큐) 파티 준비에 베란다에서 그릴을 손보시고 계신다. 그래서 조용한 집안에 퉁탕퉁탕 하는 소리만 이따금씩 들렸다. 내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의 첫날이 이렇게 지나갔다.

- 2018년 2월말, 남사 거실에서


태그:#여행, #여행기, #남미, #아르헨티나, #한인민박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