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전인 1994년과 올해 2018년의 대한민국은 닮은 듯하면서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1994년 7월 25일에 휴전 이후 남과 북의 정상간 첫 만남이 성사될 뻔 했다. 당시 미국 전 대통령 카터의 중재를 통해 평양에서 대한민국의 김영삼 대통령과 북한의 김일성 주석간에 정상회담 개최가 합의되었다. 당시에도 핵심 아젠다는 북한의 핵 무기 개발 중단이었다. 그러나 회담을 보름여 앞두고 김일성 주석이 갑자기 사망하면서 남북관계 정세는 당시 혼돈의 양상으로 접어 들었다.

24년이 지난 올해, 판문점에서 대한민국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이 전격 성사됐다. 이를 넘어 대한민국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외교를 통해 12일 사상 최초로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24년 전과 다른 점이라면 남과 북의 두 정상이 휴전의 상징인 판문점에서 평화를 목적으로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교환했고, 대한민국의 적극적인 중재를 통해 북미회담까지 이어졌다는 점이다.

유난히 뜨거웠던 그때 그 여름의 월드컵

1994년 여름은 유난히도 뜨거웠다. 사상 유례가 없던 기록적인 무더위와 더불어 사상 최초로 미국 대륙에서 개최된 월드컵으로 인해 더욱 열기가 뜨거웠다. 축구의 불모지였던 미국에서 과연 월드컵이 성공적으로 개최될 수 있을 지 우려도 많았으나, 미국은 10만 명 가까이 수용할 수 있는 미식 축구장의 인프라를 활용하고 다양한 국적의 인종들이 매 경기마다 운집해 지금도 깨지지 않는 역대 최다 평균관중 기록 (6만8991명)을 수립했다.

당시 대한민국은 디펜딩 챔피언 독일(독일 통일 이후 처음으로 서독 대신 독일 국호를 달고 출전), 전통의 유럽강호 스페인(1990년 로마월드컵에서 맞붙어서 대한민국은 1-3으로 패함), 남미 지역 예선에서 브라질을 꺾는 돌풍을 일으킨 볼리비아와 한 조에 속했다.

당시 조편성에 대해 '죽음의 조'와 다를 바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나마 월드컵 첫 출전국인 볼리비아를 상대로 1승을 노린다는 것이 주요 전략이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경기내용은 가장 만만하다 여겨졌던 볼리비아 전보다 스페인과 독일 전에서 훨씬 나은 모습을 보였다.

스페인과의 첫 경기에서 상대에게 2골을 먼저 내주고도 후반에 극적으로 동점을 이루면서 승점을 따냈고, 독일과의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에선 전반에 3골을 먼저 내줬지만 (골키퍼 최인영의 어이없는 실수로 2골을 헌납했다. 후반전에 교체 투입된 골키퍼는 당시 경희대에 재학중이었던 이운재였다.) 후반전에 상대를 넉다운 직전으로 몰고가는 투혼을 발휘하면서 2-3으로 아깝게 경기를 내주었다.

1994 미국 월드컵은 이번 월드컵 지역 예선 때 대한민국 대표팀을 두고 회자된 유행어를 붙인다면 그야말로 '본선에 진출한 것'이 아니라 '본선에 진출 당한 것'이었다. 1993년 아시아 지역 예선 최종전에서 대한민국은 북한을 3-0으로 눌렀으나 동 시간에 펼쳐지는 일본과 이라크의 경기 결과를 기다리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경기종료 막판까지 일본이 2-1로 앞서고 있어서 대한민국의 본선 진출은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종료 막판 이라크가 극적으로 동점골을 넣었고 대한민국은 이라크의 도움(?) 덕분에 기적같이 월드컵 출전권을 획득했다.

그래서 당시에도 대표팀을 두고 역대 최약체라는 비아냥이 늘 맴돌았다. 하지만 당시로는 월드컵 출전이래 최초로 승점 2점을 획득하는 최고의 성과를 거두었다. 만약 스페인, 독일이라는 상대의 이름값에 주눅들지 않고 경기 초반부터 대한민국의 축구를 구사했다면, 그리고 볼리비아를 상대로 승리의 부담감에 짓눌리지 않고 경기를 펼쳤다면 더 좋은 결과로 이어졌을 거라는 아쉬움의 가정법이 맴돌았다.

운명의 일전 앞둔 대한민국 대표팀

24년이 지난 2018년 냉전시대 미국과 더불어 양강체제를 구축했던 러시아(구 소련)에서 사상 첫 월드컵이 열리고 있다. 디펜딩 챔피언은 24년전과 똑같이 독일이고 대한민국은 디펜딩 챔피언 독일 뿐만 아니라 20년 전 3-1 패배의 수모를 안긴 멕시코, 그리고 지역예선에서 브라질에 이어 가장 많은 월드컵 우승을 기록한 이탈리아를 침몰시킨 스웨덴과 한 조에 속해있다.

오늘 대한민국은 스웨덴과 운명의 일전을 앞두고 있다. 바로 직전에 펼쳐진 독일과 멕시코 전은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멕시코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빈틈없어 보이던 독일마저 디펜딩 챔피언 징크스를 겪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24년전에도 독일은 첫 경기에서 볼리비아에 시종일관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오심이 곁들여진 클린스만의 골로 겨우 승리를 거머쥐었다.

24년 전 독일도 지금 못지 않게 빈틈 없어 보이는 전력으로 칭송 받았다. 이번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대한민국은 시종일관 부진한 경기력은 팬들의 비판과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마지막 두 경기에서 무승부를 거두고 본선진출을 확정한 것에 대해 '월드컵에 진출당했다'는 냉소를 받아야만 했다.

그러나 24년 전 유사한 상황에서 선배들은 투혼을 발휘하여 모두에게 박수를 받는 성과를 일구어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부담감에 너무 주눅든 나머지 제 실력을 더 발휘할 기회를 놓친 점이었다. 이제 스웨덴과의 첫 경기를 앞두고 있는 대한민국 대표팀에게 바라고 싶은 점은 절대 주눅들지 말고 경기장에서 쓰러질 각오로 투혼을 발휘해 달라는 점이다. 공은 둥글기에 결과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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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양형진 시민기자의 개인 네이버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월드컵 1994년 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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