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400만 불탑이 존재하는 불교국 미얀마를 상징하는 랑군 소재의 세다곤 파고다. 파고다 진입시 신발과 양말을 벗고 들어가 순례해야함.
▲ 세다곤 파고다 400만 불탑이 존재하는 불교국 미얀마를 상징하는 랑군 소재의 세다곤 파고다. 파고다 진입시 신발과 양말을 벗고 들어가 순례해야함.
ⓒ 김재우

관련사진보기


공항에 영접 나온 남자들이 론지라 부르는 미얀마 식 전통 치마 입고 쓰리퍼를 신고 있다. 놀랍게도 미얀마 식 정장이다.  여인들이 얼굴에 하얗게 다나까(다나까란 나무에서 채취한 전통적 썬 크림 겸용 천연 화장품) 바르고 밍글라바(안녕하십니까)하고 먼저 인사를 한다. 부처와 같은 미소를 지닌 사람들이 사는 땅 미얀마. 세다곤 파고다로 상징되는 400만개 불탑의 나라 미얀마.

미얀마의 현대 정치사는 아웅산 수치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아웅산 수치는 미얀마 민주화 투쟁의 아이콘이자 국제적인 명망을 얻은 인권 운동가이다. 군부 통치 하에 있었던 미얀마에서 아웅산 수치는 국민들의 상상을 초월한 절대적 지지를 받는 정치가이며 미얀마 국민의 희망이자 `어머니`이다. 그러나 지금 아웅산 수치의 미얀마의 민주주의는 어디쯤 와 있는 것 일까.밍글라바! 미얀마? 밍글라바! 미얀마 민주주의?

미얀마는 건국의 영웅 아웅산을 중심으로 투쟁한 결과 제국주의 영국과 일본을 물리치고 1945년 6.19일 식민지에서 독립했다 .그러나 건국의 영웅 아웅산은 살해되고 혼란을 겪으며 미얀마는 군부 구데타로 철권 군부통치에 들어간다. 여기까지 일본의 식민지에서 독립한 대한민국의 초기 혼란과 오버랩 된다. 그러나 대외개방의 대한민국과 달리 군부 통치의 미얀마는 대외적으로 쇄국 정책과 대내적으로는 불교와 사회주의가 결합한 불교식 사회주의를 채택한다. 독립 영웅 아웅산의 딸인 아웅산 수치는 영국인과 결혼해 두 아들을 두고 정치에 관여 없이 평범하게 살았다.

그러나 어머니의 간병을 이유로 1988년 귀국한 그녀는 미얀마의 현실을 두 눈으로 목격하면서 정치에 뛰어들게 된다. 이때부터 아웅산 수치는 군부에 의해 가택연금 투옥 등 고난의 세월을 보내면서 민주화 투쟁에 생애를 바치게 된다. 그 결과 그녀는 1991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게 되고 이를 계기로 국제적 관심과 민주화 투쟁의 강도는 한층 강해졌다

미얀마는 한반도의 약 3배(676,577 km2)나 되는 큰 국가이다. 버마족이 다수(70%) 이고 카친 카렌 친 꺼야 몬 리카인 등의 130여 소수민족이 25% 기타 중국 인도계가 5%다. 다민족 국가여서 끊임없이 민족 간의 갈등과 투쟁이 지속되고 있다.

5400만의 인구 중 불교도가 89.4%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미얀마의 남자들은 평생에 한 번은 승려 생활을 경험해야 한다. 미얀마는 광물 및 천연 가스등 자원이 풍부해 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국가일 뿐만 아니라 군사적 전략적 요충지다. 1886년 영국의 식민지가 되어 60여 년간 착취당했고 1945년 독립이 되었으나, 1962년 다시 구데타로 네윈의 군사 정권이 들어서 쇄국정책을 폈다.

미얀마, 군사 정권은 끝냈지만...

1988년 대학생과 승려들이 주축이 된 민주화 투쟁 이후 몇 번의 민주화 운동이 있었으나  총칼에 의해 진압되었다.1990년 5월에 30년 만에 치러진 자유선거에서 NLD(민족 민주 연맹)이 국회 492석중 392석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두지만, 군사정권은 선거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미얀마의 민주주의는 거의 기대할 수 없는 것 같았다.그러나 아웅산 수치의 불굴의 민주화 투쟁과 국제 사회의 압력에 힘입어 2011년 개방 정책을 채택할 때까지 미얀마는 식민지와 군부 독재를 합쳐 거의 백 년 이상 국제 사회와 고립되어 있었다.

테인세인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투옥된 민주 인사를 석방하고 SPDC(국가 평화 발전 위원회)를 해체하여 겉으론 군사 정권을 끝냈다. 이러한 민주화 제스처로 그동안 미얀마에 가해지던 국제 제제도 조금씩 풀리고 민주화의 희망은 더욱 커졌다. 연 7%대의 높은 경제 성장도 지속되었다.NLD가 합법화 되고 2012년 아웅산 수치가 참여한 NLD가 보궐 선거에서 궐석 45석 중 43석을 얻는 압도적 승리를 한다.

아웅산 수치에 대한 미얀마 국민들의 지지는 절대적이었으며 미얀마 국민들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대선에서 아웅산 수치가 대통령이 되는 것은 아주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여졌다. 그러나 아웅산 수치가 대통령으로 가는 길에는 걷어내기 힘든 암초가 놓여있었다. 2015년 NLD는 상하 양원에서 압도적 과반수를 확보하여 당의 후보가 대통령이 되기에 충분했지만 미얀마 헌법 제 59조에 직계 가족이 외국 국적 보유 시 대통령 선출 불가 조항이 있고 수치의 두 아들이 영국 국적이기 때문에 대통령 자격을 갖추지 못했었다

여기에서 미얀마의 정치제도를 살펴보면 미얀마는 상하원 합동 회의에서 대통령을 선출하는 간선제를 채택하고 있다. 헌법은 군총사령관에게 연방의원의 25%와 국방 ,국경 ,내무 장관이라는 주요 장관을 임명하는 권한을 부여하는데 의석의 25% 지명권이라 하는 것은 미얀마 헌법 개정이 연방의원 75%의 동의가 필요한 만큼 군부의 동의 없이는 개헌이 불가능한 개헌 저지선이라는데 큰 의미를 가진다. 박정희의 유신 정권 때 유정회를 연상케 한다. 또한 비상사태 선포 등 주요사항은 국가 방위안보 위원회의 협의가 필요한데 이 위원회에는 대통령뿐만 아니라 군 총사령관 부 총사령관 국방 국경 내무 장관 및 군부 측 임명 부통령이 등이 포함되어 있다. 즉 중요 국정의 결정에 아직도 군부의 입김이 막강하다는 것이다.

결국 2016년 3월 아웅산 수치의 측근인 틴쪼(htin kyaw) 가 대통령이 되고 아웅산 수치는 국가 고문의 자리를 만들어 실제 정치에 참여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몇 가지 의문들이 있다. 첫째 압도적 과반을 차지한 아웅산 수치는 대선에 앞서 대통령 출마를 막는 헌법 조항을 개정하려 최선을 다했는가, 둘째 25%의 군부의 의원 지명권을 철회하가나 변화시키려는 노력은 했는가, 셋째 이렇게 막강한 군부를 설득하거나 타협해서 이 독소적 헌법 조항을 없애려 노력했는가, 넷째 헌법 조항 개정의 노력이 군부의 반대로 무산 되었는가

아마도 아웅산 수치는 셋째까지의 노력을 다 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넷째의 의문처럼 군부의 반대로 헌법 독소 조항 개정에 실패했을 확률이 크다. 그러할 경우 미얀마는 자유 총선 및 민주적 절차에 의한 문민 대통령 선출 등 민주주의가 이뤄진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도 군부의 힘에 휘둘리는 반쪽 민주주의가 실행되고 있다고 봐야한다

노벨 평화상 인권상등 수많은 상을 수상하고 미얀마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인권 평화 지도자로 추앙 받는 아웅산 수치와 미얀마 민주주의의 딜레마는 로힝야 사태에서 엿볼 수 있다.

로힝야 족에 대한 탄압과 인권 유린의 역사는 매우 깊고 복잡하다. 로힝야 사태 해결을 위해서는 고도의 정치력이 필요하다.국제적 협력도 절실하다.  2017년 8월 리카인 주에서 촉발된 로힝야 폭력사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국제적 압력이 가해지고 유엔에서는 이 사태를 인종청소라 부르고 있다. 유엔이 주장하는 인종청소를 부인하고 로힝야 송환절차를 밟겠다는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뱅글라데시로 넘어간 70만 로힝야 중 불과 몇 백 명만 미얀마로 돌아왔을 뿐이다. 아웅산 수치의 평화 민주 인권의 이미지는 훼손되고 심지어 노벨 평화상을 박탈해야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왜? 아웅산 수치는 로힝야 사태에 왜 눈을 감고 있을까. 미얀마는 다민족 국가 연방이고 버마족이 70%를 차지하는 주류이고 불교도가 거의 90%를 차지하는 국가이다. 아웅산 수치와 그녀의 민주 정부의 선의에도 불구하고 소수인 이슬람 대한 명백한 탄압이며 미얀마의 불교 우선주의와 군부와 군부 출신의 25% 의원들의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하고 있으리라고 본다. 아웅산 수치 홀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엔 그녀의 힘이 부족해 보인다.

이에 국제 사회는 아웅산 수치에게 집중되는 비난 보다는 미얀마 군부에 압력을 가해야한다.겉으로는 군부독재에서 민주주의가 완성된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 미얀마의 민주주의는 갈 길이 멀다. 두말 할 나위 없이 완전한 민주주의의 달성은 전적으로 미얀마 국민에 달려 있지만. 아웅산 수치도 완전하게 군부를 장악해 민주주의를 완결하는 정치력을 보여줘야 한다. 아웅산 수치가 스스로 대통령 자리에 올라갈 수 없도록 한 헌법 조항이 폐지되지 못한 거만 보아도 아웅산 수치의 권력은 외부에서 보는 것과 같이 완전한 것이 아닐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미얀마의 민주주의가 후퇴할 수 있는 개연성도 있다. 아웅산 수치와 그녀의 정부가 로힝야 사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웅산 수치의 권력이 완전하지 못한 증거이며 미얀마 민주주의의 딜레마라고 할 수 있다.

아직도 아웅산 수치에 대한 국민 지지는 압도적이다. 당분간 그녀 없는 미얀마와 그녀 없는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상상할 수 없다. 교활한 미얀마 군부가 아웅산 수치를 이용하고 있는지 모른다. 군부의 25%의 의원 지명권의 개정과 대통령 자격 독소 조항 폐지될 때까지는 미얀마의 민주주주의가 완성되었다고 말 할 수 없다.  당연히 미얀마 국민과 아웅산 수치의 민주주의에 대한 헌신을 대내외적으로 다시 한 번 보여 줄 때다. 한편 아웅산 수치와 미얀마 민주주의 딜레마를 극복하고 성숙한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유엔과 국제 사회가 미얀마의 민주주의와 인권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보여주고 아웅산 수치와 국민에 응원을 보내야할 것이다. 밍글라바! 미얀마! 밍글라바! 미얀마 민주주의!


태그:#아웅산 수치, #미얀마 민주주의 , #로힝야 사태, #밍글라바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맑고 아름답고 향기로운 세상을 원합니다 일상이 평화롭고 사람이 사람으로 존중되는 세상이 열리길 원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