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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첫 북미정상회담이 열린 12일 오후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호텔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공동 합의문에 서명을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 합의문 서명 마친 북-미 회담 사상 첫 북미정상회담이 열린 12일 오후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호텔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공동 합의문에 서명을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 케빈 림/스트레이츠 타임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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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2 북미정상회담 공동성명, 핵문제와 관련해서는 "조선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하여 노력할 것을 확약하였다"라는 추상적 언명에 그쳤지만, 민감한 또 다른 문제에서는 상당히 구체적인 약속을 도출했다.

"제4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미합중국은 전쟁포로 및 행방불명자들의 유골 발굴을 진행하며, 이미 발굴 확인된 유골들을 즉시 송환할 것을 확약하였다."

이미 발굴된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를 즉시 송환함과 동시에, 아직 찾지 못한 유해를 공동 발굴한다는 합의를 천명한 것이다. '즉시'라는 표현에서 느낄 수 있듯이, 꽤 구체적인 합의다. 이에 관해 13일 치 <노동신문>은 이렇게 보도했다.

"최고 령도자 동지께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제기한 미군 유골 발굴 및 송환 문제를 즉석에서 수락하시고, 이를 조속히 해결하기 위한 대책을 세울 데 대하여 지시하시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제기'했다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문제는 북한보다는 미국이 더 관심을 갖는 사안이다. 북한군과 미군의 전투가 주로 북한 땅에서 벌어졌으므로 그럴 수밖에 없다. 북한 땅에 묻힌 미군 유해를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하고자 하는 미국 정부의 관심사를 반영하는 문제다.

'유해 발굴·송환', 미국에게는 무척 중요한 가치

알링턴 국립묘지.
 알링턴 국립묘지.
ⓒ 위키백과 영문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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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9월 16일은 '전쟁포로 및 실종자 국가 추념일'이다. 어느 나라나 다 자국 군인의 유해 송환에 관심을 갖고 있지만, 미국 경우에는 특히 더 그럴 만한 사정이 있다. 다른 나라들과 달리 왕정 체제를 거치지 않고, 처음부터 민주공화국으로 출발했기 때문이다. 

왕정 체제에서는 백성의 생명을 왕실의 도구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었다. 백성을 전쟁에 동원하는 일도 비교적 수월하게 이뤄졌다. 그래서 이런 체제를 경험한 곳에서는, 민주주의가 된 후에도 여전히 국민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가 남아 있다. '민중은 개·돼지'라는 일부 지도층의 인식이 한국에 남아 있는 것도 그런 체제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은 처음부터 민주주의로 출발했다. 이 때문에 국가가 국민을 전쟁에 동원하는 일이 그만큼 조심스럽고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적국에서 포로가 됐거나 전사한 자국민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쏟을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한 미국 정부의 자세는 '본받을 만하다'는 탄사가 나올 정도다. 국방부 박중섭 법제팀장의 논문 '한국전쟁 사망군인 유해 발굴의 인도(人道)법적 의의'엔 이런 대목이 있다.

"국가를 위해서 희생한 자들에 대한 최선의 노력 즉 '조국은 당신을 잊지 않는다(You Are Not Forgotten), 그들이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Until They Are Home)'라는 구호를 외치며, 조국을 위해 희생한 자들에 대한 구조·발굴·확인 노력을 기울이는 미국의 정책은 우리가 본받을 만하다." - 대한적십자사 인도법연구소가 2006년 발행한 <인도법 논총> 제26호 중에서.

한국국방연구원 서주석 연구위원이 쓴 '미국의 대(對)북한 포로 및 유해송환 정책'이란 논문은 "미국 사회는 국가의 부름에 따라 자신을 헌신한 군인들에 대해 매우 특별한 애착과 관심을 보이고 있다"라면서 이렇게 기술한다.

"미국인들이 갖고 있는 전쟁 유산에 대한 애착과 전쟁포로에 대한 존경심은 우리로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높으며, 미국식 민주주의의 특성 때문에 미 의회나 행정부 모두 향군단체나 전쟁포로 및 실종자 협회 등 여러 관련 단체의 활동에 매우 민감할 수밖에 없다."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가 1997년 발행한 <군사> 제35호 중에서.

'미군 포로 죽이겠다'는 경고에 여론이 뒤집어졌다

알링턴 국립묘지를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알링턴 국립묘지를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 퍼블릭 도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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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나 전사자에 대한 미국 정부의 애착은 베트남전쟁을 계기로 한층 더 강해졌다. 미국이 이 전쟁에서 패배한 것은 북베트남이 강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미국 내 반전 여론이 강력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민주국가에서는 국민 지지 없이 전쟁을 수행하기 힘들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명확해지면서, 포로나 유해 송환에 대한 미국 정부의 관심이 더 커진 것이다. 

그런 미국 정부의 심리를 북베트남은 최대한 활용했다. 전쟁 중인 1965년, 미국이 북위 17도 이북을 상대로 대대적 폭격을 단행했다(북폭). 이로 인한 북베트남의 열세는 1968년 북베트남과 베트콩(베트남판 빨치산)이 대대적 반격을 개시할 때까지 이어졌다. 북베트남이 3년 만에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는, 미군의 희생 가능성에 대한 미국인들의 공포심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1966년 북베트남 정부는 미국의 북폭에 대한 보복으로 미군 포로를 전범으로 처벌하겠다고 발표했고, 이것이 미국 내의 여론을 자극해서 반전운동을 더욱 강화시킨 계기가 되었음은 물론…." - 위의 서주석 논문 중에서

미군 포로를 처벌하겠다는 경고는 미군 희생자 발생에 대한 공포심을 증폭시켰고, 이것은 미국 내 반전운동을 더 강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결국 이것이 미국의 패전을 초래한 결정적 원인 중 하나였다.

미군 포로를 죽이겠다는 경고가 사회 전체를 위축시킬 정도로, 미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자국민 포로나 전쟁희생자에 대해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다. 북미정상회담에서도 트럼프가 유해송환 문제를 거론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현재까지 송환된 미군 유해는 2200구가량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의 모습. 1950년 8월 사진.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의 모습. 1950년 8월 사진.
ⓒ 퍼블릭 도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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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3년 동안, 미국은 연인원 572만 명의 미군을 투입했다. 미국 원호청의 1980년 보고서 및 국방부의 1987년 보고서에 따르면, 이 숫자는 제2차 세계대전 때의 연인원 1611만 명이나, 베트남전쟁 때의 연인원 875만 명보다는 적지만, 제1차 대전 때의 연인원 473만 명보다 많은 숫자다.

한국전쟁에서 미군은 3만3629명이 전사하고, 2만617명이 전투 외의 원인으로 사망하고, 8177명이 실종됐다. 포로가 된 7140명 중 2701명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망자와 실종자를 합하면 총 6만5124명이다. 한반도 곳곳에 최대 6만5000명의 미군 유해가 묻혔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 정부가 북한에서 인수해간 유해는 많아봐야 2200구를 조금 넘긴다. 휴전 이듬해인 1954년, 북한은 미군 유해가 다수인 유엔군 유해 1869구를 송환했다. 그리고 제1차 북·미 핵대결 전후인 1990~1994년에 총 211구를 추가 송환했다. 또 1996년 7월 북·미 양국 합동조사에서 미군으로 추정되는 전사자 유골이 1구 발굴됐다.

1990년부터 2003년까지 추가 송환된 유해는 총 394구다. 1954년에 송환된 유해가 모두 미군이라고 전제한다 해도, 2003년까지 송환된 미군 유해는 2263구에 불과하다.

남북관계에서 이산가족 문제가 갖는 파괴력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북한보다 남한이 훨씬 더 애착을 갖고 있으며, 이 문제가 북한에 대한 남한 국민들의 태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미군 유해송환 문제 역시 북미관계에서 그런 작용을 수행하기에 충분하다.

이 문제는 북한에 대한 미국인들의 태도에 영향을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핵문제와 북미수교에도 파급력을 미칠 수 있다. 북한이 단계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유해를 송환한다면, 3억 미국인들의 여론이 개선돼 북미수교에 유리한 환경이 보다 빨리 조성될 가능성이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북한 비핵화에 대한 미국 정부의 부담을 덜어주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유해 송환으로 적대관계 해소한 사례, 바로 베트남

알링턴 국립묘지를 향하는 장례 행렬. 1967년 사진.
 알링턴 국립묘지를 향하는 장례 행렬. 1967년 사진.
ⓒ 위키백과 영문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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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핵문제를 다루는 최대 원칙은 비핵화가 아니라 '국익'이다. 이제까지 미국은 국익 우선주의에 따라 중국·이스라엘·인도·파키스탄의 핵개발을 묵인했다. 중국의 경우에는, 핵확산금지조약(NPT)의 예외조항을 통해 핵 보유를 합법화해주기까지 했다.

미국은 가급적이면 다른 나라의 핵 보유를 금지하려 한다. 하지만 부득이한 경우에는 국익 우선주의를 내세워 모른 체 한다. 상대방의 핵무기가 미국 안보에 더 이상 위협적이지 않으며 상대국과의 협력이 지역 패권 유지에 유리하다고 판단되거나(중국 사례), 상대국의 핵무기가 경쟁국을 견제하는 데 유리하다고 판단되거나(인도·파키스탄 사례), 상대국에 대한 자국민들의 감정이 우호적이라고 판단되면(이스라엘 사례), 미국은 비핵화 원칙보다는 국익 우선 원칙을 적용했다.

만약 북한의 유해송환 작업이 3억 미국인들의 감동을 이끌어내는 수준이 된다면, 핵문제 못지 않게 이 문제가 북미수교의 관건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경우에 따라서는, 핵문제의 비중을 지금보다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미국 행정부가 북한 비핵화보다 상대적으로 수월한 유해송환을 북미수교의 명분으로 활용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실제로, 미국이 유해 송환 문제를 명분으로 적대관계를 해소한 사례가 있다. 바로 베트남 사례다. 미국 정부는 베트남 때문에 치욕적 패배를 겪었지만, 유해 송환 문제를 매개로 국민들을 설득하고 양국관계를 수교로까지 발전시켰다.  

"1991년에 미국은 하노이에 전쟁포로 및 실종자 연락사무소를 개설한 뒤 1994년 2월에는 무역 제재를 해제하고 6월에는 연락사무소 설치를 발표하였으며(실제 설치는 1995년 2월), 1995년 7월에는 미·베트남간 관계 정상화를 실현할 수 있었다." - 위의 서주석 논문 중에서.

미국이 적대국가에 대한 경제제재를 해제하는 조건 중 하나는 신뢰관계다. 적대국가를 신뢰할 수 있어야 제재를 풀어준다. 미국은 베트남이 전쟁포로나 유해송환에 협력적 태도를 보이는 것을 확인한 뒤 무역제재를 해제했다. 그런 뒤에 수교까지 했다. 유해 송환이 미국과의 신뢰관계를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북미관계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은 없다. 정전 70년이 다 되도록 유해송환 문제가 매듭지어지지 않았으므로, 미국은 핵문제 못지않게 이 문제에도 고도의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유해송환 문제가 북미수교 협상과정에서 핵심 쟁점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런데 이 문제는 의외의 방향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북한 땅에는 미군 유해 뿐 아니라 국군 유해도 많다. 이는 북·미 양국 중심으로 전개될 수도 있는 유해송환 문제가 경우에 따라서는 남·북·미 3자 구도로 전개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반도 정세가 북·미 양강 구도가 아니라 남·북·미 3자 구도로 전개되는 데에 이 문제 역시 기여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처럼 미군 유해송환 문제는 인도적 차원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한반도 및 동아시아 역학구도를 움직일 수 있는 핵폭탄급 쟁점이라 할 수 있다.


태그:#북미정상회담, #미군 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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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연재 2018 남북-북미정상회담 : 평화가 온다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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