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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자는 탈코르셋 운동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꾸밈노동을 거부하고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자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더불어 나부터 타인의 외모를 평가하지 말자는 반성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하지만 외모에 대한 관심과 집착에서 벗어나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탈코르셋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싣습니다. [편집자말]
"안 본 사이에 예뻐졌네."
"살이 확 빠졌다!"
"성격도 착하고 얼굴도 착하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면 외모 칭찬부터 한다. 상대의 달라진 점을 금세 발견하고 칭찬해주는 게 센스라 믿어서일까. 살이 좀 빠졌는지, 앞머리를 잘랐는지, 화장이 잘 먹었는지 코멘트를 달기 바쁘다.

외모 칭찬은 때론 새로 나온 다이어트법이나 피부과 시술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다이어트를 하겠다며 아메리카노를 시켜놓고 초콜릿 케이크를 야금야금 먹는다. 길 가는 늘씬한 여자를 흘깃거리며 뭘 먹고 살아야, 아니 뭘 안 먹고 살아야 저렇게 될 수 있느냐며 한숨짓는다. 나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여자다.

'외모평가 하지 않는 1주일 살아보기' 프로젝트를 시작한 건 내가 페미니스트여서도(물론 스스로 페미니스트라 생각한다) 새삼 몸에 대한 큰 깨달음을 얻어서도 아니다. '여성', '몸',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 '외모지상주의'와 같은 키워드 역시 '얼평(외모평가) 금지' 프로젝트를 시작한 계기와는 조금 거리가 있다.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건 내가 생각보다 주변으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깨달음을 준 사건 때문이었다.

'왜 하필 저런 옷을...' 소스라치게 놀랐다

외모지상주의를 꼬집은 영화 <아이 필 프리티> 스틸컷
 외모지상주의를 꼬집은 영화 <아이 필 프리티> 스틸컷
ⓒ 씨나몬(주)홈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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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소에 자신을 외모지상주의자로 생각하지 않는다. 외모로 모르는 상대를 폄하하는 것을 경계한다. '불꽃페미액션' 기사에 달린 얼굴 평가 댓글을 보며 분노한다. 빅사이즈 잡지 '66100'을 구독하고 겨털 기르기 캠페인을 응원한다.

그런데 지난 주말 홍대 거리를 걷다 핫팬츠에 끈나시를 입은 여자를 발견하고 나도 모르게 '헐'하고 중얼거렸다. 그녀는 보테로 그림 속 여자처럼 풍만했다. 핫팬츠에 끈나시 하면 에곤 실레 그림 속 여자들처럼 깡마른 모델만 떠올리던 빈곤한 상상력 탓이었을까. 핫팬츠와 끈나시 사이로 볼록 나온 그녀의 배와 통통한 팔은 시선을 끌었다. 그녀를 흘깃거린 건 나뿐만은 아니었다.

'왜 하필 저런 옷을 입었지?'

문득 든 생각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왜 입느냐니. 입고 싶으니까 입었겠지. 마른 여자가 저렇게 입었어도 같은 질문을 했을까? <남자들이 좋아하는 패션 스타일> 따위의 글을 싫어하지 않았던가? 살이 찌면 입지 말아야 할 옷이라도 있다는 말인가?

나도 모르게 모르는 사람의 외모 평가를 하고 있었다. 이래야 한다는 기준에 맞추어. 어쩌면 지금껏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다른 이의 외모를 평가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기준에 맞추어 날씬한 사람에게 미소를 보내고 통통한 사람에게 퉁명스럽게 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외모에 대해 말하지 않는 1주일 살아보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내가 얼마나 외모지상주의의 폭력적인 가해자이자 피해자였는지 깨닫기 위해서.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얼평
 얼평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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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를 시작한 첫날. 12시간이 되기도 전에 첫 번째 '얼평' 발언을 하고 말았다.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가 보니 다들 모여서 누군가의 사진을 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한 동료가 지난 주말 소개팅 한 남자에 대해 풀어놓는 중이었다. 남자의 프로필 사진을 넘겨보며 다들 한마디씩 하는 찰나, 나도 모르게 오지랖을 펴고 말았다.

"외꺼풀이네. 지적으로 보여서 좋은데?"

아차 싶었지만 이미 화제는 외꺼풀이 멋있냐 쌍꺼풀이 멋있냐로 옮아가 있었다. 이럴 수가. 시작한 지 12시간도 안 되었는데! 그럼 다시 시작하자!라고 결심했지만 얼마 되지도 않아 또 얼평 발언을 하고 말았다.

오랜만에 만난 업체 직원에게 탄성을 지르며 이렇게 말한 것이다.

"머리 자르니까 훨씬 어려 보여요!"

얼평에 이어 젊음이 곧 미덕인 것처럼 말하다니. 칭찬을 들은 이는 기분 좋아했지만 과연 내 칭찬이 정말 그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언젠가 더 이상 어려보이지 않는 자신이 실망스러울 수도 있지 않을까?

프로젝트 리셋은 몇 번이고 반복되었다. 자꾸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선글라스를 고르는 친구에게 얼굴형에 맞지 않는 선글라스를 고르면 얼굴만 더 커 보인다며 외모 훈수를 두었다. 임신한 친구에게 배가 예쁘게 나왔다고 칭찬했다(임산부 배의 '예쁨'이라는 희한한 발상은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일이다). 얼평은 나 자신도 피해가지 않았다. 친구가 찍어준 사진 속의 나를 보며 머리가 왜 이렇게 큰지, 다리는 왜 이렇게 짧은지 투덜거렸다.

일주일 동안 프로젝트를 하며 깨닫게 된 건 나는 결코 외모 평가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었다. 나를 포함해 사람들의 외모를 함부로 평가했다. 게다가 스스로 그렇다는 것을 깨닫고 있지도 못했다.

프로젝트의 목적이 내가 얼마나 외모지상주의 사회에 기여하고 있는가를 가늠하는 것이었다면 프로젝트는 확실히 성공이었다. 생각하는 것보다 외모에 대한 평가를 훨씬 자주 했고 이상적인 얼굴이나 몸이 있는 것처럼, 그리고 그것을 따라야 하는 것처럼 말했다. 외모에 대한 언급없이는 대화를 못 하는 사람처럼 말이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엄격한 기준의 미를 정해놓고 그것을 예찬하는 미디어 때문일 수도, 스스로의 몸을 자책하며 마우스다이어트(입으로만 하는 다이어트)를 반복하는 주변 사람들 때문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내가 탓하는 '미디어'와 '주변 사람'에 나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아마 앞으로도 텔레비전과 잡지를 완전히 끊지 않는 이상, 친구들과의 대화를 단절하지 않는 이상 외모 평가 발언을 듣지 않고 살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인식'하고 살면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외모 칭찬은 괜찮지 않냐고?

얼평 금지 프로젝트를 한다고 하면 가끔 이런 질문을 듣는다.

"칭찬하는 건 괜찮지 않아?"

예뻐졌다고, 피부가 좋아졌다고, 몸매가 좋다고 칭찬하지 않는 것 역시 얼평금지의 중요 포인트다. 칭찬은 자연스럽게 '이것이 예쁜 것', '이것이 보다 나은 것'이라는 기준을 만들기 때문이다.

피부가 하얗다고 칭찬받아온 아이는 피부가 타는 것을 두려워하게 될지도 모른다. 마른 몸매가 예쁘다는 말을 많이 듣는 여자는 그렇지 않은 여자를 자연스럽게 무시하게 될지도 모른다. 저마다의 아름다움은 모두 다른데도 말이다.

바비 인형
 바비 인형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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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평가하지 않기' 프로젝트가 내게 남겨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작은 마음의 생채기였다. 나 역시 외모지상주의의 가해자였다는 아픈 깨달음. 상처가 나아도 어쩌면 흉은 남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해줄지도 모른다.

'제로 웨이스트 프로젝트'를 했던 일주일이 생각났다. 물론 그때도 완전히 쓰레기를 만들지 않기란 불가능했다.(프로도전러이자 프로실패러가 된 기분이다) 그러나 프로젝트가 끝난 후에도 나는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조금씩 하고 있다. 평소에 텀블러를 가지고 다닌다. 휴지 대신 손수건을 쓰려 애쓴다. 일회용품을 쓰지 않으려 노력한다.

프로젝트 이후 일회용품을 쓰거나 불필요한 쓰레기를 만들면 마음이 불편했다. 하루에 조금씩 쓰레기를 줄이는 것은 작은 변화지만 일 년 혹은 십 년이 지난 후에 내가 버리는 쓰레기는 그 전보다 훨씬 줄어있지 않을까?

외모에 대한 평가를 일주일 동안 하지 않은 것으로 내 삶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허나 '잊지 않는 것보다 더 꾸준한 실천은 없다'라는 말을 들은 적 있다. 모든 걸 기억하기란 불가능할 테니 아마 나는 계속 잊어버리고 살 것이다.

그래도 새로 계속 기억하려 애쓰고 싶다. 잊어버리는 것과 새로 기억하는 것이 덧대어 이어지다 보면 정말 잊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때서야 그것이 정말 꾸준한 실천이 되겠지. 그래서 얼평 금지 프로젝트는 끝내지 않고 조금씩 지속하려 한다. 이 작은 변화에 희망을 걸어본다.


태그:#얼평, #금지, #프로젝트, #외모, #얼굴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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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밥 벌어 먹고 사는 프리랜서 작가 딴짓매거진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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