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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3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결정 직전 기무사가 작성한 위수령과 계엄을 통한 시위진압 계획안이 담긴 문건 중 일부
▲ '전시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 문건 중 일부 작년 3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결정 직전 기무사가 작성한 위수령과 계엄을 통한 시위진압 계획안이 담긴 문건 중 일부
ⓒ 군인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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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적 정치 댓글, 세월호 유족 및 시민단체에 대한 사찰, 계엄을 통한 시민 진압 계획 수립... 이전 정부에서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가 행한 일련의 활동이 충격과 경악을 주고 있다.

지난 7월 6일 군인권센터와 이철희 의원실(더불어민주당)이 공개한 '전시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이라는 제목의 문건은 작년 3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결정이 있기 직전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문건의 작성자인 기무사는 탄핵 결정 이후 발생할 수 있는 대규모 시위와 집회에 대한 대응 방안으로 위수령 및 계엄의 선포를 통한 군의 개입 계획을 제시했다.

기무사의 문건이 충격적인 건 단지 가능성 있는 사회 혼란에 대한 군의 대응 방침 정도만 담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논란이 된 문건은 구체적인 실행 계획은 물론 현행법상의 허점에 대한 이용과 대안까지 서술해놨다.

기무사 문건, 구체적 실행계획과 대안책까지 담겨

'문건'은 군의 대응과 관련한 비상조치의 유형을 위수령-경비계엄-비상계엄의 세 단계로 제안하고 있다. 첫 번째 단계인 위수령에서는 육군참모총장이 대규모 시위 발생 지역에 주둔하는 부대 지휘관을 위수사령관으로 임명하고, 서울특별시장 등 시도지사로부터 병력 지원 요청을 받은 경우 병력을 출동시켜 주요시설 방호나 시위대 해산 등의 치안 유지에 나서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위수령은 1965년 한일협정 반대 시위가 격화되자 당시 박정희 정권이 경찰병력만으로 치안유지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서울 일원에 발령한 것이 시초였다. 이후 1970년 이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한다는 이유로 대통령령으로 제정되었다. 위수령은 헌법에 규정된 국민의 기본권을 대통령령으로 유보하는 것이 타당한가라는 문제제기와 군사독재정권 잔재를 청산해야 한다는 요구에 따라 현재 이를 폐지하는 법안이 입법 예고된 상태다.)

'문건'은 나아가 위수령 발령에 따른 '제한사항에 대한 해소방안'이라는 항목에서 군령권이 없는 육군참모총장의 병력 출동 승인 제한과 관련해 사후에 합참의장 및 국방장관의 승인을 받으면 논란을 해소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같은 과정에서 발행할 국민의 권리, 의무 침해 등 위헌 소지 및 헌법소원, 국가배상 의무 제기 등과 관련해 군의 직접적인 책임은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국회가 반발할 가능성도 염두에 뒀다. 국회가 위수령 무효법안을 제정하려 하더라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된다는 설명이다. 설사 무효법안이 가결되더라고 대통령 거부권 행사시 국회 재의기간 등을 감안하면 일정기간(2개월 이상) 위수령의 유지가 가능하다고 서술했다. 즉, 군이 위수령이라는 수단을 통해 국정을 장악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과, 이를 무마하고 지속적으로 국정을 장악할 방안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문건은 위수령 발령시 조치사항으로 청와대, 대법원, 헌법재판소 등 주요시설 방호에 경찰과 협력해 시위대를 통제하고 그 필요병력으로 수도권 인근의 기계화 5개 사단(8, 20, 26, 30사단 및 수기사)과 3개의 특전여단(1, 3, 9여단) 등을 동원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적시했다.

위수령만으로 상황이 해결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문건은 경비계엄에 이은 비상계엄을 제안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 주목할만 한 점은 계엄사령관으로 합참의장이 아닌 육군참모총장을 임명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는 점이다. 본래 유사시 계엄 업무는 합동참모본부의 민군작전부 소관이다. 따라서 계엄이 발령될 경우 계엄사령관은 당연히 합참의장이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문건은 계엄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제안하고 있다. 그 이유로 문건은 합참의장은 북 도발 대비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보장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군인권센터가 공개한 기무사 문건
▲ 군인권센터가 공개한 기무사 문건 군인권센터가 공개한 기무사 문건
ⓒ 신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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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해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은 "계엄사령관은 통상 합참본부의 벙커(B-2)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라며 "문건에서 전시 상황서 대통령이 주둔하는 벙커(B-1 문서고)에 계엄사령부 설치한다는 것 자체가 박근혜 정부의 비호 아래 계엄을 검토했다는 것의 방증"이라고 주장했다.

김종대 의원(정의당) 역시 "기무사가 단독으로 이 문건을 작성했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며 "출동 부대를 선정하는 데는 합참과 육군본부가 협조하지 않으면 기무사가 단독으로 실행계획을 만들 수 없는 체제"라고 지적했다. 실제 이 계획안에 대해 국방부는 탄핵 결정을 앞둔 지난 2월 장관이 기무사에 최악 상황을 대비해 군 대비안을 검토하라는 지시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라고 밝혔다.

기무사 단독으로 만들 수 있는 실행 계획이 아니다

비상계엄 관련한 부분에서 문건은 더욱더 디테일해진다. 비상계엄 시행시 48명의 계엄협조관을 중,대령급 요원으로 편성해 24개 정부부처에 파견하고 58명의 정부연락관을 소집해 정부부처에 대한 지휘·감독에 돌입하도록 되어있다. 기무사령관을 정점으로 하는 합동수사본부는 집회·시위 주동자 등 특별조치권을 위반한 계엄사범을 색출해 사법처리하는 업무를 수행한다. 보도검열단 및 언론대책반을 운영해 군 작전에 저해되는 내용에 대한 언론통제에 나선다. 방통위에 설치하는 유언비어 대책반은 시위선동 등 포고령 위반자의 SNS 계정을 폐쇄하는 등 사이버 유언비어 차단 작전에 나선다 등등.

1989년 노태우 정권 시절 기무사 전신이었던 국군보안사령부는 '청명계획'이라는 것을 준비했다. 사회혼란상이 계속돼 계엄이 선포되면 사찰대상이었던 민주인사 923명을 예비 검속한다는 계획으로, 노태우 정부의 친위 쿠데타 구상으로 알려졌다. 예비검속 A급 대상에는 당시 노무현 의원과 이해찬 의원 등이 있었고 B급에는 박원순 변호사, C급에는 김수환 추기경과 문정현 신부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같은 사실은 2007년 7월 국방부 과거사위원회(위원장 이해동)가 밝힌 '보안사 민간인 사찰사건 조사결과 보고서'를 통해 사실로 드러났다. 1990년 10월 윤석양 이병이 양심선언을 통해 폭로한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 내용은 사실상 노태우 정부 당시 보안사가 기획한 친위 쿠데타 계획의 일부였던 셈이다.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2007년 12·12, 5·17, 5·18 사건과 보안사 민간인 사찰사건에 대한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2007년 12·12, 5·17, 5·18 사건과 보안사 민간인 사찰사건에 대한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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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정권의 친위 쿠데타 구상 '청명계획'의 부활

윤석양 이병의 양심선언으로 당시 조남풍 보안사령관은 직위 해제되고 보안사는 민간인 사찰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했다. 이어 이듬해 초 지금의 국군기무사령부로 이름을 바꿨다.

그로부터 27년의 시간이 지났다. 국군보안사는 아니 국군기무사령부는 자신의 약속을 지켰는가. 군사보안과 군 방첩임무 수행이라는 본연의 업무에 충실해왔는가.

보안사가 민간인 사찰 중단 선언을 하고 이름을 바꾼 직후인 1992년 3월 9사단에 근무하던 이지문 중위는 당시 14대 총선에서 기무사가 군 부재자 투표에서 부정행위를 저질렀으며 군 내에서 여당을 찍으라는 정신교육이 이뤄졌다고 폭로했다. 2004년 국감에서는 기무사가 공안문제연구소에 의뢰한 감정 목록에서 한총련 소속 대학생들의 유인물이나 진보적 지식인의 저술과 관련된 대량의 민간인 사찰이 진행되었다는 자료가 공개되었다. 기무사가 이적성 판단을 위해 의뢰한 내용에는 소설가 조세희의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 <함석헌 평전> 등 이미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서적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었다.

이명박근혜 정부 들어 기무사는 보안사 시절에 했던 '애초의 본연의 업무'로 정확하게 회귀했다. 아니 더 나아갔다. 2008년 광우병 소고기 파동으로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자 청와대에 댓글 여론공작을 처음 기획해 제안했다. 그리고 2012년 총선과 대선 당시에는 단지 기획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제 특별부대를 편성해 댓글과 정치공작의 전면에 나섰다. 최근에는 2014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자마자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유족들에 대한 치밀한 사찰을 진행한 사실이 드러났다.

2016년 박근혜 탄핵 촛불 정국에서 진보적 시민단체의 회의록을 입수해 대책을 마련한 사실도 드러났다.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안보 관련 보수 단체들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청와대 등에 건의해 전경련 등을 통해 수십억 원을 내게 한 소위 '화이트리스트 사건'에 기무사가 중요한 거간자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여기에 민주주의를 위해 촛불을 든 국민들을 상대로 한 진압계획까지 만들었던 정황이 드러났다.

정치권에서 기무사의 해체에 준하는 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자, 기무사는 잇따라 자체 개혁안을 내놓고 있다. 소속 부대원이 정치적 중립 의무를 지킬 수 있도록 내부고발기구를 설치했고 외부 감시기구인 민간위원회 설치도 추진 중이라고 한다. 현 4천여 명의 기무사 인원의 20%를 줄이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세월호 유족들을 사찰한 태스크포스에서 활동했고 계엄을 통한 시위진압방안을 작성했던 기무사 참모장이 기무사 개혁위원회에서 물러났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 정도로 될 것 같은가. 조금 더 나아가 이번에도 이름을 바꿔 살아남아 볼 생각인가. 지난 30여 년간 그 과정을 지켜 본 국민이 두렵지 않은가.

덧붙이는 글 | 필자 박석진씨는 군대를 보는 시민의 눈,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상임활동가입니다. 이 글은 뉴스레터 제148호에 실린 칼럼을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태그:#기무사, #민간인 사찰, #계엄, #시위진압,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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