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용 감독이 약속했던 '통쾌한 반란'은 아직 찾아볼 수 없었다. 축구대표팀은 조별리그 첫 경기인 스웨덴전에서 0-1로 패배하며 16강 진출에 일찌감치 적신호가 켜졌다.

스웨덴은 '죽음의 조'에서 그나마 한국이 승부를 걸어볼 만하다고 생각했던 유일한 상대였다. 신태용 감독은 '트릭' 논란까지 불사하며 스웨덴전에 올인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승부수의 효과는 미미했다. 결과는 비록 1골차였지만 내용상으로는 사실상 완패나 다름없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한국은 남은 멕시코-독일전을 앞두고 F조 최약체라는 현실만 다시 한번 뼈저리게 확인해야 했다.

또한 스웨덴전은 한국축구와 신태용호의 냉혹한 현 주소를 돌아보게 만들었다는 점에서도 고통스러운 한 판이었다. 신태용호가 지난 1년간의 여정에서 노출된 각종 불안요소가 고스란히 반복된 경기이자 어쩌면 '신태용 축구'의 근본적인 한계를 보여준 장면이기도 했다. 신태용호가 벼랑 끝에 몰리게 된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1. 계륵이 되어버린 손흥민 활용법

손흥민은 자타공인 한국축구의 에이스이자 EPL에서도 인정받은 세계적인 공격수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대표팀 유니폼만 입으면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가 끊이지 않았다. 스웨덴전에서도 손흥민은 경기 내내 단 하나의 슈팅도 기록하지 못하며 대표팀이 무기력한 패배를 당하는 데 책임을 피할 수 없었다.

경기 후 많은 전문가들과 외신까지 이구동성으로 지적한 한국의 패인 중 하나는 '손흥민을 경기 내내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모범답안은 이미 나와 있었다. 스피드를 활용한 공간침투에 최적화된 손흥민은 '골문에서 최대한 가깝게 플레이할 때', '연계능력과 수비가담이 좋은 파트너와 투톱을 이룰 때' 가장 위력을 발휘한다는 것이 소속팀과 대표팀 경기에서 모두 증명된 바 있다.

손흥민, '스웨덴 수비 비켜!' 18일 러시아 니즈니 노브고로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대한민국 대 스웨덴의 경기에서 손흥민이 볼다툼을 하고 있다. 2018.6.18

▲ 손흥민, '스웨덴 수비 비켜!' 18일 러시아 니즈니 노브고로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대한민국 대 스웨덴의 경기에서 손흥민이 볼다툼을 하고 있다. 2018.6.18 ⓒ 연합뉴스


신태용 감독도 평가전에서 손흥민을 종종 최전방 공격수로 활용하여 재미를 봤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스웨덴전에서는 낯선 4-3-3 전술을 꺼내들며 손흥민을 측면 공격수로 배치했다. 문제는 한국이 스웨덴을 상대로 실점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라인을 내리고 수비적인 경기를 펼치면서 손흥민의 장점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는 상황을 초래했다는 것.

손흥민은 이날 수비적인 부담이 적지 않았고 어쩌다 볼을 잡아도 골문에서 너무 먼 곳에서 공격을 전개해야 했다. 그런 탓에 본인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지 못하며 사실상 '윙백'에 가까운 역할처럼 보였다. 상대의 전력을 지나치게 의식하다가 결국 '우리가 가진 최고의 장점'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자승자박이 된 꼴이다.

2. 포메이션 변화는 잦았으나 수비 조직력은 숙련도 떨어져

연령대별 대표팀 시절부터 신태용 축구의 고질적인 약점은 수비불안이었다. 스웨덴전에서 장현수나 김민우 같은 수비수들은 잦은 패스 실수와 판단착오로 비난의 중심에 서는 일이 잦았다. 자연히 부진한 수비수들을 계속해서 신임하는 신태용 감독의 안목도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단순히 수비수들 개인의 기량 탓만이 아니라 수비 전술의 완성도와 관련이 있다. 신태용 감독은 부임 이후 계속된 수비불안을 포백이나 스리백 같은 포메이션 변화로만 극복하려고 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달라진 게 없었다. 신태용호가 실점하는 패턴을 살펴보면 대부분 위험지역에서 패스 실수로 역습 상황을 내주거나, 혹은 한번의 침투패스로 수비 뒷공간을 속수무책으로 열어주는 경우가 많았다.

스웨덴전 역시 마찬가지였다. 실점을 우려하여 라인을 내리고 수비적인 경기운영을 펼쳤지만 정작 측면 크로스나 롱패스를 제대로 차단하지 못하다 보니 단순한 공격패턴에도 스웨덴 선수들이 마무리 슈팅까지 이어질 수 있는 공간을 번번이 내주기 일쑤였다. 그렇다고 역습 상황에서는 스웨덴의 압박에 쫓기며 수비수들로부터 시작되어야 할 빌드업이 원활하게 이루어진 것도 아니었다. 결국 주도권은 주도권대로 내주고 공격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양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수비센스가 떨어지는 선수들이 마음만 앞서서 위험지역에서 섣부른 태클을 남발한 것도 무모했다. 결국 PK를 허용한 김민우 외에도 전반에 이미 기성용이 아슬아슬한 태클로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장면이 있었다. 중앙 미드필더로 기용된 구자철이나 이재성은 수비적인 기여도가 떨어지는 선수들이었다. 가뜩이나 수비력이 떨어지는 팀에서 포백을 보호할 수 있는 압박능력과 활동량이 뛰어난 전문 수비형 미드필더를 한 명도 뽑지 않은 것도 신태용 감독의 패착이었다.

[월드컵] 손흥민, 아쉬운 패배 (니즈니노브고로드=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18일(현지시간) 러시아 니즈니 노브고로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1차전 대한민국과 스웨덴의 경기. 스웨덴에 0-1로 패한 한국의 손흥민이 아쉬워하고 있다. 2018.6.18

▲ 손흥민, 아쉬운 패배 18일(현지시간) 러시아 니즈니 노브고로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1차전 대한민국과 스웨덴의 경기. 스웨덴에 0-1로 패한 한국의 손흥민이 아쉬워하고 있다. ⓒ 연합뉴스


3. 후반만 되면 먼저 무너지는 체력

신태용호는 후반 실점의 비율이 높은 편이다. 올림픽대표팀 시절 일본과의 아시아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당한 역전패도 그렇고, 온두라스와의 본선 8강전, 지난 3월 북아일랜드-폴란드와의 평가전, 그리고 지난 스웨덴전까지 중요한 경기마다 모두 전반에는 그럭저럭 잘버티다가 후반에 급격하게 무너지는 패턴이 반복됐다. 이는 체력문제와도 무관하지 않다.

한국축구는 과거 강력한 체력과 투지를 바탕으로 한 압박축구에 강점이 있었지만 최근 몇년간 이런 장점은 모두 사라져버렸다. 신태용 감독은 월드컵을 앞두고 강도 높은 '파워프로그램'을 단행하여 눈길을 끌었다. 문제는 월드컵이 임박한 시기에 평가전 일정과도 맞물려서 무리하게 강행된 체력훈련은 오히려 선수들의 컨디션 난조를 초래했고 경기력에도 나쁜 영향을 미친 것 아닌가 싶을 정도다. 신 감독은 월드컵 본선을 대비하여 필요한 과정이라고 해명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경기였던 스웨덴전에서도 체력훈련의 효과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신태용호는 최대한 실점 없이 버티다가 후반 중반에 한골 싸움으로 승부를 걸겠다는 전략을 내세웠지만 정작 체력이 먼저 고갈된 쪽은 수비만 하던 한국이었다. 오히려 스웨덴이 먼저 선제골을 넣고 잠그는 전략을 쓴 데다 한국은 선발로 기용했던 장신 공격수 김신욱이 교체되면서 높이의 경쟁력마저 잃었다. 경기 내내 헛심만 쓴 손흥민-황희찬 등은 경기 막판 20~30분 동안 아무런 모습도 보여주지 못했다. 그만큼 선수들이 쓸데없이 체력을 낭비하는 플레이가 많다는 것은 신태용 전술의 고질적인 문제점이기도 하다.

4. 세밀한 부분 전술과 상황 대처 매뉴얼의 부재

신태용 감독은 변칙적인 깜짝 전술과 포지션 파괴를 즐기는 지도자 중 한명이다. 상대팀에 따라 맞춤형 전술을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히 큰 장점이  될수 있다. 하지만 변칙만 많다고 해서 꼭 유연한 것만은 아니다. 설사 감독의 머릿속에 아무리 좋은 전략-전술이 있다고해도 그라운드에서 선수들이 이를 구현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신 감독은 부임 이후 수비안정을 위하여 지속적으로 변형 스리백 전술을 시도했지만 한번도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스웨덴전에서는 심지어 전력노출을 이유로 평가전에서 보여주지않았던 4-3-3 전술을 들고 나왔다. 스웨덴을 염두에 둔 맞춤형 전술이었다고 하지만 실전에서 검증되지 않은 카드를 가장 중요한 월드컵 경기, 그것도 반드시 이겨야 할 상대를 만나 처음으로 '실험'했다는 것은 트릭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도박에 가깝다. 실제로 신 감독의 트릭은 스웨덴전에 큰 변수가 되지 못했다.

오히려 신태용 감독은 자신이 준비했던 전술이나 구상대로 경기가 흘러가지 않을 경우를 대비한 2.3번째 대안을 준비하지 못한 것 같았다. 전반 박주호의 부상은 예상할 수 없는 악재였다고 해도, 스웨덴이 먼저 선제골을 넣는 상황이라든가 김신욱을 선발로 내세운 공중전 혹은 준비된 세트피스가 통하지 않는 상황 등은 충분히 대비해야 했던 변수였다. 신태용 감독은 바로 이러한 세밀한 '부분 전술'에서 허술함을 자주 드러낸 바 있다.

후반 실점 이후 한국 선수들의 플레이는 그야말로 '멘붕'에 빠진 기색이 역력했지만 벤치에서는 이승우를 투입한 정도를 제외하면 애초에 불리한 상황을 가정한 대안이 없어 보였다. 국내무대에서 베테랑이라는 신태용 감독도 결국 월드컵 무대는 처음이라는 '초짜' 감독의 경험부족을 드러낸 장면이다.

5. 비효율적이었던 엔트리 구성과 활용

신태용호는 최종명단 발표를 앞두고 상당수의 주전급 선수들을 부상으로 잃었다. 특히 권창훈, 염기훈, 이근호 등 공격자원의 대거 손실은 대표팀의 주전술을 바꾸는 것까지 고려해야 할 정도로 타격이 컸던 게 사실이다. 물론 이승우라는 새로운 자원을 발굴하는 성과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부상선수들의 공백을 대체할 정도의 충분한 전력보강은 이뤄지지 못했다. 반면 수비진은 포지션이 겹치는 선수들이 대거 발탁되며 무려 10명이나 이름을 올렸다.

신태용 감독은 이번 대표팀에 김신욱, 황희찬, 손흥민이라는 3명의 공격수만을 선발했다. 투톱이나 스리톱 전술을 선호하는 신태용 감독의 성향을 고려할 때 공격수 숫자가 부족했다. 실제로 스웨덴전에서 세 명의 공격수가 동시에 선발로 나서면서 대표팀은 후반에 공격진에 변화를 줄만한 카드가 부족했다. 유일한 장신 공격수인 김신욱마저 교체되어 나가자 대표팀은 스웨덴의 높이에 대항할 수 있는 선수가 전무했다.

선제골 이후 라인을 내리고 두텁게 수비벽을 갖춘 스웨덴을 상대로 체력이 떨어진 손흥민과 황희찬을 후반 중반에야 전방에 올린 것은 너무 늦은 감이 있었다. 유럽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은 석현준이나, K리그에서 조커로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던 이동국 같이 다양한 스타일의 공격자원들에게 제대로 기회조차 주지 않았던 신 감독의 판단이 아쉬운 대목이다. 더구나 좌우풀백들의 공격가담 능력이 최악이었던 이번 대표팀에서 크로스 능력을 갖춘 윙어 자원이 전무했다는 것 역시 선수구성의 유연성을 떨어뜨렸다.

6.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감독의 고집

앞서 지적한 문제점들은 사실 완전히 새로운 사안이 아니다. 작게 보면 신태용 감독이 부임한 지난 1년, 길게 보면 연령대별 대표팀 시절부터 지속적으로 지적되어온 단점들이다. 하지만 신태용 감독은 계속된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어쩌면 이것이 신태용호가 지금 같이 어려운 지경에 내몰리게 된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고 할수 있다.

1년이라는 시간이 최고의 팀을 만드는 데는 부족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감독으로서 한 팀의 색깔을 갖추기에는 아주 짧은 시간이라고 할 수도 없다. 신 감독은 부임 이후 첫 월드컵 최종예선 2경기를 제외하면 나머지 경기는 모두 월드컵 본선을 대비한 평가전이었다. 하지만 월드컵 본선을 앞둔 시점까지 베스트11와 플랜A조차 제대로 확정하지 못했고, 전력 노출을 이유로 준비된 평가전조차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등 기행의 연속이었다. 오히려 신 감독은 여론의 비판에는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가 하면, 계속된 경기력 논란에도 '실험 중'만을 강조하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정작 모의고사에서 늘 좋지 못한 성적표를 받던 수험생이 본 시험에서도 제 실력이 나올 리가 없다는 것은 지난 스웨덴전을 통하여 여실히 증명되고 말았다. 단순히 패배라는 결과 자체보다 더 뼈아픈 것은, 그 수많은 기회와 시간 속에서도 여전히 '신태용 축구의 경쟁력이 이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만한 색깔조차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제 남은 멕시코와 독일전에서 신태용호가 반드시 보여줘야 할 것은 더이상 1승이니 16강이니 하는 막연한 희망고문이 아니다. 한국축구가 월드컵에 나올 만한 자격이 있는 팀이라는 최소한의 증명일 것이다.
 
[월드컵] 작전 지시하는 신태용 감독 (니즈니노브고로드=연합뉴스) 한종찬 기자 = 18일 러시아 니즈니노브고로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대한민국 대 스웨덴의 경기에서 한국 신태용 감독이 선수들에게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 2018.6.18

▲ 작전 지시하는 신태용 감독 18일 러시아 니즈니노브고로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대한민국 대 스웨덴의 경기에서 한국 신태용 감독이 선수들에게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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