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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위한 의미있는 '무엇'이 필요한가요? 계간지 <딴짓>의 발행인인 프로딴짓러가 소소하고 쓸데없는 딴짓의 세계를 보여드립니다. "쫄지 말고 딴짓해!" 밥벌이에 지친 당신을 응원합니다. [편집자말]
한때는 나를 규정하는 여러 단어 앞에 '여자'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이 싫었다. 학생이 아니라 '여학생'인 것이 싫었고 직원이 아니라 '여직원'인 것이 싫었다. 그럼에도 사회에서 나는 여대생을 지나 신입여직원, 여사원으로 불렸다. 여류작가를 지망하는 여기자로 지내기도 했다. 박초롱이 아니라 여직원 박초롱이었다. 여자라는 성별은 이름보다, 직업보다 먼저 나를 수식했다.

'여자'라는 수식어에 거부감이 든 것은 나를 지키고 싶은 본능이었을까. 나를 꾸미는 단어에 여자가 들어가는 것이 사회적으로 불이익이라는 것을 내심 알고 있었던 걸까. 얼마 전 한 대기업 입사에서 남자직원들의 점수를 고의로 높게 매겼다는 뉴스를 접했다. 성비를 정해놓고 뽑았다는 회사도 있었다. 전혀 놀랍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던 것을 기사로 확인했을 뿐이었으니까.

한창 채용 면접을 보러 다니던 2010년, 1차 합격자에는 과반수를 넘었던 여자들이 2차 임원면접에서 우수수 떨어지는 걸 여러 번 목격했다. 최종면접장에서 '여자들 스펙이 높아 남자가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지 않느냐'라는 질문을 받은 적도 있었다. 입사 후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회사에서는 암묵적으로 '부서에 여자는 한 명'이라는 룰이 있었다. 이유를 묻자 당시 상사는 이렇게 답했다.

"여자는 꽃이니까. 둘이 있으면 싸울 수도 있고."

그 말에 나는 무어라 제대로 대꾸하지도 못했다. 기껏해야 이런 말을 해주었더라면 통쾌하지 않았을까 이불 속에서 부질없는 상상만 계속했다. 무례한 사람에 맞서는 건 웬만한 내공이 필요한 일이란 것도 몰랐다. 순발력과 재치, 당당함과 노련함마저 있어야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내가 제대로 된 의식을 갖추고 있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어느 부분이 잘못되었는지, 왜 잘못되었는지 몰랐다.

회사에서 여자를 정원의 10%만 뽑으면 10% 안에 들어가려 기를 썼다. 부서에 여자가 한 명이라기에 그 한 명에 들기 위해 다른 여자들과 경쟁했다. 나보다 소위 '스펙'이 약한 남자들이 왜 부서에 더 많은지 문제를 제기하지도 않았다. 약자이면서 약자인 줄 몰랐다. 비겁하게 타협하면서도 내게 불리한 사실만 외면했다.

나뿐만은 아니었다. 본사의 몇 안 되는 좋은 자리를 두고 여자들끼리 카르텔이 형성되기도 했다. 좋은 자리를 서로 교환함으로써 각자의 좋은 지위를 유지하는 암묵적인 연합이었다. 글을 쓰는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얼굴이 붉어진다.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꽃'으로 살기를 포기하다

 문화 기획 강의 중
 문화 기획 강의 중
ⓒ 박초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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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하나의 거대한 조직에 몸을 의탁하지 않고 스스로의 능력만으로 살아남고 싶어 회사를 나왔다. 튼튼한 밥줄은 자기계발을 게을리하게 했다. 회사 밖으로 한 발자국만 나오면, 명함에서 회사 이름에 밑줄을 그으면 누가 내게 일을 맡길까? 의문이었다.

든든한 울타리 안에서 나는 점점 유약해졌고 그 안에 있는 한 앞으로도 개인으로서 능력치는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여자를 '꽃'이라 칭하며 '보호'해주는 회사에서는 더욱 그랬다. 타이틀이 아니라 실질적인 능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조직을 떠나 한번에 여러 직업을 갖는 프로딴짓러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계간지 발행인이자 축제 기획자, 책 읽는 술집의 주인, 프리랜서 마케터로 산다. 독립적으로 생활을 꾸려가고 있는 지금, 과연 내게 '여자' 타이틀은 떼어졌을까? '여자 프리랜서'가 아니라 '프리랜서'로 살아가고 있는 걸까?

안타깝게도 대답은 '아니오'다. 프리랜서로 산다고 해서 사회적으로 갖는 여자의 지위까지 떨구어 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프리랜서가 돼도 떨어지지 않는 '여자' 꼬리표
 
 성산동 책 읽는 술집 <낮섬>
 성산동 책 읽는 술집 <낮섬>
ⓒ 박초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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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무슨 술집이야. 남자친구가 뭐라고 안 해?"
"무슨 직업이 그렇게 많아? 결혼하고 편하게 살면 안 돼?"
"몸 쓰는 일도 하게? 여자가 체력이 되겠어?"

책 읽는 술집을 열면서 많이 들었던 질문 중 하나는 이것이었다. 남자친구가 괜찮대? 처음 그 질문을 들었을 때는 질문의 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무엇이 괜찮다는 거지? 후에 대화의 맥락을 이해하고 나서는 헛웃음이 났다.

남자친구가 왜 괜찮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지는 차지하고라도 밥벌이에 대해 남자친구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지도 의문이었다. 불법도 아니고 사회에 해를 끼치는 일도 아닌데 말이다. 질문을 하는 사람 중 상당수는 여자였다.

결혼하고 편하게 살면 안 되냐는 질문은 나를 사랑하고 아끼는 많은 사람에게 꾸준히 들어왔다.

"솔직히 친동생 같아서 말하는 건데 말이야. 이렇게 힘들게 일하지 말고 결혼하면 회사 그만둬."

이 말은 나를 정말 아끼던 팀장님께서 해주신 말이었다. 팀장님이 나를 아끼는 마음이 진심이라는 것은 지금도 알고 있다. 팀장님은 실제로 친동생에게도 결혼 후 퇴사를 종용했다.

"그만둘 거면 결혼하고 그만둬야지. 그래야 나도 마음이 놓이지."

이 말은 사랑하는 아빠가 해주신 말이다. 아빠는 나를 어떤 남자에게 '맡기지' 않는 이상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하지 않으시는 모양이다.

누군가 나를 사랑한다고 해서 내게 일방적인 조언을 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애정을 받는 이 역시 진심만 알아주면 될 뿐 그 조언을 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누군가에게 맡겨지고 싶지 않다. 내 밥을 내 손으로 벌어 먹고살아야 당당할 수 있을 것 같다. 게다가 나를 '먹여 살릴' 배우자는 무슨 죄란 말인가? 그는 밥을 벌어먹고 사는 게 안 힘들까? 팀장님은, 아빠는 안 힘들었을까?
 축제 <딴짓박람회> 총괄 기획
 축제 <딴짓박람회> 총괄 기획
ⓒ 박초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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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가장 큰 고민은 따로 있다. 바로 '여자 프리랜서'로서 40대에도, 50대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다. 축제 기획, 마케팅, 카피라이팅, 어느 분야에서도 중년의 여자 프리랜서를 찾기란 쉽지 않다.

축제와 공연기획 분야에는 젊은이들이 많다. 40대 이상의 기획자나 활동가는 거의 없다. 있다고 해도 총감독이나 실장처럼 위에서부터 내려와 자리를 맡은 분들이다. 클라이언트는 감각 있는 젊은이를 원한다. 나이가 든다 해도 조직에 계속 있을 수 있다면 괜찮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지원업무를 맡는다. 허나 나이든 프리랜서는 갈 곳이 없다.

마케팅도 마찬가지다. 프리랜서 마케터로 클라이언트가 찾는 사람은 감각 있고 외주비가 비교적 저렴한 20대이거나 노하우와 경력 있는 30대다. 이력이 화려해도 40대, 50대의 마케터를 반기는 회사는 별로 없다. 소위 '아줌마'는 이 분야에서 더 소외된다. 지금 들어오는 일거리가 40살이 넘은 후에도 계속 들어올까?

아마 40살이 넘어도 내가 직접 발행하는 <딴짓> 매거진 활동은 계속할 수 있을 것이다. 책 읽는 술집이 잘 된다면 그때도 누군가에게 술과 책을 권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느 것도 확신할 수는 없다. 그믐에 손전등 하나 들고 한 걸음씩 나아가는 기분이다. 기껏해야 한 걸음, 잘하면 두 걸음 앞이 보일 뿐이다.

 사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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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초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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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이번엔 지금, 나의 안위만을 위해 살지 않으려 한다. 꽃이 되어 꽃들의 전쟁을 하느니 잡초가 되어 아무 곳에서나 마구 자라겠다. 프리랜서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게다가 '여자' 프리랜서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프리랜서의 근무 환경 개선뿐 아니라 성평등 의식도 개선되어야 할 테니 말이다.

40대, 50대에도 멋있는 중년의 프로딴짓러로 살 수 있을까? 한번 실험해보려 한다. 그렇게 살다 보면 손전등을 들고 한 걸음씩 앞을 더듬고 있는 다른 누군가를 만날지도 모를 테니까. 그럼 이렇게 살아도 괜찮다고, 괜찮았다고 누군가에게 말해줄 수 있을지도 모를 테니까. 살다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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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밥 벌어 먹고 사는 프리랜서 작가 딴짓매거진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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