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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발언과 관련, 혼선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백악관이 한미 간 통상적 훈련은 계속하되 대규모 연합훈련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오는 14일 열리는 제8차 남북장성급 군사회담에서 북측은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을 비롯한 한미연합훈련의 중단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예측된다. 사진은 지난 2017년 8월 열린 을지프리덤가디언 연습의 일환으로 열린 육군 55사단 기동대대 공중강습훈련.
▲ 북한, 남북장성급회담서 한미훈련중단 요구 가능성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발언과 관련, 혼선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백악관이 한미 간 통상적 훈련은 계속하되 대규모 연합훈련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오는 14일 열리는 제8차 남북장성급 군사회담에서 북측은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을 비롯한 한미연합훈련의 중단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예측된다. 사진은 지난 2017년 8월 열린 을지프리덤가디언 연습의 일환으로 열린 육군 55사단 기동대대 공중강습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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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의 결과로 을지프리덤가디언 같은 대규모 한미연합 군사훈련이 중단됐다. 북한 태도에 따라 향후 재개될 수도 있다는 단서가 붙기는 했다.

그간 북한은 한미연합훈련에 대한 적개심 혹은 공포심을 표출했다. 무엇보다 훈련 규모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팀스피리트 훈련의 경우는, 1976년 시작할 때만 해도 10만 7천이라는 대군이 동원됐고 1980년대 후반에는 무려 20만을 넘어섰다.

김일성 주석도 그런 규모에 긴장했다. 존스홉킨스대학 한미연구소의 '38 노스' 홈페이지에 실린 글에도 그의 반응이 소개됐다. 미국 국방부 관료로서 한국에서 35년간 생활했으며 1972년 이래의 연합훈련 중 80%에 참가한 로버트 콜린스(Robert Collins)가 2014년 2월 26일 기고한 '한미연합 군사훈련의 대략적 역사(A Brief History of the US-ROK Combined Military Exercises)'란 글에 담겨 있다.

"그 규모로 인해 팀스피리트는 북한의 주요 관심사가 되었다. 이는 1993~94년의 핵위기 당시 워싱턴과 평양 간 교섭의 핵심 쟁점이 됐다. 1993년에 북한 지도자 김일성을 방문한 뉴욕주 의원 개리 액커맨(Gary Ackerman)은 '팀스피리트를 언급할 때 김일성의 목소리는 떨렸고 손은 분노로 흔들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연합훈련이 비단 김일성만 분노케 한 것은 아니다. 박정희 역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김일성은 훈련 규모 때문에 긴장했지만, 박정희는 다른 측면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한미연합훈련 역사에서 1969년은 특기할 만한 시점이다. 미국이 베트남전쟁에서 힘을 소진하는 동안에, 북한이 무장공비 침투나 청와대 습격 등을 통해 한국을 압박하던 때였다. 이런 때에 연합훈련에서 중대 변화가 발생했다. 로버트 콜린스의 글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북한의 위협적 도발에 대한 핵심 반응 중 하나가, 1969년(원문은 1968년)의 첫 포커스 렌즈 훈련(종종 포커스 레티나 훈련으로 불림) 기간에 나타났다. 제82공수사단에 속한 3개 공수보병대대가 노스캐롤라이나로부터 31시간 동안 논스톱으로 이동해 한강 남쪽에 착륙했다. 북한의 적대행위에 대해 미국이 얼마나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기 위한 조치였다."

이처럼 1969년은 연합훈련이 미군의 신속 기동성을 보여주는 쪽으로 바뀐 해였다. 미국에 주둔 중인 군대를 한반도로 이동시키는 능력을 보여주는 쪽으로 전환된 해였다. 1976년 팀스피리트 훈련 이후로는, 이런 신속 기동성에 더해 대규모 동원력까지 보여주는 쪽으로 한층 더 진화했다.

한미연합훈련, 1969년 중대 변화... 박정희가 불쾌해한 이유

1969년 3월의 연합훈련 업그레이드가 일부 남한 국민들을 감동시켰다는 점은, 이에 관한 가슴 벅찬 글이 기독교 잡지에까지 실렸다는 사실에서도 표출된다. 그해 4월 대한기독교서회가 발행한 <기독교사상>에 이명영 <경향신문> 논설위원의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렸다. 로버트 콜린스의 글에 나오는 '31시간'이 여기서는 '20시간'으로 단축돼 있다.

"포커스 레티나 작전으로써 미국은 두 가지 면을 과시하였다. 하나는 군사적인 면인데, 적어도 단 20시간 만에 완전무장한 2천 5백명의 병력과 105밀리 포(砲)를 포함한 6백 톤에 달하는 군 장비를 미 본토에서 한국에 공수할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보여주었다.

더욱이 이번 포커스 레티나 작전은 일정한 항공 기지에까지 병력을 공수한 것이 아니라, 직접 적전(敵前)에 공중 투하했다는 점에서 공중 기습, 게릴라전의 입체적 기동성을 보였다는 점에서 실전을 방불케 한 작전이었다." 

기독교 잡지마저 감탄할 만큼, 한미연합훈련은 1969년을 기점으로 기동성을 과시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이 흐름은 그 후의 연합훈련에도 계속 이어졌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중단 조치가 있기 전까지 그랬다. 

그런데 바로 이 기동성이란 대목이 박정희한테는 결코 유쾌하지 않았다. 김일성처럼 목소리와 손이 떨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박정희 역시 불쾌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1969년은 베트남전쟁에서 미국의 패색이 한층 더 짙어가던 때였다. 거기다가 1968년 푸에블로호 사건으로 미국의 위신이 더욱 더 떨어진 직후였다. 미국은 해군 정찰선인 푸에블로호가 북한 영해에서 인민군에 나포되자 전쟁 위협까지 가하면서 선박 및 선원의 송환을 요구했지만, 결국에는 잘못을 시인하고 선원만 송환받는 선에서 문제를 마무리했다. 베트남에 이어 북한에서까지 치욕을 당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1969년 1월 리처드 닉슨이 제37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닉슨은 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개입 수준을 낮춤으로써 패전 수렁에서 벗어나고 세계 패권을 지키고자 했다. 취임하자마자 그는 이 구상의 실현에 착수했다. 그래서 그해 7월, 닉슨 독트린이 나올 수 있었다.

이렇게 미국이 아시아와 거리를 두려고 하는 상황에서 나온 게 1969년 연합훈련이다. 이때 미국이 기동성을 과시하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은 아시아 주둔 미군을 감축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북한과 베트남을 겁주기 위한 의도도 있었지만, 아시아 미군 감축으로 인한 위신 손상을 사전에 줄이기 위한 의도도 있었다. 또 동맹국의 불안을 잠재우려는 의도도 있었다. 언제든 올 수 있으니 걱정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것이었다. 

실제로 1969년 연합훈련 뒤부터 미국은 주한미군 감축을 준비했다. 이것이 주한미군 제7사단 2만여 명의 철수로 이어졌다. 미국의 의도는 주한미군 숫자를 줄이는 대신, 신속 기동성을 과시하는 방법으로 한국을 진정시키는 데 있었다. 그래서 기동성 강화 조치는 박정희 정권한테 큰 감흥을 주기 힘들었다.

박정희가 감동을 받지 못했다는 점은, 닉슨 독트린 이후로 박정희가 미국을 불신하다가 급기야 핵개발에 착수했다는 사실에서도 잘 증명된다. 도널드 프레이저 위원장이 이끄는 미국 하원 국제기구소위원회가 1978년 발간한 <한미관계 보고서>, 일명 <프레이저 보고서>에 이런 대목들이 있다.

"미국의 약속과 정책에 대한 한국 정부의 불신은 명확했다. 한국 정부는 미국이 특히 비무장지대 주둔 미군을 이동할 계획이라는 것을 알고 당황했다."

"1970년대의 방위계획과 생산에서 한국의 핵정책만큼이나 대미 독자성의 증대 수준을 잘 드러낸 것은 없을 것이다. (중략) 이 문제에 대한 본 소위의 관심은, 한국 정부가 핵무기 제조능력을 개발하고자 취한 조치에 앞서 미국과 논의하거나 통고하지 않았다는 명백한 사실로부터 생겨났다."

미국은 아시아 개입 축소와 주한미군 감축의 파장을 최소화시키면서 박 정권을 달랠 목적으로 1969년부터 연합훈련의 기동성과 규모를 계속 강화했다. 하지만 감동을 주지 못했다. 감동을 줬다면, 박 정권이 미국 몰래 핵개발을 추진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 이제는 김정은 위로용으로 '재활용'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발언과 관련, 혼선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백악관이 한미 간 통상적 훈련은 계속하되 대규모 연합훈련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오는 14일 열리는 제8차 남북장성급 군사회담에서 북측은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을 비롯한 한미연합훈련의 중단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예측된다. 사진은 지난 5일 미 육군의 해외 기지 중 최대 규모로 알려진 경기도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 모습.
▲ 북한, 남북장성급회담서 한미훈련중단 요구 가능성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발언과 관련, 혼선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백악관이 한미 간 통상적 훈련은 계속하되 대규모 연합훈련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오는 14일 열리는 제8차 남북장성급 군사회담에서 북측은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을 비롯한 한미연합훈련의 중단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예측된다. 사진은 지난 5일 미 육군의 해외 기지 중 최대 규모로 알려진 경기도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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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는 냉혹한 정치 스타일과 달리 예술적 소양이 깊었다. 글도 잘 쓰고 음악도 잘했다. 감동을 잘 하는 스타일이었던 것이다. 그런 사람이 연합훈련 업그레이드에 감동받지 못한 것은 그것이 껍데기에 불과함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주한미군의 대폭 감축으로 인한 미군 전력의 약화를 감추고자 대규모 미군을 한반도에 공수했다가 도로 데려가는 것임을 잘 알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눈물을 글썽이며 이별을 슬퍼하는 친구를 위로할 때 우리가 흔히 하는 말이 있다. "앞으로 종종 올게. 보고 싶을 땐 언제든 달려올게!" 연합훈련의 기동성 강화는 이것과 별반 다를 바 없다. 껍데기에 불과한 위안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는 껍데기에 불과한 그것을 갖고 새로운 대상과 가까워지려 하고 있다. 연합훈련 중단을 통해 군사비용의 감축을 추진하는 한편, 김정은 정권과의 신뢰 구축을 강화하려 하고 있다. 연합훈련 중단으로 한반도 긴장을 완화시키는 트럼프의 조치는 박수 받을 만하지만, 이를 통해 북한에 접근하는 태도를 보며 한편으로는 씁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박 정권에 신뢰를 주지 못한 데서 느낄 수 있듯이 1969년 이후의 연합훈련은 북한에 실질적 위협이 되지 않았다. 김일성이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는 했지만, 북한에 실질적 손실을 준 것은 아니다. 박 정권을 안심시키고 한미동맹을 유지하는 데에 주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연합훈련이 북한에 실질적 손실을 주지 않았다는 말은 이 훈련의 중단 역시 북한에 실질적 이익이 되지 않을 수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연합훈련 업그레이드가 한국에 실질적 이익이 되지 않았듯이, 연합훈련 중단 역시 북한에 실질적 이익이 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껍데기에 불과한 연합훈련 문제를 갖고, 미국이 예전에는 한국을 위로했다가 이제는 북한을 위로하려 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앞으로 종종 올게!"란 말로 박 정권을 달랬던 미국이 이제는 "저 집에 종종 가는 일도 그만둘게!"라며 김 정권의 환심을 사려 하고 있는 것이다.

연합훈련 문제를 박정희 위로용으로 활용했다가 이제는 김정은 위로용으로 재활용하는 미국. 그런 미국을 보면서, 한반도 평화 정착 및 통일 과정에서 미국과의 협력이 필수적이긴 하지만 '미국을 완전히 믿으면 안 된다'는 당연한 진리를 다시금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태그:#한미연합 군사훈련, #을지 포커스 렌즈, #을지프리덤가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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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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