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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이야기는 언제나 인기 있는 주제지만, 잘 살펴보면 "새로 나온 메뉴를 반값에 판다더라", "어떤 연예인이 2주 동안 레몬만 먹고 살을 뺐다더라", "요즘 이 음식이 뜬다더라" 같은 단순 정보 전달이 대부분이죠. 나는 어떤 음식을 좋아하고, 왜 좋아하게 됐는지, 무슨 추억이 깃들어 있는지 같은 말은 듣기가 어렵지요. (11쪽)


'혼밥'이라는 말이 처음 퍼질 무렵 어떤 분은 낱말을 이렇게 지으면 안 된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혼자 밥을 먹는 삶이나 모습을 이만큼 잘 나타낸 낱말은 없었다고 할 만합니다. 시나브로 '함밥'이라는 말이 퍼집니다. 혼밥하고 맞물리는 함밥일 텐데, 함밥은 밥을 함께 먹는 삶이나 모습을 나타냅니다. 아무래도 이 낱말을 놓고도 못마땅해 할 분이 있으리라 느껴요. 그런데 함께 밥을 먹으면서 이야기도 생각도 마음도 곱게 흐르기를 바라는 알맞춤한 낱말이 될 테지요.

앞으로는 어떤 밥 이야기가 움틀 만할까요? 앞으로 우리는 밥살림을 놓고 어떤 이야기를 지으면서 서로 생각을 나눌 만할까요? 오늘날 어린이나 푸름이(청소년-편집자 말)는 날마다 어떤 밥을 맞이하면서 몸하고 마음을 가꿀까요?

겉그림
 겉그림
ⓒ 철수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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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에는 단순한 생존 유지뿐만 아니라 사랑, 관계, 환경, 평화 같은 다양한 가치가 담겨 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건강 문제 때문에 음식에 관심을 가졌다가 환경 운동가로 변신하거나, 전 세계의 불평등한 밥상에 분노해 세계 기아 퇴치에 앞장서기도 하죠. (54∼55쪽)


<10대와 통하는 음식 이야기>(박성규, 철수와영희, 2018)는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밥에 눈길을 두도록 이끕니다. 아침저녁으로 맞이하는 밥이지만 정작 밥살림을 깊이 들여다볼 겨를이 적거나 없을 어린이하고 푸름이한테, 그냥 먹지 말고 생각하면서 먹어 보자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방송이나 인터넷에 숱하게 떠도는 '먹는 얘기'는 무엇을 말하는가를 푸름이 스스로 돌아보고 짚자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어버이가 차려 주니까 먹는 밥이 아닌, 학교에서 마련해 주니까 먹는 급식이 아닌, 몸이 되고 피랑 살이 되는 밥이란 무엇인지 넓게 헤아리면서 배우자고 하는 이야기를 다루어요.

특히 장과 조미료가 획일화되다 보니 어딜 가든 음식 맛이 다 비슷비슷한 느낌마저 들어요.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다양성이 줄면 재미가 없어지고, 재미가 없어지면 관심을 두지 않게 되죠. (165쪽)


학교를 다니느라 바쁘다면 밥 먹을 틈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대학입시를 앞둔 수험생이라면 '공부하느라 바쁘'기에 '손수 밥을 지어서 먹자'는 생각을 내기는 매우 어려울 만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시험공부가 크다 하더라도 끼니를 굶으면서 시험공부를 할 수 없어요. 아침저녁으로 어김없이 수저를 들어야 합니다. 수저를 들고 나면 설거지를 해야겠지요. 설거지뿐 아니라 밥상을 치우고 부엌도 갈무리해야 할 테고요. 이뿐 아니라, 한끼를 누렸으니 끝이 되지 않습니다. 언제나 다음 끼니를 헤아려야 합니다. 손수 짓든, 가게에서 사오든, 집이나 학교에서 먹을거리를 장만하거나 손질하거나 다루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에는 거의 모두 도시에서 살기에 먹을거리는 '땅이 아닌 가게'에서 나오기 마련입니다. 어린이나 푸름이가 굳이 밀씨를 심어서 돌보아 거두지 않아도, 또 밀가루를 알맞게 개고 반죽을 하지 않아도, 발효나 굽기라는 품을 들이지 않아도, 주머니에 돈이 있으면 가볍게 빵 한 조각 사서 배를 채울 수 있어요. 그렇다면 이때에 생각할 노릇이겠지요.

가볍게 사다 먹을 수 있는 가공식품은 무엇일까요? 가공식품에는 무엇이 들었을까요? 첨가물이란 무엇일까요? 라면에는 어떤 첨가물이 왜 들어갈까요?

어느 모로 본다면 어린이나 푸름이한테는 좀 골이 아플는지 모릅니다만, <10대와 통하는 음식 이야기>는 '가공식품 첨가물' 이야기를 제법 꼼꼼히 다룹니다. 어른들이 식품공장에서 가공식품을 내놓으면서 겉에 밝히는 첨가물에 꽤 어려운 말을 쓰는데, 왜 어려운 말을 쓰는지, 이 어려운 말에 숨은 뜻이 무엇인지 푸름이가 잘 짚을 줄 알아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집에서 치자물을 들이는 단무지를 손수 하기. 집단무지를 해서 먹어 보면, 중국집 단무지에 없는 맛을 누릴 수 있습니다.
 집에서 치자물을 들이는 단무지를 손수 하기. 집단무지를 해서 먹어 보면, 중국집 단무지에 없는 맛을 누릴 수 있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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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식동물인 소에게 이런 걸 먹이다니 어이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저렴한 쇠고기 생산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진 않았어요. 그런데 육골분을 먹은 소들이 이상해지기 시작했어요.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거나 갑자기 주저앉더니 다시 일어서지 못했던 거죠. (39쪽)
도대체 왜 플라스틱을 분유에 넣은 걸까요? 이유는 바로 우유 가격 때문이에요. 중국에서는 수익을 위해 우유에 물을 타는 행위가 문제가 되곤 했어요. 하지만 이를 방지하기 위한 검사 방법이 개발되었죠. 우유 내의 단백질량을 측정하는 거예요 … 단백질은 질소량을 기준으로 측정하는데, 일부 업자들이 바로 이 점을 악용했죠. 우유에 물을 탄 다음 70퍼센트가 질소인 멜라민을 추가해 수치를 높였던 거예요. (41∼42쪽)


그냥 '광우병'이라고만 말할 적에는 어른도 푸름이도 무엇이 말썽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소가 왜 미쳐서 자빠지거나 죽는가를 어른도 푸름이도 모를 만한 요즈음 흐름이에요.

손수 흙을 만져서 먹을거리를 거두지 않을 적에는 소라고 하는 짐승이 어떤 터전에서 무엇을 먹으면서 살아가는가를 알 길이 없어요. 집에서 닭을 치지 않는 살림이면서 닭고기나 달걀을 마음껏 먹기만 한다면, 이때에도 닭이라는 짐승이 어떤 터전에서 무엇을 먹으며 어떻게 살아야 닭으로서도 즐겁거나 아늑한 삶인가를 헤아릴 길이 없습니다.

소는 풀을 먹고 살아가는 짐승입니다. 소는 햇볕이 내리쬐는 들판에서 갓 돋은 풀을 뜯어서 천천히 새김하며 먹기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소를 햇볕 한 줌 안 드는 좁은 곳에 가둔 채 '짐승 뼛가루를 섞은 사료'만 먹여서 키운다면? 오직 풀을 먹는 소한테 '동물성 사료'를 잔뜩 먹인다면? 이렇게 키운 소를 잡아서 소고기로 다룬다든지, 동물성 사료만 먹은 소한테서 짠 젖으로 우유를 가공한다면?

사실 우리는 이미 120억 명이 충분히 먹고살 음식을 생산하고 있어요. 엄청난 양의 식량을 만드느라 지구 환경을 마구 훼손하면서요.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누군가는 너무 많이 먹고, 누군가는 식량을 구할 수조차 없죠 … 이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요. 먹을거리를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나눠 주려면 사회가 정의로워야 하기 때문이죠. (176∼177쪽)


<10대와 통하는 음식 이야기>는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손수 밥을 지어 보기를 바라는 뜻을 밝히지는 않습니다. 이 책은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손수 흙을 짓거나 짐승을 돌보아 고기나 젖이나 알을 얻기를 바라는 뜻도 따로 밝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작게 텃밭을 일구어 볼 수 있기를 바라고, 아무리 수험공부로 바쁘더라도 때때로 문제집이나 교과서를 내려놓고서 부엌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러면서 이 책은 때 되면 먹을 수 있는 학교 급식이 아닌, 때에 맞추어 밥을 짓는 사람들 손길을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제대로 느끼거나 살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누가 어떻게 흙을 돌보아 먹을거리를 거두는가를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눈여겨볼 수 있기를 바라고, 집이나 마을이나 학교에서 어른들이 어떻게 먹을거리를 다루면서 우리 밥살림을 이루는가를 곰곰이 돌아보고 배울 수 있기를 바라지요.

서로 즐겁게 거들고 가르치고 이끌면서 밥을 지어서 한끼를 누리면, 삶을 이루는 재미난 공부를 하는 하루가 되지 싶습니다.
 서로 즐겁게 거들고 가르치고 이끌면서 밥을 지어서 한끼를 누리면, 삶을 이루는 재미난 공부를 하는 하루가 되지 싶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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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중심의 사회가 되면서 농사는 우리와 먼 이야기가 되었어요. 여러분도 공부하라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농작물을 키워 보라는 말은 거의 듣지 못했을 거예요. 가까운 가게에만 가도 온갖 채소가 가득한데 왜 사서 고생하겠어요? 그런데 기꺼이 이런 수고를 하는 사람들이 나타났죠. (139쪽)
음식 공부의 목적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나 자신을 사랑하기 위함이에요. (66쪽)


밥 한 그릇을 나누는 길에는 배를 채우는 끼니를 넘어선 훨씬 너른 뜻이 흐른다고 봅니다. 배고파서 먹는 삶이 아닌, 사람으로서 스스로 사랑하려고 짓는 밥살림이지 싶습니다. 오늘 우리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집에서 어버이를 거들어 함께 밥을 짓고 치우고 건사하는 살림을 배울 수 있다면, 더 나아가 책을 덮고서 호미를 손에 쥐어 볼 수 있다면, 바로 이 작은 손길에서 평등하고 민주가 싹틀 만하지 싶습니다.

함께 짓고 함께 누리는 밥 한 그릇이 되기를 바랍니다. 같이 배우고 같이 돕는 밥살림이 되면 좋겠습니다. 어린이하고 푸름이를 돌보는 어버이라면, 아이들이 시험공부에만 온힘을 쏟도록 하기보다, 아침저녁으로 부엌에서 도란도란 살림살이를 익히도록 이끌어 보시기를 바라요.

덧붙이는 글 | <10대와 통하는 음식 이야기>(박성규 / 철수와영희 / 2018.6.18.)



10대와 통하는 음식 이야기 - 음식으로 바꾸는 세상

박성규 지음, 철수와영희(2018)


태그:#10대와 통하는 음식 이야기, #박성규, #청소년책, #인문책, #밥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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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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