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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우리 집에서 개나 고양이를 기른 적은 없습니다. 우리 집에서 따로 길러 본 이웃 숨결이 있다면, 마을 앞 풀숲에 놀러가서 잡은 미꾸라지라든지, 바닷가에 낚시를 가서 낚은 망둥이라든지, 웅덩이에서 건진 송사리가 있습니다. 금붕어를 장만하거나 거북이를 장만해서 기른 적도 있어요.

그런데 이런 이웃 숨결을 집에 두어 기르면서 두 마음이 엇갈렸습니다. 하나는 사람하고 다른 몸인 이웃 숨결이 살아가는 모습을 늘 지켜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다른 하나는 이웃 숨결을 작은 유리상자에 가두어 꼼짝없이 다른 일은 할 수 없게 막았을 뿐 아니라, 이웃 숨결을 내내 지켜보니 미꾸라지나 거북이로서는 조용하거나 차분히 지낼 틈이 없습니다.

미꾸라지 망둥이를 잡으며 놀던 아이는 어느덧 자라 어른이 됩니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는 동안에도 미꾸라지 망둥이를 잡으며 놀 수 있었는데, 어른이 되어 살아가는 터전인 시골에서 갖은 이웃 숨결을 새삼스레 만납니다. 마당 쪽으로는 처마 밑에 제비집이 있어, 제비가 깐 새끼 여러 마리가 고개를 빼꼼 내밀며 먹이 달라며 어미 제비를 부릅니다. 뒤꼍 쪽으로는 날마다 다른 새가 찾아들어 새벽부터 일찌감치 온갖 노래를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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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극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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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흰둥이>(궈나이원·저우젠신, 북극곰, 2018)를 폅니다. 말은 한 마디도 없이 오롯이 그림만 흐릅니다. 처음에는 잠든 할아버지 얼굴이 나오더니, 할아버지는 이내 아이로 모습이 바뀌고, 아이가 된 할아버지는 흰둥이를 안고 어르면서 뛰어놉니다.

아, 그렇군요. 할아버지한테도 아이였던 무렵이 있고, 오늘 할아버지는 늙고 지친 몸으로 아주 느리게 걷지만, 이렇게 방방 뛰면서 신나게 달리기를 하던 무렵이 있었네요. 다만, 오늘 할아버지는 곁에 아무도 없습니다. 자그마한 집에 홀로 있습니다. 이러던 어느 날 꿈에서 '어릴 적 놀이동무인 흰둥이'가 나타났고, 흰둥이를 꿈에서 만나면서 시나브로 어린 몸뚱이로 달라졌어요.

그림책 <흰둥이>는 '오늘 할아버지인 몸이지만, 어제 어린이인 몸으로 흰둥이라는 멋진 놀이동무하고 지낸 아름답고 즐거운 하루'를 조용히 보여줍니다. 흰둥이가 곁에 있어 얼마나 신났는지, 흰둥이하고 마음으로 이야기하며 얼마나 기뻤는지, 좋은 일 궂은 일 함께하면서 어깨동무하는 흰둥이가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찬찬히 보여주는데, 그만 흰둥이가 차에 치여서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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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서 한창 즐겁게 뛰놀던 할아버지는 문득 잠에서 깹니다. 아마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듯해요. '아, 그래, 꿈이지. 흰둥이는 벌써 옛날에 죽었지. 흰둥이는 오늘 내 곁에 없지. 나는 혼자 있는 몸이지.'

아무 힘이 없이, 또 아무런 바람이 없이, 터덜터덜, 또는 어기적어기적, 아주 느릿느릿 마실을 나섭니다. 마을 쉼터에 앉아서 해바라기를 합니다. 그런데 이때 놀라운 일이 생겨요. 아주 자그마한 떠돌이개 한 마리가 할아버지 앞에 나타나요.

그리고 할아버지만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자그마한 새끼 떠돌이개는 갑자기 어디에서 나타났을까요? 그리고 다른 사람도 많은데 왜 할아버지 앞에 서서 할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볼까요? 할아버지는 새끼 떠돌이개를 어떻게 마주할까요? 할아버지 앞날은 어떻게 될까요? 달라질까요?

나는 모든 아이들의 성장 과정에는 흰둥이 한 마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동물을 어떻게 돌보아야 하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되고, 이는 타인에게도 마찬가지가 되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자연히 한 줄기 부드러운 마음이 자라나는 거지요. (글쓴이 말/40쪽)
슬픔은 나쁜 것일까요? 그럴지도요. 하지만 결국 세월은 우리에게 가르쳐 줄 거예요. 슬픔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요. 슬픔은 다시 연민의 모습으로 다가올 겁니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과거의 슬픈 자신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다시 배우게 하고, 훨씬 나은 자신을 볼 수 있게 할 겁니다. (그린이 말/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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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흰둥이>를 빚은 두 어른은 책끝에 몇 가지 말을 붙입니다. 이야기를 엮은 분은 '한 줄기 부드러운 마음'을, 그림을 빚은 분은 '슬픈 어제를 받아들여 새로운 모레로 나아가는 길'을 들려줍니다.

이 그림책을 할아버지가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조용조용 넘기면서 '말'을 새록새록 붙여서 읽어 준다면 더없이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또는, 아이가 할아버지 품에 안겨서 또박또박 이쁜 '말'로 할아버지한테 새롭게 이야기를 들려주어도 아름다울 테고요.

덧붙이는 글 | <흰둥이>(궈나이원 기획 / 저우젠신 그림 / 북극곰 / 2018.5.19.)



흰둥이

궈나이원 기획, 저우젠신 그림, 북극곰(2018)


태그:#흰둥이, #그림책, #궈나이원, #저우젠신, #어린이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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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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