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내에서는 서서히 올림픽, 월드컵을 개최하는 것을 꺼리는 여론도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이는 개최 비용이 막대해지는 이유도 있지만, 동시에 국가 대항전을 통해 국가주의를 조장하는 것에 대한 반감과 비판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주의의 대표적인 폐해가 제국주의와 나치즘이다. 필자도 국가주의에 대한 경계심을 가지고 있는 편이라 항상 이를 염두에 두고 올림픽이나 월드컵 경기를 본다. 특히나 월드컵을 볼 때는 한국을 응원하려는 목적보다는 해외 구단에 활동하고 있는 선수 중에 팬이 될 사람을 찾아낼 목적으로 관람하기 때문에 경기를 냉정하게 보는 편이다.

이 두 관점 때문에 이번 한국 독일전에서 모든 언론에서 16강을 갈 가능성을 계산할 때 필자는 현실과 타협한 기대 정도로 무승부 정도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2014년 월드컵 우승팀에다 브라질을 7-1로 꺾은 독일을 2골 이상으로 이기고, 동시에 멕시코가 스웨덴을 이기길 바라면 된다? 노력과 우연이 모두 만족하는 경우를 만족해야 한다니. 그전에 필자는 '한국이 2-0으로 이길 확률보다 7-0으로 질 확률이 더 높다'는 조롱에 가까운 예측들에도 동의할 만큼 16강은 고사하고 독일을 이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더 컸다. 피파 순위 1위 독일과 57위 한국의 간격은 객관적으로 실력에서 명백한 차이가 났다. 공은 둥글다고 하지만 독일 선수들에게 공은 정육면체 같았다.

[월드컵] 독일 침몰시킨 대한민국 (카잔=연합뉴스) 한종찬 기자 = 27일(현지시간) 러시아 카잔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3차전 한국과 독일 경기에서 손흥민이 후반 추가시간에 추가골을 성공시킨 뒤 환호하고 있다.

▲ 독일 침몰시킨 대한민국 (27일(현지시간) 러시아 카잔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3차전 한국과 독일 경기에서 손흥민이 후반 추가시간에 추가골을 성공시킨 뒤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 정도의 기대감을 지닌 채 경기를 보는데 믿기지 않은 결과가 내 눈앞에 펼쳐졌다. 경기가 끝난 경기장을 걸어 다니는 선수들을 비추는 카메라, 믿기지 않아 화면을 멍하니 한참을 바라봤다. 독일이 조별리그 순위 꼴찌라고? 한국이 2골을 득점했다고? 하루가 훌쩍 지나 이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그 짜릿함은 남아있다. 국가주의에 경도된 것일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경기 뒤 얻은 깨달음은 국가주의를 빼더라도 성립했기 때문이다.

월드컵, '기적'과 '불행'이 공존하는 쇼

스포츠에서 국가주의를 빼고서 남는 감동 역시 긍정적으로 보는 편은 아니다. 올림픽, 선수권대회와 같은 개인전은 개인의 실력을 조명하여 개인의 노력이 유의미함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쇼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개인이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성공담'만'을 보여주는 희곡 '쇼'에 가깝다. 반면 월드컵이나 EPL, 슈퍼볼과 같은 단체전은 개인의 실력을 넘어서 우연과 기적이 '때때로' 일어난다. 그래서 이 현대 사회에서 어쩔 수 없이 때때로 마주할 수밖에 없는 기적과 불행을 보여주는 희극과 비극이 '공존'하는 쇼이다. 이러한 쇼는 현실의 고통을 가리는 역할을 한다.

필자가 한때 열심히 EPL을 봤던 이유 역시 현실에서 도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상에서는 냉정하게 현실적이란 이름 아래 승률을 따지지만, 내가 응원하는 팀은 언제나 이기기를 바란다. 때때로 그러한 기적 같은 승리가 일어나 나의 일상에 소소한 위로가 되어 다시 큰 기적이 없어도 내 평범한 하루하루를 합리화시킬 힘을 주었다. 내 현실에는 기적이 별로 일어나지 않아도 괜찮았다. 다만 내 앞의 경기를 보며 펼쳐질 기적을 기대할 뿐이었다.

모두 기적을 바라다

국가주의를 떠나서 16강이라는 기적에 국민들이 희망을 걸었던 이유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큰 꿈을 꾸라고 강요당하지만, 대부분 현재의 먹고사니즘에 치여 그러기 힘들다. 영화에서, 뉴스에서, 강연에서, 자기개발서에서, 스포츠에서조차 기적이 있다고 말하지만 그러한 기적은 소수에게만 일어난다. 그 현실을 아는 현대인은 그 허상은 위로로 삼을 뿐 실제로 여기지 않는다. 그래서 이제는 유치원생들도 장래희망으로 공무원, 선생님, 대기업 회사원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오늘도 로또를 사고, 토토를 사고, 주식을 사고, 비트코인을 사고, 땅을 사서 내 힘이 아닌 다른 무언가에게 기적을 건다. 그래서 객관적일 것 같은 언론들이 이번에도 경우의 수를 계속 계산하며 태극전사들을 응원한다. 현실적이라는 이름을 수없이 들먹이며 주변인들의 꿈을 빼앗던 무신론자도 경기를 보면 슛 한 발에 탄성과 괴성을 오가며 기적을 간절히 바라는 유신론자가 된다.

[월드컵] 손흥민 1%의 기적 (카잔=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 27일(현지시간) 러시아 카잔 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3차전 한국과 독일의 경기에서 손흥민이 골을 넣고 있다. 이날 경기에서 한국은 독일에 2-0으로 승리했다.

▲ 손흥민 1%의 기적 27일(현지시간) 러시아 카잔 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3차전 한국과 독일의 경기에서 손흥민이 골을 넣고 있다. 이날 경기에서 한국은 독일에 2-0으로 승리했다. ⓒ 연합뉴스


수많은 사람이 태극전사에게 본인에게선 잃어버렸던 기적을 거는 것이다. 언제 우리가 이렇게 간절히 기적을 바라보겠는가. 그렇게 전형적인 쇼에 빠져 대한민국은 다시 동심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동심에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2002년의 문구를 스스로 불러들였고, 놀랍게도 불가능할 것 같았던 그 기적적인 2-0 승리를 이뤄냈다. 그러나 2002년과는 달랐다. 16강 진출에는 실패한 것이다.

기적은 없었지만, 행복하다

멕시코는 기적의 주인공이 되고, 독일은 비극의 주인공이 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 사이에서 우리는 희극도, 비극의 주인공도 아닌데 신기하게도 행복했다. 주인공도 아닌데 우리는 또 다른 결과를 만들어냈다. 16강에 진출하지 못하면 불행해져야 할텐데 만족하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다른 결과가 우리는 낯설다. 태극전사들의 경기와 노력에 박수갈채를 보냈고 우리는 2002년과 다른 결과를 맞이했음에도 행복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바로 기적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1%의 희망이 다 이뤄지진 않았지만 매우 낮았던 승리의 가능성이 이뤄진 데 우리는 만족한 것이다. 기적을 믿는 것은 필요하지만, 기적보다 더 필요한 것은 나를 믿는 것 그리고 그 기적이 없어도 내가 마주했던 순간들에 최선을 다해 후회가 없다면 행복할 수 있음을 우리는 태극 전사들에게 배웠다.

[월드컵] 돌파하는 손흥민 (카잔=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27일(현지시간) 러시아 카잔 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3차전 한국과 독일의 경기. 한국 손흥민이 드리블을 하고 있다.

▲ 돌파하는 손흥민 27일(현지시간) 러시아 카잔 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3차전 한국과 독일의 경기. 한국 손흥민이 드리블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꿈이 크면 그 꿈이 깨져도 그 조각이 크다'는 말을 품고 살았던 과거의 필자는 이미 현실적이라는 단어에 맞춰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필자는 1%의 희망이 이뤄지지 않았을 때 실망할 것에 대비하여 10%의 희망 역시 꿈꾸지 않았다. 오롯이 기적을 바라지 않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현실적이라는 이름 아래 나태로 변모하지 않을 필요도 있을 것이다.

16강 진출은 기적이 없어 좌절됐지만, 태극 전사들은 우리에게 행복을 선물했고, 대부분 우리의 삶도 이번 경기와 비슷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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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독일 러시아월드컵 기적 불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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