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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를까요? 곰곰이 생각해 보셔요. '모두'라는 소리를 들을 적에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는 무엇을 헤아릴까요, 또 어린이나 푸름이(청소년-편집자 말)는 무엇을 그릴까요? 정치를 하거나 대학교에서 가르치는 일을 맡는 이는 '모두'라 하면 무엇을 생각할까요?
모두 : 1. 일정한 수효나 양을 기준으로 하여 빠짐이나 넘침이 없는 전체 2. 일정한 수효나 양을 빠짐없이 다 ≒ 공히
 모두(毛頭) : → 털끝
 모두(毛頭) : [불교] = 모도(毛道)
 모두(冒頭) : 말이나 글의 첫머리

한국말사전을 펴니 '모두'라는 소리로 적는 낱말을 넷 싣습니다. 이 가운데 "모두 있어"나 "모두 반가워"처럼 쓰면서 '무엇을 빠뜨리지 않고 아우르며 가리키는 낱말'이 첫째로 나옵니다. 둘째로 나오는 한자말 '모두(毛頭)'는 '털끝'으로 고쳐써야 한다고 화살표를 붙여 놓습니다. 셋째로 '모두(毛頭)'는 불교에서 쓰는 한자말이라 하고 '모도(毛道)'하고 같은 낱말이라는데, 이는 "[불교] 1. = 범부(凡夫 2. 선사에서, 삭발하는 일을 맡아보는 소임"을 나타낸다는군요. 넷째로 '모두(冒頭)'는 말이나 글에서 첫머리를 나타낸다고 합니다.

자, 다시 헤아려 보면 좋겠습니다. 한국말사전에 '모두' 소리가 나는 낱말을 넷 싣는데, 참말로 이 네 낱말을 다 쓸 만할까요? 이 네 낱말은 참말로 한국말사전이라고 하는 책에 올림말로 실을 만할까요?

털끝을 가리킬 적에는 '털끝'이라 하면 넉넉합니다. 더도 덜도 아니지요. '모두(毛頭)'는 사전에서 아예 털어낼 만합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오는 '모두'. 우리는 '모두'라는 한글로 적는 여러 한자말을 굳이 알거나 사전에 실어야 할까요?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오는 '모두'. 우리는 '모두'라는 한글로 적는 여러 한자말을 굳이 알거나 사전에 실어야 할까요?
ⓒ 국립국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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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 쓴다는 '모두(毛頭)'는 불교 전문용어로 여겨야 할까요? 아니면 불교에서 앞으로 쉽게 고쳐쓸 낱말로 삼아야 할까요? 절에서 머리카락을 미는 일을 굳이 '모두·모도'라 해야 하는지 곰곰이 따질 노릇입니다. '머리밀기'나 '머리깎기'처럼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낱말을 쓰면 불교라는 길을 가기 어려울는지 돌아볼 노릇입니다.

정치를 맡는 일꾼이나 대학에서 가르치는 분은 으레 '모두(冒頭)'라는 일본 한자말을 씁니다. 이 일본 한자말을 털어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오랫동안 흘렀으나 이 한자말은 일본 한자말이 아닌 '토론·의회·회의 전문용어'로 여기는 분이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참으로 한자말 '모두'는 전문말일까요? '글머리·말머리' 같은 쉬운 한국말은 전문말로 삼기 어려울까요? 어린이도 할머니도 알아듣고 함께 쓸 수 있는 쉬운 한국말은 전문말이 되어서는 안 될까요?
묘(墓) : = 뫼
묘지(墓地) : 1. = 무덤 2. 무덤이 있는 땅. 또는 무덤을 만들기 위해 국가의 허가를 받은 구역 ≒ 총지(塚地)
뫼 : 사람의 무덤 ≒ 묘(墓)·탑파(塔婆)
무덤 : 송장이나 유골을 땅에 묻어 놓은 곳. 흙으로 둥글게 쌓아 올리기도 하고 돌로 평평하게 만들기도 하는데, 대개 묘석을 세워 누구의 것인지 표시한다 ≒ 구묘(丘墓)·구분·구총(丘塚)·만년유택·묘지(墓地)·분묘(墳墓)·분영(墳塋)·유택(幽宅)·총묘(塚墓)

'묘·묘지'하고 '뫼·무덤'이라는 낱말을 헤아려 봅니다. 사전을 곰곰이 살피면 '묘'는 "→ 뫼"요, '묘지'는 "→ 무덤"이로구나 하고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나라에서는 '나라무덤' 같은 이름을 안 씁니다. '국립묘지'처럼 한자말을 씁니다. 쉬운 한국말이 아닌 꺼풀을 씌운 한자말을 써야 하는 줄 여겨요. 한자말만 전문말일 뿐 아니라, 한자말이어야 높이 섬기는 줄 여깁니다.

사전 뜻풀이를 더 보면, '무덤'이라는 쉬운 한국말에 갖은 한자말을 비슷한말이라며 덕지덕지 붙이기까지 합니다. 이렇게 덕지덕지 덧달아 놓는 한자말이 무엇을 나타내는지 곰곰이 돌아볼 노릇입니다. 저런 말을 굳이 써야 할까요? 저런 말을 쓰지 않는다면 무덤을 앞에 두고 제대로 나타낼 말이 없을까요?

이제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이제 말 한 마디도 곰곰이 생각하고 찬찬히 헤아리며 가만히 살펴서 해야 할 때입니다. 몇몇 못난 사람만 나라를 어지럽히지 않았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전문용어라는 사슬'도 나라를 어지럽힌 줄 느낄 때입니다. 사회 곳곳에서 전문가라는 이름을 거머쥔 어른들은 '전문용어라는 주먹질'을 마구 휘두릅니다.

잘 알아야 합니다. 어른들이 저마다 전문가로서 전문용어를 쓰니, 어린이나 푸름이는 이런 어른을 고스란히 따라서 '끼리끼리 쓰는 말'을 자꾸 지어냅니다. 전문말이란 무엇입니까? 바로 전문가 사이에서 끼리끼리 쓰는 말입니다.

눈을 들어 이웃나라를 바라보아야 해요. 중국이나 일본을 넘어서 온누리를 바라볼 줄 알아야 해요. 온누리를 가로지르는 말이 '전문가 사이에서 끼리끼리 쓰는 말'이면 모두 평화나 민주나 평등하고 어긋납니다. 온누리를 아우르는 말이 '여느 삶자리에서 비롯한 쉽고 수수한 말'로 깊거나 넓은 전문 자리를 다루거나 나타낼 적에는 모두 평화나 민주나 평등으로 날개를 폅니다.

철학이든 의학이든 과학이든 공학이든 농학이든 정치이든 경제이든 교육이든 모두 매한가지입니다. 전문가라는 자리를 권력 아닌 평화·민주·평등으로 바라보는 눈이 있다면, 누구도 넘볼 수 없도록 담을 쌓는 전문말을 쓸 일이 없습니다. 누구나 쉽게 배우고 쉽게 나누면서 쉽게 즐길 살림말이나 삶말을 쓰겠지요.

책을 짓는 사람들은 '도비라·세네카' 같은 일본말을 쓸 줄 알아야 마치 '책 짓는 전문가'인 줄 잘못 압니다. 아무것도 아닌 쉽고 수수한 일본말인 '도비라·세네카'를 가볍게 털어내어 우리 삶자리에서 널리 쓰는 낱말로 고칠 줄 아는 작은 몸짓으로 거듭나야지 싶습니다. "모두 발언을 하겠습니다"가 아닌 "첫머리를 열겠습니다"나 "첫마디를 하겠습니다"나 "첫말을 펴겠습니다"나 "여는 말을 하겠습니다"처럼 고쳐쓸 줄 안다면, 때나 자리에 맞는 새로운 말씨를 한결 넓게 북돋우거나 가꿀 수 있습니다.

책등을 '책등'이라고,겉을 싸는 종이라면 '겉종이'라고 하면 될 텐데, 이런 이름을 왜 일본말로 써야 출판 전문용어로 여길까요?
 책등을 '책등'이라고,겉을 싸는 종이라면 '겉종이'라고 하면 될 텐데, 이런 이름을 왜 일본말로 써야 출판 전문용어로 여길까요?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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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우물을 판다"고 하지요. 전문가라는 자리는 '한우물'이 될 텐데, 오래도록 한우물을 파서 남다르거나 빼어나게 어떤 일을 이룬다 하더라도, 고인 물이 되면 그만 썩고 말아요. 말은 물과 같아서 넓고 깊게 흐를 적에 싱그러우면서 맑습니다. 고이는 한우물 아닌, 샘솟는 골짝물이자 흐르는 냇물이자 너른 바닷물이 될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어린이나 푸름이가 거친 말을 마구 쓰기에 걱정스럽다면, 먼저 어른 스스로 제 모습을 돌아볼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우리 삶터에서 어른들은 저마다 '전문말'이라는 수렁에 갇히지 않았을까요? 널리 쉽게 쓰면서 어깨동무하는 말이 아닌, 몇몇 사이에서 우쭐거리는 말에 사로잡히지 않았을까요?

시골 사투리를 귀여겨들어 보면 어느 고장에서 쓰는 사투리이든 따스하면서 넉넉하기 마련입니다. 손수 삶을 짓고 살림을 가꾸던 마음하고 눈길로 지은 말이 사투리이거든요. 처음에는 이웃 고장 사투리가 낯설 테지만, 시나브로 따스하며 넉넉히 스며들어요. 샘솟는 말이요, 흐르는 말이며, 너른 말인 사투리입니다.

이와 달리 전문가로 무리를 지어 외곬로 가두는 말은 새로운 넋이 샘솟지 못하도록 가로막거나 짓눌러요. 따스하거나 넉넉한 꿈이 자라지 못하도록 억누르거나 담을 쌓습니다. 우리가 여느 자리나 전문 자리 어디에서나 두루 쓰는 모든 말이 바야흐로 평화하고 민주하고 평등에 걸맞도록 저마다 가꿀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 함께 할 일입니다. 우리 모두 새롭게 함께 즐겁게 지어서 노래하듯 나눌 말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전라도닷컴 2018년 7월호에도 함께 싣습니다.



태그:#숲에서 짓는 글살림, #숲말, #한국말, #글쓰기, #우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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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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