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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전북 군산 지역의 물길(금강, 만경강, 경포천, 미제천 등)에 담긴 역사와 포구 주민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한 <금강, 그 물길 따라 100년>을 출간하였다. 책은 총 5장(금강, 째보선창, 도선장, 고군산군도, 은파호수공원)으로 구성됐다. 그중 제3장 '추억의 도선장' 편을 보완, 편집하여 2회에 걸쳐 싣는다. - 기자말

군산시 나포면 공주산에서 내려다본 금강
 군산시 나포면 공주산에서 내려다본 금강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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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장수군 신무산(897m) 뜬봉샘에서 발원한 금강(錦江). 강경에서부터 충청·전라 도계를 이루며 흐르는 금강은 <군산 시민의 노래>를 비롯해 지역 초·중·고등학교 대부분 교가에 들어간다. <군산팔경>에도 여러 차례 등장한다. 이처럼 금강은 역사의 강이요, 군산 시민의 혼이 담긴 강임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금강은 한강, 낙동강과 함께 남한의 3대 강으로 꼽힌다. 수많은 산과 들을 에두르고 휘돌면서 천리(401km)를 흘러온 금강은 그 물결이 비단처럼 곱고 아름답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래서 '비단강'이라고도 칭하였다. 금파(金波), 은파(銀波)로도 표기하였다. 채만식 소설 제목을 따라 탁류(濁流)로도 불린다.

금강은 지역 문물이 왕래하면서 다양한 역사를 만들어낸 시대의 젖줄이었다. 출퇴근길이자 학업의 길이기도 했다. 서해안 도서(島嶼) 지역은 물론 충남 장항을 비롯해 서천, 대천, 부여, 논산, 강경, 한산, 화양 등지 학생들이 군산으로 유학을 왔다. 주말이나 방학 시즌이면 군산~강경, 군산~화양 여객선의 절반이 넘는 승객이 학생이었던 것에서 잘 나타난다.

도선장(군산~장항)도 직장인과 통학생으로 항상 붐볐다. 지역 주민들의 발이었던 도선은 황포돛배를 시작으로 경남환, 경남호, 군산호, 서천호, 금강호 등으로 이름을 바꿔가며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하루 이용객이 수천에서 수만을 헤아리는 시절도 있었으나 2009년 운항이 중단되어 오늘에 이른다. 그 애환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금강 도선의 유래

금강의 돛단배
 금강의 돛단배
ⓒ 동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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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금강(군산-강경)에 여객선이 오갔는지 명확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군산 개항(1899) 전 충남 부여군 입포 마을의 어느 객주가 자신의 황포돛배로 이틀에 한 번씩 군산에서 생필품을 구입해 실어 나르던 것에서 비롯됐다고 전한다. 이후 아침저녁 물때에 맞춰 하루 2회 왕복 운항하는 여객선으로 바뀐다.

<군산역사 이야기>(김중규 지음)에 따르면 금강의 최초 여객선은 군산 개항 이듬해인 1900년 8월 일본인 기무라(木村)가 한국인 명의를 빌려 정기적으로 운항(군산-강경)을 하였다. 객선은 증기선으로 강경환(江景丸·8톤)과 황산환(黃山丸·25톤)이었다.

충남 서천군 마동면 수동리(용당)에는 군산 개항 이전부터 선착장이 있었다. 이는 조선 시대에도 나룻배가 오갔음을 의미한다. 1920년대에도 도선이(군산~용당) 정기적으로 운항하였다. 당시 서천군 도선은 향교 재산으로 경영하였으나 1918년 군산에 거주하는 일본인 실업가 송본시오랑(松本市五郞)에게 운영권이 넘어간다.

군산-용당 도선 경영권 인수를 알리는 1922년 8월 8일 치 동아일보
 군산-용당 도선 경영권 인수를 알리는 1922년 8월 8일 치 동아일보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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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부는 1922년 12월 군산~용당 도선 경영권을 인수한다. 경영권이 개인에서 부청으로 넘어간 후 일본인 선장과 선원들은 승객들에게 매우 불친절하였다. 특히 조선인 승객에게 고압적으로 대해 불만이 높았으며 크고 작은 폭행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배에 오르다 물에 빠져 옷을 흠뻑 적신 조선인에게 욕설을 가하고 구타한 사건이 중앙지에 보도되기도 하였다.

1926년 9월 변경된 도선 시간표에 따르면 군산~용당 도선은 하루 10회(오전 5회, 오후 5회) 두 시간 간격으로 운항하였다. 용당 발 군산행 첫 배는 오전 7시, 막 배는 오후 5시 30분이었고, 군산 발 용당행 첫 배는 오전 7시 30분, 막 배는 오후 6시 닻을 올렸다.

그 당시 용당은 서천군 지역의 중심지로 나룻배와 어선이 분주하게 드나드는 포구였으며 용댕이, 용당포, 용당진 등으로 불렸다. 채만식 소설 <탁류>의 주인공 정주사가 용당에서 배를 타고 째보선창으로 건너왔으며, 2018년 연말 완공을 앞두고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동백대교'가 용당포 상공을 지난다.

충남선(장항선) 전구간 개통 1년 전인 1930년. 그해 봄 군산부는 조선경남철도(朝鮮京南鐵道) 주식회사에 경영권을 양도한다는 구실로 부(府) 협의회를 개최한다. 외면상으로는 경영권 양도이지만, 눈속임이었다. 군산부가 거액을 받고 팔아넘긴다는 소문을 접한 서천 군민들은 결의대회를 여는 등 적극적으로 대처하였다.

옛날 신문에 따르면 서천군 주민들은 "도선 경영권을 영리 회사에 양도하는 것은 도선 본래 취지를 몰각(沒却)하는 처사"라며 당국에 진정서를 제출하는 등 결사항쟁으로 맞섰다. 그러나 경영권은 조선경남철도회사로 넘어간다. 서천군 마동면은 수영(죽산진)이 있던 곳으로 군산과는 오래전부터 지역적 연계가 강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1926년 11월 12일 군산부청은 회의에서 대정 15년도(1926) 추가경정 예산안을 이의없이 가결한다. 그리고 주요과제 11건을 토의한다. 주요 과제 11건 중에는 군산개항 30주년 공진회 개최, 전북-충남 도선잔교 신설과 객선 대형화 추진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는 군산~장항 도선 사업은 이때부터 준비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군산~장항 도선사업 1934년 시작

군산-장항 도선(1950년대)
 군산-장항 도선(195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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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장항과 전북 군산을 잇는 도선 사업은 1934년 일본인에 의해 시작되었다. 사업주는 사설철도 회사인 조선경남철도주식회사였다. 객선은 경남환(京南丸)과 군산환(群山丸)으로 두 척 모두 중유를 원료로 하는 발동선이었다. 도선은 하루 8~10회 운항하였다. 승객도 3천 명을 웃돌았다. 도선 요금은 편도 8전이었다.

도선 왕복 요금은 16전. 국밥 한 그릇에 5전~10전이던 시절이니 16전은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었다. 군산상공회의소에서 요금을 10전으로 인하해줄 것을 권고했으나 '쇠귀에 경 읽기'였다. 그럼에도 승객은 해가 다르게 증가하였다. 운항 횟수도 13회로 늘어났다. 1930년대 도선장 부근은 일본인들 거주지이자 군산의 중심지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장항역과 군산항역이 1931년 8월 1일 동시에 영업을 개시했으니 도선 승객이 더욱 증가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장항역은 충남선 종착역이었고, 도선장 뒤편에 자리한 군산항역은 군산-전주를 오가는 협궤열차(경전철) 시발역이었다. 1935년에는 조선에서 유일한 부영(府營) 철도인 '서빈 철도'가 개통되어 더욱 활기를 띠었다.

일제가 중일전쟁을 일으키고 전시체제로 돌입하면서 중유 구입난이 심각해지자 도선도 감행(減行)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태평양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기 시작하는 1943년 12월 1일 군산항역이 모든 운송기능을 부두화물역에 남겨주고 문을 내리면서 도선장은 침체기로 접어든다.

군산시 도선사무소(1950년대)
 군산시 도선사무소(195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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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후에는 군산시가 금동에 도선사업소, 장항에 도선출장소를 설치하고 직영하였다. 1984년에는 군산시와 서천군이 7대3 공동 지분(자본금 9억7천여만 원)으로 금강도선공사를 설립한다. 2001년 정부의 지방공기업 민영화 지침에 따라 공개매각 절차를 거쳐 월명토건이 인수, 운영하다가 승객 감소로 2009년 11월 1일부터 운항이 중단되어 오늘에 이른다.

운항 마지막 날(10월 31일) 도선 요금은 어른(중·고등학생 포함) 2000원, 소인(3세 이상 초등학생) 1000원, 대인+자전거 4000원, 소인+자전거 3000원, 대인+오토바이 6000원이었다. 요즘은 객선 운항 관련 업무가 일절 없으며, 서천호, 군산호, 안창호 등이 이용했던 잔교와 선착장만 스산한 모습으로 방치되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한다. (계속)

최근 군산 도선장 모습
 최근 군산 도선장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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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금강, #군산, 장항, #도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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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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