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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아파서 한 시간에 한 번꼴로 잠을 깨다 아침을 맞았다. 웬만해선 병원에 가지도 약을 먹지도 않는데 오전 9시가 되길 기다려 서둘러 병원에 갔다. 내가 아파서인지 돌아오는 길에 백구네 제일 작은 새끼 한 마리가 걱정돼 들여다봤다.

오늘따라 힘 없이 등을 보이고 누워선 불러도 꿈적을 안 했다. 몸이 쑤시고 시렸지만 녀석이 훨씬 안쓰러워 근처 약국과 마트를 여러 곳 둘러 보았지만 사람 먹다 남긴 음식을 개들에게 주는 게 일상화된 시골 마을에서 녀석을 위한 먹거리를 파는 곳은 없었다.

햇빛이 쨍쨍한 정오, 생수통에 물을 채워 다시 백구네로 갔다. 바닥에 그릇들은 볼 때마다 텅 비어 바짝 말라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아기들 키보다 높은 사람용 밥통. 가져온 물을 얕은 대야에 부어주니 두 아기가 신나서 달려와 먹었다. 하지만 작은 녀석은 그마저도 새 모이 만큼 먹고는 그래도 기운이 좀 나는 지 눈을 맞추며 꼬리를 흔들었다.

 두 발 고양이 강호와 낯선 곳에서 한 달 살기
 두 발 고양이 강호와 낯선 곳에서 한 달 살기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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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먹고 오전 내 햇빛 듬뿍 받으며 쉬었더니 기운이 나서 오후엔 용눈이 오름에 갔다. 여섯 번째 보는 오름이다. 버스 타면 10~20분 내 거리에 오름이 열 개도 더 있다. 버스 타러 가는 길, 백구네 마당을 한 번 더 들여다봤다. 더 어찌 해주질 못함에 서글퍼졌다.

용눈이 오름 도착. 올라가는 길에 드문드문 무덤이 보인다. 제주에 와서 오름이나 집 가까운 논밭 가운데서 무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현지인에 물어보니 너무 어려운 시절을 살다간 부모를 돌아가신 후라도 잘 모시고 싶어 매일 쉬이 볼 수 있는 위치에 모신 거라고 했다.

 두 발 고양이 강호와 낯선 곳에서 한 달 살기
 두 발 고양이 강호와 낯선 곳에서 한 달 살기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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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주인은 당연히 가족이겠지 했는데 '땅값' 개념이 없던 시절에 자기 논밭에 이웃이 묘자리를 부탁하면 흔쾌히 자리를 내주었다고 한다. 그런 배경을 아는지라 여기저기서 만나는 무덤이 더욱 친근하고 정겹게 보였는데 한 무덤 앞에 세워진 '경고문'이 감흥을 깼다.

행정처분 및 사유재산 침해로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다며 묘 이전을 강권하는 듯한 주인발 메시지였다. 아마도 용눈이 오름이 관광 명소가 되면서 불거진 갈등이 아닐까 짐작했다. 그리고 스스로도 '오지랖도 참…' 하면서 경고문에 적힌 주인 연락처로 문자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저는 아름다운 용눈이 오름에 오늘 처음 온 여행자입니다. (중략) 혹 탐방객들을 걱정해 묘를 이장시키려는 것이라면 그대로 두시는 것도 제주 특유의 풍경과 지난날 굴곡진 역사를 헤아리는 데 도움이 될 듯합니다.'

 두 발 고양이 강호와 낯선 곳에서 한 달 살기
 두 발 고양이 강호와 낯선 곳에서 한 달 살기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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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해서 시간을 맞춰온 게 아닌데 사진 찍기 좋아하는 이들이 선호한다는 일몰이 가까웠다. 일몰이 아니라도 충분히 아름답다 생각하며 걷는데 생태계 복원을 위해 출입을 통제한 길에 까치 한 마리가 보였다. 산책이 즐거운 듯 천천히 통통 튀듯 걷는 게 무척 귀여웠다.

분화구를 두 번 돌아 오름 정상에 다시 서니 섬 전체가 주홍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막상 일몰 풍경을 보니 또 이 순간은 이 순간대로 멋지구나 싶었다. 수많은 존재들도 그러하겠지. <Just the way you are(당신 그대로)> 하는 외국 노랫말이 떠올랐다.

 두 발 고양이 강호와 낯선 곳에서 한 달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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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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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 아래로 내려오니 사람 떠난 자리에 말들이 나와 풀을 뜯고 있었다. 아직은 밝은 하늘에 별 하나 달 하나도 나와 있었다. 곧 저물 오늘, 오늘의 나에 인사를 전하며 내일도 변함 없이 나의 오늘 같은 오늘을 더 많은 이들과 함께 누릴 수 있길 기도했다.

※ 백구네 제일 작은 아기를 이 바로 다음 날부터 볼 수 없었습니다. 행방을 알고자 주인을 몇 번이나 찾았지만 갈 때마다 집이 비어 있어 결국 제주를 떠나올 때까지 아무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부디 아프고 무서운 일 당하지 않(았)기를.

 두 발 고양이 강호와 낯선 곳에서 한 달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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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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