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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잔병치레를 할 때마다 새삼 내 몸에 고마움을 느낀다.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 신경조차 쓰지 않았던 일에 그렇다. 아무거나 먹고 싶은 대로 먹을 수 있다는 것, 4층 정도는 계단으로 뚜벅뚜벅 걸어 올라갈 수 있다는 것 등등.

아픈 뒤에야 그걸 깨닫다니 참 미련도 하다만, 그 고마움도 얼마 가지 않으니 그게 더 문제다. 아무래도 내 몸에겐 고마움보다 미안함 마음이 더 크다. 한 시간에 한 번씩 스트레칭 좀 하는 게 뭐 그리 힘들다고 그조차 안하고, 몸에 순한 음식을 먹겠다고 다짐했건만 최근의 식단을 돌아보면 되도록 독한 음식을 골라 먹은 건 아닌가 싶다.

몸이 아프다고 아우성치기 전에 내 몸을 보듬을 일이다. <마음이 헤맬 때 몸이 하는 말들>은 몸이 하는 말에 귀 기울여야 함을 설명한다. 몸은 그 자체로 완벽한 지성을 갖고 있으며, 우리가 길을 잃었을 때 어떻게 살면 좋을지 속삭여주는 것도 바로 몸이라는 것이다.
<마음이 헤맬 때 몸이 하는 말들> 책표지
 <마음이 헤맬 때 몸이 하는 말들> 책표지
ⓒ 웨일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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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하루 10시간씩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일하던 것을 '수련-책-수업'으로 이뤄지는 삼박자 삶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오전엔 요가 수련을 하고, 낮엔 일을, 저녁엔 다른 사람에게 요가를 가르치는 삶이다. 이 삶에도 나름의 고달픔과 애환이 있지만, 몸을 쓰며 살게 된 뒤로 훨씬 더 행복해졌다고 한다.

"삶이 고체라면 더 말랑말랑해진 게 분명하다. 더 가벼워지고 더 부드러워졌다. 이는 요가를 통해서였지만 꼭 그 때문만은 아닐지 모른다. 근본적으로는 몸이 삶으로 들어와서가 아닐까. 사회에서 인정받기 위해 '몸을 굴리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몸을 만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p6)


저자는 현대인들이 몸을 잊고 살기가 너무 쉬워졌다는 데 주목한다. 하루 종일 한 곳에 앉아 스마트폰과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넘치는 생각 속에 빠져 지낸다. 곧 가상현실 체험도 무궁무진하게 활용될 것이라 하니, 몸을 잊고 살기는 더욱 쉬워질 것 같다. 저자는 묻는다. 모든 것을 앉아서 체험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 몸은 무엇일까, 하고.

"몸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은 무언가?"(p32)


책에 의하면, 행복감은 머리나 생각 속에 있지 않다고 한다. 몸의 감각과 그 경험 속에 행복이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행복의 경험을 물으면, 그 대답엔 대체로 몸 감각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여행의 경험, 아이를 낳았을 때 감동의 눈물, 수술 후 깨어난 뒤 느낀 자신의 숨결 등. 고로 몸을 알아가는 것은 곧 자기만의 행복을 찾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기본적이고 생리적인 욕구 또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한다. 먹고 자고 싸는 것 같은 단순한 일에 집중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내 몸의 욕구를 깨닫는 것에 대단한 지성이 필요하지는 않지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그저 습관대로, 때로는 내 몸에 맞지 않는 리듬으로 살게 된다는 것이다. 몸이 원하는 적정치를 찾으면, 그 자체로 삶이 바뀌고 질이 향상된다고 한다.

"몸은 언제나 깨어서 내 감정과 긴밀하게 소통하고 있다. 여러 목소리로 이를 알리면서 삶이 변화되는 과정을 지켜본다. 내 몸의 감각에 주의를 기울이는 일은 나와의 소통을 위한 첫 단추다."(p65)


저자가 강조하는 몸은 '나'에 국한되지 않는다. 내 몸을 나아가 '우리'를 말한다.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의 발달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세상과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는 듯 하지만 실상은 과거보다 더욱 외로워졌다. 대면하지 않고 주고받는 공허한 말들은 우리의 고독을 달래긴커녕 더욱 강화시킬 때가 많은 듯하다. 그리하여 느끼는 '우주적 외로움'은 그 표현만으로도 가슴이 저릿하다.

저자는 우리가 몸을 느껴야 한다고, 사유가 차고 넘치더라도 그것은 몸으로 나와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2016년 겨울의 촛불 역시 서로 다른 사람이 한 자리에 모이는 것으로 오히려 더욱 견고하게 연결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역사는 소셜 미디어로 바뀌는 게 아니었다. 아무리 열심히 읽고, 사유하고, 소통해도 몸 한번 움직이는 것에 못 따라갔다. 촛불만큼 작은 몸일지언정 그곳에 데려다놓았더니, 몸과 몸이 만나서 소리를 냈더니, 진짜로 세계가 움직였다."(p39)


저자는 '몸을 떠나지 말고 몸으로 떠나자'(p40)고 말한다. 그 시작은 무엇이 되어도 좋다고 한다. 몰입의 경험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화분에 물주기, 작은 기계 고치기, 바느질하기, 자전거 타기, 요리하기 등등. 순수한 몰입을 경험할 수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한다. 몰입의 경험을 느낀 뒤에는 더 자주 시도하면 된다.

책의 마지막 장(chapter)은 '수련이라는 여행'이다. 몸에 몰입하는 즐거움을 느꼈다면 자연스럽게 수련을 시도해보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요가 수련을 하고 있지만, 그 어떤 수련이든 좋다고 말한다. 다만 그 수련이 몸을 쓰는 일이었으면 한다고 덧붙인다.

어떤 수련인지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라고 한다. 저자가 건네는 조언은 이렇다. 늘 일정한 시간에, 꾸준히, 처음엔 가볍게, 주 4-6일, 동료와 함께 할 것. 이때 동료란 넓은 개념이다. 나를 지켜봐주고 지지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거리를 가진 시선이다. 온오프라인 자기 기록 일지도 이에 해당할 수 있다는 설명이 특히 와 닿는다. 기록에는 특별한 힘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 홀로 쓰는 일기여도 마음을 다잡는데는 큰 도움이 된다.

마침 야심차게 시작했던 운동에 열정이 시들해갈 때 이 책을 읽었다. 시작할 땐 내 체질을 바꿔보리라 대단한 포부를 가졌건만, 날이 더워질수록 운동을 하기 전부터 지쳐 이 핑계 저 핑계 운동하지 않을 합당한 이유를 찾고 있었다.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내 몸을 보듬는 건 마음을 보듬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일이라는 것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특히 의미있게 다가온 것은 '나'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우리'를 향한다는 것이다. 살아있는 내 몸을 느끼고, 타인의 기쁨과 슬픔에도 공명할 수 있는 나로 살 수 있기를 희망한다. 나만이 행복한 삶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수련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시작해 볼 일이다.

"내 몸에서 일어나는 기쁨과 아픔을 무시하고 아무렇지 않은 듯 사는 훈련이 된 상태에서, 다른 몸에서 일어나는 기쁨과 아픔을 어떻게 느낄 수 있을까?"(p7)


마음이 헤맬 때 몸이 하는 말들 - 자존감이란 몸으로부터 더욱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

디아 지음, 웨일북(2018)


태그:#마음이 헤맬 때 몸이 하는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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