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한국 축구가 16강에 버금가는 대단한 성과를 만들어냈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은 27일 독일의 카잔 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조별리그 F조 최종전에서 후반 추가시간에 터진 김영권(광저우 헝다)과 손흥민(토트넘)의 연속골에 힘입어 독일을 2-0으로 꺾었다. 이로써 한국은 1승2패 승점3점, 골득실 0을 기록하며 독일(승점3, 골득실-2)을 최하위로 밀어내고 F조3위로 대회 일정을 마감했다.

같은 시간 예카테린부르크 아레나에서 열린 멕시코와 스웨덴의 경기에서 스웨덴이 3-0으로 승리하면서 사실 한국이 16강에 진출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일찌감치 사라진 상태였다. 하지만 한국은 1994년 미국월드컵, 2002년 한일 월드컵에 이어 세 번째 도전 만에 월드컵 무대에서 독일에게 승리를 거두는 기쁨을 누렸다.

'캡틴' 기성용 없음에도 독일과 대등한 승부를 펼쳤던 전반


한국전쟁 직후에 출전했던 1954년 스위스 월드컵을 제외하면 한국은 지난 8번의 월드컵 도전에서 조별리그를 통과한 경우는 2002년과 2010년, 단 두 번에 불과했다. 나머지 6번의 월드컵에서는 단 3경기만 치르고 대회를 마쳤다.

한국이 지난 8번의 월드컵에서 승점 1점도 따지 못하고 '빈 손'으로 돌아온 대회는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이 마지막이었다. 이후 한국은 아무리 강한 팀들과 한 조에 묶여도 최소 한 번 이상의 무승부 경기를 만들며 투혼을 발휘하곤 했다. 하지만 이번 대회는 이미 스웨덴과 멕시코를 상대로 승점을 따내지 못한 채 마지막 경기에서 FIFA랭킹 1위이자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우승국 독일을 상대했다.

한국은 멕시코전에서 주장 기성용(스완지시티)이 종아리 부상을 당해 손흥민(토트넘)이 주장 완장을 차고 장현수(도쿄FC)와 정우영(빗셀 고베)이 수비형 미드필더에 배치됐다. 독일은 월드컵에서 통산 10골을 기록한 토마스 뮐러 대신 '제2의 미하엘 발락'으로 불리는 레온 고레츠카(이상 바이에른 뮌헨)가 오른쪽 측면공격수로 선발 출전했고 최전방에는 기동력이 좋은 1996년생 유망주 티모 베르너(라이프치히)를 배치했다.

한국은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이 경기를 반드시 이겨야만 16강에 진출할 수 있는 상황 자체가 낯선 독일을 상대로 물러서지 않고 적극적인 압박을 펼쳤다. 한국은 전반14분 코너킥 상황에서 마크 훔멜스(바이에른 뮌헨)의 헤더를 조현우 골키퍼(대구FC)가 안전하게 막아냈고 3분 후에는 정우영의 위력적인 무회전 프리킥으로 경기 첫 유효슈팅을 기록하며 반격을 했다. 한국은 전반 23분에도 이용(전북현대)의 크로스에 이은 손흥민의 발리슛으로 독일을 위협했다.

이날 한국은 일방적인 볼 점유율 차이에도 독일에게 크게 밀리지 않고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한국은 전반 32분 마르코 로이스(도르트문트)에게 돌파에 의한 중거리슛을 허용했지만 한국 수비에 맞은 공이 다시 로이스의 팔에 맞으며 위기에서 벗어났다. 한국은 전반 38분에도 코너킥 상황에서 실점 위기를 맞았지만 조현우 골키퍼가 몸을 날리는 수비로 공을 따냈다. 한국은 추가시간 메수트 외질(아스날)의 마지막 슛까지 막아내며 0-0으로 전반을 마쳤다.

추가시간에 터진 김영권과 손흥민의 연속골


정우영의 과감한 중거리 슛으로 포문을 연 한국은 후반 2분 독일의 고레츠카에게 프리 헤더를 허용했지만 조현우 골키퍼의 엄청난 선방으로 위기를 모면했다. 하지만 독일은 끊임 없이 슛을 시도하며 한국의 문전을 계속 두드렸다. 한국은 전반 10분 구자철(아우크스부르크)이 부상을 당하면서 황희찬(잘츠부르크)이 교체 투입됐고 독일 역시 마리오 고메스(슈트트가르트)를 투입하며 공격을 보강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초조해지는 쪽은 독일이었다. 독일은 후반 17분 뮐러를 투입했지만 한국은 조급한 독일을 상대로 스피드를 앞세워 여러 차례 좋은 반격 기회를 만들었다. 특히 후반 20분 문선민이 독일 수비수 여러 명을 제치고도 마무리 슛을 하지 못한 상황은 대단히 아쉬웠다. 독일은 마지막 교체카드로 율리안 브란트(레버쿠젠)까지 투입했지만 오히려 한국에게 역습 기회를 내주며 손흥민에게 위협적인 슛을 허용했다.

한국은 경기 후반 마음이 급한 독일에게 많은 슛을 허용했지만 독일도 세계 축구계를 호령하던 그 때의 컨디션이 아니었다. 한국은 후반 40분 장현수가 돌파에 의해 중앙에 비어있는 손흥민을 발견했지만 크로스가 정확하지 못해 아쉽게 기회가 날아갔다. 하지만 한국은 추가시간 코너킥 상황에서 김영권(광저우 헝다)의 슛이 비디오 판독 끝에 골로 인정됐고 경기 막판 마누엘 노이어 골키퍼가 골문을 비운 사이 손흥민이 추가골을 성공시키며 독일을 무너트렸다.


월드컵이 개막하기 전까지만 해도 한국이 상상했던 그림은 따로 있었다. 스웨덴과 멕시코를 상대로 잘하면 1승1무, 못해도 1승1패 정도의 성적을 기록한 후 조별리그 2연승으로 승리욕이 다소 떨어져 있을 독일을 상대로 이변을 노리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이 2패를 당했고 독일도 첫 경기에서 멕시코에게 덜미를 잡히면서 양 팀은 최종전에서 서로 '반드시 이겨야 한다(심지어 한국은 2골 차 이상으로)'는 마지막 경우의 수를 두고 외나무 대결을 펼쳤다.

앞선 두 경기에서도 한국의 센터백으로 좋은 수비를 선보였던 김영권은 자신의 A매치 3번째 골을 월드컵 무대에서 독일이라는 강 팀을 상대로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손흥민 역시 멕시코전 원더골에 이어 독일전에서도 추가골을 기록하면서 월드컵 통산 3골로 안정환, 박지성에 이어 한국인 월드컵 최다골 공동 1위에 등극했다. 이제 막 전성기에 접어든 손흥민의 나이는 아직 만 26세에 불과하다.

만약 독일전에서 보여준 한국의 부지런한 움직임이 스웨덴과의 첫 경기부터 나왔다면 한국은 이번 대회 일찌감치 승점을 따낼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의 경기력은 첫 경기에서 가장 좋지 못했다가 대회를 치를 수록 점점 나아졌고 대회 첫 승리를 따냈을 때는 이미 조별리그 탈락이 확정된 후였다. 하지만 한국은 이번 월드컵에서 독일을 꺾는 최대 이변을 일으키며 웃으면서 대회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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